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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우연한 만남 (4)


드디어 세은이를 보기로 한 날, 단순히 학교에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민아는 한껏 긴장했다. 혹시나 세은이와 마주치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분명 학교에서 보자고 나름 웃으며 답한 것 같은데, 막상 당일이 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세은이를 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만약에 같은 반이 되면 어쩌지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세은이와 하루 이틀 학교를 같이 다녔던 것이 아니다. 당연히 세은이도 비슷한 시간대에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채비를 다 했을 테고, 학교까지의 길이 비슷하다거나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비슷하다면 적어도 교문 앞에서 만날 게 분명했다. 민아가 알기론 아직 이사는 가지 않았으므로 고등학교에 가는 길도 비슷하리라.

“만나지 않아야 할 텐데.”

“누구를?”

얼마 전부터 민아를 귀찮게 하던 급우가 말을 걸었다. 세은이가 아니라는 점에 마음을 쓸어내리면서도, 그런 감정을 느낀 민아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비록 그 끝이 좋지 못했다고 해도, 과거를 지우고 다시 시작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아니야.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대꾸도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이 애한테 알려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그렇지만 그 급우는 그저 끄덕이며 그렇구나, 한마디 할 뿐이었다.

“오늘 급식이 뭔지 알아?”

“몰라.”

무슨 생각을 했길래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방금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걸 보여줬는데 또 귀찮게 했다. 아니, 사실 알고는 있다. 과거에 좀 힘든 일이 있어서 마음이 어지럽더라도, 옛일은 이미 지나갔으니까 훌훌 털고 오늘 일을 보자는 거겠지. 나름의 배려라면 배려지만 오늘은 그게 먹히지 않았다.

“오늘 급식 맛없는 거 나온 데. 이따가 매점에서 때울래?”

역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었다. 매점에서 뭐 맛난 거라도 사줄 의향이 있었던 거겠지. 귀찮게 한 대가로 종종 무언가 사주겠다는 말을 꺼낼 때가 있었다. 그 보답으로 가끔 민아도 대신 결제해주기도 했지만.

“아니야. 그냥 안 먹고 말래.”

어차피 맛있는 급식이든, 맛없는 급식이든 오늘은 입맛이 없을 게 뻔했다. 뭐든 사료 먹는 기분으로 먹겠지.

“친구야~. 그러지 말고, 뭐라도 좀 먹어.”

아직 점심시간이 된 것도 아닌데 참 까다롭게 굴었다. 점심을 안 먹겠다고 선언하지도 않았고, 매점에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울상이 된 표정으로 민아를 쳐다보았다.

“이러다 늦겠다. 가자.”

그래도 민아를 친구로 불러주는 유일한 한 명인데, 스스로 굴러온 이 급우에게 지각할 것만 같은 예감을 혼자만 느끼고 냅다 뛸 만큼 차가운 성격은 아니어서 한 마디 전해주었다.

“앗, 정말! 얘, 빨리 가자.”

 

어딘가의 소설이나 만화 등지에서는 꼭 얼마 전 본 지인이 같은 반에 전학 오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다. 역시나 민아네 반에 세은이는 전학 오지 않았고, 다만 옆 반에 전학생이 새로 왔다는 것으로 보아 세은이가 옆 반이라는 추측이나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싱숭생숭한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민아 옆에서 항상 수다 떠는 급우는 전학생 얘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반 애들의 들리는 이야기는 거부할 수 없어서 전학생이 왔다는 소식 정도는 모를 수가 없었지만.

세은이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지 굳이 민아를 찾으러 오지는 않았다. 옆 반과 합반할 수업도 없었고, 점심시간에도 그 시끄러운 급우랑 밥을 먹었으니 어디선가 민아를 보았더라도 말을 걸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도 세은이와 민아는 불과 한 테이블 밖에 안 떨어져 있었고, 조금만 민아가 일찍 자리를 떴다면 서로 어색하게 눈빛을 주고받았을 터였다.

방과 후, 민아는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세은이의 연락처를 들고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화 통화 아이콘을 눌렀다. 세은이도 마침 전화하려고 했는지 통화 중이라는 메시지만 짧게 울렸고, 전화를 끊자마자 곧장 세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후문 앞이야. 어디서 볼래?”

“음……. 후문 뒤에 있는 개인 카페로 하자.”

예상과는 달리 평탄한 말투로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서로 전화를 끊고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했지만, 아직은 보이지 않는 위치에 각자가 있는 만큼 그걸 알아챌 수는 없었다.

그만큼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시간도 달라져서, 세은이가 먼저 도착해서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릴 때 즈음 민아도 다다랐다. 하지만 되도록 좌석 쪽은 바라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주문하는 곳으로 곧장 나아갔고, 그 결과 세은이가 어디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민아야, 여기야.”

서로 다른 곳에 앉아 기다릴 뻔한 것을 간신히 붙잡았다. 얼떨떨한 느낌에 순간적으로 잡힌 손을 뿌리쳤지만, 세은이는 민아의 손을 다시 잡고 자리로 안내했다. 그러나 이토록 어색한 상황에선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집에서 만나자고 하지 않았어?”

세은이가 한참 만에 연 질문은 그 말이었다. 월요일로 미룬 것도 그 때문이었다는 것을,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아, 그랬지. 미안해.”

지금부터라도 우리 집에 올래?

그런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미뤘는데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부모님도 아직 회사에 있을 때인데, 어차피 둘이서 있다고 무슨 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괜찮아. 나야말로 주말 동안 내 일로 힘들게 해서 미안해.”

세은이가 전학 오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있지도 않았을 재회. 힘들게 했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왠지 부정하고 싶었다. 그만큼 세은이도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나야말로 미안해.”

어색한 분위기 속에 어느새 진동벨이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음료를 가지러 가지 않았다. 픽업 부스에선 둘의 음료가 식어가고 있었고 직원은 애타게 세은이와 민아를 불렀지만 두 명 중 그 누구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대화와 침묵이 반복되고, 서로 사과하다가 할 말이 없게 된 때는 1시간 뒤였다. 뒤늦게 진동벨이 힘없이 깜박거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부랴부랴 얼음이 다 녹은 음료를 가지러 앞다투어 다녀왔고, 다시 음료만 홀짝거리며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소란한 카페 안에서 유일하게 조용한 그 둘은 마치 다른 공간 안에 있는 것만 같아서, 누구도 함부로 말을 걸지 못했다. 그날따라 소란스러운 급우도 이 카페에 잠시 들렀지만 평소처럼 유난스럽게 말을 걸지 못하고 조용히 볼일을 보고 빠져나갔다.

“우리 이제 갈까.”

민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음료는 동난 지 오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 공간에서 세 시간 째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민폐라는 생각에서였다. 세은이도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고, 겨우 밖으로 나왔다.

 

“우리 집에 올래?”

아까는 꺼내지 못했던 말. 분위기는 여전히 나빠도 지금이 아니면 더는 이런 말 할 수 없을 거란 걸 잘 아는데 안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밖으로 나와서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어서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땅거미가 차츰 내려앉는 저녁녘, 퇴근하고 돌아오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뒤늦게 책가방을 메고 민아의 집으로 향하는 둘. 주변에서 언뜻 보아도 확실히 어색해 보이고, 서로 간에 말은커녕 시선조차 주고받는 움직임이 없었다.

묵묵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자기 방으로 세은이를 안내하고서야 가방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줄래?”

세은이는 민아가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다 알지만, 민아는 세은이가 그 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랐다. 왜 지금 이 시기에, 한창 시험 대비를 해야 할 4월에 전학을 왔는지 궁금했다.

“그래……. 너도 알아야 하니까.”

 

민아와 세은이가 결정적으로 멀어지던 날 아침. 아주 교묘하게 둘을 괴롭히고 있었던 아이들은 어느 결심을 했다. 같이 등교한다는 걸 알고 있고, 아직 오지 않았으니 실행은 어렵지 않았다. 이간질까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민아의 글씨체를 따라갈 재간도 없었고, 흉내 내기 마스터라도 반에 있는 게 아닌 이상 민아가 세은이를 욕하는 일은 없었다.

물건을 훔치는 초보적인 일은 아니었다. 중학생씩이나 되어서 남의 것을 숨기는 정도로 괴롭게 만드는 건 그 아이들 성에 차지 않았다. 아주 교묘하게,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모둠 활동이 있으면 최소한의 답만 해주기로 했다. 방해하는 듯, 아닌 듯 헷갈리게. 다른 친구들보다는 성의 없게.

사실 그만큼으로는 결정적으로 멀어질 만한 일이 아니었으나, 이제 괴롭히기 시작한 상황이 아니기에 단순히 그렇게 결의를 다진다고 해서 그 정도로만 괴롭히는 게 될 리 없었다. 그래서 당근을 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민아와 떨어진 상황에서만 사근사근 잘 대해주는 아이들이. 그리고 은근히 같이 있으면 옆에서 ‘실수’를 하는 아이들이.

그전에도 이런 결의가 없었던 건 아니고, 마치 조직 폭력배라도 되는 양 민아와 세은이가 없을 때 다들 모였다면 하는 결의였다. 일종의 구호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아와 세은이가 워낙 일찍 오다 보니 이런 일이 잘 없었다.

특히 그날은 세은이가 먼저 온 날이었다.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민아가 사정이 생겨서 세은이가 하는 수 없이 민아를 두고 먼저 등교하는 날.

망을 보는 아이는 주로 좀 더 키가 큰 민아를 보고 구분해서 세은이가 온다는 사실을 놓쳤다. 당연히 아직 안전하다고 판단을 했고, 세은이가 교실 뒷문을 열었을 때 그들은 마치 경기 전 다짐하는 선수들처럼 둥글게 모여 오늘의 작전 회의를 하고 있었다.

 

“너희 뭐 해? 나도 끼워줘라.”
설날이 왔습니다.
이 소설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느린 연재 속도와, 잦은 휴재로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만,
이번에는 적어도 1권까지 수월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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