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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우연한 만남 (7)


“수업을 잘 안 듣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었나?”

세은이가 교무실에 찾아가자마자 들은 소리는 다른 선생님과 별 다를 바 없었다.

“학교가 마음에 안 들지?”

그러나 그다음에 이어지는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보통은 학기 초인데 그러면 곤란하다거나, 친구랑 싸웠냐고 묻는 게 일반적이었다.

“네. 원해서 온 것도 아니고요.”

다른 선생님 같았으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고 도로 교무실을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예상 밖의 질문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래? 하긴, 나도 대학교 때 그랬지. 친구 따라갔는데 그 녀석이 날 배신했더라고.”

“그래서요?”

“혹시 너도 그런 건 아닌가 싶어서. 부모님이랑 전학 논의는 해봤어?”

어지간히 학교에 애정이 없는 선생님이 아니고서야 학교가 마음에 안 든다는 학생에게 이렇게 대놓고 전학 권유를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오히려 그 말을 들은 세은이는 울컥했다.

“뭐에요, 지금 저 보고 전학 가라는 건가요?”

“그래. 이왕이면 배신한 친구라도 봐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어?”

“그게 꼭 전학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그 애가 진심으로 배신한 게 아니라면?”

“설렁 아니라고 해도, 오해가 깊어진 이상 예전처럼 지내긴 어렵겠죠. 제가 그렇게 단순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다행히 교무실에 선생님과 세은이 외에는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시끄러운 설전을 벌여도 뭐라 하실 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시작부터 비뚤어진 대화는 끝까지 영 깔끔하지 못했다.

깊은 한숨 뒤에, 선생님께서 입을 떼셨다.

“그 애가 다니는 학교, 알고 있어?”

 

얼마 전 세은이가 민아를 만나게 된 계기가 바로 이거였다. 세은이 본인은 민아가 어느 학교에 갔는지 몰랐지만, 각종 온라인 프로필이 넘치는 이런 세상에서 그 정도 정보를 캐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민아가 이사를 가기는 했지만, 바로 옆 학군이었기 때문에 한 이틀 정도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다만 한가지 걸림돌이 있다면 세은이네 집에서 그 학교에 가려면 이사를 해야 하는데, 당장은 이사 생각이 없다는 거였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 73조 6항에 따라 고등학생도 강제 전학이 가능하기는 해. 하지만 그러면 아마도 네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야만 하겠지. 학교폭력 가해자거나, 아니면 심각하게 교권을 훼손하는 행동을 했거나.”

“그래도 그건 좀…….”

아무리 거짓말이더라도 일단 소문이 나면 수습하기 어려울 거란 건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최근에 학교 부적응자 같은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수업을 게을리 받은 적 없었기에 그런 이미지로 민아를 만나기엔 부담이 너무 컸다.

“뭐, 제일 쉬운 방법은 네가 공익 제보자가 돼서 보호 조치가 필요한 경우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학을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진작에 말씀해주셨다면 가능한 한 그랬을 거다. 물론 이 방법도 소문이 어떻게 퍼지느냐에 따라서 썩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학교폭력 가해나 교권 훼손, 성폭행 피해 같은 이유로 전학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민아가 있는 학교는 여기와 5km 이상 떨어져 있으니, 전학을 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거다. 민아가 있는 학교로 배정이 될지, 안될지는 나도 보장해 줄 수는 없지만.”

“선생님, 그런데 제가 고발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한가요?”

이제 들어온 지 한 달 남짓 된 고등학생이 이 학교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있긴 한데, 그보다 앞서 물을 게 있어.”

“친척은 어디 사시니?”

기가 막힐 정도로 간단한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법 얘기를 꺼내시다가 뜬금없이 친척 얘기라니. 아까 얘기하는 게 더 나았을 부분이었다.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은 부분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어려운 법 얘기를 꺼내시니 가능성을 한 수 접어두고 있었다.

“으음…….”

동네가 동네이니만큼 친척분도 근처에 사시기는 했다. 학군까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르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 않아도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한다면 월세를 감당하면서 다른 학군으로 전학 가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선생님께서는 제법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세은이를 지켜봤다. 아직도 민아가 어느 학교에 갔는지는 정확히 알려주지 않은 참이었다. 학군 범위 자체는 좁은 편이라 어디로 이사했는지 안다면 대충 어느 학교에 갔는지도 추측할 수 있겠지만, 눈치를 보니 정확히 어느 동네로 가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듯했다.

“세은이는 옆 학군으로 갔어. 자, 여기 지도를 봐봐. 학군이 표시되어 있지?”

민아가 소속된 학군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보여주었다.

“자, 여기서 어느 학교일까?”

옆 학군이라고는 해도 아마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으리라 짐작한 세은이는, 여기서 가장 먼 학교를 가리켰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학교와 가장 가깝지만 옆 학군으로 분류되는 학교였다. 자칫하면 한두 명 정도는 민아에 대한 뜬소문을 대강이나마 알 수도 있는 위치였다. 그만큼 생활 반경이 겹치는 동네라는 뜻이다.

 

“내가 왜 이사했을 것 같아?”

이야기가 이어지던 도중, 갑작스레 민아가 말을 꺼냈다. 말 자체는 진중한 느낌이었지만, 실제 표정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애들 보기 싫어서?”

세은이도 대강은 농담인 걸 알았다. 진담에 가깝게 대답했지만 이렇게 물은 이상 단순히 그런 이유는 아닐거라는 짐작은 했다.

“땡. 그냥 우리 집이 더 큰 집으로 이사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야.”

원래는 중학교 2학년 때 예정되어 있던 이사였다. 집은 진작에 산 지 오래고, 인테리어와 입주 청소까지 다 마쳤건만 집이 팔리지도 않은 데다가 이런저런 가족 사정으로 몇 개월 더 미뤄진 끝에 고등학교 입학 시기에 맞춰 이사하기로 결론을 내린 걸 단순히 실천했을 뿐이었다. 중학교 때 살던 동네는 민아가 살던 집이 가장 큰 평수였기 때문에 생활 반경이 겹치면서도 좀 더 큰 평수로 가기 위해서는 이 동네로 이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랬던 거였어?”

세은이는 이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여기로 다시 이사 와 가장 먼저 세은이에게 가기도 쉽지는 않았지만, 그건 언젠가 찬찬히 말해도 상관없을 테니까.

 

“근데 너무 무모했다. 어차피 내가 휴대폰을 바꾼 것도 아닌데.”

“처음 날 봤을 땐 그렇게 차가운 표정이었으면서?”

“아, 그래도. 조금 늦기는 했겠지만 언젠가는 보지 않았겠어?”

살짝 서로 겉도는 느낌도 있었던 중학교 때와 달리, 이날 둘의 모습은 약간의 장난기 덕분인지 좀 더 친해 보였다. 민아네 부모님께서는 진작에 집에 들어와 계셨지만, 어차피 세은이를 모르는 것도 아닐뿐더러 둘의 사이가 여느 때보다 친해 보였기에 조용히 내버려 두기로 하신 참이었다. 다만 너무 늦으면 세은이 부모님께서도 걱정하실 테니 문틈으로 ‘밤이 깊기 전에는 부모님께 연락 드리거라.’ 하는 쪽지 하나를 끼워 넣을 뿐이었다.

“그러면 이젠 어디서 살아?”

민아는 이제 이사 온 집을 소개했지만, 세은이는 그렇지 않았다. 2개월 만에 이 동네에 이사 오기도 쉽지는 않은 일일 텐데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친척 집에 얹혀서 오려고 했는데, 같은 학군이라서 안 되겠더라고. 나를 도와주신 선생님이랑 부모님이랑 상의하셔서 근처에 일단 방을 구해주셨어.”

그렇다고 혼자 사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생업이 있으셔서 그 자리를 떠나실 수 없었기에 어머니랑 함께 살기로 했다. 돈이 없거나 매물이 없는 건 아니어서 꽤 빠르게 모든 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사가 아주 완벽히 끝난 건 아니지만 먼저 전학 절차를 밟은 결과 시험을 1주 앞두고 이렇게 전학 올 수 있었다. 민아 말대로 지나치게 무리한 일정이었다.

“우리 엄마가 그랬지. 다음부터 이렇게 속 뒤집어 놓으면 그땐 용돈이고 통신비고 알아서 벌라고 할 거라고.”

전에 있었던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준하는 일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학교폭력 위원회를 열지도 않고 급하게 이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꾸중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그래서 지금은 근처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해. 평소에는 홀 서빙을 주로 하지만 일손이 부족할 땐 가까운 거리 배달도 하고.”

그 중국집 아르바이트 자리는 세은이를 도와주신 사회 선생님 덕분에 구할 수 있었다. 중국집 사장님이 사회 선생님 지인이라나.

물론 속을 뒤집어 놓아서 시작한 건 아니고, 갑자기 집이 두 채가 되는 바람에 상당히 부담이 생긴 집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 민아만큼은 아니어도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니 주말 아르바이트 정도로는 크게 성적이 떨어질 걱정은 없었다.

“그래도, 시험공부는 어떻게 하고.”

이제 1주 남긴 시점에서 무리하게 전학을 오는 바람에 어디가 시험 범위인지도 모를 판이었다. 차라리 조금만 늦게 왔다면 시험을 건너뛰었을 테니 나았겠지만 이대로라면 낮은 성적이 나오는 것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같이 시험공부를 할 수는 없을까?”

무언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잠깐 스친 뒤, 세은이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럼 그렇지. 내가 너 무리한 거 맞다고 했잖아.”

그나마 다행인 건, 세은이가 다녔던 학교와 지금의 학교는 교과서와 학습 진도를 거의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시험 범위나 가르쳐주신 범위는 소소하게 달라서 일주일간 공부하는 거로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래도 세은이가 평소에 받던 등급에서 많아 봐야 한 등급 떨어진 정도에서 그친 게 천운이었다.
나름 시작하기 전에 설정을 잘 짜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이번 화에서 복병이 있었습니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세은이가 어떻게 진학 2개월만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게 상당히 어려웠던 관계로 작성에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렸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꼼꼼하게 설정을 짜두고 글을 진행해야겠네요.

코로나 19 및 독감 조심하시고 다음 화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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