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화가거(奇貨可居) 3화
함리동(檻理棟).
이름 그대로 죄를 범한 자들을 가두기 위한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흔히들 '구더기 소굴'이라 불리우는 지하특별함리동(地下特別檻理棟)의 존재는 매우 특수하다.
이곳에 갇히게 된 자들은 「죄를 저질러서」갇힌게 아닌, 「죄를 저지를 것 같아서」 갇힌 자들이다.
이 죄를 저지를 것 같다는 것은 실로 애메한 기준인지라, 사실상으로는 정신적인 이상이 있는 자들 외에는 대부분이 「정치적 여파로 인해서」갇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근 수백년간 정치적인 판도는 큰 변화가 없었기에 현재 수용된 인원은 대부분이 정신적인 이상이 있는 자들 뿐.
여화침입사건 이후로 급변화한 소울소사이어티의 정치 판도는 그 여파로 수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중앙46실의 실권자들이 교체되었다는 것과 이에 따른 정치적인 협잡에 대해서는 일절 정령정 밖으로 세어나가지 못했다.
따라서 루콘가들은 물론, 심지어 정령정의 내부에 살고있는 사신들과 귀족들 마저도 이 정치여파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드문 상황.
거기에 정치판도가 변하면서 처벌받은 이들 중에 구더기 소굴에 간 것은 「단 한명」뿐이기에 더더욱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즉, 『그』라는 존재는 유일한 증거이자 폭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일단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라고 판단된 이상, 이 판단이 번복되지 않는 한은 그가 구더기 소굴을 나올 수 있을리 만무하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그가 풀려날 확률은 적다.
기실, 우노하나라는 걸출한 대장이 총대장에게 청한다 할 지라도, 그 총대장이 이 일을 받아들일지도, 그리고 나아가서 중앙46실이 그 같은 일을 허락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노하나 레츠』는 확신을 가진양, 눈을 빛내며 총대장실을 찾았다.
과연 어떠한 말로, 과연 어떠한 주장으로 총대장을 설득하고, 나아가 중앙46실을 설득할 것인가?
◆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몇 십, 아니 몇 백 년인지도 모를 시간을 구더기 소굴에 감금된채로 보냈다.
변화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단조롭다 못해 정지된 풍경, 시간, 사건들.
이곳에 온 자들은 이유가 이유이다보니 대부분이 온전치 못한 정신의 소유자들 뿐이었기에 대화도 되지 않았으며, 간수들은 함리대에 속해있는 자들이기에 과묵하다 못해 말 한마디 없었다.
어찌보면 자신 혼자서 꽉 막힌 독방에서 몇 백년을 지낸 것이다.
강해진다는 생각으로 육체를 단련한다던가 영력을 다루는 연습을 한다고해도, 그것이 몇 백 년간 반복된다면 과연 질리다 못해 미쳐버릴 지경일 터였다.
그런데도 자신은 미치기는 커녕 그러한 낌새도 없었다.
모든게 변함없이 정지된채로 시간만 흘러간다.
해가 뜨거나 지는 등의 시간을 가늠할 방법조차 없기에 단순히 짐작만으로 시간을 측정해야했고, 때문에 더욱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기분이다.
몸을 혹사시키듯이 단련해보아도, 영력을 아슬아슬한 선까지 끌어올려서 다뤄본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의 체감상 몇 백년이 반복된다면 익숙하다 못해 어느새 하나의 성질로 자리잡아 버리고야 말았다.
이런 세월을 보냈는데도 자신은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 어쩌면 자신은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으로 이미 미쳐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 또한 흐름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꿈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단순히 나에게 특수한 영력의 다루기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그것들도 분명히 좋은 결과지만, 무엇보다 나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정신적인 성장이었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간혹 생각해보고는 한다.
만약 자신이 꿈을 꾸지 않아 이런 정신적 상태가 되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 구더기 소굴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독방은 아닐지라도 이 구더기 소굴에 여전히 감금된 다른 이들처럼 정신적인 불안과 불완전을 가지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정신적인 성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 하나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옆방의 이웃인 쿠로츠치 마유리씨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말은 사용하지 않으면 어느새인가 자신도 모르게 까먹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옆방의 쿠로츠치 씨는 적당한 말 상대가 되어줬다.
비록, 이쪽에서 말을 걸어오면 단문적인 대답 혹은 욕설이나 비하발언이 되돌아 왔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거기에 몇백년간 끈질기게 말을 걸어온 덕분인지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해서 가끔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가 해준 말에 따르면 그는 이곳 구더기 소굴에 감금되기 이전에는 인공육체(의사육체)의 개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개발 와중의 사고(아무래도 뒤숭숭한 사고인듯하다)로 인하여 부적격자 판정을 받아 이곳 구더기 소굴에 감금된듯 하다.
당시 그의 목표는 인공생명체의 '제작'이었는데, 장기나 신체 그 자체는 아무래도 생각하던 수준까지는 끌어올렸으나, 영력에 이르러서는 큰 진전이 없어서 결국 성공하지는 못한듯하다.
그때문인지 그는 나의 영력 다루는 법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몇백년간의 노력으로 그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는 것 보다는, 그가 나의 영력 다루는 법에 흥미를 느끼게된 면이 지금의 사이로 발전하는데 더 큰 공헌을 했을 것이다.
◆
"네 몸을 해부해보고 싶군."
나의 영력을 다루는 법을 눈치챈 쿠로츠치씨가 제일 처음 한 말이 그것이었다.
물론, 해부되면 곤란하므로 "미안하지만, 안됩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당연하다고 할까, 역시라고 할까ㅡ 쿠로츠치 씨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나의 이러한 영력 다루기 방법이 『사상』에서 나온다는 것을 설명해주기는 했지만, 쿠로츠치 씨가 궁금해하는 것은 '방법' 뿐만이 아닌 그 '현상'과 '작용', 그 자체였기에 씨알도 안먹히는 말이었다.
킬킬킬 하며, 불길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던 쿠로츠치 씨가 말했다.
"음, 네 몸을 해부해본다면, 좀 더 완성에 가까운 것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지."
그에게 듣기로는, 그는 영혼 그 자체를 제작하는 일을 하다가 이곳에 감금되었다고 한다.
취지는 인조혼백을 만들어, 사신이 현세에서 임무를 수행 할 때에, 의사육체에 깃들어 그 사신을 도와 싸우는 종을 만든다는 것이지만, 영혼을 만드는게 그리 쉬울리 없었다.
때문에 실패와 실패를 거듭하던 와중, 쿠로츠치 씨의 반대파가 그를 모함해 이곳으로 갇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실로 의심스러운 말 뿐인데다가, 단순한 모함만으로 구더기 소굴의 독방에 감금될리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유일한 말상대인데다가, 한번 잘나신 말씀을 내뱉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없이 말하는 쿠로츠치 씨의 특성을 알기에 잠자코 들어주며 가끔 맞장구를 쳐준다.
그렇게 또 몇일을 보냈을 무렵이었다.
평소 이곳을 방문하던 함리대원이 아닌 다른 이가 들어오는 기척을 느꼈다.
실로 가벼운 발걸음에 보폭 등으로 추측하건데 여성.
거기에 은은하지만 강한 위압감과 강인함을 보이는 기세는 필시 석관ㅡ 아니 부대장급 이상의 존재였다.
이런곳에 방문하는 부대장급 이상의 여성이라?
문득 흥미가 생긴 나는 그 존재를 가만히 느껴갔다.
여인은 조용하게, 그러나 막힘없이 한방향으로 나아갔다.
분명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것일텐데도 마치 목표로 하는 것이 어디있는지 알고있다는 듯이.
그리고, 그 발걸음의 끝은 자신과 쿠로츠치 씨가 갇혀있는 독방 뿐이었다.
쿠로츠치 씨의 손님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침묵을 유지한채로 감각만을 날카롭게 다스릴때였다.
당연하게도 내 옆방에 위치한 쿠로츠치 씨에게 볼일이 있는 줄로 알았던 기척이 그의 방을 넘어 나의 방 앞에 섰다.
나에게 볼일이 있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기척을 쳐다보았으나, 영력의 갈무리가 꼼꼼하게 되어있었기에 나의 영안으로는 희미한 외형만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ㅡ
아무리 희미한 윤곽 뿐일지라도, 자신이 존경하는 선생님을 못알아보겠는가?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나의 놀람에 선생님은 살포시 웃으시며 인사를 건네왔다.
◆
"지금, 그를 구더기 소굴에서 빼내달라는 것인가?"
"예."
그녀, 우노하나의 말에 총대장이 침묵한다.
평소, 그녀의 행실이나 업무처리를 봐온 총대장이었기에 그녀가 말하는 것이 진심임을 알았다.
또한, 거기에 평소의 모습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행동을 하는 그녀에게 약간의 놀람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불가하네."
그것만으로 구더기 소굴의 독방에 갇혀있는 이를 석방해줄 명분은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당연하다는 어투로 거절하는 총대장을 우노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째서인가요?"
"이득이 없네. 그를 그대로 방관하는 것과 그를 석방하는 것. 둘 중 어느 한쪽이 이득이 있는가 따지자면, 그를 석방하지 않는 쪽이 더욱 이득."
물론 함리동에서 죄수하나 빼오는거야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중앙46실이 가만히 있을까?
거기에 구더기 소굴에서 풀려나는 죄수가 나온다는 사태로 인한 정세의 변화.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본다면, 당연하게도 그의 석방은 비효율, 득보다 실이 많은 계책이 된다.
"과연, 득보다 실이 많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나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앞서 말씀하신 모든 불이익을 능가할만한 이득을 그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호오?"
자신감 넘치는 우노하나의 말에 총대장이 흥미를 보인다.
그에 우노하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추측일 뿐이지만, 사실 『그』는 『시해를 할 수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