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비극은 싹을 틔우고 (2)
"사랑, 조국, 의무"
성 올가 훈장을 왼쪽 가슴에 단 차리나와 베라가 방을 나간 뒤, 프란츠 요제프는 몇 가지 단어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피곤함에 눈을 문질렀다. 그녀가 귓가에 속삭인 단어들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쉽게 지킬 수 없는 것이었다.
"옥좌에 앉은, 혹은 앉을 너, 신민을 사랑하고, 조국을 위해 죽을 때까지 의무를 다할 수 있는가? 태어나서 13년 동안 내전을 겪은 차리나는 대공에게 이 것을 묻고 싶은 거겠죠. 사랑, 조국, 의무는 성 올가 훈장의 모토이니, 대공께선 최선을 다해 답을 하시면 됩니다."
내전이 점점 격화될 무렵, 류리크 가문의 본거지인 안토니브카에 살던 올가와 베라의 부모인 콘스탄틴과 알렉산드라는 다섯 살인 올가와 세 살인 베라를 교묘히 숨겨진 비밀 통로로 보내 피신시켰고, 그들은 살해당했다.
"아프락신 가문의 본거지인 아스트라한으로 왔을 때, 두 분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누군가가 곁에 있지 않으면 잠을 자지도, 먹지도 않았습니다. 차리나는 나아졌지만, 베라 여대공은 지금도 낯선 사람이 있는 곳에선 말을 하지 않지요."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힘든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펠릭스 폰 슈바르첸베르크 원수 역시, 아라비아 지역의 반란을 진압한 뒤, 고아인 자라를 입양했다. 슈바르첸베르크 원수 부부는 정성을 들여 양녀를 길렀지만, 어두운 곳을 싫어한다고 했다. 베라 역시, 과거와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1월 말, 흔히 대천사 가브릴 성당으로 불리는 멘시코프 탑에서, 올가 콘스탄티노브나와 프란츠 요제프의 제국 예법에 따른 결혼식을 치뤘다. 차리나는 수선화와 장미, 백합 등 꽃이 수놓인 하얀 새틴 드레스를 입고, 왼쪽 가슴에 성 올가 훈장을 착용하며, 장신구론 핑크 토파즈 세트를 선택했다.
제국 예법에 따른 결혼식 2주 뒤, 크렘린의 우스펜스키 대성당에서 루스의 예법에 따른 결혼식을 치뤘다. 담비 털로 된 망토가 달린 신부의 의상은 착용에만 두 시간 남짓 걸렸고, 신부가 의자에 앉아 있어도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황금 양모 기사단의 훈장을 수여받은 프란츠 요제프는 두 번의 결혼식에서 제국 해군 제복을 입었다. 부부는 세 번의 반지 교환을 한 뒤, 전통적인 왕관을 쓰고 성혼 선언을 했다. 모스크바 내 모든 성당에서 종이 울렸고, 붉은 광장에 모인 근위대가 예포를 쏘아올렸다.
비극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