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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눈송이


9. 설익은 혹은 농익은 - (17.5) (19금) (1)


 희고 매끄러운 몸 위로 석양빛이 어른거렸다. 뻑뻑한 속살이 힘겹게 벌어지며 조금씩 침입을 허용할 때마다 정교한 미모가 폭우 뒤의 꽃처럼 일그러졌다. 세시안은 관자놀이에 땀이 맺히는 것도 모르고 입술을 깨물었다. 저릿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당장이라도 배려 없이 탐닉하고 싶은 마음을 내리눌러야 했다.

세시안은 아롈에게 할 수 있는 한 좋은 남편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 바람은 잠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 욕심만 채우고 싶지 않았다. 끔찍한 기억 대신 달콤한 사탕이나 불꽃놀이 같은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때문에 그는 언제나 충분한 애무로 아롈이 달아오르면 그제야 안아왔다.

그러나 목을 끌어안고 성급하게 어서 안아달라며 졸라대는 데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는 신부의 미모에는 안타깝게도 불감(不感)했지만 아랫배에서부터 억지로 용기를 끌어올린 것이 분명한 어색한 입맞춤에는 단숨에 반응했다. 그래도 참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오산이었다.

한편 아롈은 통증을 참으려 애썼지만 별 수 없이 눈물이 맺혔다. 남편의 몸이 들어오는 순간순간이 맨살에 쐐기를 대고 망치질을 하는 듯 고통스러웠다. 먼저 유혹한 주제에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웃고 싶었지만, 얼굴 근육은 간단하게도 주인의 의지를 배신했다.

양 쪽 모두 고행의 시간이었지만 결국은 끝났다. 가장 민감한 부분이 빠듯하게 맞닿아 있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토했다.

“많이 아파요?”

“괜찮습니다.”

그는 새싹빛 눈물을 입술로 치웠다. 아직 미숙한 골반은 할 수 있는 한 벌어졌고, 허벅지에 힘을 빼려고 애쓴 결과 허리부터 가슴까지 잔뜩 긴장해있었다. 그런데도 눈을 피하지 않는 것이 사랑스러웠다.

“거짓말.”

“정말입니다만.”

“이래도?”

“앗.”

허리를 슬쩍 움직이자 허벅지가 단숨에 조여들었다. 반짝이는 반지를 낀 손가락이 그의 팔뚝을 꼭 쥐었다.

세시안은 바들바들 떨면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려 애쓰는 광경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장밋빛 뺨이며, 틀어 올린 머리를 풀지 않아 훤히 드러난 목, 여성의 곡선을 띠게 된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어깨에 몇 번이고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거봐요. 아프지요.”

잡고 있는 팔뚝의 살결 아래로 핏줄이 펄떡였다. 문득 입술이 벌어졌다. 긴장 때문에 입 안의 점막이 메말라 버석거렸다. 손가락을 세 번 톡톡 쳤다. 쇄골을 훑는 데에 집중하고 있던 세시안이 고개를 들었다.

검고 둥근 동공을, 진한 녹색의 홍채가 둘러싸고 있었다.

저 다정한 눈을 사랑한다. 상냥한 목소리에 설레고, 가끔 보여주는 장난기 어린 웃음에 두근거린다. 평생 만나온 사람들을 자루에 담아 체에 걸러도, 아무런 이득이나 계산도 없이, 다른 사람을 투영하지 않고, 증오 없이 아롈을 대해준 사람은 오직 이 사람뿐이었다.

정말?

서늘한 물음이 떠올랐지만 아롈은 외면해버렸다. 대신 배에 힘을 주고 몸을 조금 일으켜 남편에게 입 맞췄다. 몸 안 어느 부분이 눌리면서 짜릿하게 아파왔다. 혀가 얽혀들었다.

“흐읏.”

아롈은 열렬하게 키스하던 도중에 입술을 떼고 신음을 흘렸다.

남성치고는 쭉 뻗어 고운 손이 유두를 만지작거렸다. 그것만으로도 부드럽게 퍼져 있던 가슴의 끄트머리가 곤두섰다. 반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다가, 쾌감과 고통이 으깨지는 감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숲처럼 진한 녹색 홍채가 일그러지듯 찰랑였다. 아롈은 다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 풍경을 발견하고는, 수치심과 교환해서 얻은 비싼 얼굴을 가슴 속에 한가득 담았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 남편의 어깨가 드리우고 있던 그늘이 사라졌다. 흰 살결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흩어지고, 붉은 석양이 얼굴에 쏟아졌다. 축축한 혀가 가슴 끝을 머금고 굴렸다. 서늘한 쾌감이 쓸데없이 장황한 생각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단숨에 그 자리를 차지했다. 민감한 부분 안쪽이 젖어들었다.

“하아아아아.”

아롈은 머리를 끌어안았다.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에 두어도 불편한 것 같아, 발가락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 때마다 몸 안쪽이 움찔움찔 조여들었다.

그야말로 감각의 불꽃놀이나 다름없었다. 긁히는 듯이 아프고, 쥐어짜고 으깨는 듯이 고통스럽고, 그러면서도 속살과 가슴에서 정신없이 달콤한 감촉이 홀리듯이 느껴져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한참 몰입해 있던 그 순간.

“윽!”

가슴을 이로 물렸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딱딱한 감촉에 너무 놀라 허리가 튕겨 올랐다. 남편의 체중에 눌려 오히려 시트 안쪽으로 몸이 가라앉았지만 눈물이 글썽였다.

세시안은 한숨을 쉬며 아롈의 뺨을 쓸어내렸다. 갑자기 맛보던 쾌감을 빼앗긴 소녀는 다소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아렐르는 정말 제게 너무하네요.”

금빛 속눈썹이 습관적으로 두어 번 깜빡였다. 세시안은 신부의 뺨에 입술을 눌렀다. 항상 대하기가 까다로웠다. 방금 전까지 따끈따끈하게 달아올라서 머리를 끌어안고 손가락을 갈퀴처럼 세워 머리카락을 쓸어내렸으면서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숨을 몇 번 쉬면서 갈무리해버렸다. 아쉬웠다. 조금 더 길게, 많이 보고 싶은데.

말똥하게 쳐다보는 새싹빛. 그는 낮고 풍부한 음색의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아렐르. 기억하고 있나요?”

“무얼 말씀이십니까?”

벌써부터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나이답잖게 정돈된 얼굴에 금이 가고, 울먹이며 흐트러지고, 피가 빠르게 달아올라 손끝까지 따끈따끈하게 달아올라 긴 속눈썹에 눈물이 대롱대롱 맺혀 예쁜 목소리로 신음하고…….

친애하는 사촌이자 친우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다가는 그 잘생긴 얼굴에 비뚜름한 미소를 띠고는 한껏 비웃을 게 뻔했지만 열이 오른 머리에는 그런 사실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아까 이 속에 아렐르가 기겁할 만한 생각이 꽤 많다고 했던 거요. 그리고 아렐르가 예쁘다는 이야기랑, 저를 도발하고 싶을 때에는 때와 장소를 가려달라는 것도?”

“무슨 말씀……, 꺅!”

열여섯 소녀다운 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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