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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토요일에 예상치 못한 일정이 생겨서 다소 늦어졌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다음주에는 금요일 저녁에 맞춰 올릴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우연한 만남 (2)


다음 날 아침, 민아는 온몸이 쑤시는 느낌을 받으며 겨우 일어난 끝에 벌써 열두 시가 되었다는 시계의 시침을 보고 화들짝 놀라 몽롱했던 직전과 달리 급한 표정으로 부엌에 갔다.

가위에 눌렸을 때 부모님께서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셨지만, 그 뒤로 쌓인 피로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로 잠든 탓에 아침 식사는 하지도 못하고 점심 식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왜 도로 자게 놔두셨냐고 말씀드릴 수도 없었던 것이, 부모님께서는 어제의 일로 미루어 민아가 무언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여기셨기에 한 행동이셔서 정확한 판단에 어떻게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런 까닭에 점심을 급히 해결하고 옷만 갈아입은 채 부랴부랴 문제집을 챙겨 집을 나섰지만, 한 가지 잊어버린 것이 있었다. 하필 독서실이 오늘 휴무인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연중무휴를 표방하는 곳이니만큼 오늘도 ​열​려​있​었​어​야​겠​지​만​,​ 어젯밤 갑작스럽게 건물 전기가 합선되는 사고가 나는 바람에 당분간 수리 및 정리를 위해서 휴관하게 되었다. 당연히 세은이와 만났던 카페도 이 때문에 오늘은 문을 열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문자를 받고도 잊었으니 기억하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독서실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 즈음에야 이상한 점을 발견한 민아는 어제와 비슷하게 허무함을 느끼고 근처 카페에 들러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소음은 독서실보다 훨씬 못하지만, 그렇다고 한두 번 카페에서 공부해본 것은 아니어서 이런 때에는 나름 할만했다. 다행히 오늘은 어제와 달리 일련의 일 때문에 공부를 방해받지도 않았고, 참고서도 눈에 쏙쏙 들어왔다. 완전히 평소와 같다곤 할 수 없지만, 연이틀 당황스러운 일을 겪고 나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적어도 학교에서 민아가 평소 공부하는 효율만큼은 나와주었다.

한참 동안의 공부 끝에 잠깐 휴식시간, 혹은 저녁시간. 독서실에서야 일반적으로 밑의 카페로 내려가 저녁 식사 거리만 간단하게 사서 올라가 식음료 섭취 구역에서 먹으며 공부하면 되지만 카페에서 공부할 때는 달랐다. 어차피 외부 음식 섭취 금지인 만큼, 나가서 먹거나 카페 내 빵 같은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

그러나 민아가 공부에 몰입해 있는 동안 저녁 시간을 살짝 놓쳐버려서, 완제품으로 된 샌드위치나 베이글 종류는 전혀 남아있지 않았고 그나마 매장에서 주문할 수 있는 브런치 정도나 먹어볼 수 있었다. 사실 여기 카페의 브런치는 주문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인기가 없는 메뉴이기 때문에 아무리 먹을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조금은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밖에 나가는 것은 시간 낭비였기에 하는 수 없이 주문하였다.

“브런치 A 세트로 주세요.”

​“​1​2​,​0​0​0​원​입​니​다​.​”​

아마도 고등학생이 혼자서 이 비싼 브런치 세트를 먹는 일은 어느 브런치 카페를 가도 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유행에는 둔감한 편이지만 거리에 브런치 카페가 하나둘 생기면서 볼 수 있는 창가의 손님들 대부분은 지인과 함께 온 것으로 보였고 브런치가 주메뉴가 아닌 이곳에서도 이 메뉴를 혼자 시키는 손님은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양도 많은 편이고 빵 종류가 많아 민아 혼자서 먹기엔 좀 부담스러웠다. 아직 지우지 않은 세은이의 번호로 연락해볼까, 그런 고민도 잠시 했지만 괜히 마음만 심란해질까 봐 시도해보진 못했다.

소시지, 베이컨, 양송이 스프, 스크램블드에그와 올리브 치아바타. 그 외에도 바싹하게 구운 식빵 몇 쪽과 가염 버터가 올라간 이 구성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일반적인 브런치 카페보다 분위기가 살지 않아서 그런 건지 몰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맛이 없어 보이는 구성은 아니었다.

그러나 민아는 브런치 세트의 구성 같은 걸 신경 쓸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더 컸으므로 잠깐의 의문은 조용히 스프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공부하면서 저녁을 먹는 민아의 모습은, 옆에서 보면 언제 다 먹느냐고 생각할 만큼 느렸다. 양송이 스프 한 숟갈을 그토록 정성스럽게 입안으로 모실 수 없었고, 그러면서도 아직 못 외운 영어 단어와 문장에 온전히 집중하는 모습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다만 카페라는 특성상 민아의 행동에 집중하는 사람은 없어서, 느린 식사 속도에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실 그 정도로 정성스럽게 식사한다면 누구도 방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그 느린, 늦은 저녁 식사가 카페의 마감 시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후 11시나 되어서야 문을 닫는 덕분에 많은 수험생의 사랑을 받기까지 하는 카페인 터라, 적어도 10시까지는 빈 그릇을 가져다주면 아르바이트 점원이 퇴근을 기다리며 애를 태우지는 않았다. 민아도 마찬가지로 그 적은 양을 9시에 먹기 시작해서 10시 즈음 마무리 짓고 그제야 빠르게 접시를 정리하여 점원에게 가져다주었다.

11시면 닫는 카페에, 아무런 음료 없이 공부에만 열중하는 것도 민폐라 여겨 민아는 짐을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독서실에 있을 때라면 새벽 2시까지도 공부하다가 집으로 돌아가 씻고 잠자리를 청하겠으나, 주말이기도 할뿐더러 내일은 월요일이라 약간의 체력 보충도 필요하였으므로 남는 아쉬움을 달랜 채 일찍 눕기로 하였다.

 

한편 민수는 구닥다리 노트북으로는 유튜버를 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절망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무어라도 해보기 위해 아르바이트 구인 구직 사이트를 뒤적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쓰는 낯선 이력서와 낡아빠진 증명사진을 올리며 1년간 자신이 얼마나 사회와 접하는 것을 피해왔는지 새삼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요식업종에 종사하려면 1년 이내에 검사한 보건증이 필요하다니, 거기에도 소액이지만 돈이 들었다. 그동안 가족 카드로 결제해서 수중에 현금이 없었던 민수는 오랜만에 잔소리를 각오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여, 여보세요. 저 민순데요.”

“어, 그래. 잘 지내고 있니? 취업 준비는 잘 되어가고?”

“네. 그래서 말인데요, 취업 전까지 돈을 좀 모으려고요.”

“여태 뭐 했어? 아르바이트로 뭐 하고 있는 거 없었니?”

“죄송해요. 그동안 자격증만 열심히 따고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말인데, 보건증을 발급받아도 될까요?”

긴 침묵에 식은땀이 흘렀다. 받은 생활비는 소중하게 여기되 유용하게 사용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허가가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전화를 거니 1시간 같은 10분의 침묵이라는 답을 얻고 말았다.

그런 침묵을 깨시며 알았다, 짧은 한마디와 함께 통화를 그만두실 무렵에는 약간의 안도와 함께 부끄러운 감정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격증 준비로 부지런한 척을 해왔지만, 사실은 기초적인 아르바이트조차 하지 않으며 그저 피할 뿐이었던 1년간이 갑작스럽게 부끄러웠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돈을, 길바닥에 뿌렸나. 그런 생각에 민수는 자신의 한심함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여 헤맸다.

그런 그가 정적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자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상쾌하기는커녕 잠조차 한숨 자지 못한 듯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젯밤 마치지 못한 이력서도 마저 써야 했고, 텅텅 빈 냉장고를 원망스럽게 노려보면서도 아침 식사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기름으로 절인듯한 가라앉은 머리와 대조적인 꼬질꼬질한 냄새는 분명 하루 안 씻었을 뿐인데 벌써 근처에조차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니 이 상태로 밖에 나갈 수는 없어서 먼저 씻었고, 빨랫감은 모아서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집을 나섰다. 집에 세탁기가 없어 주변 코인 세탁소를 이용해야 하는 탓이었다. 식사는 그다음이다.

다행히 코인 세탁소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으나, 아무래도 많은 세탁물의 수 때문에 다소 곤욕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한꺼번에 빨지 않으면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때는 원룸에 세탁기를 들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그런다고 자주 돌릴 것 같지는 않아서 들이지 않은 결과 옷값이 더 나가기만 한다.

아무튼, 꼬질꼬질한 옷과의 시름이 끝난 후 진지하게 아침 식사를 고민하였으나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어젯밤 먹은 자장면은 당연히 후보에서 탈락. 면류가 아닌 다른 음식이 먹고 싶었지만 기름진 것을 아침에 먹어서 속이 편한 날이 없었다. 겨우 내린 결론이 동네 빵집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사 먹는다는 것이었다.

원래 민수는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마땅치 않을 때는 먹기도 했다. 한국인은 밥이지, 같은 사고방식은 아니고 단지 먹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빵 대신 김밥이나 컵밥을 먹어도 되었을 텐데 빵집이 가까워서 그런지 굳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졸리고 귀찮은 것이 컸다.

느릿느릿 집게와 쟁반을 들고 매장을 한 바퀴 빙 둘러보니, 아침이라 그런지 새로 만든 빵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작은 빵집은 아니라 오히려 선택지가 넘치니 단숨에 고르기엔 어려웠다. ‘샌드위치 종류’라고 명확하게 규정했으면 빠르게 고르고 집에 돌아가 커피와 함께 먹었을 텐데, 무엇이 민수 입맛에 먹을만한지 몰라 두 세바퀴 매장 안을 돌게 되었다.

사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직원에게 어떤 빵이 아침 식사로 좋을지 추천해달라고 진작에 물어보았을 시간이어서, 보다 못한 직원이 그에게 무엇을 찾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나 민수도 마음에 쏙 드는 빵은 없으므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도 시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이상 가게 직원분께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단 생각에 찜찜함을 뒤로하고 점원분이 추천해주신 샌드위치 빵과, 그 빵집에서 파는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여 집에서 먹었다.

역시나 민수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보건소에 방문해 보건증을 발급받으러 갈 기운은 생겼다. 그리고 그 김에 장을 봐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참으로 오랜만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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