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창파(萬頃蒼波) 5화
그, 시바 카이엔은 언뜻 보기에는 불성실하고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에 무책임하며 게으르게 보이며, 기본적으로 미간의 주름이 깊기 때문에 항상 인상을 쓰고있어 보여, 퉁명스러운 얼굴과 가벼운 말투 덕분에 그 점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런 외향과는 다르게 자신이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며 그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한다.
또한, 퉁명스럽고 가벼운 말투지만 그 안에는 타인을 배려하고 걱정하고 위해주는 그의 성격이 은연중에 배어나오기에 듣는 사람이 불편해하지 않는다.
거기에 부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카이엔이었기에 따르는 사람은 부지기수.
그녀, 쿠치키 루키아도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4대 귀족가문인 쿠치키 가의 양녀가 된 뒤로, 수많은 귀족들과 사신들을 만나 위축되어왔었다.
그 와중에 만난 허물없는 태도의 카이엔은 그녀에게 일종의 우상이자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오라비인 쿠치키 바쿠야의 경우는 카이엔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눈치였으나, 카이엔은 그에 상관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방식으로 루키아를 대하며 이것저것 가르쳤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아내인 시바 미야코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쿠치키 루키아는 시바 카이엔과 미야코 부부를 존경하며 따랐다.
때문에 그녀는 간혹가다가 카이엔이 언급하고는 하는 "형님"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가라사대, 신념이 곧고 의지가 강하다.
카이엔이 말해준 그의 몇몇 이야기를 보면, 그의 누나인 시바 시즈카의 위기 때 도움을 주다 팔을 잃었다던가, 그럼에도 재기한뒤 노력해서 사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기에 어느날, "그럼 그분은 어느정도 강한가요?"라는 물음에 카이엔은 "누구보다 강하지, 하지만 누구보다 약하기도하다."라는 알송달송한 답변만을 해줬을 뿐이었다.
솔직히, 자신이 존경하는 카이엔이 존경하고 동경하는 사람이란 과연 어떠한 남자일까?
그것이 참을 수 없이 궁금했던 그녀는 어느날 그를 만나고 온다는 카이엔의 말에 몰래 미행을 했다.
도착한 곳은 어느 호수가.
그곳에 위차한 모옥에 카이엔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를 뜬뒤, 나중에 혼자 시간을 내서 방문해봤다.
갑자기 방문하는 것은 폐가 아닐까?
이 일이 만약 카이엔님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오만가지 생각이 그녀의 머리속을 괴롭혔지만,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만났다.
◆
쿠치키 바쿠야는 대체로 완벽에 가까운 남자였다.
4대귀족 가문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대장이라는 직위를 가졌으며, 가문은 그 4대귀족 가문에 본인이 당주이다.
매사에 진지하여 진중한 태도와 성실한 자세로 존경받으며, 무뚝뚝하고 붙임성 없는 성격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좋은 느낌으로 여성 사신들에게 부각되어 인기도 많다.
그런 남성 여성 가리지 않고 존경과 동경의 대상이 되는 쿠치키 바쿠야에게도 한가지 고민이 있다면 그것은 루키아에 대한 것이었다.
히사나가 죽으며 했던 부탁.
그것으로 인해서 찾아낸 루키아는 그에게 있어서 껄끄러운 대상이었다.
그것은 귀찮다던가 그런 의미의 껄끄러움이 아니었다.
본디 4대귀족가문이라는 거대한 가문의 남자가 루콘가의 주민을 아내로 삼는것이 쉬울리가 없었다.
바쿠야는 가문의 일원들과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히사나와의 결혼을 강행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무덤에서 맹새했던 것이다.
자신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은 이번 뿐이라고…….
그런데 루키아를 자신의 동생으로 삼았다.
그리고 히사나는 루키아에게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쿠치키 히사나의 유일한 혈육.
그러한 존재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자신은 루키아를 데려오며 너무 많은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귀족으로서의 의무도, 루키아 본인의 인간관계에도, 4대귀족가문이라는 쿠치키 가문의 명예에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히사나에 대해서도ㅡ
ㅡ쿠치키 바쿠야는 어긋나 버렸다.
히사나의 부탁으로 찾아낸 루키아를 보고, 히사나를 떠올린 탓에 감성적으로 변해 강행으로 가문의 일원으로 삼은 탓에 그녀는 이전의 루콘가에서 맺은 인간관계가 무너져버렸다.
거기에 다른 가문의 일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받아들인 탓에 가문 내에서도 루키아에 대한 태도는 좋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그는 루키아에게 거리감을 두고 꺼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유일하게 기댈 만한 곳은 의외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남자였다.
스스로가 무엇을 하는지도, 무슨 말을 듣는지도 인식하지 못한채 그저 같은 말만 반복하는 남자.
하지만 그렇기에 바쿠야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 히사나가 자신도 모르게 고민을 털어놨다라고 하는 것이 거짓은 아닌지 어느새 이렇게 되었다.
남자와 있다보면,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 내용은 가지각색으로 현 사신계와 자신의 개인적 견해부터 시작해 시시콜콜한 개인사도 있었다.
그리고 물론, 거기에는 쿠치키 루키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별거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히사나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의 마지막 부탁, 그리고 그 이후 루키아와의 관계에 대한 어려운 점 등 이었다.
그것은 평소와 똑같은 말이었으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남자에게 닿는 일은 없기에 매번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한다.
그럼에도 답답하지 않고 후련하다고 느끼는 것은 평소 깊숙히 숨겨둔 이야기를 속시원히 말했기 때문인가.
그렇기에 바쿠야는 오늘도 남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모옥의 반대편에 루키아가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말이다.
◆
"오라버니……."
쿠치키 루키아는 진실을 들었다.
단순히 히사나님ㅡ, 아니 언니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쿠치키 가문의 양녀가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진실은 달랐다.
그녀의 오라비인 바쿠야는 순전히 히사나와 닮은 자신을 양녀로 삼은 것이기에 평소의 무뚝뚝하고 차가운 태도는 그것이 이유라 여겼건만, 쿠치키 바쿠야는 루키아를 확실히 보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도 기쁘고 행복했던지라, 루키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것도 어쩌면 그 "형님"이라는 남자 덕분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살피려다, 바쿠야와 눈이 마주쳤다.
"…………."
"…………."
둘은 서로 말이 없었다.
루키아가 침묵하는 이유야 앞서 말한바와 같았지만, 바쿠야의 경우는 달랐다.
자신의 생각이 들킨데다, 히사나에 대한 것도 알려졌기에 심란해진 바쿠야는 "어째서 자신이 루키아의 기척을 잡아내지 못했나?"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이내, 이 모옥에는 매우 교묘하게 기척을 차단하는 귀도술 결계가 쳐져있음을 알았다.
아마, 이 귀도술 덕분에 모옥이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았던 것이리라.
아마, 자신이 대장이었으며 이 모옥을 확실히 찾을 의사가 있었기에 자신에게는 모옥이 보였던 것이리라.
하지만, 어째서 이런 결계가 펼쳐져 있단 말인가?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의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곳을 은신처로 삼는다면 찾기 힘들겠군."이라는 지극히 실리적인 업무적 사고 또한 했다.
◆
호로는 죽어가고 있었다.
참백도를 하루에 한개에 한해서 무효화 할 수 있는데다, 사신에게 기생해 그의 힘과 능력 그리고 기억마저 지배하는 그 힘의 특성으로 여기까지 버텼으나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다.
바로 한시간 전에 싸웠던 사신들도 간신히 죽이거나 쫓아내는데 성공했으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호로에게 하나의 모옥이 보였다.
호로가 그 모옥을 본 것은 순전히 우연.
대장급마저 일시적이나마 속였던 결계다, 일개 호로 따위가 알아챌 허술한 녀석이 아니지.
히사나의 경우는 모옥에 인식장애 결계가 쳐지기 전으로, 사실 이 결계는 히사나가 모옥에 찾아온 것을 알고, 이대로 두면 그를 숨기는데 제한이 생길것이라 생각한 우노하나가 자신의 지인의 도움으로 친 것이다.
그런 결계인데 일개 호로가 발견할 수 있을리 없었다.
그것은 즉ㅡ, 『외부의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
"드디어 시작인가?"
은신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호로가 모옥에 점차 다가가는 것을 본 『외부의 요인』이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
그 남자는ㅡ 틀림없이 『그』의 꿈속에서 『붕옥』이라는 물질을 건낸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