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師表) 4화
☆월 초순
최근 검에만 신경쓰다보니 일지를 작성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오랜만에 일지를 작성하고자 펼쳤다가 멍해졌다.
『필살기를 만들었다.』
힘 있는 필체로 적혀있는 그 한문장에 얼마나 어이없는지 몰랐다.
확실히 그 전의 일지에서 필살기에 대한 언급은 했었지만, 동료 교사들의 웃음을 참는 모습을 보면 쥬시로와 슌스이가 농담을 한 것이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약간의 조사를 해보니 필살기 어쩌고 저쩌고 한 것은 확실히 거짓말인 것을 알아차려서 둘에게 응징을 가하고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일지에는 내 필체가 아닌 다른 필체로 『필살기를 만들었다』라고 적혀있으니, 타인이 봤다면 오해하고도 남으리라.
물론, 범인은 누구인지 집작이 갔으므로 일지를 들고 찾아갔다.
"시호인 학생.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응? 그게 무엇인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네."
일지를 들이밀자 휘파람을 불며 눈을 돌리는 시호인 요루이치 학생.
명백하게 수상한 거동이다.
하지만 본인이 모른다고 잡아때면 내 쪽에서는 증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결국 한숨을 내쉬며 물러나기로 했다.
"…그럼, 시호인 학생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거군요. 갑자기 들이닥쳐서 죄송합니다."
내가 깔끔하게 사과하고 물러가자 의아해하는 시호인 요루이치 학생.
물론, 그냥 물러나면 섭섭하므로 몸을 돌려 멀어져가며 슬쩍 "범인을 잡을 때 까지는 술은 자제해야겠군."이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그랬네!"
효과는 발군이었다.
예전에는 허용되었던 학생의 음주가 내가 구더기 소굴에 있는 동안 비허용이 되면서 영술원 내에서 술을 마시기란 힘들다.
그나마 교사들 정도만 간혹 술을 들고와 마시는 정도랄까?
그런 의미에서 술을 상당히 좋아하는 시호인 요루이치 학생의 경우는 술을 마시고 싶으면 항상 나에게 오곤 했다.
물론, 그녀는 시호인이었기에 다른 교사에게 가거나, 혹은 뛰어난 보법으로 담을 넘어 몰래 마시고 오거나 해도 되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 술은 같이 마셔야 맛있다던가.
뭐, 사실 그녀를 조금만 더 추궁했어도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이 한 일이라고 말했을 테지만, 최근 그녀가 술을 마시러 오는 횟수가 늘어나는 듯하여 자제하라는 의미로 돌려 말한 것이다.
그녀가 신경쓸 것 같지는 않지만.
"하아, 시호인 학생. 어째서 일지에 장난을 치신 겁니까?"
"아니, 술을 얻어먹으려고 갔는데 선생은 없고, 그대신 선생의 책상에 일지가 있어서 무십코……."
"아니, 무심코라니. 휴우……."
별로 대단한 이유가 아닐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일지를 몰래 보고 거기다가 장난까지 친 이유가 눈에 띄어서 무심코 해버렸다라니, 좀 더 성실하게 할 수는 없는걸까.
나는 이 말썽쟁이 학생을 어떻게 할까하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집고 고민하다가 일단은 한동안 금주라는 판결을 냈다.
"그런~!"이라며 시호인 요루이치 학생이 볼멘소리를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정도로 끝낸 것도 상당히 너그럽게 대한 것이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겠지만.
그렇게 금주 판결을 내고 다시 검을 연마하기 위해서 몸을 돌리자 뒤에서 시호인 요루이치 학생이 뭐라고 중얼거렸다.
"……경…… 사람의…… 면, 열어……잖아."
금주 판결이 그렇게 커다란 타격이었나?
그녀의 입장이라면 다른 교사나 담을 넘는 것도 가능한데, 나의 판결에 볼멘소리를 한다는 것은 내 판결을 따르겠다는 말이다.
말썽에 장난끼가 있지만, 의리가 있고 호탕한 시호인 요루이치 학생이라면 한동안은 금주를 하겠지.
대충 몇 일동안 상태를 보고 괜찮다 싶을때 술을 들고 찾아가자.
◆
- 시호인 요루이치 -
1)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여러분께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단상에 올라선 그가 한 자기소개는 매우 평범했다.
그러나 그의 외형은 도무지라고 할 정도로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허전한 오른 팔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눈에 띄는 것은 초점이 없는 눈동자였다.
그 외에도 조금 드러나있을 뿐인 피부에는 무수한 상처자국이 있었으며, 얼굴에는 자세히보면 자잘한 흉터가 있다.
확실히 말하자면 어딜봐도 『낭인』의 외형인 남자였다.
고상함을 지향하고있는 귀족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사신들이나 영술원생들 사이에서도 이질적인 외형.
특히 얼굴에 자잘하게 있는 흉터는 그를 더욱 이질적이고 흉악하게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아첨으로도 잘생겼다라는 말보다는 무섭게 생겼다라는 말이 먼저 나올 외모다.
거기에 눈에 장애가 있느 것인지 눈동자는 초점없이 빛이 사라져있었으며, 오른팔이 비어있었기에 약간 불균형 잡힌 느낌이 전체적으로 드는 남자였다.
그 영술원에서는 볼 수 없는 이질적인 모습에 나를 비롯한 학생들이 전원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담담한 분위기였다.
"이런 일은 자주 겪였으니까."
그의 담담한 태도는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참을수 없는 기분이 치밀어오른 나는, 일부러 영력을 손에 담아 박수를 쳤다.
박수소리가 깊고 넓게 퍼지게 하도록.
그렇게 내가 박수를 치자 그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박수를 치기 시작해, 결국 여기에 있는 모두가 박수를 치게 되었다.
그 현상에 내가 흐뭇해하고 있자, 그가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눈을 돌렸다.
초점없는 눈동자, 그런데도 그 눈이 자신을 보고있다고 느껴진다.
그런 그에게 나는 씩 웃어주었다.
2)
이후 그의 수업을 들었다.
그가 가르치는 것은 현세에 대한 것.
전반적으로 민초의 삶을 이야기 했으나, 살아생전에 들었던 풍문이나 전설 등도 이야기를 해가며 수업을 가르쳤다.
현세에 대한 것은 처음 들으므로 확실히 흥미로웠지만, 단지 그것 뿐만이 아닌 그의 가르치는 방법 또한 재미있었다.
단순히 앞에서 떠들고 있는 것 뿐이 아니다.
학생들의 집중의 완급을 가늠해 시기적절하게 화제를 전환하고 이야기를 한다.
덕분에 처음에는 이질적인 그의 외모에 거부감으 느끼던 학생들도 지금은 그의 수업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얼마전 휴일 때 오랜만에 쿠우가쿠와 만나고 왔다.
그녀석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새로온 선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자 쿠우가쿠가 말했다.
"아아, 큰 오라버니 말이군."
"큰 오라버니?"
가라사대, 쿠우가쿠나 시즈카 언니가 자주 이야기하던 남자가 바로 선생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호오하면서 그와 동시에 납득했다.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는데 그것이 쿠우가쿠나 다른 시바가 사람들에게 들어와서 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쿠우가쿠와 해어져 영술원에 복귀하자 복도에서 선생을 만났다.
"아, 저번의 그 학생이시군요. 박수를 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여전히 이질적이고 위압감이 넘치는 외형이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그에 대한 나쁜 인상은 얻기 힘들었다.
뭐라고 할까, 쿠우가쿠나 시바가의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 늘상하던 말인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라는 녀석 때문인가?
확실히 외형은 무척이나 이질적인데도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 차분하고 세련된 느낌을 얻는다.
그것은 그의 어투가 조금 낮으면서도 차분한 것도 있겠지만, 정중하고 당당한 태도 때문이리라.
이질적인 외모를 지녔다면 어딘지 모르게 날카롭거나 신경질, 혹은 위축된 태도를 보이기 마련인데 그는 그러한 것이 전혀 없었다.
이런 남자에게라면 틀림없이 좋은 가르침을 받으리라.
3)
학생들에게는 원칙적으로 금주령이 내려져있다.
하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원칙일 뿐으로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선생들이나 다른이들의 눈을 피하며 음주를 즐긴다.
그것은 나 또한 예외는 아니기에 처음에는 몰래 담을 넘거나 하는 식으로 음주를 즐겨왔다.
그러던 어느날 담을 넘으려던차에 인기척이 느껴졌기에 그곳을 보았다.
조용히 툇마루에 앉아 출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선생이었다.
그런데 평소의 차분하고 정중한 태도로는 도무지 상상가지않는 모습이다.
사발에 술을 콸콸 따른다음 무슨 맹물을 마시는것 마냥 벌컥벌컥 마신다.
그 모습은 마치 농사를 짓고난 뒤에 술을 마시는 농민(그의 수업에 들은 내용)을 연상시켜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그 직후 문득 장난끼가 발동한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뭘 그렇게 맛있게 먹나?"
"시호인 학생입니까?"
나의 조용한 접근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은 선생은 "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에 내가 "나도 한잔 받을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았다.
자, 이 매사에 진지한 남자는 과연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원칙을 중시해 안된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
그렇게 생각할 무렵 선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사발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사발을 무심코 받으니 그 안에 콸콸하고 호쾌하게 술을 따르는 선생.
"사귐에는 인색하지 않습니다."
매사에 진지한 선생이었기에 분명 금주를 말할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술을 권했다.
이후 술이 생각나곤 할때면 그를 찾아가는 것이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4)
그날도 여느날처럼 선생에게 술을 권하려고 방문하던 때였다.
평소 조용한 선생의 숙소에 도착하자 들리는 것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
무슨소리인가 하면서 다가가니 그곳에는 선생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화려하지도 않다.
세련되지도 않다.
단순하고 실리적인 움직임.
하지만 그 단순한 움직임에 눈을 떼지 못했다.
땀을 비산시키며 검을 휘두르는 선생의 얼굴에 미소가 눈에 들어온다.
검로가 달빛을 가르는 것이 눈에 들어오며, 기예가 바람을 자르는게 눈에 들어온다.
저것이 선생의 검술.
선생이 검무를 춘다.
그것은 자신으로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수준 높은 검술이었다.
5)
선생의 검무를 본 뒤로 마음이 심란해졌다.
외팔에 장님이었기에ㅡ 거기다 영력마저 매우 미약한 선생이었기에 마음 한구석에는 무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어쩌면 자신은 그를 자신보다 낮은 사람이라 여기고 동정과도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와중이었기에 그 충격이 더 컸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그 추악한 면을 깨닫고는 한동안 마음고생을 좀 했다.
하지만, 이후에 웃으며 "시호인 학생."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선생을 보고는 이후 마음을 추스리며 그 감정을 모두 털어냈다.
생각해보면 이 유서깊은 진앙영술원의 선생으로 온 것 자체가 뭔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자신은 그에게서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고ㅡ 그를 선생으로서 인정했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니 무겁던 마음이 금세 가벼워짐을 느낀다.
오늘은 술이 마시고 싶은걸?
그런 감상으로 그의 숙소에 들어가니, 오늘은 드물게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보이는 것은 검은 표지의 『업무일지』라고 적혀있는 책자 한권.
……이것은 분명히 그거다.
봐도 좋은 것이기에 이리도 눈에 띄는 곳에 놔둔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읽어봐도 상관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일지를 펼친다.
처음에는 딱딱한 사무적인 내용일거라 생각했으나, 이 일지는 일기라는 느낌이 강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영술원 생활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이야기.
그중 몇몇은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호오, 선생은 나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단 말이군.
거의 대부분이 칭찬일색인 나의 평가에 흐뭇해하며 읽던 와중 『필살기』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하핫, 선생 아무리 그래도 필살기라는 말에 속지말게.
엉뚱한 그의 생각에 웃음을 터트렸으나, 곧이어 다음장에 그에게 필살기라는 것을 알려준 친구들이 거짓을 말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응징을 가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거기서 장난을 치고 싶어진 나는 『필살기를 만들었다』라고 적어놓았다.
선생이 이걸 읽고 뭐라고 할지 기대구만.
6)
결과적으로 금주령이 내려졌다.
단호하게 금주를 말한 선생이었지만, 그에게 감사한다.
솔직히 공적인 의미에서 일지를, 그리고 사적인 의미에서 일기를 훔쳐본데다가 장난까지 쳐놓은 것이다.
그때는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으나 이후 차분히 생각해보니 이것은 과연 질나쁜 장난이다.
때문에 그가 일지를 들고 왔을때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휴라는 느낌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가벼운 판결을 내렸다.
무엇이든 받아줄 것 같은 분위기의 이 선생.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생 분위기』로 통하는 이 분위기와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무심코 안심해버린 나는 멀어져가는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신경 쓰이는 사람의 일기를 보면, 열어보고싶잖아."
그것이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