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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각자의 마무리 (1)


처음 사무실에 갔던 그 날에는 별달리 일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는 비록 좁은 사무실이지만 일단은 직장인 만큼 수습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고, 두 번째는 이상한 간판 때문인지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류철은 준비되어 있지만, 사례는 아직 없어요.”

동업하겠다고 말해놓고선 정작 선생님을 하고 계신 그 사람이 말을 꺼냈다. 민수가 사무실 구석에 있는 책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본 듯했다.

“그러면 이 안엔 종이 한 장 없겠네요.”

민수는 그렇게 대꾸하고선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가장 위 칸에는 어딘가 어려워 보이는 용어들이 잔뜩 나열된 전공 도서들이, 위에서 두 번째 칸에는 아까 서재현이라는 사람이 말했던 서류철들이 꽂혀있었다. 이 책장은 칸이 딱 세 개였는데, 마지막 칸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인지 정체를 알기 어려운 잡동사니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 더미 사이에는 인터넷 공유기 같은 전자 제품도 있어서 그런지 통신을 할 때마다 불이 들어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런 곳에다가 공유기를 놔두면 나중에 무슨 일 나는 거 아니에요?”

“정리하고 싶으면 하셔도 돼요. 아직 여기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수선한 부분도 있거든요.”

말 그대로 사무실 안은 깔끔하지 못한 면모들이 있었다. 민수가 처음 볼 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소장님 뒤에 있는 책상은 아수라장이어서 모니터가 가려주고 있지 않았다면 필연적으로 누군가 화가 나서 서류를 던져버렸거나 돌풍으로 인해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소장님께서는 오늘 굳이 치울 필요까지는 없다며 오히려 서류 정리 과정에서 위치가 바뀌어서 고생하느니 자신이 치우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신경은 쓰여도 청소를 할 수는 없었다. 이번 서류 정리가 끝난 뒤, 소장 자신의 정리 방법을 명확히 숙지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물어봐 달라나. 그렇게 말하고선 서류가 많은 건 이번에 사무실을 차리면서 처리할 업무가 좀 생겼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민수 입장에서도 곧 물어볼 예정이었기 때문에 불쾌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오늘 제가 할 만한 일은 없나요?”

그렇게 정리 의지가 꺾인 뒤로도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손님께 대접을 해주면 된다는 말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일단은 손님인 사회 선생님이라는 분에게 차를 따라 주는 것은 소장님이었다. 비서를 들인 적도 없어서 자신도 매우 어색하다는 말로 미루어 보아 아마 개업 이래 지금까지 민수를 제외한 두 분끼리 이 사무실에 계속 앉아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아, 그러고보니. 민아 일은 어떻게 되었어?”

“어떻게 되기는. 행복한 결말이지. 소설에 나올법한 극적인 진행으로 친해진 모양이더라.”

가만히 듣고 있으니 개인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가끔 사회적 어둠 연구소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야기도 나왔다. 아직 신입인 민수에게는 밝히고 싶지 않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습관대로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춰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기는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소장님의 낯빛이 급격히 진지해졌기 때문에 적어도 일에 관련된 일이라는 것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민아라는 아이와 세은이라는 아이가 다퉜고 다시 친하게 지냈다는, 그런 훈훈한 이야기라는데 소장님의 말씀을 보면 서로 아는 얘기라는 게 확실한데도 굳이 서재현 씨는 이런저런 줄거리를 간단하게 풀어서 말했다. 마치 인수인계를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처럼. 어차피 공무원인 이상 공식적으로는 일을 맡은 적도 없고 실제로 보수도 받지 않은 듯하니 그야말로 우리 연구소, 혹은 둘 사이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의 의사 표현이겠지만, 나름 민수는 귀담아들었다. 그런 민수가 마음에 들었는지 소장님께서도 어느새 옆에 앉아 있는 그를 보고도 뭐라 하지 않았고, 할 일은 없었으나 그저 평화로웠던 첫날 업무도 그렇게 잡담만 하다가 끝이 났다.

“자, 이제 공식적인 영업시간도 끝이 났으니, 퇴근해도 좋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며 소장님께서는 마지막 정리를 하고 계셨다. 이미 서재현 씨는 집에 가신 지 오래여서 민수도 가는 게 아주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직장 상사의 눈치가 보인다며 아직 남아있는 것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공유기 쪽 잡동사니라도 정리하게요.”

그리고 일을 전혀 안 했다는 느낌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뭐라도 하고 가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왕 일하기로 했는데, 직장이 이래서는 민수도 월급이 제대로 나올까 불안하고 의지도 금방 꺾을 것 같아 별로 좋은 것 같지가 않았다. 직장을 더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적어도 뭐라도 해보는 수밖에 없다.

소장님께서 빗자루질하는 소리, 그리고 엉킨 케이블을 정리하면서 생기는 사소한 소음이 사무실 전체를 가득 채웠다. 아까 전까지 다소 수다스러웠던 공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조용한 공간이었다. 다른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도 다가올 때라서 그런지 유독 거리의 자동차와 버스 소음이 크게 들려올 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것도 공간을 채우지 않느냐 물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외부 소음이므로 공간을 채울 정도는 되지 못했다.

 

어느덧 정리를 마치고 귀가한 민수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사회적 어둠 연구소의 신규 채용에 합격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게 되며, 그전까지는 연구소에 찾아오는 손님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언제든 찾아오셔도 됩니다.’

정말 엉뚱한 직장이었다. 면접이 딱히 없었던 만큼 뭔가 실험을 해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예상이 대강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얼떨떨하기도 했고, 그렇게 생각하니 손님 같은 마음가짐으로 일주일간 찾아와도 된다니 이것도 시험하는 것 같았다. 답장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문자가 한 통 더 왔다.

‘앞선 문자와 이 문자는 답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라도 앞 문자에는 답장하라는 의미로 읽힐까 굳이 앞선 문자라는 말을 덧붙이신 것이 소장님다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또 한 통이 더 왔다.

‘앞으로 오는 문자도 단순 통지일 뿐이니 답장하지 마시고 연락하실 일이 있다면 전화로 해결해주시길 바랍니다.’

요즘 시대에 채팅도 아니고 문자도 아닌 전화로만 해결해달라는 것이 조금 걸리기는 하였으나 어차피 지금과 같은 생활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 큰 지장이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재현 씨하고 대화를 나눌 때도 주머니에 휴대전화가 꽂혀있었으니 혹시나 전화를 못 받는 사람이 있다면 민수일 터다.

“그러고 보니 저녁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데.”

어쩌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을 한 탓에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가 영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 해 먹었다가는 10시나 되어서야 한 입 뜰 수 있을 것이 분명하므로, 얼마 전 주문했던 그 중국집에 다시 의존하기로 했다. 별로 원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별수 있나.

“짜장면 한 그릇 배달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조금 시간이 필요한지 지난번보다 오래 기다렸다. 그동안 할 일이 없으니 오래된 노트북을 켜고 그저 여기저기 돌아다닐 뿐이었으나 아무래도 먹은 것이 없으니 배가 고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중간에 중국집에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이게 웬걸, 아직 조리에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밀렸다고 했다. 그래서 주문을 곱빼기로 바꾸고 거기에 살짝 모자랄 테니 편의점에 가서 즉석식품이라도 조금 사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정작 웹서핑에 푹 빠진 탓에 편의점에 다녀오기로 한 뒤에도 민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옷 갈아입기가 영 귀찮은 것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민수가 막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즈음에는 이미 배달원이 문 앞에 다다른 참이었다.

“짜장면 배달왔습니다.”

마침 일어섰으니 잘 되었다고 생각한 민수는, 뜻밖에도 이번에는 늘 보던 배달원이라는 데 살짝 놀라며 짜장면을 식탁으로 옮겼다. 요즘은 배달 대행도 쓰니까 그때는 그랬던 거겠지, 그렇게 단순히 여기고선 일단은 먹기 바빴다. 결제를 안 했는데 먹기부터 하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워낙 단골인지라 그 정도는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였다. 이렇게 먹고 나서 계좌로 이체해주면 그만이다. 아까 전화할 때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고. 어차피 가까운 중국집이다 보니, 어떨 때는 혹시나 복도에서 양념이 상할까 싶어 다 먹은 그릇을 직접 갖다 주러 가기도 했다. 그 정도로 이미 신뢰가 있는 사이였고, 지난번 그 배달원이라면 모를까 이 배달원하고는 오랜 기간 안면도 튼 사이이니 이런 민수의 행동에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여전히 배가 아주 찬 것은 아니었으나 그럭저럭 만족하고 민수는 텔레비전을 켰다. 이 시간대에는 시사 프로그램이 편성되고 있으니 뉴스를 보는 것보다는 종종 유익할 때가 있었다. 물론 탐사 보도도 완벽하지는 않아서 가끔 결론을 내려놓고 연출을 짜 맞춘다던가, 인터뷰 상대에게 속아서 완전히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방영하는 등의 일은 종종 있기는 했다. 그래서 민수는 낡디 낡은 노트북으로 관련 정보를 모으면서 대조해보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여서, 아까 짜장면이 배달오기 전 켜두었던 노트북은 여전히 인터넷 브라우저가 띄워져 있었다. 다만 다른 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게 탐사 보도 프로그램과 관련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다.

아주 많이 가끔이지만, 내킬 때는 제대로 하는. 그런 민수의 취미에 오랜만에 불이 들어왔다.
오늘도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네요. 거기다가 치과 예약이 금요일에 잡혀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이 소설은 전체의 1/2 지점을 막 지나고 있습니다. 1권 자체가 상당히 프롤로그 같은 성격을 가지는 부분인 만큼, 조금 싱겁게 끝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체 3권 정도의 이야기로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워낙 실험작으로 시작한 시리즈인지라 제대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지도 걱정입니다.
모쪼록 좀 더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소재를 미리 챙겨두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코로나 19 조심하시고,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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