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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각자의 마무리 (4)


세은이네 반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아까 매점에서 겪었던 생뚱맞은 누군가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지만, 그게 누군지, 같은 반이기는 한 건지조차 세은이가 알 길은 없었고 소문도 돌지 않아서 정말 고요할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보다는, 민아와 시아 사이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지금 자신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가 주요한 고민거리였다. 원래 고민거리가 있으면 생각하느라 시간도 빨리 간다고, 어느새 평상시 담임 선생님께서 종례를 끝내시는 시각도 차분히 다가오고 있었다.

매점에서 시간을 보낼 때조차 세은이는 불안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민아의 표정이나 행동에 안심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둘 사이에 참견하거나 오랜 친구인 민아에게 무작정 뭐라고 하기에는 세은이가 아는 것이 없었을뿐더러 반대로 처음 보는 시아에게 무작정 민아 편을 들면서 거리 두기를 권할 순 없었다. 비록 세은이가 앞에서 본 시아의 행동은 별로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잠깐의 행동을 전부라고 볼 수 있을까. 특히나 민아와 시아 사이에 별로 좋지 못한 일이 있었던 듯해 서로가 자기 나름의 불만을 표출했던 것이라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기도 했다.

점심 이후 시아와 민아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세은이네 반까지 누군가가 싸웠다는 소문 같은 건 나오지 않았으므로 민아와 시아가 적어도 냉전 중일 것이라는 추측 정도나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민아와 같이 집에 가는 길에 시아가 시비를 건다거나, 일행에 끼어 간다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고, 세은이가 민아에게 시아 얘기만 꺼내지 않는다면 세은이와 민아 사이에 싸움이 벌어질 일도 그다지 없을 것이다. 반대로 민아가 시아 얘기를 꺼낸다면, 매점 때처럼 적당히 반응을 살피면 당장은 모면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결론이 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둘이 만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내린 임시방편일 뿐, 혹시라도 둘이 원치 않더라도 만날 일이 생긴다면 세은이 입장에서는 그저 마음을 졸일 뿐이었다. 그렇게 귀에 들어오는 사항 하나 없이 종례는 마무리되었고, 세은이도 짐을 싸면서 민아와 갈 준비를 해나갔다.

 

다행히 하굣길에 세은이가 시아를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아는 종례가 끝나자마자 반에 있었던 적도 없다는 듯 빠른 속도로 도망치듯 사라져버렸고, 민아는 자신의 반에 올 필요가 없다는 듯 오랜만에 세은이네 반 앞에서 서서 종례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세은이는 민아를 보자마자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며 한시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별 일 없었어?”

민아가 세은이를 보고 꺼낸 한마디는 세은이에게 살짝 의외였다. 반대로 세은이가 민아에게 해야 할 말 같다는 감각도 있었다. 그러나 곧 아까 그 이따 반에서 보자는 애 말이야, 하는 식으로 민아가 귀띔을 해줘서 무슨 이야기인지는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게 걱정할 일인지는 제쳐두고.

“아니. 아무일도 없었어. 반에 소문도 안 돌던데?”

“그래? 내가 반 앞에 와 있을 때 애들은 이미 다 알고있다는 표정이었는데?”

민아답지 않게 표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은 시아의 그 분노한 얼굴에도 태평하게, 오히려 시종일관 미소지으며 종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잊었다는 듯했다. 그만큼 세은이네 반 친구들이 성격적으로는 조용할지 몰라도 얼굴로 암암리에 퍼진 소문을 숨길 만큼의 실력은 되지 못했다는 얘기기도 했다. 사실 세은이가 전학 올 당시부터 민아와 세은이가 친한 사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내용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 카페에서 둘을 목격했다는 소문부터가 시작이었는데, 확인 차 물어보고자 하는 무리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민아가 가진 평소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세은이도 비슷한 친구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매점에서 민아와 세은이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그 소문이 완전히 사실로 확정 났을 뿐이었다.

어찌 보면 세은이가 가진 정보력이 약하다는 말도 되어서, 민아와 시아가 서로 머리채를 붙잡고 싸울 만큼 격렬하게 다퉜더라도 세은이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세은이는 자신이 가진 귀동냥의 힘을 굳건히 믿었지만, 그냥 이번 추측이 대강 맞아떨어진 것뿐 하마터면 종례 내내 엉뚱한 고민만 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세은이는 민아의 말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자신이 알기로는 그런 소문은 반에 퍼진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민아가 표정을 읽고 이해할 정도라면 누가 봐도 그렇다는 말이므로 믿기로 했다. 애초에 그런 ‘표정’이라는 건 민아가 세은이네 반에 가든지, 아니면 세은이가 민아네 반에 가든지 하는 식으로 서로가 상대의 반을 가봐야 아는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우리가 친하다는 소문이 나 오기 전부터 퍼졌었나봐.”

그냥 그렇게 민아의 말에 맞장구치며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민아도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듯, 오늘은 어떻게 공부할 생각이니, 세은이는 어디가 어렵게 느껴지느냐니, 하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공부 얘기를 꺼내왔다. 아까 긴 한숨을 내쉬며 한시름 내려놓고도, 세은이는 종례 때 쓸데없는 걱정을 한 듯해 가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왜? 학교에서 웃긴 일 있었어?”

그래서 가끔 민아가 말을 멈추고 그렇게 물어오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세은이는 얼버무릴 뿐이었다. 별일은 아니고 그냥 선생님의 개그가 생각났다는 핑계로.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러고 나니, 민아도 의심이 생겼는지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그냥 웃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그냥……. 너랑 시아랑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서. 근데, 네 모습을 보니까 고민했던 게 별로 의미가 없었다 싶어서.”

결국, 세은이가 민아에게 자신이 고민했던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말로 둘러대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했다가 다시 사이가 나빠지는 것은 두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민아는 솔직하게 얘기해주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입장인지라, 세은이의 결정이 민아와의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들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냥 그래. 시아하고는 원래 친한 사이는 아니었거든. 네가 없는 사이에 나에게 말을 걸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절친’이라고 부를 만큼 친했던 것도 아니었고 대부분은 일방적이었어.”

“그럼 친했던 적은 없었던 거야?”

“글쎄……. 솔직히 친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그래도 여러 번 말을 걸어줬으니까 친했다고 봐야 하나. 너는 어떻게 보는데?”

“네가 시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친구가 아닌 거고, 아니면 친구라고 봐도 괜찮지 않았을까? 오늘 본 시아의 모습은 나도 별로이긴 했지만.”

“네가 본 시아의 모습은 평소 모습은 아니야. 네가 말하는 걸 들으니 조금 시아에게 미안해지네.”

인제 와서 막상 사과하자니, 민아는 시아가 보여준 오늘의 조금 다른 태도가 걸렸다. 진심은 도대체 뭐였을까.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아니 현실 속에서도 보통은 오늘과 같은 행동이 좋은 징조는 아니다. 굳이 다른 친구를 험담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좋은 친구인 척 해왔던 것일 가능성도 높았다. 그런데 직전까지 친구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장은 사과해도 시간을 두었다가 물어봐야겠지만, 그럼 그 시간은 얼마나 두어야 하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막막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진심이 별로 담기지도 않은 사과를 했을 때, 시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눈치가 좋은 사람이라면 분명 놀리는 것으로 알고 더 화낼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사이가 벌어지기 직전에 보여줬던 태도를 생각하면, 사과하기 전에 이미 다른 친구들에게 험담해놓았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사과하려고 하니 치욕적인 행동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세은이도 민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는지,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며 억지로 사과하는 거면 하지 말라고 말리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힘들면 근처 카페에서 쉬자며 민아에게 의사는 묻지도 않고 늘 먹던 음료를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혔다.

“여기 자리가 별로 편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커피 마시고 진정해. 힘들 것 같으면 나중에 걔 만나서 사과할 때 옆에 있을 테니까.”

“그래.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힘든 일에 휘말려서.”

“아니야. 이런 일 너만 겪는 거 아니잖아. 필요할 땐 돕기도 하고 그래야지.”

세은이와 민아가 다시 만났을 무렵 이용했던 그 카페, 같은 좌석. 민아는 잠깐 한숨을 돌리고 나서야 그 사실을 눈치챘다. 일부러 이 카페가 보이니 여기서 진정하라고 한 것이리라. 세은이는 한편으로 시아가 없는지 확인하려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민아도 조금 웃음이 나왔다.

“왜? 너도 숨기는 거 있어?”

민아가 아까 했던 그 말과는 달리, 약간의 여유와 함께 장난기가 섞인 말투였다. 명백히 민아가 장소의 특징을 깨닫고 웃었다는 걸 안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세은이는 곧바로 표정을 굳히기 시작했다. 음료가 나왔다는 걸 알리는 진동벨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고작 그거 받으러 간다고 표정이 이토록 비장해질 이유도 없으니 원인은 하나였다.

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눈빛과 마주하니 오한이 서리는 느낌이었다. 슬슬 더워지는 이 시점에 추위를 느끼다니. 냉방 중인 가게도 아닌데 도리어 춥게 느껴지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동선을 보니 세은이는 민아보다 앞서 시아를 본 탓에 표정이 굳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음료를 받으러 가기는 하는데 동작도 뻣뻣하고 손에 땀이 맺힌 게 보이는 것일 터이다.

“안녕.”

정작 서늘한 눈빛으로 시아가 건넨 것은 인사였다. 평소보다 짤막한 것이 화가 났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말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손에는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세은이가 앉고 있었던 자리의 바로 옆에 앉아 가만히 민아를 보고 있었다. 마치 세은이가 음료를 받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듯한 눈치였으나 세은이가 민아에게 잔을 건네고 나서도 한참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얼음이 다 녹도록 가만히 있기만 해서 세은이도 민아도 차마 주문한 음료를 마실 수 없었다. 마치 민아가 세은이에게 보였던 태도와 비슷했으나 그보다는 확실히 차가웠다. 다시 어색한 분위기의 시작이었다.
화요일 밤에 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수요일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다 작성했습니다.
속편을 고려하지 않고 지난 편을 끝내는 바람에 어떻게 이어가야할지 막막함이 있었네요.
그러나 일요일에 올리지 못한 것은 순전히 과제를 제때 못 치룬 작가의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이번주 일요일의 정상적인 연재를 약속드리는 것조차 죄송스러워지네요. 빈번히 어겨서 송구스럽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1권을 완결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2​0​.​0​5​.​2​7​ 새벽 - 본래 "개막"이었던 장의 제목을 "각자의 마무리"로 변경하였습니다. 1권의 에필로그를 제외한 마지막 장인데, 장제목이 개막이면 아무리 2권이 있다지만 스토리상 맞지도 않고 목차로 보아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변경하였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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