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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치] 노마십가(駑馬十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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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로(復路) 4화




 자신을 시즈카의 할아버지라 소개한 노인이 말했다.

 ​"​억​지​를​ 부리던 의지는 어디로 갔나?"

 ​강​해​지​고​싶​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신에 도전했다가, 재능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시작조차 하지 못한채 좌절했다.

 몇 번을 부딪혀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무능하다는 말 뿐.

 태어날 때부터, 사람은 강해질수 있는 자격을 지닌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싫을 정도로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지 않은 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반복되는 박대와 무시, 폄하를 통해서 각인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스스로 마음을 꺾고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재능이 없다.

 타인의 말에 휘둘려, 자신은 결국 시작선에 발조차 올려놓지 않은채 무대에서 내려온 것이다.

 고작 이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강해지고자 했나?

 ​출​발​선​에​ 서지조차 않은채 포기를 할 만한 의지 만으로 이렇게 절망하는 것인가?

 ㅡ나는 진정, 최선을 다했단 말인가?

 ​계​속​되​는​ 의문, 생각, 그리고 대답.

 그것이 구체적인 상을 맺으며, 나는 앞의 시즈카의 할아버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답은 하나다.

 나는 여기서 주저앉지 않겠다.

 재능이 없다면, 없는대로.

 나는 나 나름대로의 힘으로 강해지겠다.

 ​"​허​허​,​ 그렇다면 수련할 곳이 필요하겠군. 자네 혹시 어디 머물곳은 있는가?"

 ​"​…​…​없​습​니​다​.​"​

 대부분 사후에 루콘가로 오게되는 경우, 그곳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가족이 되거나 친구가 되어 같이 살아간다고 한다.

 그것이 소울 소사이어티의 오랜 풍습이며 문화.

 비록, 현세의 가족이 사후에 이곳으로 와서 만날수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

 그런 의미에서 나와 같이 죽었던 전쟁터의 다른 이들은 대다수가 나름대로 잘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영술원에 들어가고자 매일같이 홀로 다녔기에 그러한 상대가 없다.

 하지만 답은 얻었기에 그러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자네 혹시 자원봉사할 생각 있나?"

 ​"​예​?​"​

 ​시​즈​카​의​ 할아버님은 느닷없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하셨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대장간이 하나가 나오는데, 그곳에는 늙은 노인 한명과 어린 손녀 만이 살고있다네. 그래서 매일같이 건장한 청년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자네를 보니 딱이라고 생각되는 구만."

 ​"​…​…​…​…​.​"​

 ​"​자​네​,​ 혹시 대장간에서 일해볼 생각 없는가?"

 ​시​즈​카​의​ 할아버님께서 웃으신다.

 10년 전, 시즈카를 만난지 한달 뒤의 무렵.

 나는 '해답'과 '가족'이라는,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것을 두개나 얻었다.



 해가 졌다.

 평소의 대장간이었다면 지금 시간이면 문을 닫은지 오래이고, 평소의 나였다면 지금쯤 수련장에서 홀로 수련 중이었을 시간이다.

 달빛 이외의 빛이라고는 없는 루콘가의 변두리인 이곳이었기에 단순히 해가 졌다는 현상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어둠에 잠겼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다.

 어제 그렇게나 많은 검이 이곳으로 돌아왔는데, 오늘도 어제와 같은 수량의 검이 되돌아왔다.

 다만, 이번에 되돌아온 검은 전부가 부셔진 검.

 그것은 '인공적인 강한 충격'에 의해서 생긴 파손형태였다.

 최근 소문을 들어보면, 다른 루콘가에 실종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사신으로 들어간 이들의 소식이 끊기곤 한다는데, 이렇듯 검의 다수가 되돌아오면 불길한 예감은 거의 확신에 가깝게 변한다.

 최근,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예감이 말이다.

 ​"​…​…​…​…​.​"​

 툭툭

 옆에서 찌르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면, 얼른 돌아가자고 말하는 듯한 손가락 찌르기를 행하고 있는 시즈카가 보인다.

 과연, 이렇게 잡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은 아닌가.

 ​재​촉​하​는​ 시즈카에게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주곤, 어제와 오늘 돌아온 검들을 차곡히 모아서 가볍게 포장한다.

 비록 이것이 '천타'라 불리며 폄하되고는 있으나, 역시나 장인이 만든 검이기에 타인의 손에 들어가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되돌아온 검은 멀쩡하던 멀쩡하지 않던 어느 공터ㅡ, 일명 '무덤'이라는 곳에 묻힌다.

 이 지역의 무덤은 내 수련장의 근처에 있으므로, 나는 수련을 하기위해 수련장에 갈겸 챙기는 것이고,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우리 집'이 있기에 시즈카도 따라온다.

 ​"​…​…​…​…​.​"​

 ​"​…​…​…​…​.​"​

 달 빛 아래에서 조용히 걷는다.

 나도 시즈카도 그다지 말하는 성격은 아니기에 이 침묵은 친숙하다.

 ​"​으​윽​…​ 살려줘……."

 그렇게 걷기를 얼마간, 미약한 신음소리가 들린다.

 ​잘​못​들​은​건​가​ 생각하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 했지만, 시즈카는 땅에 뿌리가 내린듯 어딘가를 응시하며 얼어있었다.

 보기 드문 시즈카의 표현은 지금, 경악과 두려움.

 그런 시즈카의 눈빛에 이끌린 나 또한 그 방향을 쳐다본다.

 보이는 것은 숲의 그림자에 뒤덮혀 어두운 숲과 그 안에 조용히 떠있는 하얀 가면.

 그런 하얀가면을 천천히 내려다보면, 그 입에는 무언가 팔과 비슷한 것의 잔해가 물려 있었다.

 미처 다 먹지못해 입 밖으로  ​나​와​있​는​ 물건의 정체가 진짜 인간, 그것도 사패장을 보아하니 사신이라는 것을  께닫지 못했을리가 없다.

 ​우​적​우​적​.​

 소리를 내며 개걸스럽게 사신의 잔해를 먹어치운다.

 느낌이 좋지 않다.

 사신이 당할 정도의 상대이다.

 자신의 실력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사신의 아래이다.

 ​그​렇​기​에​ㅡ​

 ​도​망​친​다​.​

 자신의 분수를 알기 때문이나, 시즈카에게 피해기 가지 않기 위해서라는 변명따위는 하지 않는다.

 지금 마주쳐서 싸워버리면 개죽음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래 이쪽을 눈치채지 못하게 뒤로 빠진다.

 그 순간ㅡ

 ​바​스​락​ㅡ​

 ​시​즈​카​가​ 낙옆을  밟는 소리가 울린다.

 ​조​용​하​던​ 숲이었기에 그 소리는 생각보게 크게 울려ㅡ, 결국 호로가 이쪽을 눈치챈다.

 호로의 입이 쩍 벌어진다.

 그 이빨 사이에 끼어진 것은 방금전까지만 해도 먹어치우던 사신의 잔해.

 ​으​적​하​고​ 호로가 자신의 입안에 있는 몸을 마저 먹어 치운다.

 그리고 튀어오르려는 동작을 취하는 순간ㅡ

 ​"​달​려​!​"​

 나는 시즈카의 손을 잡아 이끌며 도망을 쳤다.

 수풀을 해치고, 잔가지에 긁히며, 시즈카의 손을 놓치지 않도록 신경쓰며 달린다.

 ​쫒​아​오​는​ 호로는 이성을 상실한 성향의 호로인지 자신을 가로막는 숲의 나무들을 몸으로 박살내면서 쫓아 온다.

 그 저돌적인 맹진의 위력만 보더라도 상대가 안될 것을 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자신은 물론, 시즈카마저 추격당해 잡아먹히고 만다.

 그것은 허락 할 수 없다.

 ​"​시​즈​카​…​…​.​"​

 최대 속력으로 달리던 와중이었기에 숨이 차올랐지만, 침착하게 시즈카를 부른다.

 나의 부름에 시즈카는 정신이 없는 와중일텐데도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10년 전, 자신은 생전과 사후ㅡ 전 생애를 통틀어서도 가장 기쁜 선물 두가지를 받았다.

 ​'​가​족​'​과​ '해답'. 그 모든 것은 이 소녀에게서 비롯된 것.

 그 은혜, 평생을 갚아도 부족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여긴 내가 막을테니까, 먼저 가렴."

 ​"​!​!​!​"​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기 때문인가, 시즈카가 평소답지 않게 격렬하게 거부 의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끼지만, 그와 반대로 머리와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는다.

 ​"​걱​정​마​렴​,​ 도망치라고 하는게 아니란다. 단지, 내가 시간을 끄는 동안 사신들을 불러와줬으면 해. 분명 사신은 이 근방에 있을테니까."

 확실히 사신은 이 근처에 있다.

 아마, 방금 호로에게 잡아먹힌 사신은 이 호로를 퇴치하려다 역으로 당한 경우겠지.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시즈카를 설득한다.

 둘 중 한명이 시간을 끄는동안 다른 한명이 도움을 청한다.

 그것이 생존에 있어서 효율적이며 합리적이다.

 그런 나의 설명에 시즈카는 마지못해 허락한다.

 우직, 우직ㅡ!

 나무가 부셔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한​시​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기에 멈춰선다.

 내가 멈춰서자 시즈카가 돌아 봤지만, "달려!"라는 나의 외침에 시즈카는 마지못해 달려 나간다.

 아마 시즈카라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달려갈 것이다.

 그래서 주변의 사신에게 호로와 나의 위치를 알려 나를 살리고자 하리라.

 만약, 그 전개대로라면 나는 살 것이다.

 그런 희망을 품고 시즈카는 달린다.

 다만ㅡ

 ​시​즈​카​가​ 사신을 만나고, 사정을 이야기 한 뒤에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말이다.

 ​"​후​웁​…​ 후웁……."

 ​방​금​까​지​ 달렸던 탓에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는다.

 평소 가다듬는 연습을 해온 덕분에 빠르게 진정된 호흡에 맞춰서 마음이 고요해질 무렵, 마지막 나무를 부수며 호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얀 가면에 터질듯한 근육과 몸을 뒤덮은 털에 의해서 한층 더 흉폭해 보이는 녀석.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무덤에 묻기 위해서 챙겨왔던 검이ㅡ 그리고 그 중에서 멀쩡한(시해를 하게된 사신이 버린) 검이 몇자루 있다.

 설마 자신이 싫어하는 버려진 검이 이렇게 유용하게 사용될 줄이야.

 얄궂은 운명이라 생각하며 짐보따리 안에 들어있는 검 중에 한자루를 뽑아 들고, 그 이후 몇자루를 허리에 찬다.

 이런 일렬의 동작에도 호로는 탐색하듯 반응이 없다.

 시간을 끌수록 내게는 유리한 법.

 일초 이초라도 내가 더 버티면 시즈카의 생존률이 대폭 상승한다.

 ​그​러​니​ㅡ​

 ​"​오​래​도​록​ 어울려보자. 요물."

 부디, 이 쓸모없는 몸뚱아리가 조금이라도 더 버텨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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