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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치] 노마십가(駑馬十駕)


원작 |

백절불굴(百折不屈) 5화




 ​언​젠​가​,​ 현세에서 살고있던 시절.

 ​전​쟁​터​로​ 강제 징병되기 이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세월이 흐른 탓인지 조금 흐릿해진 기억이라지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던 이야기.

 그 당시에 작은 마을들이 으레 그렇듯이 내가 살던 마을도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이라 마을에 성인 남성들은 대부분이 전쟁터로 끌려간 탓에 남아있는 남자라고는 나와 같은 아이들이나 노인 뿐이었다.

 대부분 자급자족하던 우리였기에 식량을 생산하는 농사는 정말 중요한 일이었지만, 성인 남성이 없었던 탓에 마을의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농기구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경험이 풍부한 어르신들의 조언에 아이들이 힘껏 노력한 덕분에 어찌어찌 끼니를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 그저 그 뿐이었다.

 세월이 지나서 아이가 자라서 어느정도 성년이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직 끝나지 않는 전쟁에 끌려가버린다.

 때문에 마을은 세월이 지날 수록 노인수도 줄어들고, 아이 수도 줄어갔다.

 남자의 숫자가 줄어가기 때문에 결국 여성들이 일 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남자들이 있을때도 집안일부터, 농사, 그리고 베짜기 등 여성들도 많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남자가 없기에 일이 더 증가한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동안 아무리 일상이 고단해도 미소를 짓고있던 마을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남자 아이는 자라면 전쟁터로 끌려가기 때문에, 여자 아이는 자라면 자신을 무사라 부르는 영주의 부하들이나 여자만 남은 마을을 노리는 도적 떼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에ㅡ

 그렇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결혼을 시키는 조혼 풍습이 생겼고, 나 또한 그런 풍습 속에서 태어난 아이 중에 한명이었다.

 ​기​억​에​는​ 없지만, 나의 아버지는 여타 다른 남자처럼 전쟁터에 끌려가셨다고 한다.

 ​기​억​에​는​ 없지만, 어느날 나타난 도적 떼에게 어머니께서 변을 당하셨다고 한다.

 기억이 조금씩이나마 있기 시작한 어린 시절.

 나는 가족이 없는 고아였다.

 죽기 전까지 나를 맡아서 길러주신 마을의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밤이되면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 안에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이야기로만 내려오는 민담이나 기타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비록 부모님이 없었지만, 그것은 마을의 다른 아이들도 대부분 그랬고, 할머니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일을 할 수 없던 어린나이 때는 할머니께서 고단한 몸을 이끄시고 돌아오는 저녁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웠고, 일을 할 수 있게된 나이부터는 할머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자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

 ​농​사​철​이​면​ 농기구를 잡고 농사를 지었으며, 농사를 할 수 없는 날이나 계절이면 산에가서 나무를 하거나 토끼나 꿩같은 것들을 사냥하곤 했다.

 낮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많았기에 외롭지 않았고, 밤에는 할머니께서 계셔서 외롭지 않았다.

 비록 같은 피는 아니지만,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은 나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비록 지쳐서 웃음이 사라져가는 마을이었지만, 그곳은 나의 집이었고 나의 세계였다.

 ㅡ도적 떼가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평범한 이야기였다.

 ​전​쟁​터​에​서​ 발생한 패잔병이나 탈영병들로 이루어진 도적 떼가 마을을 습격하는 일 따위는 그 당시에는 평범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사건은 마을 사람의 대다수의 목숨으로 끝이 났다.

 어린 아이와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마을에서 벌어진 그 사건은 어린 나의 마음에 큰 화인(禍印)을 남겼다.

 ​어​제​만​해​도​ 같이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살려달라 울부짖었고, 피곤한 표정이면서도 감자 따위를 챙겨주시던 어른들은 창백한 표정으로 눈을 뜬체 생을 마감하셨다.

 ​여​성​들​은​ 도적 떼의 노리개로 끔찍한 일을 당하다 죽고, 남자애들은 죽거나 끌려갔다.

 당시 나무를 하고자 산에 올라갔던 나는 화를 면했지만, 그 산 위에서 마을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었다.

 ​무​서​웠​던​ 것이다. 마을로 가는 것이.

 다리에 힘이 빠지고 머리는 두려움에 혼란스러웠으며, 몸은 공포로 굳어버렸다.

 그래서 자신이 한 것이라고는 가족과 같은 이들이 죽거나 봉변당하는 것을 눈알을 디룩디룩 굴리며 본게 다였던 것이다.

 ​나​중​에​,​ 도적 떼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않은 마을에서, 반쯤 불탄 집에서 얼굴을 잔뜩일그린채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시신을 보고 울었다.

 ​'​할​머​니​,​ 뭐하고 계세요?'

 '우리 아가 주려고 옷만들고 있단다.'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

 그 얼굴을 고통으로 일그러트리시며 돌아가신 할머니의 품에는 만들다만 나의 옷이 안겨있었다.



 ​그​만​둬​!​



 그 때에 마을을 습격했던 도적 떼는 철저하게도 마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고, 그것은 물건 뿐만이 아니라 사람 목숨또한 마찬가지였기에 결국 나만이 살아남았다.

 몇날 몇일동안 울던 나는, 지쳐 잠들었다가 깬 뒤로 덜컥 겁이 났었다.

 혹시 또 그 도적 떼가 온다면?

 ​두​려​움​에​ 떤 나는 그나마 용기를 내서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을 묻어줄 구덩이를 팠다.

 ​제​대​로​된​ 도구하나 없었고, 도적 떼가 다시 올까봐 무서웠지만, 이것은 언젠가 할머니께서 나에게 말씀해주신 "자신의 역할"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께​서​는​ 밤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 이야기 중에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이유와 역할이 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태어나고 이렇게 살아있는 이유는 마을 사람들을 공양해주기 위해서였는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맨손으로 바닥을 파다가 손톱이 깨지고 피부가 찢어져도 열심히 땅을 팠다.

 ​하​루​종​일​ 땅을 파면 간신히 내 또래친구 한명이 들어갈 구덩이가 생겼다.

 불탄 마을이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탄내와 썩은내가 진동을 했지만, 그래도 팠다.

 파고 파고 파고 또 판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일주일 째.

 겨우 4명의 마을사람을 묻어줬을 뿐이지만, 힘들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불덩어리는 나를 움직이게 해줬다.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고 슬퍼도 그건 나를 움직이게 해줬다.

 "허, 이런 폐허에서 무얼하느냐 아이야."

 그리고 스님을 만난것도 그때의 이야기다.



 ​그​만​둬​!​



 불타 폐허가된 마을에서 나를 발견하신 스님은 꽤나 이름이 높은 스님으로 수양차 전국을 돌던 와중에 나를 발견하셨다고 했다.

 ​발​견​당​시​,​ 찢어지고 깨진 손에는 나쁜기운(세균)이 스며들어 썩어가고 있었다며, 조금이라도 자신을 늦게 만났다면 손을 잘라내야 했을거라고 말씀하시는 스님이었지만, 그보다는 스님이 온 덕분에 보다 수월하게 마을 사람들을 묻어주고, 자신의 서툰 공양이 아닌 스님의 정식 공양을 받았다는 것이 더 기뻤다.

 "너는 실로 착한 마음을 지녔구나."

 ​아​닙​니​다​,​ 스님.

 저는 마을 사람들을 벽으로 세워 살아남은 아이에요.

 "그리 생각하지 말거라. 이는 하늘이 정한 운명이니, 곧 천명이니라."

 어려운 말이었다.

 ​천​명​이​라​는​ 단어는 할머니께서 이야기 해주실때에 잠깐 들었던 말이었고, 그 외에는 이해못하는 표현 뿐이었다.

 스님의 말씀은 무지렁이였던 나에게는 어려운 이치를 담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한가지 알아들은 말은 하나 있었다.

 ​『​하​늘​이​ 정한 운명』

 ​운​명​이​라​는​ 말은 모르지만, 하늘이 이런 일이 생기게 정했다는 것은 알아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스님, 저희 마을사람들이 이렇게 되는걸 하늘이 정하신건가요?

 그 물음에 스님께서는 대답하셨으나, 그것이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만​둬​!​



 그 뒤에 스님의 인도에 따라 전국을 돌아다닌 나는, 어느날 급한 볼일이 생겼다는 스님의 말과 함께, 평소 스님이 알고지내시던 마을에 맡겨졌다.

 그리고 그 뒤로 몇년이 흘렀다.

 처음 마을에서 지낼때는 어색하고 슬펐다.

 ​다​른​이​들​은​ 모두 죽었는데 자신만 이렇게 제대로된 마을에서 살게된 것이 슬펐다.

 그런 나의 말에 촌장님께서는 "네가 행복한것이 그사람들도 바라는 일일게다."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슬펐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언젠가 나에게 웃으라고 하셨었다.

 마을은 웃음을 잃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웃어야 한다고 하셨었다.

 너는 부모님과는 달리 오래오래 행복하라고 말씀하신 할머니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행​복​해​져​도​ 될까요?"

 비겁한 핑계와 변명이다.

 그렇게 누군가가 속삭인것 같았다.



 ​그​만​둬​!​



 행복.

 운명.

 그 두가지는 그 뒤로 나를 짓눌렀다.

 새로운 마을에서 일하고 웃고 떠든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울고 움추린다.

 하지만 자신은 행복해야만한다.

 그것이 할머니께서 마을사람들이 바란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이다.

 결국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어서 비겁하게 핑계를 댄 것이니까 말이다.

 ​"​영​주​님​께​서​,​ 마을에서 성인남자 몇을 뽑아 데려오라는구먼."

 전쟁에 끌려갈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가​기​싫​다​.​

 하지만 이 마을은 나의 마을이 아니다.

 비록, 이들은 친절하게 나를 생각해주고 위해준다고 하지만, 결국 타인인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자처해서 마을사람이 한명이라도 덜간다는 사실에 미안해하면서도 기뻐하는 것이다.

 그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마음속의 불덩이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만​둬​!​



 ​죽​어​간​다​.​

 가슴에 꿰뚫린 화살에 죽어간다.

 ​전​쟁​터​에​ 끌려와서 죽는다.

 이대로 마을사람들과 할머니를 뵈러간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한켠이 편해진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을 버리고 행복해지고자 발버둥친 녀석이다.

 모두를 볼 면목이 없다.

 그들이 자신을 차가운 눈으로 보면?

 그럼 나는?

 하얀 가면의 요괴.

 후에 호로라는 것을 알게된 그들에게 씹어먹혀지면서 든 생각은 자신의 약함에 대한 절망과 분노, 그리고 '안도'였다.

 이대로 저승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어버리면.

 이것이 어쩌면 그들에 대한 나의 사죄가 되지않을까?

 눈을 감는다.

 죽는건 무서워 도리질도 치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래도 왠지모르게 편안하다.

 ​"​만​상​,​ 일체 잿더미가 되어라ㅡ ​류​인​약​화​(​流​刃​若​火​)​.​"​

 거대한 불꽃이 세상을 뒤덮는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은 그날밤 마을을 뒤덮었던 겁화와도 같았다.

 그 가운데 총대장님이 계셨다.

 오롯히 세상을 굽어보는 기도.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강함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만약 내가 강했다면?

 마을은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행복이 변명이 아닌 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강​해​지​고​ 싶다.

 열망이 생겼다.

 그러나 마음 한켠의 불덩어리는 "그것마저도 결국 자신이 살고자 변명하는것이 아니냐."라며 냉소를 지었다.



 ​그​만​둬​!​

 어째서 나에게 이런걸 보여주는거야?

 눈앞의 존재를 노려본다.

 장소는 꿈에서 자주보던 황량한 사막.

 그 가운데에 말라 비틀어진 나무 위, 소년이 있었다.

 처음 만나는 존재,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건 첫 대면때 눈치챘다.

 하지만 그 이질적인 존재감에 비해서 생김세는 익숙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어릴적 모습이었으니까.

 ​"​누​구​지​?​"​

 ​소​년​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지? 그리고 아까와 같이 나를 파해친것은 어째서지?

 내 물음에 소년은 씩 웃으며 말했다.

 ​"​너​에​게​ 영안(靈眼)을 주겠다던 남자가 말했잖아? 영안이란 영혼의 눈(감각).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혼을 정면으로 마주봐야한다고."

 자신을 마주본다.

 확실히 맞은편의 독방에 있던 남자가 그리 말했었다.

 ​한​계​강​도​에​ 대해서 말하던 남자는 시간을 두고 나에게 영안을 권했다.

 영안을 익히면 눈에는 비할바가 못되지만, 그래도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계강도 때문에 영안을 배우더라도 강해질 수는 없다며, 말이다.

 ​하​지​만​,​ 한계강도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있었던 나로서는 별다른 충격이 아니었다.

 ​우​노​하​나​ 선생님께서 이미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오히려 영력을 잃은줄 알았는데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게된다는 것에 기뻤다.

 ​그​래​서​,​ 영안을 원했다.

 ​"​사​람​의​ 영혼은 말이야. 자신 외에도 두가지의 인격이 존재하지."

 ​"​하​나​는​ 사신으로서의 힘이자 영혼의 증거라 할 수 있는 참백도의 인격. 사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양의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사람의 밝은 부분이지."

 "양의 인격이 참백도라면, 음의 인격이 뭔지 알아?"

 소년이 말을 멈춘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의 표정을 짓는다.

 음의 인격.

 ​인​격​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사람의 영혼이 음의 기운이 강해지면 되는 존재를 나는 알고있다.

 ㅡ호로

 ​"​그​래​,​ 호로야. 사람의 영혼에는 자신과 참백도, 그리고 호로의 인격이 있지."

 호로는 음의 기운이 강해지면 발생한다.

 때문에 질투, 증오, 허무, 집착과 같은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강해진다.

 ​일​반​적​으​로​는​ 혼백이 호로화가 되면서 강해지는 부의 감정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친지를 공격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에​게​는​ 세가지의 인격이 있어서, 영혼의 근간진 자신의 인격과 사신이 되면 구현화되는 참백도의 인격이 있다.

 그런데 그 둘 뿐이라면 두가지 인격이지 세가지 인격이 아니다.

 그래, 사실 사람은 호로가 될 경우 다른 인격이 생성된다.

 자신의 주 인격이 부의 감정에 휩쓸려서 호로가 되는 것이 아닌.

 호로 그 자체의 인격이 존재하고, 호로화기 될 경우 본래의 자신의 인격이 호로의 인격에게 삼켜지는 것이다.

 때문에 호로의 인격은 기억이 없다.

 살아 생전의 기억이 없기에 호로화가 되면 본래의 인격을 집어삼켜 기억을 빼았는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마음에 강하게 새겨지는 마음ㅡ 즉, 가족과 친인등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원수나 적을 미워하는 마음을 받게되어 혼란을 일으킨다.

 정신적 혼란은 갓 호로화가된 혼백을 공황에 빠트리고, 그 공황을 해결하고자 호로는 마음에 강하게 새겨진 이들을 죽이는 것이다.

 그것이 호로가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습격하는 이유다.

 ​"​…​…​라​는​ 거야. 알겠어?"

 소년이 웃는다.

 호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준 소년은, 그 웃음을 여전히 지으며 속삭였다.

 ​"​호​로​란​ 기억이 없지. 때문에 불완전해.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해결하고자 본래 인격의 기억을 원해. 알겠어? 내 정체와 내가 네 기억을 읽어들인 이유를?"

 ​후​후​후​,​ 하면서 웃는 소년과 거리를 벌린다.

 내 과거를 알고싶어하고 읽어들인 소년.

 그리고 과거가 없어서 불완전해 본래 인격의 기억을 원하는 호로의 습성.

 그 두가지는 모두 한가지의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래​,​ 네 생각대로야. 만나서 반가워 본래의 인격씨. 나는

 ㅡ네 『호로』로서의 인격이야."



 ​참​백​도​의​ 인격은 완전한 독립된 개체이다.

 같은 영혼에서 파생되었다고는 하더라도, 그들은 본래 영혼의 주인과 공생하는 관계일 뿐, 거절하기도 가능하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내키지 않으면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며,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

 반면, 호로의 인격은 그와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공생의 관계이며 다른 개체이지만, 참백도와는 달리 본래 인격의 거울과 같은 존재이다.

 ​참​백​도​는​ 그 인격자체가 다른 것이라면, 호로의 인격은 본래 인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때​문​에​,​ 자신의 본래 인격을 잡아먹어 자신이 유일한 개체가 되고싶어하며, 불완전한 것이다.

 ​대​다​수​의​ 호로 인격은 본래의 인격을 애증한다.

 본래 인격을 싫어하고 증오하지만, 그 근간에는 자기자신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

 그런 의미에서 소년ㅡ 호로의 인격인 그는 자신의 본래 인격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참백도 인격이 있듯이, 개인마다 호로의 인격이 조금씩은 차이가 나고, 그 중에서도 소년은 자신의 본래 인격을 좋아하는 편인 것이다.

 소년의 생성시기는 본래 인격이 팔을 잃었을 때였다.

 ​호​로​에​게​ 팔을 잃고, 절망에 빠져 음의 기운이 가득할때, 그때 깨어난 것이다.

 처음, 자신이 생성되었을때만 하더라도, 여느 호로 인격들처럼 본래의 인격을 집어삼켜 자신이 표면에 나서고 싶었었다.

 ​하​지​만​,​ 본래 인격은 영력이 약해 소년을 구체화 시키지조차 못했고, 그것이 전화위복이었다.

 자신의 모습이 구체화되지 않았기에 본래 인격의 마음의 틈을 파고들지 못했고, 덕분에 소년은 그와 함께해왔다.

 그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그의 슬픔을 같이 느끼고, 그의 기쁨, 그의 의지, 그의 목표를 같이 해왔다.

 ​그​리​고​,​ 소년ㅡ 호로의 인격은 본래 인격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호로의 인격이나 본래 인격은 같은 인격에서 파생된 것이므로 자기애라 할 수 있으며, 관계는 본래 인격에서 호로 인격이 생성된 것이므로 부모와 자식간의 애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종류의 애정이건, 호로의 인격은 본래 인격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가추려고 노력하기보다, 본래 인격을 집어삼키려고 노력하기보다 그의 마음 한 구석에서 지켜보고자 했다.

 그가 위험해지면 가슴을 조렸고, 그가 행복해하면 기뻐했다.

 스승이 위험한 것을 알았을때는 분노했고, 결국 스승이 죽은 것을 보고 같이 슬퍼했다.

 ​그​리​고​ㅡ​ 그때 일이 일어났다.

 ​호​로​남​자​(​디​에​즈​)​에​ 의해서 강제로 호로화가 될 뻔한 사건.

 그 잠시간의 사건이, 호로의 인격이었던 소년을 마침내 구체화 시킨 것이다.

 그 전만하더라도 실체가 없었기에 꿈에서 나타날때에는 이 나무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 실체를 가지게 되어 그의 앞에 나설까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모습을 숨겨서 여전히 꿈에는 이 사막이 나타났다.

 아마,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자신은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 호로가 되는 것이 부정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불보듯 뻔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나설수 밖에 없었다.

 영안을 개안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마주보는 것이다.

 그것은 참백도의 인격을 보는 것도 되지만, 본디 호로의 인격도 봐야된다.

 ​사​신​들​에​게​ 영안이라는 수단이 알려지지 않은것도 그때문이다.

 스스로 무의식중에 억눌러온 호로로서의 인격을 마주본다는 것은, 사신이라는 존재에게는 참을수없을 만큼의 모욕과 자괴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경멸해온 호로라는 것이 결국 자신의 안에 있었다는 것에 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맥락으로 사신들은 자신의 영혼이 두개의 인격(본래 인격과 참백도의 인격)으로 되어있다고 생각해왔다.

 본래 인격인 그가 영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한다.

 그가 더이상 상처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라는 존재를 알게됨으로서 상처입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입었으면 좋겠다.

 방법?

 ​간​단​하​다​.​

 ​호​로​로​서​의​ 인격인 자신을 증오하게 만든다.

 ​그​렇​게​되​면​ 그는 자신의 정의를 여전히 지속하면서도, 호로로서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서ㅡ 그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지속시킬 것이다.

 ​"​당​신​의​ 과거를 알게되었으니, 필요없어."

 그가 강하게 부정한다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않은 자신은 지워질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본래 인격인 그의 기억을 본 것을 선물로 간직할 것이다.

 ​짜​르​르​ㅡ​ 가슴이 욱신거린다.

 이것이 고통인가?

 언제나 간접적으로 느껴온 고통을 직접 느껴보니 정말로 아프다.

 이런 고통을 그는 그동안 수없이 당해왔다.

 그 고통, 조금이라도 덜어졌으면.

 ​"​그​러​니​,​ 죽어주겠어?"

 나직히 내뱉는다.

 그런 나의 말에 나의 말에 경계하는 눈빛으로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 다시금 가슴이 욱신거렸다.



 ​"​당​신​의​ 과거를 알게되었으니, 필요없어."

 ​"​그​러​니​,​ 죽어주겠어?"

 눈 앞의 소년 모습을 하고있는 호로의 인격을 노려본다.

 자신의 불완전한 부분을 채우고자 자신을 습격하겠다는 말.

 그 말과 눈빛에서 강한 의지를 느낀다.

 자신의 영혼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영혼에는 호로로서의 인격이 있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저 존재에게 잡아먹힌다면, 나는 호로가 되는 것일까?

 ​"​호​로​가​ 되는건 거절하지."

 검은 없으나 싸울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먼지폭풍이 불어오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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