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陳姬) ‘국향(菊香)’ 3화
후당으로 인도받아서 거기서 몸을 쉬는 국향이는 자기의 기구한 열일곱 해의 생애를 띄엄띄엄 추상하면서, 자는 듯 깬 듯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기는 부왕의 소개로 이 댁에 들기는 하였지만 승상은 자기를 용납하려는지? 승상 부인은 한 마흔 살 되었을까 말았을까 한 아낙이었지만, 대고구려국 을지 승상의 아내라는 긍지가 그 미우에 차고 넘치듯 나타나 있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상냥하고 친절하였다. 진나라 공주라는 국향이의 신분을 알고도 그냥 친절할지 어떨지는 모르되, 지금껏 본 바로 아주 상냥한 아낙이었다.
“이 근처(후당) 일대는 손님이 묵어 계실 동안은 손님 혼자만이 쓰실 곳이니까 그리 아시고 마음대로 쓰십쇼. 이 근처의 하인들도 손님 홀로 쓰실 하인입니다.”
승상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하인 몇 명을 남기고 돌아갔다.
승상께 뵈올 일 밖에는 다른 일은 없는 국향이는 문갑에 가려 있는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책상에 기대어 책을 폈다.
유기(留記)였다. 방적 제일관(防狄 弟一關) 태수의 집에서 그 첫머리를 얼마간 읽던 국향이는 여기서 그 다음 줄거리를 읽기 시작하였다.
고구려라는 위대한 나라를 세운 조상들이 나라와 만성을 애호한 그 기특한 사실이 줄줄이 사무쳐 있는 기록이었다.
-이렇게 고심하고 이렇게 애써서 이 나라를 세웠고 키웠느니라-
하는 지나간 날의 현인들의 고심 기록이 국향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유기에 침혹되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읽고 있었다.
국향이는 거기서 민족 종족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이 민족의 한 영주(英主)엿던 평안 호태왕(平安 好太王) 시절에 이 고구려 민족과 조상을 같이한 신라라는 나라가 남쪽 바다 건너 왜에게 침노를 받을 때에, 호태왕은 오만 명의 고구려 장졸을 이끌고, 수륙 이천여 리를 신라까지 달려가서 왜족을 쳐 쫓은 일이 있다. 고구려 임금 평안 호태왕은 무슨 까닭으로 내 나라 장졸 오만여 명을 이끌고 신라까지 갔던가? 왜는 어디 감히 고구려는 건드릴 염도 못 내고 도리어 방물을 바치며 왕녀를 바쳐서 고구려에게 아첨만 하거늘, 호태왕은 무슨 까닭으로 내 막하 오만여명을 멀리 신라까지 데리고 가서 숱한 인명과 숱한 국탕을 소모하여 왜를 때려 쫓았는가?
여기 종족이라는 것이 고마운 것임을 볼 수 있었다. 한 옛날 단군 왕검이라는 선인(仙人)에게서 흘러내린 같은 피의 종족으로서, 호태왕은 신라의 수난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본 것이다.
같은 종족끼리 서로 천자가 되려고 죽이고 죽이는 중국 종족으로서는 좀 이해하기 곤란한 일이었다.
-이러하였으니까 고구려는 흥하고 크게 됐구나! 아아! 이 고구려나라를 운영하시고 지도하시는 을지문덕 승상이시여!
국향이는 마음 초조히 기다렸다.
지난날 현인들이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우고 키운 기록에 국향이는 열중하였다. 자기가 지금 어디 있는지, 어떤 환경에 있는지도 잊고, 유기에 열중하여 유기를 탐독하고 있었다.
문득 시야의 한편 구석에 무엇이 움직이는 바람에 그리로 주의를 돌렸다. 보니 거기에는 웬 사람의 발이 한 쌍 눈에 띄었다. 국향이는 펄떡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자기가 어떤 환경에 어떤 곳에 있는지 전후를 가릴 수가 있었다.
그 발에서 차츰 더듬어서 가슴으로 얼굴로 눈을 옮겼다.
거기는 한 사십 살로 볼 수 있는 웬 한 장년이 발을 멈추고 국향이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평복-편복(便服)으로 차린 사람이었지만, 온화스러운 그 얼굴에 천하를 위압하는 기개가 감추여 있었다.
국향이는 이 인물이 누구임을 알 수 있었다. 뜻하지 않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 인물에게 향하여 넓적 절을 하였다.
“승상님, 문안드리겠읍니다.”
“국향 공주라구?”
그 인물은 이렇게 말하며 그 자리에 자리잡고 앉았다.
“네- 국향이올시다.”
“폐하의 수서는 보았소, 폐하가 공주를 떠나보내신 뒤에 어떤 일을 당하셨는지 공주는 아시는지요?”
“산동을 지날 무렵에 약간 풍문으로 들었읍니다.”
“폐하께서는 공주의 일신을 내게 맡긴다고 하오셨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오?”
국향이는 미처 대답치 못했다. 제 일신을 장차 영구히 보아 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염치에 나오지를 못했다.
“좌우간 공주는 하늘 아래 혼자 남은 신세니까, 이 내 집을 진궁(陳宮)으로 알고- 내 처를 어머니로 여기고 나는 아버지로 여기고, 마음 놓고 여기 계시오. 고구려 재상 내 집에 묵어 계시면 하늘 밖에는 공주를 범할 자 인세상에는 없을 게요.”
고구려의 만성이 자기는 고구려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하는데, 고구려의 대재상이 어찌 그 신분을 자랑치 않으랴.
하늘 밖에는 그대를 범할 자 없느니라. 내 집에 묵어 있는 동안은… 이런 말을 감히 외칠 수 있는 그 신분에 대하여 국향이는 만강의 경의를 표하였다.
“사람의 팔자란 칠전팔기- 공주 팔자 기박하여 지금 이 동이의 범부에게까지 굴해 지내시지만, 장차 우리나라 나랏님께서 공주의 앞에 절하 오실 날이 없으리라고 장담 못할 일이오. 그러니까 고요히 팔자 돌아올 날을 기다립시오. 여기 내 집에 푹 마음 놓고 계시면서-.”
“승상님이 두어 주시기만 하면….”
이리하여 국향이는 을지 승상의 보호 아래 승상 댁에 몸을 두기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국향이를 위하여 고구려 처녀의 옷이 국향이에게 제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