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십가(駑馬十駕) 7화
ㅡ지익!
볼에 스치듯 피부가 살짝 베인다.
상대의 가공할만한 속도를 따라잡기위한 최소 최단의 움직임은 나뭇잎 한장의 차이로 디에즈 에스파다의 검을 피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최단의 움직임으로 검을 휘두른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서 자신은 '미리' 최소 최단의 움직임을 취한다.
그 덕분에 간신히 도달하는 속도의 벽.
ㅡ카강! 카강!
검에 불꽃이 튄다.
정면에서 부딪히면 검채로 베이거나 날이 상할 우려가 있기에 스치듯이 흘려넣지만, 그래도 완전할 수는 없기에 불꽃이 튄다.
스승님께서 만들어주신 천타는 솔직히 말하자면 명검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작품.
단순히 영력분해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하급호로의 일부와 다른 천타들의 검신으로 쓰이는 금속을 합성해 만들었다고 알려주셨던 이 검은 그러한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원명에 의하면, 이 검은 기본적으로 그 두가지를 사용하지만, 여기에는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다.
살기석.
정령정을 감싸고있는 장벽을 비롯하여, 참죄궁, 함리동에 이르기까지ㅡ 『영력의 차단이 필요한 곳에 쓰이는 특수한 물질』인 이 살기석이 들어간 것이다.
살기석은 물리적이나 고영력의 충격이라면 무용지물이지만, 기본적으로 영력을 차단해주는 성질 때문에 그 가치가 이루 말 할 것도 없는 물질이다.
이 물질을 채취할 수 있는 곳은 소울소사이어티에서도 극히 드물며, 그 양도 한정되어 있어서 소량이라 할 지라도 그것을 사사로히 쓸 수 없다.
그런데 자신의 천타에는 이 살기석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살기석이 있었기에 단순히 신체의 일부분만 사용한 천타라 할지라도 영력적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가 최초의 여화침입 사건때 디에즈의 이에로 상태인 피부를 벨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러한 효과를 지닌 살기석을 구하기까지 과연 스승님의 노고는 얼마나 컸단 말인가?
전 11번대 대장이라는 직함 따위, 시바 가문의 일원(비록 방계였지만)이라는 직함 따위는 도움이 되질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살기석을 구해오셔서 천타를 만들어 주셨다.
제자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한마디도 하시지 않고 말이다.
이 검은 이러한 검이다.
그런 검이 날이 상하고, 삐걱삐걱 비명을 토해내고 있다.
천타에 쓰이는 특수한 금속과 영자분해 호로의 일부, 그리고 살기석이라는 성분 덕분에 디에즈의 강한 적살력의 검을 막아내고 있는 이 천타.
이것을 더이상 상하게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하야나기는 도박을 하기로 했다.
ㅡ캉!
강하게 검을 흘려 튕겨낸 하야나기의 몸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순보인가?!'
일순 시야에서 놓친 탓에 살짝 동요한 디에즈였으나, 그것은 극히 짧은 시간.
오히려 약간의 흥분을 느끼며 주변을 살핀다.
그러다 이내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넷, 아니 다섯인가?'
그의 예민한 감각은 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보로 모습이 안보이도록 고속으로 움직이는 하야나기.
그의 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그 수가 4명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
쿠치키 바쿠야는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그는 언제나와 같이 냉철하고 침착한 이성으로 상황에 맞는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대원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정비가 끝나는대로 재공격을 감행할 생각이었다.
시바 카이엔과 그(하야나기)의 현상태가 어떨지 걱정이되면서도,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다급한 마음이 그를 재촉했으나, 그는 어니까지나 냉철한 이성을 지닌 대장이었기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비가 끝났다고 여기고 재출격을 하려던 찰나ㅡ 『그』가 나타났다.
"안녕하신가, 쿠치키 바쿠야 대장."
나타난 것은 노인.
각자 자신의 참백도를 해방한 상태에서 사기가 오른 석관들 사이를 태연하게 걸어온 노인은 틀림없이 이상한 존재였다.
총대장님처럼 강대한 힘이 있는것 같지는 않다.
단지 영력이 루콘가 주민들보다 약간 많은 정도인 평범한 노인.
인자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자글자글한 주름도, 그 편안한 말투와 따뜻한 태도도 동네를 뒤져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작전 중인 이 시점에 이 장소에 나타난 것이 평범한 노인일리 없다.
적어도 호로는 아니다, 라는 것은 알아차렸기에 바로 제제를 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경계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누구십니까?"
평범한 노인 같았으나, 그 분위기는 온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강압적인 느낌.
이것이 남들의 위에 서는 자들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임을 알아챈 바쿠야가 묻자 노인은 조용히 그에게 다가섰다.
"이거, 미안하군. 이름은 사정상 알려줄 수 없네만 이건 보여줄 수 있지."
그렇게 말하며 노인이 내민 것은 하나의 패였다.
그것은 신분을 증명하는 패.
그 패를 확인한 바쿠야는 평소의 냉철한 표정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정도로 놀란 표정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그의 태도에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중앙46실의 일원 중에 한명으로, 나의 권한에 의거하여 이번 자네들의 작전에 동행하고자 한다네."
"작전의 동행이십니까? 어째서, 중앙46실의 분께서?"
"호오ㅡ 그것은 즉, 일개 대장인 그대가 중앙46실의 결정을 묻는다는 건가?"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길."
어떠한 작전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행동 중이더라도, 중앙46실이 내린 결정은 일개 대장 따위가 번복하거나 물어볼 수는 없는 문제였다.
그렇기에 입을 다문 바쿠야는 실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어째서 중앙46실의 일원이 여기에 나타났는가?
어째서 중앙46실의 일원이 자신을 밝힌 것인가?
어째서 중앙46실의 일원이 자신들의 재공격에 합류하려 하는가?
수많은 의문이 그를 고뇌하게 하였으나, 바쿠야는 이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 외쳤다.
"출격이다!"
바쿠야의 복잡한 심경에 상관없이 기세등등하게 출발하는 석관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노인ㅡ 시바가를 멸문시켰던 『그』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