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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우연한 만남 (1)


짜장면을 시켜 먹겠다고 다짐한 지 네 시간, 집에서 대충 해결하겠다면 적절한 시간이었겠지만 배달 음식을 먹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에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며, 중국집이 가까운 편이라 귀찮음만 달래면 홀에서 먹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민수는 귀찮아서 잠부터 잔 당사자인 만큼 굳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집에서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9시에 저녁을 먹기엔 늦었다고 생각하는 터도 있는지라 잠깐 고민에 빠졌다.

중국집 전단지를 들고 다시 내려놓기를 5분, 어차피 홀이든 배달이든 요리 하나당 나오는 스티커는 줄 테고, 좀 더 저녁을 빨리 먹느냐 늦게 먹느냐 정도의 차이였다.

결국, 휴대전화를 들고 짜장면을 한 그릇 시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귀찮음이 승리한 순간이었다.

음식이 올 때까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샤워도 하고, 미리 내일 공부할 내용을 정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 먹은 음식도 없을뿐더러, 오늘 공부를 시작할 게 아니라면 공부할 내용 정리가 그리 많은 양이 될 리 없었다. 그러니, 별 볼 일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띵-동’

홀에도 사람이 없었는지 애초 예상했던 40분가량보다는 빠르게 도착했다. 그런데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기만 하던 민수는 그 벨 소리에도 반응이 늦어서 카드를 부랴부랴 챙겨서 나갔을 때 이미 3분이 지난 후였다.

​“​8​,​0​0​0​원​입​니​다​.​”​

중국집답지 않게 철가방이 아닌 천 가방을 쓰는 배달원의 모습은, 마치 피자 배달을 하는 사람 같았다. 게다가 낯익은 얼굴이었다. 늘 보던 배달원은 어디 가고, 낮에 봤던 버스 정류장에서의 여학생이 대신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굳이 아까 봤던 학생이냐고 묻지는 않았고 단지 짜장면을 받고 카드를 내밀 뿐이었다.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비닐을 뜯고, 같이 따라온 나무젓가락은 싱크대 아래 수납 칸에 던져놓은 채 텔레비전을 틀고 짜장면을 먹었다. 어차피 뉴스가 나오는 시간대라 어제랑 다를 바가 없었고 하루 만에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진 않아서 익숙한 ASMR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배달을 기다릴 동안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과 생각만큼 큰 차이는 나지 않았고 그마저도 짜장면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면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다음에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

민수가 가진 고민은 딱 하나였다. 원래 공붓벌레인 만큼 취직하기 싫은 이상 선택지가 이거 뿐이기도 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취업 준비생을 표방하면서 판판이 놀겠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별로 말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는 내일부터 살을 빼겠다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고 오히려 마음속 찜찜함만 남을 뿐이었다.

그러나 웬만한 자격증은 거의 다 득한 터라 공부할 여지가 많지 않았고, 토익이나 토플 같은 어학 성적도 얼마 전에 최상위권으로 갱신해서 굳이 다시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사 검정 시험조차 이미 끝낸 후였다.

한때 취업 박람회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 생각이 들었을 땐 박람회가 열리지 않았고 막상 열렸을 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 의욕을 잃었을 때에 비하면 훨씬 진보한 것이었으나 민수는 알아채지도 못했고, 여전히 취업에 뜻이 충분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간단하게 쇠젓가락을 설거지한 후, 다시금 무언가 해보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성의로나마 지금 하는 취업 관련 행사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컨벤션 센터까지 가려면 멀고 그만큼 의욕도 없지만, 그래도 알아보고 안 가기로 했다는 변명과 알아보지도 않고 이번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는 데에는 그나마 차이가 있었다.

제발 알아볼 취업 박람회조차 없길, 그렇게 간절히 바란 효과가 있는지 민수에겐 관심 없는, 그리고 민수 부모님께서도 만족해하시지 않을 일부 박람회나 열리고 있을 뿐 별달리 눈에 띄는 행사는 없었다.

“그럼 그렇지, 뭐.”

그러나 말과는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아 느껴지는 이름 모를 허전함은 달랠 수 없었다. 요즈음 더는 딸 자격증이 없어 지루한 나날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별로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공백이 있어도 이렇게까지 오래 공백을 가져본 것은 어릴 때를 빼고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동안 손댄 적은 없지만, 어쨌든 공부는 잘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투잡 개념으로 접한다는 재택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과거에는 파워블로거가, 요즘은 유튜버가 돈을 잘 번다던데, 뭔가 아이템을 잡아서 시작해볼까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문제는 민수가 할 수 있을 만한 부분들이 거의 없었다. 기본적으로 영상 편집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둘째치고 소재도, 도구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구닥다리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과 블로그에 글 쓰는 것 정도나 할 수 있을 법했다.

“요즘 시대에 블로거는 거의 승자 ​독​식​이​라​던​데​…​…​.​”​

사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시장 크기가 줄어들 뿐이지 별 다를 바는 없지만, 민수는 이런 사정 때문에 블로거를 하는 건 별로 탐탁지 않았다. 아무리 유행 따라가지 않는 사람이라지만 이런 유행성 컨텐츠는 유행 만들겠다고 예전에 하던 습관대로 했다간 쉽게 망한다고 듣기도 했다. 그런데 시대를 역행하듯 한바탕 유행이 지나간 블로그를 한다니, 그 전에 좋은 컴퓨터를 맞춰서 유튜브를 맞추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긴 하지만, 민수는 그걸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는 만큼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한편, 민아는 세은이와의 갑작스러운 방문 이후 여러 생각에 휩싸여 다시 독서실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원하지 않았던 부분인 만큼 그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은이를 탓할 순 없는 노릇이라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뒷담화를 할 생각은 없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복잡한 심경 변화에 온종일 시달린 결과, 오늘도 교과서 한 바닥 정도나 보고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조심스레 오늘 아침 건을 꺼내며 걱정하셨지만, 단순한 착각인 것을 아신 뒤로는 민아의 불안한 심정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아니, 정확히는 서로 간에 감정을 숨기고 있다는 게 좀 더 정확했다. 민아는 나름대로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는다고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식사를 이어갔고, 힘들 때 오히려 밝게 웃는 민아임을 아는 부모님께선 당연히 걱정스러워하셨지만 여러 해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이겨왔기에 굳이 말씀을 꺼내지 않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하는 편이 민아에게 나았는데, 세은이 얘기를 꺼낸다면 십중팔구는 그런 애랑 다시 친구를 하냐며 말씀하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잘 먹었습니다.”

그릇을 정리한 후 방에 돌아가 오랜만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거의 2년에 한 번 쓰는 듯한 일기지만 작년과 재작년에는 그 여느 때보다 많은 힘이 되어주었기에, 오늘도 일기의 힘을 빌려서 이틀에 걸친 공부에 관련된 피로감과 세은이에 관한 얘기를 적으며 일종의 간단한 회고를 했다. 다행히 근래에 일기의 힘을 자주 빌린 탓에, 별로 없을 줄 알았던 세은이와의 추억이나 당시 세은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따위의 내용이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어 굳이 일기를 쓰지 않고 읽기만 해도 대강 월요일에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직 일요일이 남았으니 서두를 것도 없다. 물론 일요일마저 공부를 못했다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급히 결론을 내렸다가 괜히 손해를 볼까 걱정스러웠다.

사실은 일요일은커녕 월요일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은데,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으니 더 조급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왜 공부를 하지 않고 일기 나부랭이나 쓰냐고 구박하는 부모님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상황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써오진 않았겠지.

그런데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탓인지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막상 쓸 때는 답답한 부분이 많았다. 단순히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될 것 같고, 어떤 부분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단순히 글 실력이 떨어지는 탓이었으면 좋겠지만, 민아의 경우에는 어휘력이 부족하거나 문장을 짜는 방법이 모자란다고 보기에는 관련 상장도 많았고 선생님께도 칭찬을 많이 받은 편이었다. 물론 공부 잘하는 애 몰아준다고, 별로 재능도 없는데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기 위해서 상장을 남발한 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민아가 이렇게까지 공부에 매달리기 전까지도 같은 종류의 상을 여러 개 받아두곤 했다는 걸 되짚어보면 그것도 분명 아니리라.

글쓰기만 약 두 시간 정도의 사투 끝에, 고른 숨을 내쉬며 겨우 일기장을 덮을 수 있었다. 민아치고는 상당히 의외인 부분이었고, 그래도 그동안 한차례 자신의 견해를 정리할 기회가 되어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다만 많은 시간을 소비한 탓에, 평소 같았으면 이보다 빨리 씻었을 것을 학교 다니는 평일만큼 늦게 씻게 되었다. 단순히 저녁 먹고 두 시간 동안 글을 쓴 게 아니라, 앞선 일기장을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모두 훑어본 것이 원인이었다. 그 때문에 잠자리에 들 적에는 이제 막 동이 틀 무렵이어서, 포근한 꿈을 꿀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가위만 눌려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이번 편은 연달아 연재합니다. 늦어도 토요일 밤까지는 다음 편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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