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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치] 노마십가(駑馬十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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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지몽(胡蝶之夢) 7화




 ㅡ똑 똑

 비가 잘오는 지방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과연… 도착한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비가올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은 비와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이 쾌청한 것을 보면 아마도 여우비인듯 했다.

 "이런 더위에 여우비라면 환영인데."

 점점 쏟아지는 비를 피하고자 길 한구석에 있는 나무 밑으로 향한다.

 이 주변에는 딱히 비 피할 곳이 여기 외에는 없는 탓인지 이미 선객이 있었기에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빈자리에 앉는다.

 ​"​실​례​하​겠​습​니​다​.​"​

 ​빈​자​리​에​ 앉은 나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운치있게 바라보며 주변의 나그네들을 살폈다.

 ​여​우​비​를​ 피해서 나무 밑으로 온 사람은 총 6명으로 5명은 남자고 1명은 여자다.

 ​남​자​들​은​ 대부분이 단순히 길가던 나그네인듯 싶었지만, 그런것 치고는 지나치게 피냄새가 진동하는 사람도 한명 있었다.

 찢어진 눈매나 날카로운 입술등은 마치 뱀을 연상시켰는데, 주변에 놓여진 봇짐은 상당히 꼼꼼하게 가려져 있었지만 그것이 병장기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이 갔다.

 ​무​사​수​행​을​ 다니는 사무라이인가?

 ​아​니​면​,​ 도적인가?

 그도 아니면?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하던 나는, 음흉한 눈빛으로 휘파람을 불며 무언가를 응시하는 남자의 시선을 따라갔다.

 뱀과 닮은 남자가 음흉한 눈길로 보고 있던 것은 이곳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 중에 유일한 여성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백옥같은 피부에 가느다랗지만 연하지는 않는 눈썹과 차분한 눈매, 그 서글서글해 보이는 눈과는 달리 오똑한 코에 왠지모를 요염한 입매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옷은 일반 백성들이 입는 평범한 기모노를 입고있었으나. 방금의 여우비 탓인지 기모노가 축축히 젖어 살갖에 딱 달라붙었으므로 묘한 색기를 과시하고 있었다.

 여자가 물기를 털어내고자 비단을 연상시키는 긴 생머리를 움직일때마다, 그녀를 주시하고있던 남자들이 모두 침을 꿀꺽 삼킨다.

 그 모습이나 요염한 움직임은 분명 남자를 홀릴만한 것이었고, 나 또한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자를 보기는 했으나, 내가 주목한 것은 여자의 몸이 아닌 기운이었다.

 묘한… 영력이 느껴진다.

 도를 닦은 노승과도 같은, 그리고 어찌보면 사신이나 호로와도 같은 기색.

 그 낯선 기색에 좀 더 살피고자 여자를 뚫어지게 본 탓인지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ㅡ생긋

 눈이 마주친 여자가 웃는다.

 음… 비록 내 입장에서는 여자의 기색을 알아보기 위해서 한 행위였다지만, 여자의 입장에서는 대놓고 몸을 음흉하게(?) 쳐다보는 남자 중에 하나로 여겨질 것이다.

 그것이 민망해진 나는 낮게 헛기침을 하고는 눈이 아닌 기감으로 여자를 비롯해 남자들도 살펴본다.

 ​거​기​까​지​ 행한 나는 그 가운데 한가지 놓치고 지나간 맹점을 눈치챈다.

 그도 그럴것이ㅡ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장님인 것이다.

 ​"​…​…​…​…​…​.​"​

 ​그​렇​다​면​,​ 눈을 마주쳤다는 나의 느낌은 틀린 것인가?

 아니, 확실히 나는 '눈을 마주쳤다'라는 감각을 느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억측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저 여자는 기색이나 행동으로 보나 역시 평범한 여자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저정도의 여자가 색기까지 흘리는데, 이토록 태연하게 돌아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지금이 낮이고, 최근 치안도 좋아졌다지만, 남자들도 도적이다 뭐다 해서 꺼려하는 판국에 이런 외부는 여자에게 위험하다.

 ​그​렇​다​면​ 역시, 이 여자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럼, 그 무언가란 과연?

 ㅡ차릉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 나름 상상을 해보던 나는 금속음이 귀에 들어옴과 동시에 생각을 중단하고 몸을 긴장시켰다.

 ​둔​탁​하​기​는​ 하지만 분명 검을 빼드는 소리다.

 수는 대략 20자루.

 주변의 적의는 그 배수인 30명 정도이다.

 ​병​장​기​를​ 들고 적의를 품은채로 점점 다가오는 30명의 무리.

 ​군​데​군​데​ 이가 빠져나간 하급품질의 병장기를 쥐고서, 마찬가지로 너덜너덜해진 갑옷을 입은 자들이었다.

 딱 보아도 안다.

 저들이 도적때라는 것을ㅡ.

 ​병​장​기​나​ 갑옷등을 보아하니 패잔병, 혹은 탈영병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도적보다 더 성가시다.

 패잔, 탈영병이라고는 하더라도 제대로된 전투법을 배우고 전장을 겪었을테니 말이다.

 ​"​아​우​가​ 신호를 보내서 무슨일인가 와봤더니, 저 여자 때문이었군!"

 도적들 중에 가장 장비의 상태가 좋은편이었던 거한이 말한다.

 그가 나서는데에 아무런 토를 달지않는 도적들을 보니, 거한이 도적들의 두목이리라.

 ​"​어​떻​습​니​까​?​ 이정도면 최상품 아닙니까?"

 거한의 말에 뱀을 닮은 남자가 대답한다.

 ​과​연​이​라​고​ 할까 역시라고 할까, 진한 피냄새와 살기등으로 대충 눈치채기는 했었지만 뱀을 닮은 남자는 역시 도적이었다.

 아까 여자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던 것은 단순히 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닌 신호를 보낸 것이었나.

 새로운 사실을 납득하며 사태를 지켜본다.

 ​아​름​다​운​ 여자가 이런 상황을 한두번 겪어보지는 않았으리라, 분명 무슨 수가 있을게 분명하며 그것을 본다면 나 또한 여자의 묘한 기색에 대해서 알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숨죽이며 지켜볼 뿐이다.

 나 외의 나그네들은 모두 도적들에게 위압감을 느꼈는지 덜덜 떨면서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실정이기에 여자 쪽에서 손을 쓸 수 밖에 없으리라.

 그렇게 조금 기대를 하며 방관을 하던 차에 어느새 여자에게 다 접근한 거한이 여자의 턱을 잡고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이런 촌구석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미모로군. 마음에 들어."

 결코 잘생겼다던가 온화하게 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거한의 얼굴이 바로 앞에까지 왔음에도 여자는 별다른 미동없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서 호걸님을 만나게 된 것은 미처예상치 못한바이나, 마음에 드신다니 저 또한 기쁘군요."

 마치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맑지만 끈적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도 목소리였지만 말의 내용또한 생각지도 못했던 것인터라 나름 놀랬지만, 나보다는 도적들 쪽이 더 놀란듯 했다.

 ​확​실​히​,​ 도적들 입장에서는 저러한 반응을 보이는 여인은 놀라운 것일테니 말이다.

 이런 놀라움에 상관없다는 듯이 여자가 말했다.

 "제가 호걸님의 수청을 드는 것은 분명 영광이겠지만, 아쉽게도 그것을 바라지 않는 분이 계셔서 말이죠."

 ​"​뭐​라​고​?​!​ 감히 어떤놈이 감히 이몸이 하겠다는데!"

 단 몇마디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목소리는 분명 진실성과도 같은 것이 느껴진 탓인지, 아니면 단순히 기분이 나빠져서인지 도적 두목은 성난 황소와 같이 씩씩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두목과 눈이 마주친 자들은 모두 고개를 격렬하게 저으며 자신이 아니라고 표현한다.

 "저기 혼자 눈을 감고계시는 분이랍니다."

 ​"​저​놈​이​?​!​"​

 나다.

 여자가 말하는 것은 분명히 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여성의 속셈또한 눈치챈다.

 그녀는 나와 도적두목이 싸우게 할 속셈이다!

 여자의 말 몇마디에 넘어가는 도적두목의 단순함에 나도모르게 고개를 젓고야 만다.

 ​"​감​히​,​ 장님주제에!"

 ​씩​씩​거​리​며​ 도적두목이 나를향해 성큼성큼 다가온다.

 어쩔수 없군.

 ​이​쪽​에​서​ 뭐라고하던 저 도적두목은 멈추지 않을터이다.

 싸울 수 밖에 없나.

 점점 다가오는 도적두목을 응시하며 봇짐안의 목검을 꺼내려던 나는, 이내 이런 자들과 상대하는데 목검을 쓸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으로 맨손인채 천천히 일어섰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이쪽이 상대를 파악할 요량으로 잠자코 있었는데, 오히려 상대쪽에서 치고 들어온 격이다.

 ​내​쪽​에​서​ 여자를 의심하듯이, 여자 쪽에서도 나에 대해서 무언가를 감지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고​는​해​도​,​ 이런 일에는 휘말려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아니라지만, 일단은 사신이었던 몸이기에 산자를 죽이거나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니 좋은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흐​흐​흐​,​ 단숨에 고기조각으로 만들어주지."

 ​도​적​두​목​이​ 음험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뭉툭한 박도를 슬슬 흔든다.

 ​움​직​일​때​마​다​ 알게모르게 원념이라던가 피냄새가 나오는 것을 보면, 사람을 여럿 잡은 모양새다.

 ​"​…​…​말​이​ 많군."

 ​"​뭐​라​고​!​ 이 장님새끼가! 이참에 말도 못듣게 귀머거리로 만들어주랴? 앙?!"

 허리를 숙여 얼굴을 내쪽으로 들이밀며 두목이 눈을 부라린다.

 다양한 의미로 한숨이 나왔지만, 일단 이 상황부터 끝내야 할 듯하다.

 ​"​이​몸​은​ 말이지, 이 근방에서 악명을 떨치고있는……."

 ​"​이​봐​.​"​

 한창 자신의 자랑을 하는 두목의 말을 끊으며 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말한다.

 ​"​시​끄​럽​다​고​ 했다."

 가벼운 손가락 튕기기.

 언젠가 시즈카랑 놀아줄때 벌칙으로 했던 딱밤이다.

 다만 단순한 딱밤과는 다르게 영력이 들어있을 뿐.

 ㅡ쾅!

 ​영​력​이​라​는​ 것은 사용자들에 따라서도 크나큰 고하가 나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그것을 능가하는 차이를 지녔다.

 단순한 검이라도 영력이 조금이라도 스며들면 명검이 되고, 연약한 피부라 할지라도 영력이 스며들면 강철보다도 단단해지는 이치이다.

 ​그​렇​기​에​ 가벼운 딱밤이라 할 지라도 영력이 깃들게 되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벼락을 맞은듯한 충격이 엄습해올 것이다.

 ​실​제​로​,​ 나의 영력이 담긴 딱밤을 맞은 도적두목은 그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몸이 붕 떠서 뒤에 있던 다른 도적들에게 날아가버렸다.

 음, 이정도 량의 영력의 위력은 저정도인가.

 가벼운 실험이라는 기분으로 했던 행위였다지만 성과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갑​작​스​러​운​,​ 그리고 그들의 상식으로는 밑겨지지 않은 상황에 멍하니 있는 도적들 사이로 순보를 섞어 파고든다.

 그리고 명치 부근에 가벼운 주먹을 각각 한방씩 먹인다.

 ㅡ풀썩

 극히 미량의 영력이 담겨있는 주먹질이라지만 명치와 같은 급소에 때려박힌 탓인지 도적들이 힘없이 쓰러진다.

 몇몇 도적들이 정신차리고 무기를 휘둘러 왔으나, 소울소사이어티에서 알고지내던 수많은 사신들의 병장기 다루는 실력에 비하면 갓난아기만도 못한 움직임이었기에 가볍게 무력화 시킨다.

 ​압​도​적​인​ 승리.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다.

 그 알듯 모를듯한 고양감에 잠시간 여운에 잠긴 뒤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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