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비극의 씨앗 (3)
바스크 지방의 에르나니에서 온 안토니에타 데 이펜냐니에타 양은 루스에서 온 보리스 블라디미로비치와 프란츠 요제프의 막내 남동생인 요한 지기스문트 대공을 이끌고,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약 15분 거리의 나슈마르크트에 도착했다. 요한 지기스문트는 군인보다는 학자에 어울리는 성품이었고, 어린 시절을 보낸 슈타이어마르크 지방을 매우 사랑했다.
"기본적으로 루스의 기후는 일 년의 반은 눈이 내리고, 봄이 되어 눈이 녹으면 잘 정돈된 길을 제외하고는 거대한 진창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소나 말도 진창에 빠지면, 여러 사람이 매달려 구하지 않는 이상, 탈진해서 죽어버리죠. 확실히 이런 농기구를 보면 기후가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지요."
"그런가요? 제 고향인 에르나니는 여름엔 많이 덥지만 남쪽에서 부는 모래바람이 땅을 비옥하게 하고, 겨울에는 북쪽으로 바람이 불어서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단 덜 추운 곳이죠. 슈타이어마르크 지역은 강수량이 적고 여름은 덥지만 겨울은 온화한데, 루스의 기후를 에르나니 사람들이 듣는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거에요."
에스파냐 사람 특유의 쾌활함을 지닌 이펜냐니에타 양은, 루스에서 온 거한과 몸집이 작은 소년을 이끌고 나슈마르크트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훗날의 일이지만 보리스 블라디미로비치와 안토니에타 데 이펜냐니에타 양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결혼해서 행복한 부부가 되었다. 이 행복한 부부의 이야기는 '공작님의 열렬한 사랑'이란 제목으로 극화되기도 했다.
"브란덴부르크와 국경을 맞댄 세 개의 주, 마리얌폴레, 클라페이다, 타우리게는 비옥한 흑토 지대로, 카를 이오시포비치 루보미르스키, 니콜라이 막시밀리아노비치 차르토리스키, 예브게니 미하일로비치 오팔린스키, 세 명의 대영주는 브란덴부르크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용병으로 먹고사는 브란덴부르크는 싼 가격으로 식량을 사 가지만, 그들이 파는 물건들은 매우 비싸죠. 이대로 가면 루스는 브란덴부르크에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도 있습니다."
비옥한 흑토 지대에서 나오는 생산물의 대부분은 브란덴부르크에 팔린다. 하지만 브란덴부르크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은 매우 비싼 가격이었고, 실제 제국 내 다른 곳에서도 부유한 지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경우가 발생했고, 이를 막기 위해 각 지역에 맞춰진 산업을 육성했다.
"풍요로운 흑토 지대는 그래도 농민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은 시킵니다. 하지만 몇 년 주기로 석회를 뿌려야 하는 적색토 지대나 그보다 조금 더 비옥한 갈색토 지대의 영주들은 농민들을 땅에 매인 말하는 가축으로 보고 기본적인 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요. 실질적으로 영지를 관리하는 마름은 사실상 물려받을 영지가 없는 하급 귀족이고, 고용주인 영주의 비위를 맞출 뿐입니다. 농민에게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영주에게 있어서 실질적인 위협이니까요."
이것은 오랫동안 루스를 지배한 머나먼 동쪽에서 온 타타르의 흔적이다. 그들은 제국 국경을 위협한 체페네크 같은 다른 이민족과 달랐다. 켄타우로스같이 말과 한 몸이 되어 아주 빠르게 이동했고, 그들의 진로에 있는 모든 마을과 도시는 처참히 파괴되었다. 그 곳에 사는 모든 생물을 잔혹하게 죽였고, 사마라와 같은 찬란한 도시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타타르가 침입할 당시의 차르, 레오니드 뱌체슬라포비치는 현명했지요. 타타르에게 세금을 바치고, 자신의 누이인 율리야 뱌체슬라포브나를 타타르의 수장에게 시집보내는 걸 조건으로 머리를 조아렸지요. 매우 무거운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그 후손인 바실리 로마노비치는 타타르를 몰아냈지요."
이반 바실리예비치의 아버지, 바실리 로마노비치는 오래 지속된 타타르의 멍에를 끊어냈고, 루스에 동화되지 않은 타타르를 그들의 고향으로 쫓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손자인 유리 이바노비치는 드 라 가르디 가문의 오폴레 분가 출신인 마리나 파블로브나와 결혼했지요. 의지가 강한 마리나 파블로브나는 보수적인 귀족들이 반발하지 않는 부분에서 개혁을 시작했지만, 여섯 번째 아이인 알렉산드라를 낳은 뒤 사망하면서 물거품이 되었지요."
개혁을 주도한 사람이 죽으면, 그의 유지를 잇는 사람이 없는 한 물거품이 된다. 아라비아 지역의 반란을 진압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에게 세수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슐레지엔을 떠넘긴 무능한 루돌프 2세를 사실상 폐위시킨 것은 그의 아내인 사보이의 마리아 테레지아였다. 시조카인 막시밀리안을 공동 황제로 즉위시켰고, 슐레지엔을 찾아오기 위해 방만하게 운영되던 황실 운영을 축소하고, 성도 로마와 협의 하에 무위도식하는 수도자를 학교 교사로 파견하는 것 등 여러 가지 개혁을 했다. 물론 그녀의 개혁은 공동 황제인 막시밀리안이 유지를 이어받으면서 계속 진행했기에 마리아 파블로브나의 개혁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세 대영주의 우려는 현실에 안주한 다른 지역의 영주에겐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고 비웃음을 받지만, 실제로 다가오는 일이죠. 어린 차리나와 여동생인 베라 콘스탄티노브나는 아스트라한에서 직접 몸으로 겪었지요. 브란덴부르크라는 괴물이 더 크면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고, 그걸 막기 위해서 저를 제국에 보낸 것이고요."
타타르의 멍에에서 살아남은 루스의 세 도시, 수도 모스크바와 옛 수도인 노브고로드, 키예프. 하지만 오랜 내전으로 올가와 베라 자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스트라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현실에 안주하는 다른 영주들에 비해 지금 처한 상황을 꽤 적확히 꿰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