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왕자와 왕녀의 꿈의 조각
다음날, 나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어제의 벚꽃숲에 갔다.
내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막연한 안개를, 어제의 그 곳에 가면 풀수 있는게 아닐까.
아무 근거도 없는 제멋대로인 망상을 안고, 단지 묵묵히 걸었다.
머지않아 어제의 장소에 도착해, 나는 내 희미한 기대가 배신당했다고 안다.
무너진 잡동사니는 이미 없고, 파헤쳐진 구멍도 누군가에 의해 메워져 있었다.
다른 지면과 약간 색이 다르다는 것 만이 어제 사건의 흔적이다.
아마도 어제 정원사가 정리했겠지.
「제길」
누구에 대해 한 욕이었는가.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그곳을 떠나려 발꿈치를 돌려, 몆 걸음 걷고 나서 멈춰섰다.
어깨 너머를 돌아보고, 한번 더 색이 바뀐 지면을 바라보았다.
오늘이라는 날이 느긋하게 끝나려 하는 시각에 나는 간신히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성벽에 사용할 것이었을 벽돌, 바닥에 구멍이 뚫린 물통.
정원에서 사용하는 말뚝에 낡아빠진 판자, 그리고 구멍을 파기 위한 삽.
어제의 오브제보다는 멋있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성 주위에 해자처럼 판 구멍에 옮겨 온 물을 찰랑찰랑 따른다.
근처 분수에서 옮겨오는 것 만으로도 중노동이다.
스와지크는 그걸 어제 혼자서 힘내 여기까지 가져왔다 생각하자, 정말로 딱한 짓을 했다고 실감했다.
「흐흥, 어제의 묘한 잡동사니보다는 훨씬 멋지잖아」
변명처럼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황급히 주위를 둘러본다.
누구도 듣지 않은 것에 안심하면서도 그 소녀가 결국 나타나지 않았던 것에 약간 낙담한다.
나는 손에 진흙을 묻힌 채, 내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또 다음 날의 저녁, 나는 나에게 여러가지로 변명을 하며 벚꽃숲의 그곳으로 갔다.
내가 모은 잡동사니는 어제와는 달리 버려지지도 않고 그곳에 있다.
단지 하나 다른 것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후처럼 엄청나게 부숴져 있다는 것 뿐.
아마도 스와지크가 낮에 이곳을 지나갔을 때라던가 부순 거겠지.
나는 어째선지 갑자기 싱글벙글하며, 이번은 간단히 부숴지지 않도록 석재를 넉넉히 사용해 성의 보강을 시작했다.
굴도 어제보다도 두 배는 깊게 파고 폭도 넓혔고, 성 꼭대기에는 고딘가의 기를 세우기도 했다.
이걸 본 스와지크가 분노한 나머지 이 잡동사니 성에 돌격해 오는 모습을 상상한다.
아마도 그 아가씨론 부수는데 상당히 고생하겠지.
오래간만에 느끼는 의미불명한 고양감을 느끼면서, 나는 히죽거리며 방에 돌아갔다.
그 성을 땀을 물처럼 흘리며 부수고 있는 스와지크를 보고 웃어주려고 생각해, 나는 점심을 재빠르게 끝낸 후 황급히 벚꽃숲에 갔다.
그곳은 성벽 그늘에 숨어 있으면 몰래 관찰할 수 있을 터.
조금이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하지 않으면, 중요한 스와지크의 분투를 볼 수 없다.
나는 엇갈려가는 시녀나 위사를 무시하고 쏜살같이 목적지로 계속 달려갔다.
차오르는 숨을 정돈하며 성벽에 등을 맡겨, 살짝 벚꽃숲을 들여다본다.
조금 멀지만 그 잡동사니 성이 보였다.
잘 관찰해 보자면, 아무래도 이미 부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허탕친 듯한 마음으로 성의 수복에 착수했다.
오후가 되자마자 와도 늦었다는 건, 아침에 부수러 왔다는 거겠지.
오전은 스와지크도 가정교사 수업이 있겠지만, 상대는 그걸 어떻게든 클리어해 부수러 왔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나도 오전중에 이곳에 올 뿐이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예정되어 있던 수업을 꾀병으로 쉬고 내 방 창문에서 밖으로 살짝 빠져나왔다.
이 시간이라면 스와지크는 아직 분투중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 나는 한결같이 성벽의 그늘을 목표로 달린다.
머지않아 성벽 그늘에 도착한 나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 벚꽃숲을 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어제 만든 성의 모습은 이미 없다.
나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잡동사니 성에 갔다.
어질러진 쓰레기 위에 내던져져 있는 고딘가의 깃발.
「말도 안 되잖아? 이 시간에 부숴져 있다니, 설마 한밤중에 와서 부순건가?」
지기만 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3번째의 축성에 착수했다.
그날 밤 시녀들이 떠나간 후, 나는 아침처럼 창문으로 살짝 빠져나왔다.
양 손에는 모포와 물통, 빵을 하나.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나는 단지 벚꽃숲을 목표로 한다.
어둠에 감싸인 왕궁은 매우 조용해져서, 낮의 소란스러움을 일절 느끼게 하지 않는다.
먼 화톳불의 희미한 빛으로 비춰진 발가를, 흠칫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둠 속, 희미하게 보이는 분홍색 숲 속, 내가 만든 성 앞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
설마 싶으면서도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간다.
설마는 어쩌면이 되고, 역시로 바뀌었다.
「이런 시간에 뭘 하는거야.......」
「!!」
내 목소리에 잡동사니 앞에 웅크리고 있던 소녀는 어깨를 흠칫거리며 뒤돌아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 은빛의 소녀는 나를 바라본다.
아마도, 나도 같은 표정으로 그녀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겠지.
말없이 잠시 서로 바라보고, 그리고 스와지크는 5살의 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한숨을 쉰다.
「후우, 뭔가 일이 있나, 상것」
「그, 그다지 너에게 뭔가 볼일은 없다고. 나는 그 잡동사니를 매번 정중하게 해체하고 있는 바보를 보러 왔을 뿐이야」
「흥! 이딴 걸 내버려 두다니, 예의가 없는 상것이구나」
「그 잡동사니에 집착하는 바보도 광대같아서 볼만하구만」
서로가 서로를 욕한다.
하지만 그 말에 흉흉함은 없고, 그 행동에 거절은 없다.
나는 형들이 없어져서 외로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달빛에 비춰진 은빛의 천사는, 어둡고 차가운 고독한 밤에 희미한 온기를 바래 이곳에 있었겠지.
스와지크를 보자면 두꺼운 가디건을 걸쳤을 뿐이고, 그 아래에는 얇은 네글리제 뿐이었다.
이미 봄이라고는 해도 아직 밤은 춥다.
거기에 네글리제의 옷자락은 물로 흠뻑 젖어있다.
나는 들고 있던 모포를 그녀의 어깨에 살짝 걸쳐준다.
그 사이 스와지크는 딴데를 보고 있기는 했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문득 잡동사니 성을 보자, 그 옆에 고양이를 누일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파져 있었다.
삽 같은 건 없고, 대신 도자기 그릇으로 파던 상태.
그 옆에는 분수에서 길어 왔을 물통이 있었다.
「뭐야, 그 구멍. 또 함정이라도 만들려 한 건가?」
「뭣! 함정따위 누가 팠느냐! 이건 류나스 호수다!」
「하아?」
스와지크는 어쩐지 자랑스러운 듯이 가슴을 펴고, 그 류나스 호수라는 이름의 구멍을 해설하기 시작했다.
볼프가의 본성 서쪽에 펼쳐져 있다는 커다란 거리가 세 개 정도 들어가는 호수.
그 투명도는 10m 깊이의 호수 바닥조차 희미하게 보인다고 한다.
스와지크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하는 호수인것 같다.
「이 왕궁 북동쪽에도 호수라면 있다고?」
「저건 안 된다. 좀 더 투명하고 차갑다고」
「헤에. 그래서, 어째서 그걸 여기에 파려고 한 거지?」
「아, 아무것도. 단지 왠지 모르게」
어째선지 분해 보이는 표정으로 딴데를 보는 스와지크.
그 순간, 꼬르르르륵 하는 귀여운 소리가 들렸다.
「배, 고프냐?」
「.......」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주저하며 수긍한다.
그녀의 행동에 무심코 낄낄거리며 나는 가져 온 빵과 물통을 내밀었다.
「......고, 고마.......」
스러질 것 같은 목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린 것 같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어째선지 스와지크는 갑자기 삐진 듯이 가까이의 벚나무 아래에 가 쪼그려 앉는다.
건네준 빵을 무릎 위에 얹어, 물통을 옆에 두고 내 야식을 조금씩 품위있게 입으로 옮긴다.
나는 혼자서 서 있는것도 바보같으므로 스와지크가 앉은 옆에 앉았다.
「어이, 천한 것」
「뭐냐, 바보」
「너는 누구지?」
「풋, 거기부터냐?!」
「나는! ......나는 이 왕궁을 잘 모른다. 네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누구냐고 묻고 있는 거다. 영광으로 생각하거라」
「나는 네 오빠야」
「나한테 오빠따윈 없다」
자기소개 처음부터 전부 부정당했다.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나는 기본적인 것을 처음부터 설명한다.
고딘가의 일족, 볼프가와의 혼인관계, 그리고 스와지크가 내 의매라는 것도.
「그런가. 나는 아무것도 몰랐구나.......」
5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말투와 행동으로 하늘에 떠오른 은빛 달을 올려다본다.
그 모습은 어둠에 녹아버릴 것 같고, 굉장히 덧없었다.
「네 어머님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신건가?」
「어머님은......볼프가만 기억하고 있으면 좋다 하셨다. 볼프가의 영지를 알고 있으면 좋다고. 그 이외는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하셨다」
「그거 심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나는 그걸로 괜찮다. 어머님이 웃어 주신다면, 그게 기쁘다. 그러니까 그 외의 일은 몰라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올려다보던 시선을 천천히 떨어뜨리고 내 얼굴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스와지크는 확실히 웃고 있었다.
「이 왕궁 녀석들은 전부 싫다. 너도 싫다. 얼굴이나 몸도 발도, 정말로 아팠고」
「그, 그건 사과할게. 미안」
「어쩔 수 없지. 사면해 주겠노라」
「뭐가 뭔지」
서로 낄낄 웃으면서 둘이서 밤하늘의 달을 보았다.
그건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두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둘만의 비밀의 시간.
「그런데, 나는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레이첼에게 혼나 버린다」
「그 시녀, 좋은 애구나」
「응. 레이첼은 화내면 무섭지만. 그래도 상냥하니까 정말 좋아한다. 뭐라 해도 레이첼과 나는, 친구라는 거니까 말이지!」
「그건 정말 부러운걸」
「뭐, 너도 싫으니까 보통 정도의 관계라고는 해 줘도 괜찮다」
「그건 영광의 극치군요, 마이 페어 레이디」
스와지크가 벌떡 일어서, 어깨에 걸쳐져 있던 모포와 물통을 대충 돌려준다.
내가 그걸 공손히 받자, 영문도 모르고 서로 크게 웃었다.
한바탕 다 웃자,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바라본다.
스와지크는 빙긋 미소짓고 작게 손을 흔든다.
「그러면 내일 보지. 에에, 페이탈 오라버니」
「그래, 내일 보자 스와지크. 그리고 그 호칭, 길다면 페이 오빠로도 괜찮아」
「그런가. 그러면, 페이 오라버니. 안녕히 주무세요」
다음날 오후,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벚꽃숲을 향해 걸어간다.
어제의 조잡한 호수, 좀 더 제대로 해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라던가 생각하고 있었다.
벚꽃잎은 이미 대부분 졌고, 밝은 녹색 잎이 군데군데 보이고 있다.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면서 한쪽 발로 번갈아 뛸 기세로 잡동사니 성에 향했다.
「......어, 어째서?」
눈 앞에 있는 것은 어젯밤 둘이서 앉은 벚나무.
여기에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둘이서 만들려 한 잡동사니 성과 스와지크가 한 번쯤 보고 싶다고 한 류나스 호수를 본뜬 구멍.
그것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단지 멍하니 그곳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스와지크가 이 왕궁을 떠나 별궁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 후 머지않은 일.
그리고 그녀와 재회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 스와지크의 어머니가 자살한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