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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각자의 마무리 (5)


분명 이런 분위기라면,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음료 한 모금 안 마시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세은이가 과외를 받는 것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만큼 셋은 누가 봐도 얼어있었고 또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 할 말 없다면 갈게.”

그러나 세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 정적은 깨졌다. 하지만 그뿐. 둘 중 누구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으며 세은이가 밑으로 내려가기 직전, 민아가 잠깐 손짓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 다였다. 그래서 그는 그 인사를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있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일단은 과외가 끝나고 다시 물어보기로 한 차였다. 아직 과외가 시작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있지만, 숙제를 다 못 끝냈다는 적당한 핑곗거리도 있는 마당에 굳이 불편한 자리에 끼어 가만히 앉아만 있고 싶지도 않았다.

세은이가 사라지고도 한참 뒤, 다시 찾아온 정적을 결국엔 못 견디겠는지 드디어 시아가 입을 열었다. 본래 성격을 생각하면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말이라곤 안녕뿐인 것이 대단하기도 해 보였다.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

첫 마디가 사과 요구일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던 민아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도리어 의혹이 사실이기만 하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아니. 안 들어.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는 적어도 네가 어떤 행동을 했든,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어떤 반응도 보인 적 없어.”

“너 오늘 누군가 쪽지를 보낸 후부터 쭉 나한테 저기압이었잖아. 네가 해놓고도 몰라?”

음료를 마실 것도 아니면서 시아는 머그잔을 올렸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지금은 둘만 쓰고 있는 작은 테이블이 흔들릴 만큼 큰 울림이었으나, 둘은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눈살만 찌푸려졌다.

“내가 쪽지 사건 이후 저기압이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건 너 때문도 아니었고 너에게만 그랬던 것도 아니야. 내가 너에게 화가 났던 건, 동정해달라고 한 적도, 험담하자고 한 적도 없는데 키득거리는 애들을 모함하려고 들었던 네 그 말이라고. 아직도 모르겠어?”

이번에는 오히려 시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치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는 듯한 어이없는 표정. 그걸 본 민아도 마찬가지로 기가 찼지만, 따로 녹음해둔 것도 없었기에 더는 몰아세울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걸 모함으로 볼 수 있는데? 나는 친한 친구인 네가 그런 일을 겪는 것 자체가 싫어서 그랬던 건데 그걸 그렇게 받아들여? 모함이라니! 공부는 잘해도 사회성은 영 꽝이다. 이거야?”

“나도 알아. 사회성 별로인 거. 근데 네가 나를 친한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면 한마디만 할게. 앞으로 그런 의도로 물어볼 거면 말투를 그런 식으로 하지 마. 내가 오해하게 되잖아.”

“네가 뭔데 내 말투를 정해? 웃긴다, 너. 솔직히 말해서 내가 쪽지를 보내진 않았는지 의심했잖아. 맞지? 그러니까 태도가 그 모양이었고. 아니면 키득거린 게 나라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완벽한 오답이야. 조금도 맞은 게 없다고.”

민아는 그제야 숙연해졌다. 여전히 의심은 거두질 못해서 시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라는 전제가 붙기는 했지만, 자신이 처음부터 잘못 대해왔고 단순히 합리화를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왔다는 걸.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세은이만 처지가 난처해지겠다 싶어 걱정이 앞섰다.

“미안해.”

시아가 보기에는 긴 침묵에서 나온 짧은 한마디였다. 너무나도 화가 난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민아가 대답하는 데 오래 걸렸다는 게 의심이나 고민 때문이라는 걸 눈치 못 챌 이유가 없었다.

“너 솔직히 아직도 의심스럽지. 내가 둘 중 한 무리일까 봐. 네 친구 세은이 생각도 날 거고.”

민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시아는 그때부터 연습장을 꺼내 글씨를 적기 시작했다. 쪽지 내용은 전혀 모르지만, 자신의 글씨체가 어떤 모양인지는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아…….”

후회 섞인 탄성이 들려왔다. 그때 비로소 오해가 풀린 것이다. 시아는 꼭 이것도 들어보라는 듯 킬킬거렸다. 정확히는 민아가 들었다는 키득거리는 소리에 가깝게, 그러나 명확히 다른 시아의 목소리로. 곧이어 민아는 연습장을 다시 시아에게 내밀었고,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아마도 상대는 세은이일 것이고, 잘 해결되었다는 내용이겠지. 그렇게 시아는 추측했다. 보통이라면 사람이 화를 내는 도중에 문자를 보내는 일을 상당히 무례하게 여기겠지만, 왠지 시아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화는 이미 풀린 상태였고, 세은이가 고생하고 있다는 건 시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컸다. 오히려 둘의 싸움에 친구라는 이유로 말려든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자, 이제 알겠어? 다시는 나를 의심하지 말라는 게 아냐. 내가 장난기 많은 성격인 건 알잖아? 장난치다가 놀라게 해준다고 다른 애들이랑 짜고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네가 지금까지 나를 친구로 생각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좀 친구를 믿어봐. 네가 물어본다고 내가 대답을 안 해줄 사람은 아니거든?”

살짝 익살스럽게 말을 하자, 민아도 조금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가 봐도 다시 한번 극적인 해결이었다. 그것도 시아가 많이 봐줘서 성립된.

“자, 다시. 사과하고 싶단 생각이 아직도 안 들어?”

“미안해. 정말로. 나중에 매점에서 먹을 거 사줄게.”

이번에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여서, 민아도 부담이 없었다.

 

“시아하고는 정말로 그렇게 되었구나. 잘 되었네. 축하해.”

다음날 점심시간. 이번에는 정말로 어색하지 않게 셋이 모였다. 점심시간마다 두 번 급식을 먹고자 하는 학생을 잡기 위해서 계신 선생님께서도 오늘은 사이가 좋아 보인다며, 한마디 하실 정도였으니 어제의 점심시간이 얼마나 어색했는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민아는 순간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 했으나, 이번에는 세은이와 시아가 굳이 말리지 않겠다는 듯 외면했다. 그게 세은이 나름의 민아 놀리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은 민아가 뒤늦게 놀리는 거냐며 뭐라고 했으나, 어차피 분위기상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어서 그냥 웃음으로 넘어갈 뿐이었다.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서 다행이라니까. 사실 그래서 내가 좀 손해보는 성격이지. 그런 것 같지 않아?”

“어휴, 자기 자랑도 많이 하면 재수 없어 보이거든? 적당히 해. 아까도 오면서 똑같은 말 했잖아.”

“겨우 매점 사주는 거로 넘어갈 줄 알았어? 조금 더 할 거야. 손해는 봐도 최대한 덜 봐야지. 아니면 매점 가서 며칠 더 사주든가.”

그래봤자 시아가 손해 보는 건 다름이 없었다. 민아가 시아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은 지금까지, 어떨 때는 시야 밖에 놓여 짐짝 취급을 받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아가 손해 보는 성격이라는 것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세은이가 없을 때 가끔 매점에 들러 무언가 사주기도 했으니, 단순 매점 매출액으로 갚으면 아마도 5만 원 정도는 각오하고 준비해야 할 판이었다.

“너무 비싼 거 사진 않을거지?”

“그럼. 네 지갑 사정이 대충 짐작 가는데 뭐하러 한 번에 지금까지의 빚을 뽑아먹겠어. 앞으로 천천히 네 지갑이 여유로워질 때마다 조금씩 사달라고 해야지.”

다소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결국은 자신이 원할 때 가끔씩 사달라는 말이었다. 무슨 수로 시아가 민아의 지갑 사정을 대강 추측했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민아의 통장에는 꽤 넉넉한 돈이 들어있었다. 그러니 민아도 농담으로 받아들였으나, 딱 한 사람.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거 정말로 하는 말 아니지? 민아 나중에 힘들어지는 거 아니야?”

그 뒤 한참 배를 잡고 웃은 둘 때문에 세은이는 뭔가 소외당하는 느낌도 들었다. 자신만 모르는 건가 싶어서 물었더니 알고 보니 눈치만 못 챈 거뿐이어서 마음은 풀렸다고 하지만.

“그나저나, 쪽지를 적어서 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네 앞에 있는 사람 아니었을까? 아니면 네가 맨 처음 건네는 걸 본 사람.”

“하지만 그런 걸 보낼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였는데…….”

“그런 게 어딨어. 보낼 사람은 보내고 아닌 사람은 아닌 거지.”

“맞아. 너는 날 의심했지만 나는 아니었잖아. 사실 내가 봐도 좀만 친해졌다 싶었으면 쪽지 보냈을 것이고.”

어차피 보낼 생각이었네, 뭐. 민아는 그렇게 툴툴거렸다. 그러나 정말로 토라진 건 당연히 아니어서, 세은이랑 시아가 나란히 웃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씩 웃는 바람에 둘로부터 뻔뻔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뭐. 비싼 걸 사지도 않았고. 됐어. 나도 지금처럼 친했으면 받아줬을 것 같고.”

그 와중에 비싼 거 사는 게 중요했냐며 시아가 놀라는 척을 했으니, 역시나 그저께까지의 시아와 민아 사이의 관계였다.

“뭐야, 원래 이런 사이였어? 어제는 괜히 고민했네. 민아 너는 도대체 이런 친구를 뭐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야 무작정 달려드는데 어떻게 의심을 안 해. 계기라도 있어야 믿지.”

그것도 또 맞는 말이었다. 시아는 민아가 입학하고 나서 브레이크가 먹지 않는 자전거를 경사로에서 탄 것처럼 달려들었으니까. 민아도 시아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할 시간이나 주제가 필요했고 그게 어제였던 것이다. 세은이가 그 중간에 끼어서 괜한 고민을 하게 되긴 했지만, 결말이 이렇게 나서야 누구도 그게 잘못된 일이었다고 볼멘소리를 하기엔 좀 그랬다. 그래서 세은이도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하는 심정으로 넘겼다. 사실 자신도 처음에는 민아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친구가 되기도 했고.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민아에게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서 등이 터진 새우도 없었다는 거지만.

“너희, 다음부터 이상한 주제로 싸우고 토라져있으면 화낸다.”

단, 이 한마디를 남기고서. 민아도 시아도 그 말에는 결코 가볍게 대답을 하지 않았으니 진심은 제대로 전해진 듯했다.
이번이 [각자의 마무리] 장의 마지막 편이었습니다.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전개가 되어버려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어찌보면 셋 사이에서는 바람직한 결말이라 또 좋네요.
다음은 에필로그입니다. 1~2편 정도로 끝날 예정이며 2편이 끝난 다음 주에는 1권 후기가 올라갑니다.
예상보다 짧은 단편이 되어버렸는데 2권은 많은 부분을 보충해서 나올 수 있도록 충분한 준비 후에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 중간에 다른 작품으로 만나뵐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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