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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각자의 마무리 (3)


민아네 학교는 높이가 높은 책걸상이 없어서, 교실 뒤로 나갔을 때 수업을 들으려면 반드시 사물함 위에 교과서를 걸쳐두고 들어야 한다. 그래서 뒤로 나가 있는 동안 누군가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필기하는 도중에 돌아보면 다시 웃음이 멎어서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민아는 그 주인이 항상 놀려대는 그 아이거나 쪽지를 보낸 장본인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가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섣부르게 물어보기에는 조금 실례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과거를 아는 아이 중 한 명이 일부러 놀리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배려’를 한답시고 조용히 있었다가도 이제는 소원해진 관계도 회복되었으니 장난으로 받아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칠판에 적힌 내용도, 교과서에 인쇄된 글귀도 모두 그저 읽히지 않는 검은 형체로 보일 만큼 오래, 한참을 다른 생각에 몰두해 있었지만 다행히 선생님께서 뒤로 내보내신 후에 별달리 질문을 던지시거나 시키시는 것은 없었다. 아마도 겉으로는 수업을 성실히 듣는 것처럼 부지런히 머리를 왔다 갔다 하며 필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렇게 적어둔 결과물은 글꼴마저 읽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어 다녔지만, 집에 가서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가다듬으면 한결 나아지리라.

민아가 노트를 보고 짧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지켜본 시아는,

“민아 너 웬일로 필기를 제대로 못 했어? 우리 모범생님께 무슨 고민이 있으셨나?”

하고 놀려댈 뿐 눈치를 못 챈 기색이었다. 친한 척을 할 뿐, 눈치를 채는 데에는 영 꽝이라는 걸까.

“쪽지, 네가 보냈어?”

눈치를 좀 채라는 의미에서 한마디 했지만, 역시나 쾌활한 그 아이는 “아니?”, 하고 그저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다만 항상 놀려대던 때와 달리 잠깐 뜸을 들이더니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아까 누가 되게 키득거리더라. 기분 나쁘지 않았어? 명백히 너를 향한 것 같던데.”

지금까지 그 애, 시아가 보여줬던 말투하고는 사뭇 달랐다. 이 정도면 이미 적당히 친해졌고, 본심을 드러내도 괜찮겠다고 판단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민아에게 시아라는 사람은 평가가 별로 좋지 못했다. 쪽지는 보내지 않았어도 키득거린 건 본인일 것만 같았다.

‘그거 너 아니야?’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아니, 상관없었어. 내가 수업에 집중을 못 한 거뿐이니까. 참, 아까는 말을 못 했는데, 나 다른 친구랑 점심 같이 먹기로 약속을 해서 혹시 다른 친구랑 같이 먹어도 괜찮아?”

실제로 세은이와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약간 거리를 두는 차원에서 그렇게 말을 꺼냈다. 세은이도 나름대로 교우 관계가 있겠지만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8반에 가보기로 했다.

“역시 세은이하고 친한가 봐? 나도 친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점심시간에 앞으로도 다 같이 먹으면 되잖아.”

옆에서 시아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고 이야기를 계속 해왔지만 8반에 다다를 때까지 민아에게 들린 얘기라고는 이것뿐이었다. 아마 다 들었다고 해도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 민아야. 밥 같이 먹자고? 잠깐만.”

8반 문턱에 발을 디뎠을 뿐인데 눈치를 챘는지 세은이는 바로 밥 먹을 준비를 했다. 대강 담요를 접어 책상 위에 얹어두고, 교과서는 책상 서랍으로 밀어 넣으면 끝인 듯했다. 같은 반에 밥을 같이 먹는 친구는 없는지, 아니면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다른 친구들이랑 먹기로 했는지 누군가와 상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 가자. 얘는 누구야? 네 친구?”

“아마도. 적어도 네가 전학 오기 전까지는 나랑 같이 밥 먹었어.”

시아의 표정이 급속히 묘해지는 반면, 세은이는 대강 이해했다는 듯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원래도 걸음이 다른 친구들보다 빨랐으니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만, 오늘은 약간 연기하는 듯한 티가 나서 그게 시아와 민아 사이에 흐르는 말 못 할 분위기를 고려한 행동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정도는 친구지. 안 그래? 얼마나 붙어 다녔는데. 좀 섭섭하다?”

끝내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디겠는지 시아가 말문을 열었다. 민아의 종종걸음이 시작된 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만큼 본래 성격이 다소 조급한 편이리라. 민아는 그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넘길 뿐이었다.

“그래. 그렇긴 하지. 미안해.”

이미 의심이 깃들어서 그런지 그다지 미안하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지만, 형식상 사과하지 않으면 시아가 어떤 소리를 꺼낼지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워낙 목청도 크고 이런저런 소문들을 잘 주워서 가져오는지라 민아 외의 다른 친구들과 대화할 때 이상한 소문이라도 내면 좋을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민아가 거리를 둔 까닭이기도 하다.

다행히 기분이 금방 풀렸는지 약간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생글생글 웃기 시작했다. 감정 기복이 심할 만한 일을 겪었나 싶을 정도로 극적인 표정 변화였다. 이 건에 대해서는 세은이도 그저 입을 다물고 어색하게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뒤 급식실에 들어갈 때 즈음에는 그 생글생글한 표정이 자연스러워진 덕분에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웃는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세 학생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은이 너 정말 이쁘다. 전에 있던 학교에서 얼굴 반반하다는 소리 못 들어봤어?”

“어……. 아니. 내가 그런 얼굴은 아니지. 더군다나 화장도 안 하는데 무슨.”

적당히 배식을 받고 자리를 잡자마자, 시아는 뜬금없이 세은이의 외모를 칭찬했다. 민아와 친해지려고 했던 때와는 또 다른 양상으로, 그때는 말을 걸 뿐이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세은이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서 말은 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어서 대뜸 나온 말이 이거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후로 시아는 뭔가 난처하다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혼자 생각에 잠겨있었다. 평소 밥을 같이 먹을 때 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으나, 역시나 민아는 그게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은이와 단둘이 떠들 수도 없는데, 같이 먹자고 해놓고서 첫 문답에 막혀서 답답한 상황만 만드니 차라리 둘이서 먹겠다고 선언하고 자리를 옮길까 생각도 들 정도였다. 그래도 체면이 있다고 그렇게까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런 마음속의 자제도 점점 쉬워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민아의 마음하고는 별개로, 다행히 대화가 전혀 없어서 식사가 빨리 끝나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는 곧 사라졌다. 그러나 민아가 그 짧은 시간을 실제보다 훨씬 길게 느꼈다는 건, 세은이도 시아도 동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결국, 셋은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둘과 하나로 쪼개져 각자의 볼일을 보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셋 모두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갈라지는 것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점심시간의 끝자락, 예비종이 울리기 직전. 민아와 세은이는 매점 자판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세은이는 따뜻한 음료를, 민아는 차가운 음료를 골랐는데, 평소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조합이었다. 적어도 1년 전의 둘에게는 평범한 선택이었다. 세은이는 한여름만 아니면 항상 따뜻한 음료를 마셔왔고, 민아는 반대로 몹시 춥지 않은 이상 차가운 음료를 마시곤 했으니까. 다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민아는 무슨 일이 있거나 기분이 나쁠 때만 더워도 따뜻한 음료를 마셔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따뜻한 무언가를 먹으면 마음이 다소 차분해진다나. 그러니 이 짧은 사이에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세은이와 평범한 일상을 다시 구가하고 있다는 건, 다시 말해 시아와의 일이 기분은 언짢았어도 따뜻한 음료를 선택해야 할 만큼 큰일은 아니라는 의미기도 했다.

세은이도 매점에 온 뒤로는 눈치를 보지 않아도 괜찮을 거로 생각했는지 표정이 누그러진 게 눈에 띄게 보였다. 실제로도 민아와 세은이 사이에 마치 새우처럼 앉아서 눈치만 보고 있었기에 긴장이 완화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모습을 시아가 봤다면 자기가 그렇게 미웠냐며 온갖 짜증을 내었을 테지만, 시아는 그 활발한듯한 성격에도 좀처럼 매점을 찾는 일이 없어서 마주할 일도 없었다. 이번에는 특히나 더, 세은이와 민아가 매점으로 향한 걸 아는 이상 가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도 하다.

“기분이 좀 풀렸나 봐.”

그렇게 짧고 평화로운 시간을 마무리할 무렵,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민아에게는 모르는 얼굴이었고, 세은이에게는 같은 반 급우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치 세은이가 민아와 같이 밥을 먹기 전에는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하기라도 했다는 듯, 그 말투에는 약간의 부러움이 담겨있었다.

“아, 응. 밥 잘 먹었어?”

“잘 먹었지. 요새 메뉴가 잘 나오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오늘 꽤 맛있었어.”

곁에 있던 민아가 보기엔 꽤 티가 나는 거짓말이었지만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세은이네 반 급우는 눈치를 못 챈 기색이었다. 그게 조금은 웃겨서 실수로 사레가 들리는 바람에 입가를 가리고 몇 번인가 기침해야만 했다.

“왜? 어디 아파?”

갑작스러운 기침에 세은이가 걱정했지만, 민아는 별거 아니라며 하던 얘기 계속하라고 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세은이를 본 그의 급우가,

“둘이 사이가 정말 좋은가보다. 이따 반에서 보자!”

하고 무슨 영문인지 예비종도 안 쳤는데 쏜살같이 사라져 둘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만 했다.

 

그날 하교 때까지 다시 쪽지가 날아오거나 시아가 말 거는 일은 없었다. 특히나 시아는 민아와 절교를 결심한 것인지 입이 근질근질한 표정을 짓고도 다른 친구와조차 대화다운 말을 않았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민아가 조금 심했나 하는 마음이 생길 법도 했지만, 원체 성격상 친구가 말 걸지 않게 되어도 그동안 공부에 더 몰입할 성격인지라 적어도 종례 때까지는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시아가 보기에 민아의 태연한 모습은 화만 돋울 뿐이었다. 항상 자기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지만, 그동안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아 왔는데, 오늘 유독 갑자기 눈치를 줘가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까닭을 모르겠으니 더 답답했다. 뭔가 오해를 사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오늘 있었던 일이라고 해봤자 민아가 수업 시간에 받았던 쪽지 얘기를 들었던 것 외에는 없었다. 민아가 지금까지 시아를 조금은 불편하게 생각해왔다는 것 자체를 아직 알지 못하는 듯했다.

한편, 민아는 방과 후 세은이와 어떻게 지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옆 분단의 시아와 달리, 정말로 무사태평한 표정이었다. 종례하러 들어오신 선생님마저도 간만에 민아 얼굴이 펴졌다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여쭤보실 정도였다. 급우 사이에서도 점심시간 전의 키득거리던 누군가는 어디로 사라진 듯, 그저 민아의 태도 변화가 놀랍다는 눈치였다.

담임 선생님께서 학생들의 분위기가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을 보시기는 했으나, 교사라는 직업을 한지도 꽤 오래된 결과 그 정도는 익숙하셨기에 종례에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긴장감이 팽팽해지지는 않았다. 어떤 방향으로든 평소 친하던 학생 둘이 사이가 나빠져 보인다고 해서 함부로 중재하려고 들었다가는 괜히 볼멘소리만 듣고 말 것이다. 적어도 시아와 민아 사이에서는 정말로 그게 나았다. 애초에 민아는 시아를 명확하게 친구로 생각한 적은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2주 정도의 휴재를 갖고자 했으나, 갖가지 개인 일정과 사정이 겹쳐 2달만에 속편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분들께 정말로 죄송합니다. 특히 개정 전 1권부터 읽고 계신 독자분들께서는 또다시 개정판을 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을 하셨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본래 일요일날 올리는 것이 맞지만, 저녁까지 굳이 기다렸다 내기보다는 하루빨리 글을 올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새벽에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같은 1권 결말까지, 휴재 없이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여, 댓글로 이 작품에 대해서 궁금하신 점 등을 올려주시면 나중에 후기에 모두 취합하여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부 곤란한 사생활 관련 질문이나 욕설 등은 필터링 혹은 제외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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