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비극의 씨앗 (2)
거대한 영토를 지닌 루스는 이반 바실리예비치가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인 아가피야 드미트리예브나가 막내를 낳은 뒤 사망하자,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의 뒤를 이은 유리 이바노비치는 개혁을 시도했지만 일찍 죽었고, 결국 아주 오랜 내전이 일어났다.
유리 이바노비치의 증손녀, 올가 콘스탄티노브나와 베라 콘스탄티노브나는 내전이 끝나갈 무렵, 콘스탄틴 알렉세예비치와 프라스코비야 페트로브나의 딸들로 태어났다. 두 아이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스트라한으로 보내졌고, 그 곳의 영주인 아프락신 가문 사람들이 보호했다.
"어린 차리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와 그 여동생, 베라 콘스탄티노브나를 제외한 다른 류리크 가문 사람들은 대부분 내전으로 사망하거나,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계승권을 포기했지요."
올가 콘스탄티노브나가 신뢰하는 아프락신 가문의 차기 수장, 보리스 블라디미로비치 아프락신은 세 명의 동생들-게오르기, 안드레이, 빅토리야-과 함께 나와 올가, 동생들 중 한 명과 베라, 두 쌍의 결혼을 위해 제국에 파견되었다.
"전혀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부부로 맺어지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쯤, 모스크바에 도착한 자클린 드 파르트네 양이 차리나와 베라 콘스탄티노브나에게 가르치고 있을 것입니다."
보리스 블라디미로비치의 강렬한 루스 억양이 섞인 프랑스어는 매우 간결했다.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절을 지키는 제국과 달리, 만삭의 여인처럼 거동이 불편해도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무릎을 꿇고 움직이지 않는 전혀 다른 예법이나, 남성과 여성의 공간이 철저히 분리되어 가족 이외의 남성들과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는 프리드리히 2세가 아내 살루초의 이자벨을 너무 사랑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꺼렸다는 일화가 생각나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차르의 자매나 딸들 중, 지금까지 타국의 왕족과 혼담이 오가거나 성사된 적이 있긴 합니다. 이반 바실리예비치의 딸인 크세니야 이바노브나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11세의 사생아 아들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백작 발데마르 크리스티안과 혼담이 오갔지요. 성사 직전 크세니야 이바노브나가 사망해서, 여동생인 이리나가 그와 결혼했지요. 물론 그 당시 루스의 상속법에선 남자 형제가 있는 여성에겐 상속권이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합스부르크 가의 다른 분가들이 단절되면서 모든 영지를 물려받은 요한 알키비아데스는 실권을 빼앗긴 형인 황제 루돌프 2세가 너무 오래 살면서 황제가 되지 못했다. 그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백작 발데마르 크리스티안의 딸들-물론 이리나 이바노브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아니다-인 레오노라 크리스티나와 헤드빅 베아타, 마그달레나 구스타바를 정부로 두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왕국의 유력자들과 결혼해서, 합스부르크 가문을 지지하게 되었다.
"차리나와 베라 콘스탄티노브나에게 남성 후계자가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행정적-법적 문제가 선결되어야 가능하겠지요. 후계자가 없어서 갈라져버린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예도 있으니까요."
루스는 멀리 동쪽의 이민족, 타타르의 지배를 오래 받았다. 그들은 그 시대를 타타르의 멍에로 부르고 있고, 그 시대의 유산은 루스의 그림자를 더욱 어둡고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이반 바실리예비치는 어느 정도 그 시대의 유산을 없앴고, 그래서 위대한 차르라고 불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루스 사람들 역시, 브란덴부르크에 대해서는 감정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루스의 농산물은 좋은 품질에 가격이 매우 싸서, 용병을 수출해서 먹고 사는 브란덴부르크에 수출하지 않으면 괴멸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브란덴부르크의 공예품은 매우 비싸지요. 브란덴부르크에서 온 상인들은 루스 사람들을 경멸하지요. 제 동생들은 그들이 우리를 경멸하는 말을 들었고, 그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게오르기는 교육과 상공업, 안드레이는 군사 제도, 빅토리야는 사교계의 예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슈타이어마르크 지역을 사랑해서 발전시키려는 동생, 안톤 막시밀리안을 끝까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자신과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조장하는 건 아닐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