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흑발의 소녀와 은발의 소녀
길거리에서 만난 프렌다와 헤어지고, 나는 잠시 골목 안에서 진정될 때까지 멍하니 있기로 했다.
조금 어슴푸레한 느낌이어서 사람도 걷지 않으니까, 부은 얼굴로 있어도 그다지 부끄럽지 않다.
물론, 그래도 운 얼굴이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모자를 푹 쓰고 그저 눈에 띄지 않도록 나무 상자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양 손으로 꽉 잡고 있는 과일의 새콤달콤한 향기가 코를 간질이지만, 이건 가지고 돌아가서 소중하게 먹으려고 생각한다.
지나가는 길의 소녀의 상냥함에 미소지으며, 울고 웃은 얼굴을 보면 절대로 걸린다고 생각하니까 쪼그려 앉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하아, 이 정도의 일로 침울해하면, 이 앞이 걱정되는걸. 바깥 사람은 엄마가 죽고 나서 줄곧 이런 느낌으로 살아온 걸까? 줄곧 외톨이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누구라도 이해할 수 없는......인가」
바깥 사람의 모친은, 볼프 가를 쫒기듯이 나와 이 고딘 왕국에 정실로서 시집간 것 같다.
당시의 임금님은, 란돌프 가(제국의 유력한 백작가로, 황제의 조금 먼 친척)에서 시집들어온 정실을 막 잃은 참이었다.
당연히, 임금님이나 주위 귀족들의 기분도 거스르는 결혼이었다는 것 같다.
거기에 페이 오빠의 엄마는, 굉장히 유능한 사람으로 주위에서 굉장히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 같다.
그 상심도 낫지 않았는데, 누구인지도 모르는 남자의 씨앗을 밴 창녀를, 속국이라고는 해도 한 나라의 주인에게 강요한다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 같다.
하지만, 중앙에서의 압력이 나날이 증가해 전운이 가득 한 시기에, 맹주국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을 수 없어서 괴로운 선택이었다는 것 같다.
이 당시의 이야기는 미샤에게서 배웠지만 말이지.
그러니까 바깥 사람의 엄마는, 나라 전체의 귀족들에게서 기피받았다.
그 딸인 바깥 사람도, 부모 모를 부정한 아이라고 공공연하게 깔봐지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바깥 사람처럼 화풀이라던가 할 수 없으니 말이지. 페이 오빠나 다른 모두들도 여러가지로 고생하는 것 같고. 나만 얌전하게 있는걸로 전부 잘 된다면, 그것도 좋나.......」
간신히 눈물도 멈췄고, 기분적으로도 상당히 나아졌다.
큰 일이 되기 전에 성으로 살짝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그렇게 생각해 일어나려 했을 때, 눈 앞에 동갑이나 조금 위인 여자아이가 이쪽을 보고 멍하니 서 있었다.
흑요석처럼 예쁜 흑발을 세 가닥으로 땋고 뒤로 모아, 입은 옷은 어딘가의 명가를 받드는 메이드같았다.
그녀는 그 사랑스러운 갈색 눈을 한껏 뜨고, 그 시선은 나를 꽉 잡고 놓지 않았다.
눈 앞에 서 있으므로, 당연히 나는 나무상자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의미도 모르는 채 그 여자아이에게 가만히 계속 보아지고 있었다.
1분 정도 상대가 이쪽을 쭉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아서, 나는 조심조심 말을 걸기로 했다.
「저, 저어. 뭔가 볼일이 있으신가요?」
「...아, 아뇨. 단지 지인과 굉장히 닮아서 깜짝 놀랐을 뿐이에요」
「아, 그런가요. 세상엔 자신은 닮은 사람이 세 명은 있다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가요?」
「아, 아뇨. 말의 재치라고 할까, 격언이라고 할까. 그런 거에요」
내가 일어서고 싶어한다는 걸 깨닫고, 그 흑발의 소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주었다.
나무 상자에서 내려와 엉덩이에 붙은 톱밥을 털어내고, 미소지으며 소녀를 향해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감사받을 일은 하지 않았어요. 어느쪽이냐고 하면 방해한 건 저 쪽이고요」
「으응ㅡ 그래도 역시, 고맙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지만 말이야」
「이상한 분이시군요」
「만나자마자 가만히 보던 사람에게 듣고 싶진 않아ㅡ 하하하」
「그렇네요. 저도 이상할지도 몰라요」
외로운 듯이 후후후, 하고 웃는 그 미소에, 어쩐지 희미한 그림자와 같은 것을 느꼈다.
조금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초대면의 사람에게 갑자기 뭔가 고민이 있나요, 라고 물을 수도 없으니 패스.
이상한 사람이구나아, 하고는 생각했지만 스쳐지나가며 만난 사람에게 대해 말할 말도 아니고, 빨리 성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나는 손을 탁 들어, 이별을 고하고 떠나가려 했다.
「그러면, 나는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집? 집이 있나요?」
「그거야 돌아갈 집 하나 정도 없으면 살아갈 수 없고 말이지」
「아, 그, 그렇네요. 당연하죠. 저도 참 무슨 소리를 하는지」
붉어진 뺨을 누르며 당황하는 소녀를 보고, 나는 조금 마음이 풀어졌다.
응ㅡ 어쩐지 아니스와는 다른 방향으로 천연이라고 할까, 좋은 느낌인 사람이구나.
싱글거리는 나를 보고, 그 소녀도 자신의 당황하는 행동이 부끄러운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원래대로라면 이름 하나라도 듣고 사이가 좋아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안 되는 일.
「그러면,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작별이네」
「에, 네에. 그렇네요」
가볍게 손을 흔들고 나는 그 사람에게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좁은 골목을 지나 정문을 향해 걸었다.
길에 줄선 처마끝에서는 점심 준비를 하는지, 뭔가 굽는 냄새나 맛있어 보이는 고기의 냄새가 감돈다.
으~ 우울한 기분으로 권태로운 기분일 텐데, 왜 배만은 욕망에 정직한걸까?
나는 흐를 것 같은 침을 꿀꺽 삼키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갔다.
배는 비었지만 돌아가면 뭔가 먹을 수 있고, 참자, 참아.
「.......」
「.......」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이미 민가를 빠져나와 창고 거리니까, 슬슬 고기 냄새도 코에서 떨어지면 좋을텐데.
아무리 지나도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나를 뒤쫒아온다.
무심코 흐를 것 같아지는 침을 어떻게든 참으며 계속 걸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게 있다.
어쩐지, 이 쓸쓸한 뒷골목인데 발소리가 나 외에 하나 더 있다.
거기에 조금 전부터 줄곧 내 뒤를 떨어지지 않고 따라오는 거다.
그거려나, 스토커려나?
나는 살짝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았다.
「에?」
「어라?」
조금 전의 흑발 소녀가 내 뒤를 터벅터벅 따라와 있었다.
거기에 손에 큰 바베큐 꼬치를 하나 들고 있고.
그렇다고 할까, 왜 그런 걸 가지고 내 뒤를 따라오는 걸까?
「어라, 우연이네요?」
「...우연, 이려나?」
「네에, 우연이에요」
그런 식으로 미소지으며 말하면, 어쩐지 이쪽 생각이 잘못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연이 아니지?
절대로 조금 전의 곳에서 따라왔지?
아니면, 꼬치 같은건 사 오지 않잖아?
그렇다고 할까, 어디서 샀어! 언제 샀어! 그걸 알고 싶다고, 나는!!
「어라어라」
내가 분한 듯이 꼬치를 노려보고 있자, 눈 앞에서 보란 듯이 꼬치를 좌우로 흔드는 소녀.
당연(?)히 내 시선도 꼬치에 이끌려 좌우로.
어, 어쩔 수 없잖아? 누구라도 맛있어 보이는 꼬치가 흔들리면, 무심코 보잖아?
「드세요?」
「에?」
「그러니까, 부디 드셔주세요」
「괘, 괜찮아?」
「네. 그러려고 사 왔으니까요」
어, 어떠려나. 모르는 사람에게 먹이로 길들여지는 건.
그렇게 생각해도 내 입 속은 이미 고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졌으니까.
그래도 역시 독이라던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고 자중해야 할지도.
그렇게 내가 주저하고 있자, 소녀가 조용히 꼬치에 꽂힌 고기와 야채를 한 입씩 먹었다.
「후아.......」
「하우하우. 아직 뜨거워서 맛있어요. 자, 식기 전에 부디 드세요?」
「...어, 얼마?」
「그다지 돈은 필요없어요? 어쩐지 모르게 당신에게 이걸 주고 싶어졌을 뿐이고요」
「돈은 제대로 있으니까 낼게. 그렇지 않으면 어쩐지 여러가지로 글러먹었단 느낌이 들어」
「그런가요. 그러면 은화 하나로 어떠려나요」
「응, 알겠어」
나는 스커트의 주머니에서 은화를 한 개 꺼내 꼬치와 교환했다.
아직 따듯한 꼬치는 역시 맛있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어버렸다.
손가락이라던가 입에 묻은 소스를 날름거리며 핥고 있자, 옆의 소녀가 쓴웃음지으며 손수건으로 입과 손을 닦아주었다.
마치 그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하는 듯이.
「저, 저어. 고마워. 맛있었어」
「아뇨아뇨. 맛있다는 듯이 드셔주셔서 저도 치유되었습니다」
「그, 그러면, 나(私) 갈게?」
「...? 나(僕)가 아니라 나(私) 입니까?」
「아, 아니. 나(僕)는 말버릇이라, 사실은 제대로 나(私)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이름, 들어도 돼?」
「으으」
「안 되려나?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소녀.
그거야, 사이좋게 될 수 있다면 되고 싶지만 미샤의 반복은 사양이다.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는 소녀에게 말했다.
「안 되진 않지만, 안 돼」
「그런가요. 그건 유감이네요」
「미안」
나는 그것만을 말하고 발꿈치를 휙 둘려, 정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제 앞으로 5분정도 걸으면 보일 터.
뒷맛이 나쁜 마음을 억지로 가슴 안쪽에 밀어넣고, 나는 줄곧 다리를 앞으로 보냈다.
그 후를 같은 보조로 따라오는 발소리.
방향도 완전히 같고, 보폭도 같다. 너는 내 쉐도우맨이냐!!
조금 화나서 기세 좋게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역시 싱글거리는 미소를 띠운 흑발의 소녀.
「저·기·말·야? 나를 따라오면 안 돼」
「어라, 이번은 나(僕)인가요?」
「아, 정말이지! 나(僕)건 나(私)건 상관없잖아! 어쨌든, 나에게 다가오면 안 돼! 알겠어?」
「어라어라, 뭔가 성(性)병이라도 가지고 계신가요?」
「끄아아!! 성병따윈 가지고 있지 않고, 가질 예정도 없어!!」
「그건 안 됩니다」
「왜? 혹시 성병 추진파 사람이야?! 그러면 더더욱 접근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아뇨아뇨. 성행위를 하지 않아도 성병은 걸린다고요? 예를 들면 말이죠, 공중 목욕탕 같은 곳에서는 기생충이군요.......」
「무서운 이야기는 안 해도 되니까!!」
「어라, 유감이네요」
정말로 유감스럽다는 듯이 바닥을 보는 소녀에게,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었다.
그거려나. 이제 내가 가르쳐 줘서 무서워하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협박하는 방법은 싫지만, 이 아가씨를 위해서인걸. 어쩔 수 없다.
마음을 다지고, 나는 얇은 가슴을 펴고 허리에 손을 댔다.
「정말이지, 이 참에 확실히 말해줄게」
「하아, 뭘 말이죠?」
「내가 누군지 말이야!!」
「에? 그래도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고 조금 전.......」
「끄아아아!! 마음이 바뀌었어! 가르쳐 줄게, 그렇다고 할까 오히려 들어주세요!」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아, 안 돼. 지쳐.
조금 전까지 자신만만했는데, 어느샌가 등이 굽어있어서 마음을 놓으면 무릎이 푹 꺼질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바닥에 붙어 있던 기력을 긁어모아, 한번 더 힘냈다.
「잘 들어줘? 내 이름은 스와지크·볼프·고딘! 이 나라의 공주님이야!!」
「어라어라, 저런저런」
빠밤!! 하는 느낌으로 자기소개 했더니, 갑자기 눈 앞의 소녀가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현실을 깨달아 준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자기소개 하는 건 싫었지만, 이 아가씨에게 폐가 끼칠 걸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다.
「자아, 이해해 준 것 같으니까 나는 이제 실례할게?」
「아뇨. 그래도, 그대로 정문으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에? 그거야 자기 집에 돌아가는 거니까 문제없지 않나?」
「공주님이 수행원도 없이 홀로 외출했다고 알면, 화내지 않을까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면, 나도 조금 불안해졌다.
라고는 해도 달리 성에 들어갈 방법도 없고, 화났다면 화났을 때지.
「그렇게 말하셔도, 들키면 분명 외출 금지라던가, 사시사철 누군가가 옆에 붙어있다던가, 무서운 교육 담당에게 채찍으로 엉덩이를 맞는다던가.......」
「지금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읽었지? 무서운데!」
「벽에 쇠사슬로 묶여서, 목걸이를 채워져서, 노예처럼 괴롭혀지는거에요」
「으, 그, 그런 일은 없지 않으려나. 아마? 그렇다고 할까 생각을 읽는 건 패스야?」
「아뇨아뇨.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에겐 보여요. 방에 연금되어 눈물을 흘리는 공주님의 모습이!」
「싫은 망상 하지 말았으면 해!!」
「그럴까요? 정말로 제 망상이라고 단언할 수 있나요? 당신의 오라버님은 당신을 걱정해 조마조마 하는게 아닐까요? 너무한 귀여움은 백배의 증오라고도 하고요」
어쩐지 점점 정문으로 들어가는게 무서워졌다.
귀신처럼 화내는 페이 오빠따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역시 홀로 돌아다녔다고 들키면 외출 금지령 정도는 나올 것 같다.
과보호적인 의미로.
「그, 그래도 나 저기밖엔 통로 모르고 말야」
「괜찮아요. 네 언니가 이전에 왕궁에 근무했을 때, 비밀 통로가 있다고 가르쳐 주었어요」
「에? 정말로?!」
「네, 정말이에요. 거기로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성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거에요」
「호에에, 그거 누구든지 알고 있어?」
「아뇨, 제 언니와 저만의 비밀입니다」
「헤에, 굉장한걸. 네 언니는」
「우연입니다. 자, 제 뒤를 따라와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산뜻하게 거리로 돌아가는 흑발 소녀.
조금 불안하게 생각되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듯 하니까 뒤를 쫒아가기로 했다.
정말로 성에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쩐지 모르게 조금 불안해지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