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초
백만을 자랑하는 동방의 큰 서울로 자타가 허하는 대고구려 장안(長安) 서울의 성문이 고요히 열렸다.
성 밖에서 성문 열리기를 기다리던 적잖은 소민(小民)들은, 성문이 열리자 모두 성 안으로 빨리 몰려 들어갔다.
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만성(萬姓)들과는 외톨이로 한 중년 길손이 역시 천천히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길손에게는 의외인 것은, 번창을 자랑하던 이 ‘장안’서울의 모든 집 모든 가게가 모두 아직 굳게 문이 잠겨 있고,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며, 마치 죽음의 도시인 듯 고요하기 짝이 없는 점이었다.
길손은 내심 적잖이 의아한 마음을 품고 무연하게 넓은 장안 서울의 큰 길을 성 안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갔다.
들어가다가 어떤 반만치 문이 열린 가게 하나를 발견하고, 그 가게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성큼 가게에 들어섰다.
“말씀 좀 물읍시다.”
“뭐요?”
“오늘은 이 나라에 무슨 날입니까?”
그 이 나라라는 말이 수상쩍어서인지 주인은 비로소 이 길손에게 주의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오, 당신은 한인(漢人)이구료! 그렇지요?”
“네 그렇습니다.”
“한인, 한인- 그리고 오늘은 당신 나라 사람에게는 경축일이요, 우리 고구려 만성에게는 다시 없는 슬픈 날이외다.”
네 나라에는 경축일이요, 내 나라에는 슬픈 날이라는 이 간단한 한 마디의 말로, 길손은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짐작이 간 모양이었다.
“그럼 을지(乙支) 승장께서 무슨….”
“네, 승상께서 우리 만성을 남기시고 세상 떠나셨소.”
길손은 이 대답에 뜻하지 않고 나무아미타불을 입 속으로 외며,
“고구려 백성은….”
“백성이 아니라 만성이라오.”
“고구려 만성은 어버이를 잃고 얼마나 아득하리. 여보소 주인, 내 비록 한인의 자손이요, 수(隋) 때 양제(煬帝)를 따라 이 나라에 침입했던 한 병 졸이지만, 그때 이 나라에 떨어져서 이 나라 조〔粟[속]〕를 먹기 십여년, 을지 승상의 헤아림을 한없이 받았고, 그 덕을 마음에 아로새긴 사람이외다. 지금도 이당(李唐)이 고구려를 엿보는 이때, 을지 승상을 데려가시단 하늘도 너무 야속하시오.”
“이당이 역시 고구려를 엿볼 것 같소?”
“그럼요! 고구려가 서 있는 동안은, 그리고 우리 민족의 힘이 있는 동안은 고구려가 넘어지든 한족이 넘어지든 둘 중의 하나는 끝장이 나야 할 게요.”
“고구려를 위해서는 걱정 마오. 을지 승상 가셨을지라도 을지 승상이 뿌려 두신 고구려 혼은 그냥 남아 있소. 한병(漢兵)이 올 때는 말 타고 왔다가 갈 때는 업혀 가지 않을 수 없도록 그 준비는 고구려에 넉넉히 있읍니다.”
“좋은 임금님에 충성된 승상님에 효용한 백성-만성에 과연 고구려나라는 훌륭합니다.
그래서 나도 살수(薩水)에서 떨어져 이 나라에 투화(投化)하고 말았소이다.”
“잘했소. 우리나라에 투화하면 죽은 뒤에라도 나는 고구려 사람이어니 하는 자랑이라도 남지만, 당신네 나라는 대체 한(漢)이요, 수(隋)요, 당(唐)이요? 죽은 뒤에도 돌아갈 나라가 없구료. 팔백 년 면면히 누려 온 고구려에 비하건대, 오 년, 십 년씩 누리다가는 딴 나라가 되고 하는 당신네 나라는 그것도 나라랄 수 있소? 그….”
“아이, 듣기 부끄럽소이다. 말씀 말아 주십쇼. 그러기에 내 나라 배반하고 고구려에 투화하지 않았읍니까? 내 옛 나라 소식은 듣기조차 부끄럽습니다.”
×
그 전날, 나이 여든 몇 살로 세상 떠난 이 나라 대신 을지문덕을 사모하고 조상하는 뜻으로, 이 나라의 만성은 모두가 자기네의 할 일을 걷어 치우고, 조용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근신하고 있었다. 시골 농부의 집에 태어나서, 어려서는 집 근처에 있는 석다산(石多山) 토굴에 들어가서 학문과 무술을 닦았다 하며, 자라서 평원왕(平原王)과 영양왕(嬰陽王)의 지의를 받아 나라를 요리하기 오십여 년, 평원왕과 영양왕의 두 대에 걸쳐 그때 중국 천지를 통일한 수나라의 큰 세력에 대항하여, 동방 소이(東方小夷) 고구려로서 능히 그 수나라와 마주 싸워서 수나라를 꺾어서, 소이(小夷) 고구려의 만성으로 하여금 여전히 베개를 높이 하고 지낼 수 있게 만든, 인류 역사 있은 이래 가장 큰 영웅이요, 성인(聖人)인 을지문덕공이 그의 사랑하는 만성을 버리고 고요히 눈을 감은 것이다.
서쪽에는 수나라를 물려받은 이씨(李氏)의 당나라가 역시 호시탐탐히 ‘동방 소이’고구려를 넘겨다보며 있고, 남방에는 백제와 신라의 두 작은 나라가 동족인 고구려를 원수로 잡고, 수나라 당나라에 아첨하여 그 힘을 빌어서 고구려를 둘러엎으려는 온갖 꾀를 피우고 있는 이 위급하고 긴한 세상에서 을지문덕이 차마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을까?
시조 고주몽(高朱蒙)이 북부여(北夫餘)땅에서 일으킨 조그만 나라 고구려를, 뒤이은 명군 명자들이 늘이고 늘여서, 서북방의 웅국(雄國) 한족의 나라와 우연히 대립하여 동방인의 자랑을 천하에 자랑하는 대고구려국을 튼튼히 지켜서, 수 양제의 이백만 대군을 살수에 함몰시키고, 그것을 빌미로 수나라까지 둘러엎은 동방의 수호신 을지문덕-.그의 부보가 세상에 전하매, 그의 일생의 적이던 당나라 고조와 태종이 목을 놓아 울어서 위대한 영웅의 서거를 조상하였다 한다.
불행히 그의 일대는 사가(史家)의 놓친 바 되어 이제 살수(薩水)의 전기(戰記)하나 밖에는 전하는 것이 없다.
작자는 토막 모음으로 전하는 그의 일대를 소설화하여 이 아래 전하여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