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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


진희(陳姬) ‘국향(菊香)’ 2화


그 젊은 미녀는 과연 공녀였다. 진(陳) 천자가, 진이 수에게 망하기 직전에, 무슨 보람이라도 볼까 하여 고구려 대시니 을지문덕에게 보낸 ​황​실​지​친​(​皇​室​至​親​)​ 가운데서 고르고 고른 특선 미녀였다.

이름은 국향(菊香)이라 하였다.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다.

사람의 나이 열일곱이라 하면 아직 소꿉질이나 할 철없는 나이지만, 궁녀 삼천이 염(艶)을 다투는 진나라 제실에서 자라난 국향이는 본시 오된 천성이라, 인간사의 얽히어 나가는 데 대강 짐작이 가는 계집애였다. 당시 어지러운 판국에서 한때는 제후국(諸侯國) 천여 개로까지 갈라졌던 중국땅이 차례로 다 없어지고 진과 수만이 남게 될 때에 국향이는 장차 반드시 진은 수나라에 먹힐 것을 알았다.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은 중국 계집애의 생각하는 바 아니다. 산 사람에게 거미줄 치는 법 없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라 믿었다. 그의 생활 환경이 그에게 가르친 바와 같이, 자기는 얼굴이 예쁜 계집애니 누가 거두어 줄 것으로 알았다. 자기를 끔찍이 귀애하던 어버이의 슬하를 떠나는 것은 마음에 걸렸지만, 계집이란 필경에 부모 슬하는 떠나서 지아비의 품으로 가는 것이라, 이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라, 다만 하늘이 시키는 대로 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어떤 날 부왕(父王)은 국향이에게 편지 한 장을 맡기며, 이것을 가지고 고구려고 가라고 분부하였다.

고구려? 동이?

이 나를 동이의 나라로?

고구려로 시집을 보내?

몇 가지의 의문이 그의 머리에 끓었다.

“고구려는 누구를 찾아가랍니까?”

“응, 그도 그럴듯한 말이다. 고구려의 승상 을지문덕을 찾아가서 내 글월을 전해라.”

“그 나라에도 승상이 있읍니까?”

“승상 벼슬은 짐이 주어야 하는 것인데 그 나라에서는 저희끼리 주고 받고 하는 모양이더라.”

“그럼 오랑캐 나라이외다그려?”

“그럼 오랑캐지- 아아! 짐도 불운해서 오랑캐에게 딸을 부탁하는구나!”

그로부터 국향이는 고구려로 갈 준비로 우선 고구려 말을 익혔다.

그러는 동안 수 문제의 이끈 친위대가 홀연 이 진나라 도성으로 달려들었다.

이 소란스러운 찰나에 국향이는 미리부터 준비해 두었던 남복으로 바꾸어 입고 부왕 앞에 하직의 인사를 드리러 갔다.

“폐하! 소녀는 을지 공께로 가겠읍니다.”

“오오, 잘 가거라! 을지가 너를 용남만 하거든 평생을 두고 잘 섬겨라.”

적병이 벌써 궁정 안까지 들어온 듯 소란스러운 가운데서, 총총히 부왕께 하직하고 국향이는 대궐을 빠져 나왔다.

그로부터 국향이는 망명의 길이었다.

여자의 발걸음이라 세지도 못한 발걸음으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여 진나라 서울을 빠져 나왔다.

그가 산동(山東)의 어떤 바닷가에 다다랐을 때에 비로소 부왕의 부보를 들었다. 부왕은 수 문제에게 욕보는 것을 피하여, 궁정 안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국향이에게 그리 큰 충격을 주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다만 ​‘​망​명​’​‘​피​신​’​이​라​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은 없었다.

어서 이 소란한 진나라를 피해서 소문에 듣던 낙원 나라 고구려로 가자. 그리고 고구려의 승상 을지문덕이라는 사람에게 이 내 운명을 내어 맡기자. 이 한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은 할 여지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우물에 몸을 던져서 죽고 어머니가 난군 중에 참혹한 욕을 보고 드디어 죽기까지 하고, 그의 형제가 모두 비슷비슷한 화를 입고 목숨까지 잃는 가운데서, 재빨리 몸을 피해서 신상 아무 피해도 입지 않고 망명의 길을 가는 것은, 부모며 형제에게 비기어 훨씬 다복한 것이었지만 국향은 다만 이 피곤한 다리와 몸이 괴롭고 쑤실 뿐이지, 세상 다른 일은 거들떠 보기도 싫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만리길을 가는 국향이었다. 더우기 부모 형제를 한꺼번에 잃은 천하에 외로운 몸이었다. 명랑한 천성이요 티 없는 마음씨건만, 때때로 폭풍우같이 그를 엄습하는 공포와 적막감이 있었다.

제실에 태어난 존귀한 몸이라는 자긍심이 있기에 아무 겁 없이 이 고단한 길을 가지, 세상 보통의 계집애였더면, 한 걸읆을 옮기기에 힘들고 무겁고도 어려운 입장이었다.

아버지 황제에게서 고구려 승상 을지 공께 부치는 글월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열일곱 살의 어린 몸으로 만리길을 가는 국향이는, 비록 남복은 하였다 하나 그래도 열일곱 살 무르익은 처녀로서의 체격이었다.

스스로도 이를 짐작하는 국향이는 전전긍긍 유심한 눈을 피해 가면서 고구려나라로 길을 채었다.

한 열흘 지나서 어떤 곳을 가노라는데, 길가의 어떤 집에서 무슨 시비가 생긴 듯 무엇이 왁자그르 하더니, 웬 여편네가 뛰어나오며, ‘고구려의 아낙은 그런 짓은 안한다’고 고함을 꽥 지르고 저편으로 달려간다.

고구려와의 국경이 차차 가까와 오는 모양으로 ‘고구려 아낙’‘부여의 젊은이’등등의 소리가 차차 자주 들린다.

소란의 진나라를 망명하여 고구려를 찾아가는 국향이로서는, 그 고구려라는 말에 아주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더우기 ‘고구려 아낙’‘부여 젊은이’라는 그 말들은 모두가 나는 당당한 고구려 사람이로라는 자랑으로서 내던이는 경우에 쓰이는 것이었다.

‘진나라 아낙’‘진나라 젊은이’- 국향이는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어울리지 않고 쑥스러웠다.

아아! 고구려 사람은 이렇듯 자기가 고구려인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는가? 이 중국땅 안에서도 고구려 사람이로란 것을 탕탕 자랑하고 다닐 수 있느니만큼, 고구려 사람은 제 신분을 자랑스러이 생각하는가?

국향이는 여기서 제 국적의 자랑이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었다. 내가 진나가 제실의 딸은 커녕 이 고구려나라의 한 농군의 딸로라도 태어났더면, 나는 천하에 고구려 사람이라고 외칠 수가 있겠거늘-.

태고적부터 고구려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세하며 내려온 이 고구려인들은, 언제까지나 그것을 자랑하며 지내려는가?

“하늘의 아들 하백(河伯)의 사위, 고주몽의 나라의 만성-.”

이라고 외치는 것이 고구려의 행세다.

그리고 그것을 구호로 삼느니만큼 고구려인은 떳떳하고 버젓하게 살았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라는 백제인이며 신라인은 자기가 백제인(혹은 신라인)이란 것을 자랑치 못하며 지내는 동안, 고구려인은 그 첫마디에 벌써 ‘하백의 사위 나라 만성이로라’고 호통을 하고, 이 호통만 한 번 내리면 다른 인종들은 꿈쩍 못하고 잠잠하여 버린다.

차차 자주 들리는,

“부여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는 호통을 들을 때마다 가슴에 흠칫흠칫 울리는 것을 느끼며, 장차 나도 을지 공이 이 내 몸 용납만 해준다면, 그때는 남에게 향하여 ‘부여의 아낙’소리를 크게 외쳐 보리라 새삼스레 결심하며, 더욱 동쪽으로 동쪽으로 발을 옮겼다.

고구려의 국경이 차차 가까와 오자, 기이한 현상으로는 흰 옷 입은 사람이 가속도로 늘어 가는 것이었다. 국향이 아버지의 나라를 망명할 때는 구월 중순으로서 지금이 한창 섣달이나 정월일 터인데 흰 옷 입은 사람이 많은 것이었다.

고구려는 흰 옷을 입는다는 말은 일찍부터 들었지만, 겨울 흰 눈에 덮인 세상에 흰 옷 입은 사람의 움직임은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검은 옷 무색 옷 입은 사람의 무리가 몇 백 명 혹은 몇 천 명씩 집단이 되어 고구려로 고구려로 가는 무리가 부지기수였다. 이는 모두가 소란한 한토를 망명하여, 동방 낙원이라는 고구려를 사모하여 그리로 밀려 가는 한족 무리들이었다.

관(關)을 넘어서면서 국향이로 하여금 처음 눈을 크게 한 것은, 백 리, 천 리를 한 일 자로 금그은 듯 곧추 뻗은 포도였다. 이게 길이냐고 놀랄 만큼 넓고 긴 길이 몇 백 리 몇 천 리를 그냥 뻗은 것이었다. 뒤에 안 바이지만, 고구려 서울 평양 근처의 양회를 캐 내어 길에 바르면 이렇게 되는 것이었다.

그 넓은 길에는 고구려 젊은이들이 마치 전쟁인 듯 말을 이리저리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큰 길을 한인 망명인들이 끝 닿은 데까지 그냥 연이어 있고, 고구려의 관원은 곳곳이 지켜 서서 망명인들을 검문하고 있다.

과연 동방의 웅국이요, 수나라와 천하를 다투려는 고구려의 기백은 온갖 곳에 사무쳐 있었다.

홑몸인 관계상 고구려의 관원의 검문을 곱게 피해 오던 국향이도 한 관문에서는 드디어 걸렸다.

“여보! 젊은 양반 어디까지 가오?”

“네, 장안 서울까지 갑니다.”

“어디서부터?”

“네, 저는 강남 사는 상인이온데….”

미리 준비하였던 변명을 하려는데 관원은 국향이를 의심쩍다 보았는지,

“이리로 좀 비켜 서 주시오.”

하여 한편으로 치워 놓았다. 그 다음 사람은 오십쯤 난 점잖은 사람과 그의 가족으로서, 소란의 곳을 피하여 고구려로 가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왜, 못 살겠읍니까?”

“나라가 하두 자주 변하니 누구를 믿고 삽니까? 그래서 단군 선인(仙人)의 나라로 살러 옵니다.”

“잘 생각했소. 고구려에 오시면 탁 마음 놓고 지내시오.”

이 검문이라는 것은 목표가 백제인이나 신라인에 있는 것이다.

백제인이나 신라인이 연해 진나라 수나라에 잠입하여 고구려와의 사이를 이간 붙이고 나쁘게 되도록 공작을 한다.

그 악질적 간첩들을 예방하기 위하여 국경선 근처에는 방첩 감시가 꽤 엄중하다. 그 사이 곱게 피해 오던 국향이가 드디어 고구려 방첩 관원의 눈에 수상타 여겨 억류를 당한 것이었다.

국향이는 관원에게 끌리어 인도하는 데로 따라갔다.

조금 가다가 큰 홍살문 하나를 지나서 좀더 가노라니, 방적 ​제​일​관​(​防​狄​第​一​關​)​이​라​ 큰 간판이 달린 아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각곳에서 억류된 수많은 사람이 두룩거리고 있다. 맨 끝에 자리잡고 앉아서 보노라니, 대국 고구려의 기품은 이런 곳에서도 넉넉히 볼 수가 있었다. 한 사람씩 끌어 내어서 한두 마디 물어 보고는 그냥 돌려 보내는데, 만약 시장한 기색이 보이면 배불리 먹이기까지 하고 노자가 없으면 노잣냥도 주기까지 해서 돌려 보내는 것이었다.

국향이는 거기 앉아서 고요히 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노라는데 웬 소년 하나가 국향이 곁으로 오더니, 국향이를 손짓하여 데리고 안으로 앞서서 들어간다.

이 나라 사람의 체통이 본시 굵직굵직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문의 청사들도 모두 넓고 컸다. 큼직한 방 몇 개를 지나서는 내정인 듯싶은 곳에 이르렀다. 그러자 내정에 시종드는 듯한 계집하인이 인도를 한다.

좀 유다른 신분이요, 유다른 체질을 가진 국향이는 이렇듯 색채 다른 대우를 당하니 가슴이 선뜻하였다.

(어쩌려는 셈인가?)

좌우간 당하는 대로 겪을 밖에는 없는 국향이는, 다만 공손히 따를 밖에는없었다.

몇 뜰을 지나서 몇 방을 건너서 어떤 큰 집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는 그 밖에 있는 하인에게 또 국향이를 맡겼다.

새로 국향이를 맡은 계집하인은 국향이와 연갑세나 될 아름다운 소녀였다.

“아이, 곤하시겠어요. 이리 올라와 쉬세요.”

하면서 국향이를 위로 오르라 청하였다.

관청에 간 촌닭이라 하지만, 사실 시키는 대로 할 외에는 딴 도리 없는 국향이는 서슴지 않고 거기 댓돌에 앉아 감발을 풀고 주저치 않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계집하인은 국향이를 안으로 들여보내고는,

“쇤네가 문밖에 꼭 지킬 터이니 마음 놓고 다리 뻗고 쉬세요.”

감발을 벗노라니 발에서는 고린내가 물컥 났다. 그 사이 만리길을 자고 깨면 걷고 또 걸을 피곤이 감발을 푸는 순간 한꺼번에 올랐다.

“나 좀 쉬겠어요. 어이 참 곤해 죽겠군….”

하며 국향이는 염치 불고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다리 기다랗게 뻗으며 자빠졌다.

-사람의 세상이란 이처럼도 살기 고단하고 어려운 것인가?

누구 다리를 좀 쳐 주는 고마운 사람은 없는가?

몽롱하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는 스스로 펄떡 놀라 깨고 하였다.

“서방님! 서방님!”

두세 번 부르는 소리에 국향이는 펄떡 깨었다. 어느덧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깨어 보니 아까의 계집하인이 문밖에서 국향이를 깨우는 것이었다.

“어! 뭐야?”

“주무세요? 이 밀수 한 잔 잡숫구 또 목욕물이 더웠는데 목욕하시구, 아주 편히 주무세요.”

계집하인은 밀수가 든 큰 은그릇을 국향이의 앞에 공손히 바쳤다.

국향이는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아유! 아유….”

뜻하지 않고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를 막지 못하며, 일어나서 한 대접이 되는 밀수를 받아서 단숨에 마시었다.

“자! 목욕탕으로 가세요.”

그러나 국향이는 일어설 자신이 없었다. 그 사이 악에 받쳐서 쉬지도 않고 여기까지 걸어오기는 하였지만, 한 번 다리를 뻗고 나니 다리 쓸 자신이 없었다.

“목욕은 싫으이, 하두 발이 더러우니….”

“더러우셨기 목욕을 하셔야지. 자, 일어나세요.”

“그럼 날 좀 업어다 주게.”

여자 된 몸으로 남복으로 예까지 온 국향이에게는 이 목욕이라는 것은 여간한 문제가 아니었다. 진의 제실의 공주로 몸에 때라는 것을 모르고 자란 국향이가, 이번에 비로소 서너 달을 만리길을 걸으며 오노라니, 몸에는 때 투성이요, 먼지 투성이로서, 목욕은 못하나마 하다못해 세수라도 하고 싶은 욕망은 여간이 아니지만, 사내 행색이라는 한 가지의 일 때문에 세수 한 번도 못하고, 몸이 끈적끈적한 것을 간신히 참아 가면서 오는 길이다.

“자! 어서 그럼 쇤네께 업히셔요.”

국향이는 몽치같이 된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몸을 계집하인에게 돌리면서, “난 철든 이래 남 보는 데서 몸 벗은 일이 없는 사람인데….”

하며 중얼거렸다.

“아이구, 서방님두! 서방님이 아니구 아주 도련님이셔! 이 고구려 사람은 남의 벗은 몸 보라 해도 보지 않습니다. 자 업히셔요.”

국향이는 계집하인의 등에 몸을 실으면서 요것이 능히 나를 업을까 의심하였는데, 계집하인은 국향이를 가볍게 업고 일어서서 통통걸음으로 얼마를 가더니 내려놓는다.

“자! 이 안이 목욕탕입니다. 또 여기 이 열쇠를 드릴 테니 안에 들어가셔서 마음 놓고 문을 잠그시고 그 사이 석 달 쌓인 때를 죄 닦으세요. 쇤네는 물러가겠읍니다. 쇤네를 부르시려면 여기의 징을 서너 번 두드려주세요. 그러면 쇤네 곧 대령하겠읍니다.”

그런 뒤에는 국향이에게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저편으로 물러갔다.

제일관에서 검문하는데 억류를 당했으면 자기는 으례히 수인(囚人)일 것인데, 수인답지 않은 이런 모든 융숭한 대접에 국향이는 적지 않게 의아하여, 거기 내려놓인 채 잠시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계집하인이 물러간 뒤에도, 국향이는 한 손가락도 움직이기 싫어서 그냥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일단 물러갔던 계집하인이 또 통통 이리로 달려온다. 무엇을 한아름 안고서-.

“아이머니! 아직 목욕탕에 안 들어가셨어요? 물 다 식겠네!”

수선을 떨더니 가슴에 붙안고 온 물건을 거기 내려놓는다.

“목욕하시고 이 옷 갈아입으시라구 마님께서 내어주셔요.”

고구려 비단으로 꾸민 위아래 옷 한 벌이었다.

“나! 어서 목욕탕에 들어가세요.”

“들어가지.”

무릎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다리가 몽치같이 뻣뻣하게 되어서 마음대로 놀릴 수가 없었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다가 그냥 모로 쓰러졌다.

다시 계집하인에게 몸을 의지하고 겨우 목욕탕 문 안까지 들어섰다.

문에 쇠를 잠그고 국향이가 제 낡은 옷까지 다 벗을 때는 꽤 한참 되었다. 몇 번을 두루 살펴서 바늘 구멍만한 틈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비로소 몸을 홀랑 벗었다. 발에서 비롯하여 종다리까지 새까맣게 때로 덮인 것이 우선 눈에 띄었다.

거기는 열일곱 살의 무르익은 처녀로서의 살결은 엿볼 수가 없는 대신에, 부왕의 심려로 닦달한, 승마와 비수로 단련된 야문 근육이 그 사이 몇 달 동안 고된 길거리의 때에 덜민 까무퇴퇴하고 얼룩진 몸뚱아리가 아래로 뻗어 있었다.

하인이 준비해 준 수건으로 앞을 가리고 물에까지 내려섰다.

내려서기는 했지만 이 때로 덜민 몸을 염치에 수정같이 맑은 물에 잠그기가 부끄러웠다.

국향이는 거기 있는 바가지로 물을 떠서 몸에 발라서 우선 가장자리에 쫑그리고 앉아서 초벌 멱을 감았다. 한 번 손으로 밀면 국수처럼 몽기몽기 밀리는 때를 한 번 통 밖에서 벗긴 뒤에 그것을 온통 아래로 흘려 보내고야 비로소 몸을 목욕물에 잠갔다.

덥도 차도 않은 꼭 알맞은 물이었다. 문을 꼭 잠그고 때를 씻을 때에도 누가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혹은 물에 비친 제 그림자에 스스로 깜짝깜짝 놀라고 하였지만, 물 속에 드러앉으니 마음이 쭉 펴진다. 국향이는 물 속에서팔과 다리를 힘껏 펴 보았다.

꽤 오랜 시간을 물에 잠겨 있었다. 온몸이 쑤시는 것이 거의 풀린 쯤하여서 국향이는 일어섰다. 이마에까지 땀이 훈훈히 내배었다.

물 속에서 나와 몸을 말리고 준비된 옷을 갈아입었다. 벗어 놓은 낡은 옷에 다른 소지품은 없지만, 부왕의 을지 승상에게의 편지가 하나 있으므로 낡은 옷을 뒤적여 그 편지를 얻어 내어 간직하였다.

그런데 낡은 옷을 뒤질 때에 시꺼먼 보리알 같은 이를 몇 마리 발견하였다. 그 이도 내 몸에서 떨어진 것이겠지만, 국향이는 몸서리치며 옷을 집어 던졌다.

준비되어 있는 고구려 옷을 갈아입고 아래를 굽어보니 정녕 한 얌전한 고구려 젊은이였다.

한데 자기는 무엇인가? 포로인가, 수인인가, 손님인가? 여기서 자기에 대한 대접이 너무도 융숭하므로 자기의 입장을 얼른 알 수가 없었다.

낡은 옷을 가지고 갈까 어쩔까고 잠깐 주저하였다. 서너 달을 만리길을 몸에 걸쳤었던 정의는 잊을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더러운 품이 차마 몸에 걸칠 수 없어서, 얼른 손끝만 대어 보고 그냥 내어버리고 문을 열고 문밖에 나섰다. 문밖에는 계집하인이 다소곳이 국향이의 목욕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다 하셨어요? 이리 오세요.”

하며 국향이를 인도한다.

이번 인도된 방은 장대(帳臺)가 둘린 것으로 보아 침실인 모양이다. 아직 채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 방에는 벌써 촛불이 켜 있었다.

“저녁 진지 내어올께요.”

“아아, 저녁이구 뭐구 하도 오래간만에 목욕을 했더니 그저 어서 자기나 했으면 좋겠다.”

“곧 내어올께요.”

계집하인은 저녁을 가지러 저쪽으로 간다.

국향이는 장대 안에 들어가 다리를 펴며 누웠다. 두툼한 보료며 이부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진나라 대궐을 망명한 지 겨우 서너 달이 지나지 않지만, 그 사이 겪은 숱한 고난과 고생은 인간 백 년에 겪고 또 겪고도 다 못 겪을 만한 분량이었다. 그런 고생 뒤끝에 또 이 뜻안한 융숭한 대접은, 비록 뒤에 큰 욕이 예약된 것이라 할지라도 국향이에게는 고맙고 달가운 일이었다.

수라반에 지지 않을 훌륭한 저녁상을 대강 받는 것처럼 하고는 물리고 국향이는 어서 자기로 하였다.

“이 방에는 쇠 없는가? 나는 꼭 쇠 잠그고야 자는데….”

“서방님두, 꼭 색시같이 무슨 내우를 그렇게 하세요?”

“좌우간 쇠 없는가?”

“고구려 집은 쇠 없는 방이 없답니다. 갖다 드릴까요?”

“응, 그래.”

하인이 가져온 쇠를 문에 굳게 잡그고 국향이는 마음의 다리까지 쭉 뻗고 장대 안에 드러누웠다.

(나는 지금 무엇인가? 죄수인가 손님인가?)

자기는 분명 통관(通關)에 걸려 억류된 인물- 말하자면 이 나라의 한 죄수다. 문초를 아직 안 받았으니 결정된 죄목은 없겠지만, 방적관 관원에게 억류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억류된 피의자이면, 우선 그 신분을 밝힐 문초가 있어야 할 터인데, 아무 문초도 없이 억류된 이때껏 무슨 귀한 손님이나 대접하듯 공손하고 극진한 대접으로 아직껏 지냈으니, 대체 이 고구려라는 나라는 죄수의 대접을 이렇게 하는 나라일까?

이런 생각을 막연히 하면서 촛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집 모퉁이 낟가리 틈 어디든 몸 눕힐 곳만 있으면 거기 구겨박혀 하룻밤을 지내고- 이렇듯 고된 삼사 삭을 겪고 나서 여기서 비로소 장대에 들어서 팔다리 마음대로 뻗고 편히 한 밤을 지낸 국향이는, 아침은 꽤 늦게야 눈을 비비며 깨었다.

처음에는 여기가 어딘지 분간이 안 났다.

장대의 장을 약간 걷고 내다보았다. 어제 시중들던 계집하인이 있는 것을 보고야 어디인지 이해가 갔다. 국향이는 옷 앞자락을 여미며 장대에서 내렸다. 등대되는 세숫물에 활활 얼굴을 씻고 나자 곧 조반상이 들어왔다. ‘메유파즈’라는 중국인의 커다란 철학 가운데서 자란 국향이로서는, 이 모든 알 수 없는 사물 가운데서 그저 겪고 지냈다.

국향이가 조반을 끝내자, 계집하인은 이번엔 국향이를 또 다른 방으로 인도하였다.

“이게 서방님 방이온데 마음 놓고 들어가 쓰세요.”

그것은 얌전한 책실이었다. 그런데 국향이로 하여금 의외의 느낌을 가지게 한 것은 그 책실은 사내의 것이 아니요 여자의 책실이었다. 고구려 자기로 만든 가지각색의 크고 작은 그릇이며 화장품 등이 정비되어 있고, 책상이며 가구들이 모두 값진 물건들이었다. 천하의 조공(朝貢)을 받는 진나라 황실에서 자란 국향이로서도 다만 입을 딱 벌릴 밖에는 없을 정도의 한 책실이었다.

국향이는 잠시 멍하니 섰다가 책상머리에 가 앉았다. 그리고 펴기를 기다리는 듯이 준비되어 있는 책을 한 권 꺼내어 폈다.

유기(留記)였다. 몇 줄 내려읽어 보니 고구려나라 건국의 위대한 사실을 엮어 쓴 기록이었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이며 하백의 딸 유화의 이야기를 한창 재미나게 읽는데, 밖에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이 책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는 계집하인이 통통 들어왔다.

“영감마님이 오십니다.”

“?”

동시에 한 사십 살 되어 보이는 한 장년 사내가 이 방으로 들어왔다.

국향이는 황급히 일어서서 그를 맞는 뜻으로 허리를 굽혔다.

그는 들어와서 되는 대로 자리잡으며,

“너희들은 부를 때까지 물러가거라. 좀 멀찍이-.”

하고 하인들에게 분부하였다.

하인들을 다 멀찍이 물린 뒤에

“나는 이곳 태수- 관지기입니다. 손님은 어디서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니까?”

하고 물었다.

“저는 강남 장사치온데 고구려 서울 장안으로 가는 길이옵니다.”

​“​증​단​(​證​單​)​은​?​”​

“미처 못 준비했읍니다.”

태수는 눈을 들어 국향이의 얼굴을 한참 건너다보았다.

“수제 견(隋帝 堅)이에게서 이런 조회가 있읍니다. 이게 아마 손님께 관계되는 일인 듯싶은데….”

태수는 품에서 무슨 꽤 큼직한 첩지를 꺼내어 손으로 툭툭 튀기고 있다.

국향이는 ‘수제 견’이라는 말에 담이 터지는 듯 정신이 아득하였다.

그러면 이곳 태수는 내가 누구임을 벌써 짐작하였던가? 그 모든 융숭한 대접은 진나라 공주에게 대한 대접이던가?

수제 양견이는 부왕과 모후를 비롯하여 여러 동기까지 잔멸하고도, 아직도 부족하여 그의 마수를 멀리 고구려로까지 뻗쳤던가? 만리길 도망해 와서 여기서 그의 마수에 걸리게 되단 너무도 억울한 일이었다.

수나라 문제에게서의 글월을 태수에게서 받아 보니, 거기는 첫머리에 국향 자기의 화상을 그리고, 이 계집을 붙들어 집에게 보내면 후한 녹작과 상이 있으리라는 뜻이 적히어 있다.

국향이는 몸에 한 조각이 쇠 부스러기가 없는 것이 한이었다. 계집이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비수가 으뜸이라 하여 스승을 따로 고빙하여 비수 쓰기를 연습한 국향이는, 지금 이 위급한 찰나에 한 조각의 쇠만 있으면 어떻게든 무슨 수단이든 강구할 수가 있을 듯하였다.

국향이는 딱 마주 앉아 태수를 쳐다보았다.

“네, 과연 제가 국향 공주올시다. 태수님께서는 국향 공주를 양견이에게 잡아 보내셔서 후한 녹작을 받으시렵니까?”

“고구려의 사람은 품에 날아드는 궁조를 결코 해치지 않습니다. 태수 모(某)도 고구려 사람이외다. 부왕께서 어떻게 되셨는지 아십니까?”

“산동을 지나가다가 소문으로 안 바인데, 양견이에게 몰려 피할 길 없어서 우물에 몸을 던져 ​자​진​하​셨​다​구​요​-​.​”​

진나라 오 제 삼십삼 년간의 길지 못한 역사의 마지막 잔물이 모진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이 고구려나라로 망명해 오는가?

태수도 잠깐 묵연히 이 사실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공주께서 장안으로 가시면 누구를 찾으시겠읍니까?”

“승상 을지 공께 몸을 의탁하고자….”

“무슨 선제의 글월이라도….”

“네, 수찰 한 장이 있읍니다.”

“하지만 공주께서는 너무 얼굴이 어여쁘십니다. 여자의 얼굴이라 어여뻐야만 하는 게옵지만, 너무 어여쁜 것도 인생 행로에 많은 지장이 생기는 것이올시다.”

“얼굴에 못하지 않은 무술을 닦달했읍니다. 이런 운명이 오리라고 닦달한 무술은 아닙지만….”

“무술이란 잘못하다가는 되레 몸을 해치는 일이 있는 게니깐, 공주 내내

명심하시옵소서. 유(柔) 능히 강(剛)을 이깁니다. 공주께서는 장차 무슨 고난을 만나실지라도 먼저 무(武)를 앞세울 생각은 마시고, 오로지 강을 제하실 궁리를 하시옵소서.”

국향이는 머리를 숙여 고요히 고맙게 들었다.

국향이는 그 태수의 집에 한 열흘 간 묵었다. 몇 달 간에 지친 피곤이 다삭도록 푹 묵었다.

한 열흘 묵어서 피곤을 다 삭이고 길 떠날 때에 태수는 국향이에게 말을 한 필 제공하였다.

“공주께서 넉넉히 부리실지?”

하면서 제공하는 말은 ‘돌궐’산의 아주 사나운 말이었다.

그 말에 가볍게 올라 타고 또 장안으로 길을 떠날 때, 태수는 십여 리를 따라오며 바래 주었다.

그 길에서 국향이는 고구려나라의 부력과 통치력에 마음껏 멱감았다.

휑하니 넓은 포도는 백 리 천 리를 그냥 곧게 뻗어 있고 그 길에 십 리마다 이정표(里程標)가 서 있고 이정표에는 ‘서울까지 몇 리’라 정확히 새겨져 있고, 삼십 리에 한 군데씩 중화처(中火處)가 있어서 거기는 물이며 땔나무의 준비까지 되어 있고, 그곳을 지키는 관원들은 아주 친절스럽게 모든 편의를 보아 준다. 한 오십 리마다 밤 쉴 곳이 있고, 이 모든 것은 나라에서 경영하는 바이라, 거저 만성의 편의를 보아 주는 것이다.

관원들은 극진히 만성을 헤가린다. 만성들은 모든 것을 관원에게 탁 믿고 의뢰한다.

고구려는 인구 사천만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 사천만이란 것은 사천만이 한 덩어리가 된 단 한 뭉치의 덩어리요, 임금의 한 마디 분부라면 사천만이라는 덩어리가 하나로 되어 그 분부에 복종할 성질의 것이었다.

이것으로 보아서 고구려는 능히 천하에 그 강성을 자랑할 만하였다.

제각기 제 잘난 맛에 살아 가는 사람의 세상에 이런 나라도 있었던가?

-이러하니까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는 고구려인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뽐내는 것이다.

아아, 나도 어디서 한 번 마음 놓고서 나는 고구려인이로라는 호통을 하여 보면 얼마나 유쾌할까?

고구려의 재상 을지 승상이 이 내 몸을 용납해 주시기만 하면- 그리고 나더러 ‘아내여’하기만 하여주시면, 나는 천하에 고구려인으로 호통을 하며 횡행할 수 있으련만-.

해가 벌에서 떠서 벌로 지는 요서의 평원을 돌궐 말에 높이 앉아서, 이런 생각을 뇌면서, 국향이는 장안 서울로 장안 서울로 길을 더듬고 있었다. 장안 서울이 여기서 몇 백 리 몇 천 리나 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진나라 서울서 여기까지의 만리길을 걸어서 온 국향이로서는, 지금 마상에 높이 앉아 흥그러이 가는 길은 다만 마음 흥그러울 뿐이었다.

절기로 따지자면 봄, 이월경일 것이다. 그 사이 혹한의 절기를 잠자리 하나 변변치 못하게 남의 집 집모퉁이의 굴뚝 틈에서 몸을 쉬면서 만리 길을 온 것이다. 이제는 절기는 양춘에 가깝고 탈 말도 있고, 게다가 고구려땅은 아무데를 갈지라도 길손 먹일 준비는 나라에서 마련하고 있다.

오리내도 지났다. 오리내를 지나서도 아직 오백여 리를 더 가야 장안 서울이라 하지만, 국향이는 서울 안뜰에 들어선 듯 이제 장안에 다 온 것으로 여겼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을지 승상 댁이 어디쯤 됩니까?”

고 물어서,

“승상 댁은 장안에 있다오. 아직 오백 리를 더 가야지요.”

하는 대답에 오히려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 사이 온 만리길에 비기건대, 이제 남은 오백 리라는 것은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며칠을 더 가야 되는 길이다.

지금껏 요동 칠백 리의 무연한 벌판만 오다가, 오리내 넘어서니 올롱졸롱한 산과 골짜기다.

그래도 장안 서울이 가까운 증거로는, 사람들의 성품이 차차 더 어질고 질박해 간다.

날을 물어보니 벌써 양춘 삼월이라 한다. 논밭에는 무럭무럭 양춘의 김이 떠오르고 길에는 말똥구리가 말똥을 굴려 가고 있다.

아버지의 대궐을 망명한 것은 벌써 반 년 전인 작년 가을이다. 그 사이 겪은 고생을 다 쌓으면 태산같이 높을 것이요, 당한 욕도 부지기수다. 그것을 참아 가면서 모진 목숨 그냥 유지해 가는 것은 장차 무엇을 바라고?

부왕 모후를 비롯해서 모든 동기들도 모두 참화를 보고, 지금 뎅그렇게 외톨이로 살아 남은 자기다.

장차는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뢰하고 살아 가랴?

‘고구려의 을지문덕이라는 대신을 찾아가서 네 장래의 운명을 맡겨라.“ 하던 아버님의 유명을 받아 나는 열일곱 해 기른 이 몸을 을지문덕이라는 고구려인에게 바치려고, 만리길 멀다 하지 않고 을지가 산다는 장안 서울을 찾아간다.

을지라니 몇 살이 난 사람일까? 과히 늙은이는 아닐까? 몸이 승상이라니 괄괄한 젊은이는 아니겠지만 꼬부라진 늙은이는 아닐까? 고구려 지역에 들면서 내내 경험한 바이지만, 고구려 사람은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 모두가 한 사람같이 을지 대신께는 최상의 경모의 정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듯 을지 승상은 온 고구려인의 숭앙의 사람이다. 지금 부왕의 글월을 지니고 가지만, 을지 대신은 그 글월로 이 몸을 용납해 줄 것인가?

고구려 사천만 인의 어버이-.

열일곱 살 처녀 국향이의 가슴에 떠오른 동이 사천만의 아버지로서의 을지문덕을 목표로 길을 가면서도, 국향이의 마음에는 용납하려는가 안 하려는가의 일말의 불안은 지울 수가 없었다.

준마의 빠른 걸음으로 하루를 가고 이틀을 가고 사흘을 가서 장안성 밖까지 이르렀다.

한 채찍만 더하면 넉넉히 성 안에 들어갈 것이로되, 국향이는 성 밖 주막에서 그 밤을 지내기로 하였다.

이제는 다 왔다 하는 안심의 탓도 있겠지만, 꽤 느지막이까지 자고 일어나서, 오늘은 승상을 뵙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소세 단정히 하고 주막집을 나섰다.

이 큰길로 곧장 가면 스물 몇 골목 지나서 큰 솟을대문 달린 집이 승상 댁이라는 말을 목표로, 시원하고 넓은 큰길을 골목마다 세면서 갔다.

스물 몇 골목 지나서 과연 큰 대문이 있었다. 국향이는 서슴지 않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 보매 그 곳도 무슨 큰 일곽 같지 개인의 집 같지 않았다. 그냥 말을 타고 그 엉성한 가운데를 동서로 헤매었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 곽 내를 편답하다가 지나가는 하인 하나를 붙들어서 사정을 통하였다.

“승상은 지금 입궐해서 댁에 안 계시고 마님께라도 여쭈랍니까?”

국향이는 사실 을지 부인께 먼저 뵈옵고 싶었다.

“그럼 마님께라도 여쭈어 주십시오.”

“이리 오세요.”

이리하여 국향이는 을지 부인의 앞으로 인도되었다.

친척인지 하인배인지는 모르나, 많은 여인들과 마주 무슨 담소를 하고 있던 을지 부인은 국향이 편으로 향하였다.

“내가 을지의 아내요, 승상을 뵙겠다고?”

“네….”

“승상께서는 정무 다단하시어 좀체 뵈옵기 힘드는데 무슨 사단으로 뵙겠다는지?”

한 국가의 승상을 그리 쉽게 뵈오리라고는 국향이는 생각하지 않았던 바였다. 그래서 품에서 부왕의 글월을 꺼내었다.

“진(陳) 천자의 소개하는 글월이 여기 있읍니다.”

그 사이 반 년간, 한 품에 품고 오느라고 구겨지고 더렵혀진 부왕의 글월을 국향이는 품에서 꺼내어 승상 부인 앞에 내어놓았다.

“지아비에게 오는 글월을 먼저 본다는 것은 부여의 여인의 안하는 바요. 승상 들어오시거든 드릴 터이니 여기 맡겨 두시오. 그리고 보아하니 매우 피곤하신 듯한데, 저 후당 방 하나 내어 드릴께 가서 편히 한잠 주무시지.”

“아이, 잠은 실컷 잤읍니다.”

국향이가 사양하건 말건 승상 부인은 하인 하나를 불러서 후당을 깨끗이 치울 것을 분부하였다.

동탕한 국향이의 얼굴을 승상 부인은 탐나는 듯이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참! 손님 나이 몇 살이요?”

“열일곱 살이옵니다.”

“열일곱? 우리 자식두 살아 있으면 금년 열일곱이로구먼- 열일곱이며 저렇게 장발하는 걸 홑 일곱 살에 죽여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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