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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우연한 만남 (8)


오랜만에 찾아간 미용실은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제법 나이 든 미용사분께서 운영하시는 곳이니 무언가 변화가 있다면 그 또한 놀랄 일이기도 했다. 반대로 오랜만에 민수를 본 미용사께서는 예약을 받아놓고도 새삼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일을 하는 동안에는 그 기색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았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는 걸까.

동네 미용실이라서 아무리 예약제라도 어떤 대화가 오갈 법도 한데 손님이 민수뿐이라 그런지 그날 미용실은 아주 조용했다. 흔하디흔한 어떤 머리로 하겠냐는 말조차 나오지 않아서, 미용사의 가위질 소리와 미용실 앞 경비원의 빗자루 쓰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곧이어 물 흐르는 소리, 동전 구르는 소리가 그 자리에 참여했지만 그건 동시에 미용사가 가위질할 일이 당분간 없다는 얘기와 같았다. 다음 손님은 아직 오지 않았고, 생전 처음 보는 남처럼 커트 비용 계산하는 시간조차 어떠한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기껏 오랜만에 조금 활동을 해보겠다고 다짐을 한 참이건만 그게 수포가 되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그래도 오늘 민수가 하려는 일은 단순히 미용실 방문만이 아니었으니 여지는 남아있었다. 그동안은 구인 구직 사이트를 통해서만 일자리를 구했지만, 이번에는 드디어 직접 발품을 팔아 자리를 구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구인 구직 사이트에는 올리지 않고 가게 문 앞에 지면상으로만 아르바이트나 직원을 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단기적인 수익에는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어쩌면 정규직을 구해서 가게가 사라지기 전까지 떳떳한 직원으로 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통은 채용 공고가 가게 문 앞에 있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일단은 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2층보다 높은 곳에 있는 가게들은 대부분 채용 공고를 상가 건물 공용 게시판에 붙여둘 테고, 편의점같이 대부분 1층에 있는 건물이라면 문 앞이나 그 근처에 붙여둘 테니 굳이 상가 전체를 둘러보면서 발품을 팔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온라인 채용 공고가 보편화한 요즘에는 그조차도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마셔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찾아보겠노라고 다짐했으니 안 할 수도 없다.

우선 미용실이 있는 건물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이곳에는 채용 공고나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가 붙은 곳이 없었다. 옆 상가 건물도 마찬가지였는데, 벌써 민수는 잘못 생각하고 지금 헛짓을 하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대부분은 온라인에 올라올 텐데 괜히 하는 거 아닌가.”

마침 출출하다 싶어서 바로 앞에 보이는 베트남 쌀국수집에 들어갔다. 어느 회사의 프랜차이즈인지 무인 주문기가 주문을 대신 받았다.

“이러니 내가 맡을 자리가 없는 거겠지.”

옆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봐도 애써 모른 척하고 주문을 마쳤다. 어차피 외모에 그렇게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누가 얼굴을 보고 뭐라 한다고 해도 이제 더는 심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학벌 외에는 내세울 만한 점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서비스직 아르바이트생 중에서는 종종 그렇게 외모가 좋아 보이지 않는데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그걸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참에 주문한 쌀국수가 나왔다. 민수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누가 서빙을 해주지는 않아서 마치 패스트푸드 먹듯 직접 가져다 먹어야 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금방 그릇을 비우고 반납하는데, 아는 얼굴이 보였다.

“잘 먹었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어? 민수아냐?”

민수에게 유난히 친한 척하던 대학 동기였다. 속으로는 친구로 여겼던 지까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살갑게 대할 수 없을 만큼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었으니 민수 안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야, 너 아직 내 카톡 연락처 있지? 이따가 아르바이트 끝나고 연락할테니까 기다려라.”

보통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별말이 없으면 잘 먹고 잘사는 거로 생각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대학 졸업 후 단 한 번 연락 없었던 녀석이라 민수는 살짝 놀랐다. 만약 보험 영업 같은 걸 시도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도 조금 있었던 모양이다. 실제 그런 사례들이 많으니 걱정해서 나쁠 건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이른 나이에 청첩장을 보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별일이다 여겨지기는 했지만 본래 목적은 밥을 먹는 것이지 오랜만에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별다른 대답은 없이 그저 손만 몇 번 저어주고 그 집을 나왔다. 아주 싱겁다 못해 심심한 게 민수다운 반응이었다.

 

식사하고도 두세 시간 정도 주위를 맴돌다, 결국 채용 공고가 주변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친구라는 녀석이 언제 연락을 할지 모르니 시끄럽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딱 좋은 밖에서 먹기보다는 조용하고 볼 사람도 없는 곳에서 먹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솔직히 밥 값이 아깝기도 했고.

그러나 친구 녀석의 카톡은 다소 시각이 늦은 오후 10시 즈음이 되어야 와서, 애초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친구 녀석의 카톡은 좀 색달랐다.

“너, 내 친구네 회사에서 일해보지 않을래?”

“갑자기 왜? 내가 일자리를 못 구하는 것 같아?”

“그야 딱 보면 알지. 네 표정이 요즘 밝지 못한 걸 보니까 회사에 있어도 편안하지 못한 것 같은데, 아직 아니면 신입으로 들어가 보는 거 어떠냐?”

정말 귀신같은 녀석이다, 민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대화를 했다고 요즘 내 근황을 알고 이렇게 접근했는지는 몰라도 일자리가 없다고 허구한 날 언론에 나오는 요즈음에 일자리 제안은 달콤한 면모가 분명 있었다.

“그래서, 그건 뭐 하는 일인데?”

그 녀석은 다소 뜸을 들이다 간단하게 대답했다.

“상담소. 너랑은 잘 안 어울리지?”

심리학과를 나온 것도 아닌데 상담소라니. 민수 입장에서는 이 녀석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착각한 게 분명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무슨 학과인지 알기는 하냐고 물었으나 정확하게 대답을 들었으니 뭐라고 대꾸할 수도 없었다.

“하, 그래서 그게 왜 나랑 어울릴 거라 생각한건데?”

“그야 뻔하지. 너 사회 문제에 관심 많잖아. 일단 가보고 원하지 않으면 그냥 사표 써.”

그게 마음대로 된다면 그렇게 맘 편한 직장도 없을 것이다. 짧은 기간 직장을 다니고 그만둔다면 경력에도 흠이 남기 마련이니, 섣불리 결정할 수는 없기도 하고.

“일단 가보기는 하지 뭐.”

그런데도 굳이 가보기로 한 것은 이 녀석이 그렇게 못 믿을만한 녀석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사이비 종교에 끌어들이려고 이렇게까지 하겠어.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까지 해서 끌어들이는 유명한 사이비 종교도 있기는 한 모양이지만 평소 그쪽이라면 학을 떼는 성격인 그 녀석이 그럴 리는 없었다.

“거기가 어딘데?”

이번 한 번은 믿어보자는 심정으로 그 장소를 물었고, 곧이어 언제 어디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긴 문서 파일을 그 녀석으로부터 전달받을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 만나기로 한 당일이 되었다. 건물 자체는 평범한 빌딩이었기에 번듯한 사무실을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구석진 곳에 있는 그저 그런 곳이었다. 워낙 낡아서 폐업한 장소는 아닌지 한 번 다시 볼 정도였다.

“저기요, 여기로 찾아오라고 해서 왔는데요.”

워낙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으나 조금 뒤 어떤 분이 문을 열어주었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뒤의 소파에 앉은 분과 아는 사이인지 막 의자에서 일어난 기색이었다.

“안에서는 바깥 소리가 잘 안들려요. 앞으로는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눌러주시겠어요?”

“아, 예. 알겠습니다.”

“진원 군의 얘기를 듣고 오신 거 맞죠? 마침 잘 왔어요. 여기 옆에 있는 사람은 서재현이라고, 요즘 학교에서 사회 선생님을 하고 있는 분이에요. 대학에 다니기 전만 해도 저와 같이 이 일을 할 거라고 공언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애들을 만나고 싶다고 선생님을 하고 있죠.”

“그,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일이 무엇인지 여쭐 수 있겠습니까?”

“아, 그럼요. 앞으로도 일할 사람 아닌가요. 여기가 상담소라는 건 알고 있죠?”

“네. 상담하는 일을 한다고 듣긴 했습니다.”

“말 그대로 앞으로 제가 상담 일을 맡을 거예요. 하지만 실제로는 상담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례를 모아서 앞으로 연구하는 일도 할거고요.”

그 뒤로도 소파에 앉아 있던 그분은 민수에 관해 얘기했다. 사회에 관심이 많은 것부터 자격증을 따면서 시간을 벌고 있다는 사생활에 관한 것까지. 이미 민수를 끌어들이기 위해 뒷조사를 마친 것 같았다.

“아, 그렇죠. 그럼 앞으로 저는 무슨 일을 하게 되나요?”

“그것부터 묻는 건가요? 과연 믿음직한 친구에게 소개받은 일자리라 안심하는 면이 있나 보군요. 앞으로는 저의 조수로서 활약해주실 겁니다.”

이 자그맣고 낡은 사무실은 ‘사회 고민 상담소’라는 이름으로 각종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해준다는 듯했다. 자신을 소장으로 밝힌 그분은 그런 대외적인 부분에서도 민수가 조수이기는 하기에 차를 끓여 손님께 대접하고 필요한 상담 자료들을 모아 달라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내부적인 이야기인데, 먼저 민수 군은 상담 사례를 여러 큰 갈래로 묶어 정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 정리에 그치지만, 제가 하는 연구에 앞으로 민수 군도 참여시킬 계획입니다. 당연히 고급 인력을 쓰는 것이니 보수도 정당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준비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민수에게 이곳에서 일한다는 사실 자체를 다른 곳에는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국가 기밀은 아니지만 되도록 밝히지 않는 편이 좋다면서.

“그야 제가 이름을 좀 촌스럽게 지었거든요.”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갑작스레 머쓱한 표정을 짓는 소장님의 얼굴에서 현실감이 느껴졌다. 그동안 살짝 답답한 부분도 있었던 이야기에 비하면 앞으로의 일은 그렇게 딱딱하지 않을 수 있다고도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여기 있는 이 사회 선생이라는 녀석이, 이름을 사회적 어둠 연구소로 이름을 짓자고 하더군요.”

“아하하, 근데 진짜 그렇게 지을 줄은 몰랐어요. 중학교 2학년 때 그렇게 하자고 말한 건데, 그걸 세월이 지난 지금 킬 거라고 누가 믿겠어요.”

두 분 다 그럴 인상은 아닌지라, 민수는 그저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방금 들은 이 연구소의 이름이 살짝 창피하게 다가오는 것도 한몫했다.

“이름이 좀 그렇더라도, 잘 부탁해요.”

사회적 어둠 연구소에 민수가 참가하게 된, 첫날이었다.
다소 늦게 업로드한 점 죄송합니다.
비축분이 없으니 갑작스러운 일이 종종 생기면 곤란해지네요.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하루 늦은 것은 아니고 지연된 업로드로 인해 의도하지 않게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외식은 어렵지만 맛있는 음식 먹고 다음주 제 시간에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우연한 만남은 이번 화가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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