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탁양청(激濁揚淸) 3화
천재(天才)
선천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사람.
철이 들 무렵부터 내가 제일 자주 들어온 말을 손에 꼽아보라고 한다면, "천재(天才)"라는 말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말이다.
남들이 수십 수백을 휘둘러야 간신히 깨닫는 것들을 두세번 휘두르는 것 만으로도 깨닫는다.
글을 포함한 각종 지식은 물론, 서예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빠르게 습득을 한다.
중소가문 밖에 되지않는 자신의 가문에서,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가 태어났기에 떠받들어지면서 수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자랐다.
그 당시 나는, 그 기대와 관심에 걸맞고자 최선을 다해서 수행해왔기에 실력은 나날이 일취월장 했지만, 그것은 얼마가지 않아서 파국을 맞이했다.
『유재모임』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어렸을 당시, 영술원이라는 전문적인 사신 양성 기관은 극히 드물었으며, 그나마 존재하던 몇 안되는 것들은 대귀족 같은 높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나 제 기능을 못하는 것들 뿐이었다.
때문에 대귀족에 속하지 않은 상하위권의 가문들부터 시작해서 그 밑으로 다양한 귀족 가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효율적인 후예의 양성을 하고자, 일종의 모임을 만들어 그곳에서 가문의 자손들을 모아서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유재모임의 취지는 각각 재능있는 아이들을 서로 힘을 합하거나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성장시키자는 것이었으나, 결국은 각자 가문의 자랑을 위해서 혹은 이익을 위해서 자식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하위의 귀족의 경우는 이 유재모임을 통해서 상위권의 가문의 자식과 자신의 자식이 친해진다면 이득을, 상위권은 자신들의 우월함과 정쟁(政爭)등의 같은 편을 만들기위한ㅡ 대외적으로는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사교의 장에 지나지 않는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가문의 기대에 부흥하고자 하는 일면도 컸지만, 나 자신이 강해진다는 성장한다는 것이 좋아서 수련해왔다.
그렇기에 다양한 가문의 영재들을 만나고, 배움을 얻는다고 기대했던 유재모임의 실체를 알고나서는 어느순간부터 검을 서서히 멀리하기 시작했다.
멀리하기는 했다지만, 검을 완전히 놓았다는 의미가 아닌, 하루에 천번 휘두렀던 과거에 비해서 백여번 휘두르는 정도의ㅡ 즉,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
거울을 보면 어느새인가 자신의 얼굴을 나른하고 따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질없다고 생각되어 노력하지 않는다.
그것은 순수하게 강해지는 것에 대해서 더이상 기뻐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변명이었다.
◆
진흙 속에 진주라는 말이있다.
여전히 나른한 표정으로 설렁설렁 검을 휘두를 무렵, 녀석과 만났다.
흰 머리에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 병약하다는 말 대로 조금은 파리한 인상의 남자.
처음 만났던 날의 감상은 "또 다시 이 사교의 장에 한명이 들어왔다."라는 정도였다.
수련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가문의 이득을 위해서 거짓 웃음을 팔며 서로서로 체면을 따지며 행동한다.
그 모든 행동을 지켜보며 생각한다.
따분하다ㅡ 라고.
그 와중, 몰래 숨겨놓았던 술을 홀짝이고 있을때, 그가 다가왔다.
"좋은 향기네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개코로군."이라고 답변해준 뒤에 술잔을 나누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결국 나도 이들처럼 가문 때문에 이 사교의 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흐르는 물에 휩쓸려가는 나뭇잎마냥 이냥저냥 지냈던 것이다.
분명, 이 남자의 가문은 자신의 가문보다 높았지ㅡ 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에 조금 자기혐오를 느끼며 술잔을 비운다.
술이 몇잔 들어가고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깨달았다.
이 남자는 자신과 비슷하다라고.
사교의 장으로서의 유재모임에 온 것이 아니라, 사신이 되기위한 수련의 방편으로서의 유재모임에 온 남자라는 것을 말이다.
그 깨달음은 저쪽도 마찬가지였을까?
그 같은 사실을 내가 깨닫고나서부터 우리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것이 몇 년, 샌님이었던 녀석도 부질없다고 중얼거리던 나도, 어느새인가 서로를 진정한 친구로 여기며 같이 사고(모임에서 금지한 루콘가에 가서 술마시기 같은)도 치고, 유재모임에서 형식적으로나마 가르쳐주는 기술들을 서로 연마하며 지적해주고 대련하며 성장하기를 반복.
그렇게 기대이하였던 유재모임의 생활이 슬슬 충족하다고 느꼈을 무렵, 현 호정13대의 총대장님이신 『야마모토겐류사이 시게쿠니』님의 주도하에 대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영술원이 늘어나게되며 입학대상의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사신을 양성한다."
라는 이념을 대문짝만하게 내걸고 새롭게 영술원은 『총대장』이라는 강대한 직함의 휘광아래에 순식간에 자리를 잡으며 어느새인가 사신이 되려면 당연히 거쳐야할 관문이 되었다.
그렇다고는해도, 유재모임의 인원들이 그곳으로 갔을 뿐인 거라서, 그곳도 사교 모임과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역시 『전문』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던 것 답게 훌륭한 수업을 보장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와 녀석도 가문의 성화와 본인들의 희망하게 영술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것이 영술원이 설립(정확히는 개편이지만, 거의 설립이라는 단어가 쓰일 정도로 변화되었다)된지 20년이 약간 지났을 무렵.
영술원에 입학하고, 단지 한달동안 수업을 받았을 뿐이지만, 그 수업의 질은 유재모임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 각 가문들이 영술원 입학에 눈치를 보며 서로 미루기를 몇 년과, 개인적 그리고 가문적 이유때문에 미뤘던 몇년이 아쉬울 만큼 훌륭한 수업.
하지만, 수업 자체는 훌륭했지만, 결국 학생들은 유재모임 때와 같은 행동을 보일 뿐이었다.
『성적』이라는 평가 때문에 나름 수련에 몰두하곤 했지만, 재능있는 자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자만한 학생들은 대부분 약간의 노력만 할 뿐이었다.
보다, 그들이 열정을 쏟는 것은 소위 말하는 연줄 만들기.
처음, 영술원 입학 때에 조금은 진지해졌던 마음이 그들을 보며 자꾸 쳐져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거울을 보면, 결국 자신의 얼굴은 나른한 표정이었다.
◆
영술원에 들어간지 2달이 됐을 무렵, 천타를 지급받게 되었다.
분명 뛰어난 작품인 천타였으나, 그것은 우리를 보며 만든 검이 아닌, 결국은 양산되어 나오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검이었기에 손에 맞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별 상관없다는 듯이 썼지만, 우리에게는 큰 문제였다.
때문에 영술원을 특별한 사유없이 벗어날수 없다는 법칙을 깨고서라도(그정도 규칙은 이미 깨볼대로 깨봤기에 찔리는 것은 없었다) 유명한 장인ㅡ 『시바 우에슌』이 살고있다는 『묘지 숲』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숲에서 목적지를 향하던 와중, 어느 공터에서 '그'를 보았다.
기합을 너무 질러 목소리가 안나올 정도로, 검을 너무 휘둘러 팔이 빠질 정도로, 기력이란 기력은 모두 쏟아낸듯 탈진 할 정도로 검을 휘두르는ㅡ '그 남자'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