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이곳은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 마을인 코로나 타운. 마을 주변에 있는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 이외에는 장점이랄 것이 없는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한 민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머리를 더벅하게 길러 묶은 청년, 루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신의 집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와, 집이 사라졌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반면, 루크의 옆에 서 있던 소녀, 제인은 개운한 얼굴로 손을 털며 말했지만-
“야! 이 자식아아아아아아아! 이게 지금 제정신이냐? 아아아앙?!”
루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그녀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물어 내! 내 집 물어내라고! 으아아아아!! 내 즐거운 백수 생활을 돌려내란 말이야!!”
루크는 제인의 멱살을 잡아 흔들다 말고, 주저앉아서 머리를 싸맸다. 그런 그를 안쓰럽다는 듯이 보고 있던 제인이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적당히 겁만 줄려고 했는데 당신이……”
“닥쳐!! 그런 위험물을 민가에 들고 온 게 상식에 어긋나는 거라고!! 젠장! 가슴 큰 금발 여자는 멍청하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사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루크가 소리치자, 금발 소녀 제인이 몸을 흠칫 떨었다.
“……실례네! 어, 어찌됐든 결국 집은 사라졌고. 당신은 이제 살 곳이 없잖아? 그러니 길드로 돌아오는 것을 추천…… 하는 바인데.”
“…….”
루크는 자신의 집이었던 잔해들을 초점이 사라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참 이상하다…… 분명 자신의 신난 백수 생활은 영원토록 계속될 터였는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으아아아아아악!!”
루크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마을 전체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절규했다.
“야! 열어어~!!”
“젠장! 거절한다. 이제 좀 돌아가!”
이곳은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 마을인 코로나 타운. 마을 주변에 있는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 이외에는 장점이랄 것이 없는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왠지 모를 말다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 민가에서 벌어진 이 말다툼은 도통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도 양심이 있으면 일을 좀 해라! 너 때문에 길드 재정이 바닥나게 생겼잖아!”
“그럼 헌터로 전향하라고. 할멈이 돈도 안 되는 모험가 같은 걸 고집하고 있으니까 이런 상황이 된 것 아냐!”
“이 뻔뻔한 자식이……”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소녀와 머리를 더벅하게 길러 묶은 청년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어린 소녀가 저렇게 거칠게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면 상당히 놀랄 수도 있겠지만, 청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넘겨버렸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백발의 유녀, 마스터 라트리아는 어려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루크가 소속되어 있는 모험가 길드의 마스터였기 때문이다.
“루크, 내가 진짜로 돈이 없어서 이러는 거겠니……? 나는 네가 조금 활기차게 살아줬으면 할뿐이야!”
그 백발의 유녀, 마스터 라트리아는 이내 문을 강제로 열려는 것을 멈추고는, 진심을 담아 문 너머의 청년에게 말했지만……
“아, 그래? 돈은 있다는 거지? 하하, 괜히 걱정했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다신 찾아오지 말아줘. 아, 용돈은 매달 1일에 꼬박꼬박 넣어주고.”
딸깍-
“할멈에게 나를 부양할 권리를 주지…….”
청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문을 잠가버렸다.
“…….”
마지막까지 뻔뻔한 청년의 태도에 마스터 라트리아는 기가 찬 나머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야! 루크!!! 얼른 나와! 이 밥벌레 자식아!!”
열 받은 얼굴로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에 있는 루크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나를 굳이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이유가 뭐야?”
그리고 청년…… 루크는 마스터 라트리아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거야? 나는 이젠 그저 먹고 자는 것 밖에 못하는 밥벌레일 뿐인데……”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있어. 네가 일도 안 하고 가만히 노는 것이 아니꼬워서 그러는 게 아냐.”
“……그럼 뭔데?”
“모험가는 자유를 추구하는……”
“훗……”
루크가 피식 웃으며 마스터 라트리아가 하는 말을 끊어버렸다.
“그런가. 자유를 추구한다. 라…… 그럼 난 이미 모험가라고 할 수 있지.”
“뭐……?”
루크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자, 마스터 라트리아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나 또한 자유를 추구한 결과…… 이 백수라는 직업을 발견하게 된 거다.”
“…….”
“아아, 굉장하지? 부모 같은 존재에게 빌붙으며 하루 종일 먹고 자고…… 백수라는 건 자유의 극치라고.”
루크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마스터 라트리아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는 내가 주워 온 10년 전부터 매일 계속 먹고 자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멍하니 시간만 보내고…… 아직 젊은 너에겐 그건 인생 낭비잖느냐!”
마스터가 늙은이 같은 소리를 했지만, 루크는 개의치 않았다.
“흥…… 할멈이나 잘하시지. 모처럼 불로불사인 몸인데, 즐겨두지 않으면……”
“그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니까 신경 꺼!”
소녀가 입 다물라는 듯이 소리치자, 문 너머에서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할멈도 나한테 신경 끄시죠.”
“…….”
“그리고 나 같은 놈은 그냥 집에 처박혀 있으면 돼. 할멈한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나한테는 이제 아무것도 안 남았어. 죽지 못해 사는 거라고.”
마스터 라트리아는 더 이상 할 말이 사라진 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에라이, 이거나 처먹어라!”
하고 소리를 치며 길드에서 가져온 삶은 감자를 루크의 집 창문을 향해 던져버렸다.
쨍그랑-!
“할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창문이 깨지고, 루크가 소리를 치는 것이 들려왔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야이 자식아!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야! 향도 대신 사다주지 않을 거니까 알아서 해!!!”
“용돈은 매달 1일에 꼬박꼬박 넣어주고!”
“용돈도 없을 줄 알아!!”
그녀 또한 질세라 소리를 쳤지만, 루크는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아……”
마스터 라트리아는 땅이 꺼질 정도로 무거운 한숨을 푹- 쉬고는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
“바보 녀석! 10년 동안 돌봐준 은혜도 모르고! 나는 네 부모나 마찬가지란 말이야!”
마스터 라트리아는 일이 마음대로 안 풀린 것에 대해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진짜 낳아준 부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변가에 쓰러져 있던 그를 주워서 10년 동안 돌봐준 ‘부모 대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녀는 어떻게든 루크가 밖으로 나와 주길 원했다.
마스터 라트리아는 루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한테는 이제 아무것도 안 남았어. 죽지 못해 사는 거라고.]
“뭐…… 자식만큼은 부모 마음대로 못한다고 했지만, 저렇게 놀기만 하기엔 아까운 녀석인데……”
그녀는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도,
“에잇, 모르겠다. 잠깐 수도에 들러서 놀다가 와야지.”
그렇게 중얼 거리며 눈을 떴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눈을 감기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타운의 민가 밀집 지역이었던 주변이 수도인 그라시아의 거리로 변해 있었다.
“수도는 언제와도 시끌벅적해서 좋군.”
마스터 라트리아는 그라시아의 거리를 거닐며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리에 머뭇거리며 서 있던 한 소녀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은 갈수록 벚꽃색이 되는 투톤 컬러. 눈동자는 푸른색, 키는 루크와 비슷해보였다.
손에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이력서인 것 같았다. 아마 소녀는 헌터 클랜에 구직을 하고 있는 둣 하다.
“흠……”
마스터 라트리아는 근처의 벤치에 앉아 소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녀는 심호흡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어떻게 안 될까요?”
“미안해요. 헌터들 사이에 당신의 평판이 워낙 안 좋아서……”
“하아……”
대차게 거절당했다.
소녀는 건물에서 나온 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다시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마스터 라트리아는 조용히 그 소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찾은 곳은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다른 클랜. 하지만 소녀는 그곳에서 마저도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그 다음에 찾아간 클랜에서도, 그 다음도…… 다음의 다음도. 그녀는 모두 거절당했다.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마스터 라트리아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헌터 클랜에서 사람을 저렇게 노골적으로 거절하는 일은 잘 없을 터……’
필히 뭔가 사정이 있으리라, 마스터 라트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금발 소녀는 마지막으로 찾아간 클랜에서도 거절당한 뒤, 그라시아의 분수 공원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소녀의 뒤를 밟은 마스터 라트리아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서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 너 제인 아니니?”
공원 옆을 지나가던 행인 중 한 명이 그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맞네. 얼마 전까지 A랭크였던 도둑고양이 제인…… 킥킥……”
풍성한 웨이브의 오렌지색 머리카락에 얼굴에 핀 귀여운 주근깨…… 고압적인 태도와 자신만만한 표정…… 특이하게도 어깨에는 ‘꼬리가 두 개 달린’ 조금 특이한 고양이를 얹고 있는 소녀였다.
“클랜에서 추방당하고 이런 곳에서 뭐하나 싶었더니 새 클랜을 찾고 있었던 거야? 어머, 몰골이 이게 뭐니……”
“도로시……”
어깨에 얹은 고양이를 한껏 쓰다듬던 도로시는 고양이가 졸린 듯이 하품을 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새로운 클랜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니? 왜냐하면 그라시아에 있는 헌터 클랜 전체에 네 소문이 다 퍼졌거든! 네 헌터로서의 인생은 이제 끝이야. 웃음이 멈추질 않네. 아하하하!”
“…….”
도로시의 비웃음에 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손에 들고 있던 이력서가 콰직-하고 찌그러졌다.
“뭐, 열심히 해보라구. 그래봤자 헛수고겠지만 말이야~”
도로시가 웃으며 떠난 뒤에도…… 제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흐음……”
마스터 라트리아는 턱을 괸 채로 제인을 바라보다가-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군.”
의도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제인에게 다가갔다.
이곳은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 마을인 코로나 타운. 마을 주변에 있는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 이외에는 장점이랄 것이 없는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한 민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머리를 더벅하게 길러 묶은 청년, 루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신의 집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와, 집이 사라졌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반면, 루크의 옆에 서 있던 소녀, 제인은 개운한 얼굴로 손을 털며 말했지만-
“야! 이 자식아아아아아아아! 이게 지금 제정신이냐? 아아아앙?!”
루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그녀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물어 내! 내 집 물어내라고! 으아아아아!! 내 즐거운 백수 생활을 돌려내란 말이야!!”
루크는 제인의 멱살을 잡아 흔들다 말고, 주저앉아서 머리를 싸맸다. 그런 그를 안쓰럽다는 듯이 보고 있던 제인이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적당히 겁만 줄려고 했는데 당신이……”
“닥쳐!! 그런 위험물을 민가에 들고 온 게 상식에 어긋나는 거라고!! 젠장! 가슴 큰 금발 여자는 멍청하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사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루크가 소리치자, 금발 소녀 제인이 몸을 흠칫 떨었다.
“……실례네! 어, 어찌됐든 결국 집은 사라졌고. 당신은 이제 살 곳이 없잖아? 그러니 길드로 돌아오는 것을 추천…… 하는 바인데.”
“…….”
루크는 자신의 집이었던 잔해들을 초점이 사라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참 이상하다…… 분명 자신의 신난 백수 생활은 영원토록 계속될 터였는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으아아아아아악!!”
루크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마을 전체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절규했다.
만사 귀찮은 그가 호위무사로 전직한 이유. (1)
“야! 열어어~!!”
“젠장! 거절한다. 이제 좀 돌아가!”
이곳은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 마을인 코로나 타운. 마을 주변에 있는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 이외에는 장점이랄 것이 없는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왠지 모를 말다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 민가에서 벌어진 이 말다툼은 도통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도 양심이 있으면 일을 좀 해라! 너 때문에 길드 재정이 바닥나게 생겼잖아!”
“그럼 헌터로 전향하라고. 할멈이 돈도 안 되는 모험가 같은 걸 고집하고 있으니까 이런 상황이 된 것 아냐!”
“이 뻔뻔한 자식이……”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소녀와 머리를 더벅하게 길러 묶은 청년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어린 소녀가 저렇게 거칠게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면 상당히 놀랄 수도 있겠지만, 청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넘겨버렸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백발의 유녀, 마스터 라트리아는 어려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루크가 소속되어 있는 모험가 길드의 마스터였기 때문이다.
“루크, 내가 진짜로 돈이 없어서 이러는 거겠니……? 나는 네가 조금 활기차게 살아줬으면 할뿐이야!”
그 백발의 유녀, 마스터 라트리아는 이내 문을 강제로 열려는 것을 멈추고는, 진심을 담아 문 너머의 청년에게 말했지만……
“아, 그래? 돈은 있다는 거지? 하하, 괜히 걱정했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다신 찾아오지 말아줘. 아, 용돈은 매달 1일에 꼬박꼬박 넣어주고.”
딸깍-
“할멈에게 나를 부양할 권리를 주지…….”
청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문을 잠가버렸다.
“…….”
마지막까지 뻔뻔한 청년의 태도에 마스터 라트리아는 기가 찬 나머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야! 루크!!! 얼른 나와! 이 밥벌레 자식아!!”
열 받은 얼굴로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에 있는 루크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나를 굳이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이유가 뭐야?”
그리고 청년…… 루크는 마스터 라트리아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거야? 나는 이젠 그저 먹고 자는 것 밖에 못하는 밥벌레일 뿐인데……”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있어. 네가 일도 안 하고 가만히 노는 것이 아니꼬워서 그러는 게 아냐.”
“……그럼 뭔데?”
“모험가는 자유를 추구하는……”
“훗……”
루크가 피식 웃으며 마스터 라트리아가 하는 말을 끊어버렸다.
“그런가. 자유를 추구한다. 라…… 그럼 난 이미 모험가라고 할 수 있지.”
“뭐……?”
루크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자, 마스터 라트리아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나 또한 자유를 추구한 결과…… 이 백수라는 직업을 발견하게 된 거다.”
“…….”
“아아, 굉장하지? 부모 같은 존재에게 빌붙으며 하루 종일 먹고 자고…… 백수라는 건 자유의 극치라고.”
루크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마스터 라트리아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는 내가 주워 온 10년 전부터 매일 계속 먹고 자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멍하니 시간만 보내고…… 아직 젊은 너에겐 그건 인생 낭비잖느냐!”
마스터가 늙은이 같은 소리를 했지만, 루크는 개의치 않았다.
“흥…… 할멈이나 잘하시지. 모처럼 불로불사인 몸인데, 즐겨두지 않으면……”
“그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니까 신경 꺼!”
소녀가 입 다물라는 듯이 소리치자, 문 너머에서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할멈도 나한테 신경 끄시죠.”
“…….”
“그리고 나 같은 놈은 그냥 집에 처박혀 있으면 돼. 할멈한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나한테는 이제 아무것도 안 남았어. 죽지 못해 사는 거라고.”
마스터 라트리아는 더 이상 할 말이 사라진 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에라이, 이거나 처먹어라!”
하고 소리를 치며 길드에서 가져온 삶은 감자를 루크의 집 창문을 향해 던져버렸다.
쨍그랑-!
“할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창문이 깨지고, 루크가 소리를 치는 것이 들려왔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야이 자식아!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야! 향도 대신 사다주지 않을 거니까 알아서 해!!!”
“용돈은 매달 1일에 꼬박꼬박 넣어주고!”
“용돈도 없을 줄 알아!!”
그녀 또한 질세라 소리를 쳤지만, 루크는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아……”
마스터 라트리아는 땅이 꺼질 정도로 무거운 한숨을 푹- 쉬고는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
“바보 녀석! 10년 동안 돌봐준 은혜도 모르고! 나는 네 부모나 마찬가지란 말이야!”
마스터 라트리아는 일이 마음대로 안 풀린 것에 대해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진짜 낳아준 부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변가에 쓰러져 있던 그를 주워서 10년 동안 돌봐준 ‘부모 대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녀는 어떻게든 루크가 밖으로 나와 주길 원했다.
마스터 라트리아는 루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한테는 이제 아무것도 안 남았어. 죽지 못해 사는 거라고.]
“뭐…… 자식만큼은 부모 마음대로 못한다고 했지만, 저렇게 놀기만 하기엔 아까운 녀석인데……”
그녀는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도,
“에잇, 모르겠다. 잠깐 수도에 들러서 놀다가 와야지.”
그렇게 중얼 거리며 눈을 떴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눈을 감기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타운의 민가 밀집 지역이었던 주변이 수도인 그라시아의 거리로 변해 있었다.
“수도는 언제와도 시끌벅적해서 좋군.”
마스터 라트리아는 그라시아의 거리를 거닐며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리에 머뭇거리며 서 있던 한 소녀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은 갈수록 벚꽃색이 되는 투톤 컬러. 눈동자는 푸른색, 키는 루크와 비슷해보였다.
손에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이력서인 것 같았다. 아마 소녀는 헌터 클랜에 구직을 하고 있는 둣 하다.
“흠……”
마스터 라트리아는 근처의 벤치에 앉아 소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녀는 심호흡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어떻게 안 될까요?”
“미안해요. 헌터들 사이에 당신의 평판이 워낙 안 좋아서……”
“하아……”
대차게 거절당했다.
소녀는 건물에서 나온 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다시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마스터 라트리아는 조용히 그 소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찾은 곳은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다른 클랜. 하지만 소녀는 그곳에서 마저도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그 다음에 찾아간 클랜에서도, 그 다음도…… 다음의 다음도. 그녀는 모두 거절당했다.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마스터 라트리아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헌터 클랜에서 사람을 저렇게 노골적으로 거절하는 일은 잘 없을 터……’
필히 뭔가 사정이 있으리라, 마스터 라트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금발 소녀는 마지막으로 찾아간 클랜에서도 거절당한 뒤, 그라시아의 분수 공원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소녀의 뒤를 밟은 마스터 라트리아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서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 너 제인 아니니?”
공원 옆을 지나가던 행인 중 한 명이 그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맞네. 얼마 전까지 A랭크였던 도둑고양이 제인…… 킥킥……”
풍성한 웨이브의 오렌지색 머리카락에 얼굴에 핀 귀여운 주근깨…… 고압적인 태도와 자신만만한 표정…… 특이하게도 어깨에는 ‘꼬리가 두 개 달린’ 조금 특이한 고양이를 얹고 있는 소녀였다.
“클랜에서 추방당하고 이런 곳에서 뭐하나 싶었더니 새 클랜을 찾고 있었던 거야? 어머, 몰골이 이게 뭐니……”
“도로시……”
어깨에 얹은 고양이를 한껏 쓰다듬던 도로시는 고양이가 졸린 듯이 하품을 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새로운 클랜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니? 왜냐하면 그라시아에 있는 헌터 클랜 전체에 네 소문이 다 퍼졌거든! 네 헌터로서의 인생은 이제 끝이야. 웃음이 멈추질 않네. 아하하하!”
“…….”
도로시의 비웃음에 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손에 들고 있던 이력서가 콰직-하고 찌그러졌다.
“뭐, 열심히 해보라구. 그래봤자 헛수고겠지만 말이야~”
도로시가 웃으며 떠난 뒤에도…… 제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흐음……”
마스터 라트리아는 턱을 괸 채로 제인을 바라보다가-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군.”
의도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제인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