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탁양청(激濁揚淸) 2화
"어째서 당신은 영술원의 복장을 입지 않은것입니까?"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특이한 복장, 하나뿐인 팔, 그리고 루콘가 출신, 재능 없는자ㅡ 그들에게 있어서는 단 하나의 조건조차 이해하고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을 모두 가지고 『추천입학』으로 들어온 자.
그것이 나의 위치.
때문에 귀족들은ㅡ 아니, 이 영술원에 있는 모든 이들은 나를 경원시하고 경멸하며 혐오한다.
단지, 이들이 나를 건들지 않는 것은 나를 『추천』해준 상대가 『우노하나 레츠』라는 『현직 4번대 대장』이라는 것 때문일 뿐.
그런 나였기에 남들과는 달리 영술원의 복장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다만, 공기처럼 혹은 길가에 놓여있는 오물처럼 무시되었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이토록 직접적으로 물어오는 남자는 흰머리를 지닌 조금은 병약해보이는 자였다.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 만으로도 주변의 다른 이들이 남자를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혹은 조금 꺼리듯이 보았지만, 남자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 표정은 단 하나의 인위적인 느낌조차 없는 순수한 궁금증만이 담겨 있었기에, 오히려 그에 따라 왠지모를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그때문일까? 나는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이 옷은 '저' 이기 때문입니다."
스승님께 깨달음을 얻고, 그에 따른 새로운 맹세을 했던 이후 받은ㅡ 나의 소중한 증표.
그것이 바로 이 옷이다.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옷과 검만은 양보 할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물질이 아닌, '나'의 증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원시 당해도 이 옷을 『영술원복의 겉에다가 걸쳐』입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대답에 남자는 헤에 하고는 고개를 잠시 끄덕이더니 대답했다.
"아하, 벙어리는 아니었군요?"
…………벙어리?
뜻밖의 단어에 잠시 멍해져 있는다.
벙어리라……. 그러고보면 짐작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영술원에 입학한 이후, 나는 그다지 입을 열지 않았던 것 같다.
입을 열어서 말을 할 경우도 영술원 생활에 관한 공적인 일로 선생들과 잠시 의사소통을 할 때 뿐.
그런가, 그때문에 내가 벙어리라는 인식이 생긴 것인가?
특이한 복장, 하나뿐인 팔, 그리고 루콘가 출신, 재능 없는자, 그런데 추천입학한 자ㅡ 거기에 벙어리까지 추가된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이윽고 하나의 의문점을 깨닫고는 물었다.
"그럼 당신은 제가 벙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을 건 것입니까?"
나의 말에 남자는 "과연, 그건 그렇네요."라며 웃었다.
그렇게 시작된 남자와 나의 대화는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소소한 이야기였다.
오랜만의 대화 때문이었을까, 남자와의 대화는 좋은 느낌의 것이었다.
귀족출신의 원생인것 같은데, 나를 경멸하거나 경시하는 모습은 전혀 없고, 다만 다른 이를 대하는 것과 같은 평등한 대우가 느껴진다.
그 오랜만의 차별없는 대우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이 남자와의 만남을 나름 즐거운 기억으로 새겨넣었다.
◆
그뒤로 몇일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남자와 만난다.
이번에 마주친 쪽은 확실히 저번의 남자와는 다른 분위기의 남자였다.
전의 성실해 보이는 하얀머리의 남자에 비해서, 이번에 마주친 남자는 뭐든지 대충할것 같은 나른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 외견과는 달리, 남자의 검은 빠르고 강했다.
ㅡ캉!
남자의 검을 비스듬이 흘리며 검을 순간적으로 비틀어 회전을 이용해 튕겨낸다. 그리고 그대로 낼 수 있는 최단거리로 검로를 꺽어 허리를 베어들어간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나른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검을 당겨 자신의 허리춤에 겨누어 내 검을 막는다.
지금 하는 이것은 수업의 일환으로 영술원생 두명이서 하는 일종의 대련이다.
다만, 이 대련시에는 몇가지 단서가 붙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영력을 사용하지 않는것.
때문에 나와 이 남자의 조건은 거의 비등.
승부가 난다면 경험의 차이와 검술의 고하 뿐이다.
그런데도 100합에 가깝도록 서로 치명타는 커녕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대로된 검술을 배운 것이 5년이 조금 넘은 나였지만, 영력 없이 연마해온 세월은 그 배수다.
그런 나와 비슷한 조건인 상태로 호각을 이루는 남자의 존재감은 압도적.
과연, 천재(영력적 의미로)는 천재(검술적 의미로)라는 것인가…….
과거의 나였다면 이런 상대를 마주할 경우 자신을 속이며 넘어가던가 질투심에 눈이 멀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호승심이 꿈틀댄다.
ㅡ캉!
다시 한차례 검이 부딪힌다.
그 강력한 반동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당긴다.
그런 내 기분이 전해졌는지, 남자도 나른한 표정 사이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영술원에 입학한지 1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인상에 깊은 사건이라고는 두 남자와의 짧은 만남과 그외에 몇몇 굵직하고 유익했던 사건 뿐이었다.
1년의 시간동안 나에 대한 영술원의 일원들에 태도는 변함이 없다.
놔두자니 거슬리고, 건들자니 『대장』이라는 존재가 걸리기에 아예 무시된다.
마치 물 위에 떠있는 나뭇잎마냥 붕떠있는 내 위치에도 나는 만족하고있다.
별로, 영술원의 생활을 하는데에 대한 불편함은 없다.
필요한 물품은 대장간에서 한사코 사양했으나 결국은 받게 되었던 급료를 저금해둔 것으로 준비하고 있고, 그 외에 잠 잘 곳이라던가 그런 기초적인 것은 어쨌든 명목상 원생인 나에게도 지급되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무시되기에 타인의 검술을 보고 배우기 수월하며, 특별한 마찰도 없기에 소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어서 선생님의 이름에도 먹칠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간혹, 대련 시간에 전의 남자 두명을 가끔 만나 경험을 쌓으며, 나는 성장한다.
◆
영술원에 들어온지 2년이 되어간다.
일상은 1년전과 동일,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 비해서 조금은 더 성장한 내 실력 뿐이다.
2년간 같이 먹고 자고 성장해온 원생들이지만, 역시나 내 입장은 떠있다.
과연, 잘도 2년동안 무시되어 왔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그분』이 나타났다.
허연 수염이 화폭처럼 늘어져있고, 자글자글한 주름은 경력을, 몸 곳곳에 있는 흉터는 강함을 나타내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촌부인것 같으나, 그 진면목의 일각이라도 본다면 그 생각을 즉시 철회할만한 인물.
『야마모토겐류사이 시게쿠니』
호정13대의 1번대 대장이자, 이 영술원을 만든, 그리고 나의 강함의 목표인 분이다.
◆
"음……."
자신이 만든 영술원이라고는 하지만, 총대장님은 이 영술원에 자주 방문하시지 않으신다.
보통 1년에 2~3번 꼴로, 가끔 방문할 뿐이지만, 그 짧은 기간만으로도 충분히 원생들의 수준을 단숨에 끌어올리곤 하기 때문에 존경의 대상자이기도 하다.
그런 총대장님이 3학년의 학급에 방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보통, 앞으로 사신계를 이끌어갈 자들을 보고자 5~6학년 사이를 보러 다니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총대장님이 이곳엔 어쩐일로?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으나 표현하진 않고 묵묵히 총대장님을 지켜본다.
그렇게 있기를 약간, 한동한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던 총대장님은 나직히 말했다.
"오늘은 특별히 지목한 몇명이 대련을 펼치겠네. 통상이라면 6학년 정도의 아해들에게 했을 일이지만 이번에는 자네들에게 하도록 하겠네."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3학년 중에 일부를 대련시킬 요양인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3학년의 다른 학급 또한 모은 것인가?
하나의 수수께기가 풀리며 그 의도에 대한 수수께끼가 생겨난다.
그러나 지금이 기회다.
이번 대련을 참관하면, 그리고 총대장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나는 다시한번 성장할 것이다.
물론, 내가 직접 대련에 나선다면 더욱 효과적이겠지만, 이 대련은 수업 때의 대련과는 달리 『영력의 제한이 없다』.
나갈 일이 없기에 마음 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아쉬움을 다스리며 총대장님이 지명한 이들을 본다.
봐보면, 하나같이 이 천재들의 무리에서도 더욱 독보적인 존재들 뿐.
개중에는 흰머리의 남자와 느긋한 표정의 남자도 포함 되어 있었다.
영력을 억제하지 않는 둘과의 대련이라…, 생각만해도 호승심이 절로 솟지만 결국 구경꾼의 입장이다.
그렇게 단념하고 앉아있을 때 몇명 더 이름을 호명하던 총대장님께서 갑자기 입을 다물시더니 내쪽을 본다.
어쩌면 내 주변의 다른 원생들을 보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 날카로운 눈동자에 담겨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총대장님은 몇 초간 나를 쳐다볼 뿐이었고, 이에 옆에있던 선생이 "저녀석의 복장은……."어쩌고 저쩌고 떠들어 댄다.
과연, 복장 때문인가?
이 영술원을 지은 것이 총대장님이라면, 복장을 미착용한 나는 거슬릴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이것만은 양보 할 수 없었기에 총대장님의 눈빛을 최대한 담담하게 받아낸다.
그렇기를 또 몇 초.
이윽고 총대장님의 입이 열린다.
"이번 대련의 참가자는 마지막으로 자네까지네."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