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각자의 마무리 (2)


다음날, 한 번 이야기도 할 겸 민수는 쌀국수집으로 향했다. 아직 그 녀석이 아르바이트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정확히 몰라도, 어쨌든 며칠 사이에 그만두지는 않았을 거란 판단하에서였다. 그 판단은 옳았고, 실제로도 그 녀석은 여전히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 너 직장하고는 잘 맞냐?”

“덕분에. 나중에 저녁이라도 한 번 사줄게. 언제가 괜찮아?”

“내가 뭐 아르바이트 때문에 약속 잡기가 쉽지 않아서. 가능한 때가 생기면 그때 연락 줄게.”

“영 안 되면 주말에라도. 야식도 좋고. 고마워서 그래.”

“그건 알겠는데……. 진짜로 바빠. 미안.”

주문을 받을 때, 음식을 가져갈 때도, 계산할 때도. 틈틈이 말을 걸어보려 노력했지만, 만나지 않겠다는 의지만 엿보일 뿐 약속을 잡을 수는 없었다. 무리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에 말을 건 민수의 탓이 크겠지만 일부러 시간도 한가한 시간대로 맞춰서 찾아갔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화조차 못 해서 아쉬운 면은 있었다. 마지막에는 이런 답을 들었다.

“나중에 카톡으로 보낼 테니까, 그때 얘기해.”

허탕을 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어찌하겠는가. 민수는 자신의 행동이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조금은 움츠러들었다. 소장님과도 친분이 있을 그 녀석과 만나서 감사를 표할 정도의 성의를 보이면 소장님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이 얘기를 직장에 가서 해도 될까. 평범한 직장이라면 이런 일을 겪었다는 걸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을 테지만 나름대로 상담을 하는 자리이고, 녀석이 왜 민수에게 이 직장을 추천했는지, 어떻게 추천해줄 수 있었는지 물어보려면 제격인 장소이니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래서 민수는 출근 일이 아님에도 연구소에 가기로 했다.

집에 들러 간단히 이만 닦고 준비물을 챙겨다가 출근하니,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이 그 서재현이라는 분과 소장님께서 나란히 앉아계셨다. 마치 오는 게 당연하다는 느낌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민수를 쳐다보는 게 인상적인 부분이다.

“역시, 오늘도 왔네요?”

“아, 예. 오늘은 궁금한 것도 있고 그래서 왔습니다.”

“그랬겠죠. 일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왔으면 이렇게 늦게 왔을 리 없을 테니까요.”

정규 출근 시간은 9시, 연구소 개소 시간은 10시. 그리고 지금은 오후 1시가 막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보통 다른 사람이라면 점심을 먹고 있거나 먹고 막 복귀하는 시점일 터였다. 실제로 소장님과 서재현 씨는 아까 시켜 먹은듯한 족발 포장지를 탁상 위에 올려놓고 담소를 나누고 계셨으니 여기도 별 다를 바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수는 정규 출근이었다면 사전에 한마디도 없이 무단 반차를 쓴 셈이다.

“그래서, 궁금한 게 무엇인가요?”

민수는 그 녀석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전해 듣고 기다리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떤 경위로 만나게 되었고 그 일자리 기회가 민수에게까지 왔는지가 궁금하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취업 전까지 비슷한 길을 걸어온 그 녀석이 어디서 소장님을 만나셨는지 도통 짐작이 가질 않았으니까. 지금 그 녀석의 직장은 아르바이트이긴 하지만 베트남 쌀국수집이니 직전의 태도를 생각해보면 식사 중에 얘기가 오갔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성격을 보아도 손바닥 뒤집듯 사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은 아니리라.

“그거라면, 진원 군의 친구가 주말마다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든요. 지난번에도 그렇고 항상 저희 둘이서만 앉아 있으니 민수 군은 짐작이 가질 않겠지만, 나름대로 논문이나 심리학 저서를 쓰면서 인턴을 고용하기도 한답니다.”

“사실상 소장님의 개인 연구실인 셈이네요.”

“그렇기도 하지요. 실제 제가 대학에서 가지고 있는 연구실은 따로 있으니 여기서 작업한 문서도 이름은 대학 연구실 소속으로 나가지만요.”

소장님께서는 채용 공고를 내기 전 먼저 진원의 친구라는 사람에게 같이 일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평소 진원이 민수의 이야기를 자주 했던 터라 그 인턴분도 민수를 추천했고, 어떻게든 본인에게 전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민수가 쌀국수집에 가서 점심을 해결한 덕분에 생각보다는 빠르게 전달이 되었다나 뭐라나. 그래서 원래는 이번 주 내에 한 번 뵙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예상보다 이른 월요일에 바로 만나 뵙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어차피 정식 채용 전이니 급여가 나오지 않을 텐데, 그냥 이야기라도 들으실 건가요?”

“그래봤자 쓸만한 이야기는 없을 거에요. 사람이 우리 둘 뿐이라 하는 얘기도 사적인 부분이 많아서.”

그러나 백수인 민수가 집에 가서 할 만한 일도 딱히 없었기 때문에, 사무실에 오는 연습을 했다고 여기고 앉아 있기로 했다. 어차피 전에 다녔던 직장에 비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편한 곳이라 그게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급여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부려먹는 것도 아니고, 어제도 그랬지만 실제로 일한다는 느낌은 없는지라 직장 같지도 않았다.

“좀, 직장같지 않죠?”

“아…….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이미 소장님께서는 눈치를 채신 것 같지만 민수는 둘러대기로 했다. 그렇다고 당당하게 그런 것 같다고 말해봤자 무급인 오늘, 일만 늘릴 것 같은 예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재현 씨는 잠깐 한숨을 쉬더니,

“그러니까 내가 채용공고는 내지 말랬잖아. 냈으면 어쩔 뻔했어.”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마도 일을 거의 하지 않는 직장이라는 사실을 알면 회사의 앞날이 불투명하다고는 해도 원하는 사람이 꽤 있으리란 얘기겠지.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닐걸요.”

그러나 민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은 좀 더 절박한 심정에 취직하기는 했지만, 뼈를 묻을 것도 아닌데 이런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연구소에서 몇 년 재직했다고 한다면 누가 좋게 봐줄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게 판단조차 어려운 지금 시점에서는 어떤 일을 했다고조차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아, 이름이 그래서요?”

소장님께서도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며 한마디 하셨다. 자신은 좀 더 멋있는 이름으로 짓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서, 결국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기억에라도 있는 이름을 쓰게 된 거라고도 했다. 이번에는 서재현 씨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자신도 같이 고민해봤지만 떠오르는 이름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며, 가능하다면 작명소에 가서라도 이름을 지었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하는 후회가 남았다고.

확실히 지금 민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름은 ‘사회적 어둠 연구소’이니 사회의 어두운 면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아닌가 유추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연구소 안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담소와 논문 정리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의문이 다 풀렸다면, 앉아서 쉬다 가세요.”

의자에 기댄다고 해도 민수 입장에서는 차를 홀짝이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게 다였지만, 그게 그렇게 질리는 일은 아니었는지 민수는 퇴근 시간이 다가오도록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편, 이 시각 민아.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진짜 행복한 결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은이가 전학 온 이래 표정을 구기는 일은 확실히 줄어들어 있었다. 입학 이후 졸곧 민아 옆에서 친한 척을 하며 곁에 있었던 급우도 그 날 이후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야, 너 표정 밝아졌다? 그동안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완전 다른 사람이 됐는데? 얘들아, 봐봐! 민아 표정이 확 바뀌었어!”

그 말을 들은 다른 급우들도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애였냐며 구름처럼 민아 곁을 둘러쌓을 정도였으니,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없었다. 주로 공부가 안되는 방향으로.

“저기, 얘들아. 나 공부 중인데…….”

하지만 남의 공부 방해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다고, 오히려 그런 말을 한 뒤로 더더욱 민아에게 부담을 주기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책상에 걸터앉는다거나, 교과서를 손바닥으로 짚고 기세를 몰아 물어본다는 식이다.

그렇게 될 줄 알고도 평소 아는 체하던 급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민아를 바라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거봐. 확실히 민아 너 표정 풍부해졌어. 전에는 나보고 이렇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거든? 조금은 미세하게 다른 표정들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야.”

인간 관찰이 특기라는 양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단순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넘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예전 그 일처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괴롭힌다는 느낌은 없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급우들도 별다른 악의는 없었다. 그중에 단 한 명도 악의를 갖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야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부분은 그랬다.

“이럴 때 세은이가 찾아오면 딱 좋을텐데.”

작게 중얼거린 혼잣말이었지만 바로 앞에 있던 급우들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

“세은이가 누군데?”

“그 왜 있잖아. 최근에 전학 온 애.”

“아 그 8반에?”

“어. 그 8반 애. 근데 옆 학군 출신이라서 관련 없을 텐데?”

“모르지. 옆 학군이 이웃 동네긴 하잖아? 어디 학원 같은 데서 만났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민아는 떠도는 소문이 그렇게 나쁜 방향도 아니겠다, 최근까지 지나치게 죄책감에 시달려왔다가 긴장이 갑자기 풀리는 바람에 기운도 없어서 별로 정정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새내기라 서로 아는 정보도 적고, 앞으로도 소문이 아니고서야 사실은 거의 돌지 않을 학교니까 안심하는 측면도 있었다. 곤욕을 치를 일이 생긴다면 그건 앞으로 자신이 한 일에서 비롯된 오해나 사실이겠거니.

“얘들아, 선생님 오신다!”

곧이어 선생님께서 오셔서 자리는 잠잠해졌다. 간간이 수군대는 목소리도 들렸지만 민아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모둠 수업 같은 걸 하지 않는 선생님 특성상 눈앞에서 그런 소리를 듣고 있을 일도 없었다.

그때, 쪽지가 하나 날아왔다.

“너, 세은이랑 같은 학교 나왔다는 게 사실이야?”

급하게 적었는지 휘갈긴듯한 필체로, 이름도 없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쪽지의 정석이라고 불릴 만한 모양으로 접혀있는 게 독특했다. 당장 대답해줄 순 없지만, 친한 척하는 급우에게 급식을 먹고 물어보면 대강 쪽지의 주인공 정도는 알 수 있겠지. 어쩌면 그 급우일지도 몰랐다.

민아가 잠깐 생각하고 있는 사이, 선생님께서 민아를 쳐다보고 있다는 건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 아이들이 다 민아를 볼 때까지도 눈치를 채질 못하니, 몇몇은 소리죽여 키득거리기도 했다.

“뒤로 나가 있어.”

선생님께서 바로 앞까지 오시고 나서야 알게 된 민아는 꼼짝하지 않고 교실 뒤로 나가 있어야 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