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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우연한 만남 (5)


그 순간 망보는 아이에게 쏟아지는 비난 어린 시선. 몇몇은 당황스러운 눈빛마저 보였으나 그 아이는 얼떨떨하면서도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 아냐. 우리끼리 하는 얘기가 있었어.”

이 정도 발언에 이상한 낌새를 모를 리 없었다. 어딘가 세은이에게 걸리면 안 되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었겠지. 아무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중학생인데 그 정도도 모른다면 바보다.

“너희들 무얼 꾸미고 있었어? 말해.”

“아니, 나는…….”

“네가 짐작하는 대로. 뭐겠냐?”

지금까지 세은이를 상대하던 아이가 말을 흐리는 사이, 마치 당당하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며 끼어드는 녀석이 있었다. 이 사단의 주인공, 그리고 세은이든 민아든 무작정 싫어하고 봤던 사람.

“뭐 이러쿵저러쿵해도, 결국엔 네가 맘에 안 든다고 봐야지. 민아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좀 아니꼬운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한테 일러라도 보든가. 다들 덮으려나 들지 않으면 다행이지. 아마 앞으로는 민아 얼굴 보기 힘들 거야. 이미 넌 공범이거든.”

무엇을 보고 세은이를 공범이라고 칭하는 걸까. 하지만 세은이는 자신도 공범이라는 단어에 속아 넘어갔다. 정확히 어떤 행동이 민아를 괴롭히는지도 모르고 한 결정이었다. 그만큼 그 녀석의 표정은 비웃는 느낌이 역력했고, 또 명백히 경고하는 눈빛이었다.

“아니면, 뻔뻔하게 민아보고 우리가 친구냐고 묻기라도 하게?”

“그, 그게 왜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는데. 민아랑 나는 친구가 맞아.”

“하, 진짜. 아직도 착각에 빠져서 그렇게 달라붙어 있는 거였어? 그냥 멍청한 새낀 줄 알았는데, 이토록 순수하신 천사인 줄은 몰랐네?”

“너, 내가 뭐라고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난 내가 지금 말하는 상대가 교장이든 너이든 민아든 상관 안 해. 어이가 없으면 그걸 표현해야지 알아먹지 않겠어. 지가 뭐라도 되는 양 침묵이나 지키는 민아를 친구라고 믿고 있었다니, 이건 이것대로 충격인데.”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 듯 한동안 트집 잡기가 이어졌다. 그중에는 마치 세은이에게 정말로 실망했다는 둥 마음에도 없는 말이 태반이었고, 그 밖에도 민아를 깎아내리는 말로 가득했다. 흔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폭력은 없었지만, 이미 말로만 들어도 너덜너덜해질 만큼 가감 없이 폭력적인 언어였다. 그러니 제아무리 민아와 같은 취급을 오랫동안 견뎌온 세은이라도 참을 수 있는 한계점이 있었고, 그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익숙한 얼굴과 마주하게 되었다.

“안녕, 세은아.”

“아니! 제발 좀 그만하라고!”

아, 이게 아닌데. 순식간에 식어가는 민아의 표정. 그리고 뒤이어 보이는 한 무리의 하이에나 같은 아이들. 눈앞이 뿌예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어느 만화에 나오는 충격으로 울며 기절한 소년처럼, 민아의 시점에서 봤을 때 명백히 울면서 주저앉은 세은이의 모습에는 민아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함께 보여준 모습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그만두면 되는지.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가해자 무리는 민아가 충격을 받은 틈을 타 자기 자리로 돌아가 태연하게 공부하는 척, 일상 이야기를 하는 척 연기를 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조회하려고 들어왔을 땐 민아와 세은이 사이에 큰 다툼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게 무리가 아니었다.

“어머, 세은아! 괜찮니?”

세은이는 여전히 기절한 채로 일어나지 않았고, 민아는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의 어떠한 말씀도 귀에 들리지 않았기에, 1교시 수업이 시작해 교과 선생님께서 왜 자리에 앉지 않느냐고 어깨를 흔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세은이는 보건실 침대에 뉘어 안절부절못했다. 자신이 공범이라는 그 녀석의 말. 민아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사과하라는 선생님. 그리고 눈앞에서 커다란 오해를 사버린 민아. 기절한지 얼마 되지 않아 깨어났지만, 혼란스럽기만 했다.

당장 오해를 풀기에도 어려운 것이, 아직 몸이 놀라 경직되어 있는지 제대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교실까지 올라가려면 무려 다섯 개 층을 올라가야 하고, 민아도 충격을 받은 탓인지 전혀 내려오질 않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실제로도 민아는 사실상 처음으로 멍하니 수업을 흘려들으며 점심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고 그저 앞을 바라보기만 했다. 수업 도중 몇몇 선생님께서 민아에게 보건실에 갈 것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넋을 놓은 듯한 표정에서 잠시 돌아와 그저 도리질할 뿐이었다. 그만큼 민아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하교 시간이 되어서야 둘은 같은 교실에 있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아직 경직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 세은이는 반에서 보낸 어느 학생에게 부축을 받으며 돌아왔다. 민아는 마치 배신을 당한 듯한 표정으로 세은이를 바라봤지만, 세은이는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그런 마음이 아니어도 고개를 돌렸다. 오해는 더 깊어져만 갔지만 어떻게 풀 방법은 없어 보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 상황이 한 달 이상 가다 보니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세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난번에 세은이와 민아를 떨어뜨려 놓는 데 성공한 그들이 마치 민아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세은이에게 눈치를 주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실제로 둘은 더 이상 같이 등교하지도 않았고 오해 끝에 서로의 일에 대해선 아무 말도 꺼내지 않다 보니 그런 잘못된 소문을 바로잡을 일도 없었다. 적어도 ‘아니야.’ 정도는 말했을지라도, 강하게 말하지 않는 이상 친구들의 머릿속에 기억이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게 민아도 세은이도 학급에서 각자 고립되었다.

 

“내가, 전부 오해하고 있었던 거였어……?”

“응. 대부분은 네가 오해하고 있었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빨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야. 나도 너를 조금 더 믿었어야 했는데. 정말로 미안해.”

이제라도 오해가 풀렸으면 되었다는 듯, 세은이는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생긋 웃어 보였다.

“그럼 조금 더 이야기를 할게. 이번에는 네가 다른 곳으로 간 후의 이야기로.”

“그래. 나도 그게 궁금했어.”

이미 낮과는 작별한지 오래였지만, 둘은 개의치 않았다.

 

그 녀석들의 일방적인 증언으로 한순간에 학교 폭력 가해자가 되어 등교 정지가 결정된 그 날 저녁, 마치 축배라도 들 듯 무한리필 고깃집에 모여 낄낄거리며 모여 있었던 진짜 가해자들 사이에는 세은이도 있었다.

“우리의 승리를 위하여!” “위하여-!”

누가 보면 전쟁이나 게임에서라도 이겼나 싶은 구호였지만,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정확히는 세은이를 빼고 그랬다. 그 녀석은 민아를 뺀 전원을 이 음식점에 초대했고, 세은이에게는 VIP 내지는 MVP로 치켜세우며 꼭 와야 한다는 문자를 같이 보냈다. 일종의 협박이란 걸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고깃집에 왔다. 그러니 어떤 발언권이 있을 리 없었고, 실제로도 안절부절못하는 세은이의 모습을 본 그 녀석은 자꾸만 가장 지대한 역할을 해주었으니 편하게 있으라며 입을 다물게 했다.

한참을 불편한 자리에 동석하다 겨우 부모님과의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급하게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으나, 아무래도 긴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밀려와 눈물이 차올랐다.

실제로 부모님께서 데리러 오시기로 한 것도 아니어서 우는 세은이를 보고 당장 달랠 사람도 없었다. 세은이도 민아 외의 친구가 거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그렇지 않아도 이미 둘이서 고립된 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같은 버스에 앉은 다른 승객들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았으나, 그 누구도 선뜻 다가오지는 못했다.

집에 왔을 때, 세은이는 이미 눈도 코도 귀도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잘 다녀왔다고 말해야만 하는데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그런 세은이를 걱정하셨으나, 자꾸만 눈물이 차오르니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운다고 뭐라 하실 분들도 아닌데, 조용히 방문을 닫고 그저 숨죽여 울었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딸, 어디 아프니?”

방 밖에서 다시금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때 이미 세은이는 울다 지쳐 잠들어 있었다.

 

피해자라는 이유로 강제로 반을 옮기게 된 첫날. 옆 반이라고는 해도 단 한 번도 제대로 교류한 적 없어서 어색함이 감돌았다. 아무리 사건 종료라고는 하지만 혹여나 학교폭력에 연루될까 겁내는 아이들의 슬슬 피하는 시선, 피해자라는 이유로 깔보는 눈빛. 그런 각각의 편견이 섞여 더더욱 사건이 터지기 직전이라도 되는 듯 매서웠다. 조회 시간에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도 그 분위기를 읽으신 듯, 평소에도 짧은 조회를 더 일찍 마치시고는 도망치듯 교실 밖으로 나가셨다.

“야, 우리 쌤 도망간다.”

“뭐, 우리 분위기 알고 그러시는 거겠지. 선생님들 사이에 소문 하나 안 돌았겠어?”

그 후로도 급우들의 은근한 무관심은 계속되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언제 반을 옮긴 학생이 왔다는 듯 분위기도 한층 자연스러워졌고, 선생님께서도 부담스러운 분위기라는 말 하나 없이 예전처럼 조회 시간을 유쾌하게 보내셨다.

이 반 학생이라는 소속감 없이 2개월. 그렇게 졸업이 다가왔고 세은이는 평소 민아가 가겠다고 말했던 그 학교에 지원했다. 어차피 추첨식이라 원하는 곳에 반드시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화해한다면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세은아, 가고 싶은 학교는 정했어?”

“아, 네. 여기요.”

지망 순서가 기록된 가정통신문을 내밀며, 세은이는 한숨을 쉬었다. 반을 옮긴 뒤 단 한 번도 말을 건 적 없었던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마음이 복잡했다. 이 반에 졸업 때까지 있어도 된다는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선생님의 표정도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머뭇거리는 모습이 언뜻 보였고 세은이도 편하지 않았다.

가정통신문을 제출하고 일주일이 지나니, 그제야 민아가 지난 일로 원했던 학교에 가는 걸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맨 먼저 그걸 떠올려야 했다. 하지만 이미 수정할 수 있는 기간은 지났고, 그 학교로 확정 나면 꼼짝없이 학교에 다녀야 했다. 전학 갔다가 다시 오는 번거로운 방식을 쓰는 것도 가능하지만, 가뜩이나 별로 좋지도 못한 형편에 부모님을 수고롭게 할 순 없었다.

 

함께하는 친구 하나 없이, 졸업식답지 못했던 졸업식을 마치고 다시 일주일이 지나자 학교 배정 통지서가 왔다. 예비 소집일에 한 번 모이니, 그때 꼭 참석해달라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세은이가 적어낸 1지망이 결국 갈 학교로 배정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민아는 탈락하면 어쩌지, 혹시 마지막 지망에 넣고 안 가기로 했으면 어쩌지. 처음 밟는 교정의 정문 앞 놓인 예비 반 편성표로 서둘러 달려갔다. 놓치는 이름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또다시 보았다.

 

역시나 민아의 이름은 없었다.
지난 주 토, 일 연재 예정이었던 분량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번 금요일에 맞춰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대신 다음주 금요일까지는 2개 화를 추가로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정해진 연재 주기를 맞추질 못하고 계속 지연되고 있는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현재 세이브 원고가 없어 미뤄지는 현상이 상당히 잦은 바, 1권 분량의 연재가 끝나면 휴재에 들어가 세이브 원고 확보 등을 거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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