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
“오늘도 신발 한 켤레만 밑졌군!”
제 발을 들어 보았다.
지푸라기가 모두 해어져서 사면으로 수염을 보이는 짚신-.
“신발 서른 뭇을 허비했으니 벌써 그럼 삼백 날인가? 그동안의 소득은 단 두 뿌리뿐….”
산삼을 구하고자 편답하는 삼백여 일 간에 간신히 두 뿌리만 얻고는 그냥 헛 애만 쓰는 자기였다.
문득 눈을 들어 맞은편을 건너다보았다. 계곡 하나를 건너서 맞은편에 보이는― 역시 깎아 세운 듯한 벼랑에는 나무가 부접할 흙도 없는 양하여, 겨우 잔솔 몇 포기와 지금 바야흐로 단풍들어 가는 낙엽수 몇 그루가 석양 볕아래서 잎을 풍기고 있다.
지난 여름에 팥죽지만한 산삼 한 뿌리를 얻은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건너다보았다. 건너다보다가 눈을 들어 아래로 떨어뜨렸다.
굽어보이는 계곡- 거기는 까마득한 저 아래 골짜기에 무엇인가 아물거리는것 같다.
“?”
눈을 주어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주어 보니, 거기는 웬 사람이 하나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유람객일까?
인가에서 백여 리나 떨어진 외딴 이 심산에 유람도 괴이하였다.
그렇다고 초부나 목동도 아니었다. 의관까지는 한 점잖은 사람인 모양인데, 그런 사람이 이 심산에 단 혼자서 방황하는 것은 웬일일까?
연파대(淵巴大)는 잠시 굽어보다가 그리로 내려가 보기로 하였다.
흙과 돌을 파기 위하여 가지고 다니던 연장을 구럭에 수습하고 그 자리에서 떠났다.
벼랑과 바위를 평로(平路) 다니듯 다니는 파대는, 교묘히 몸의 중심을 잡아 가면서 깎아 세운 듯한 바위와 낭떠러지를 아래를 향하여 더듬었다.
아래까지 이르렀다. 이르러 보매, 아래의 사람은 파대가 내려오는 것을 본모양으로, 바위에 기대어 파대가 다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는 사십- 혹은 오십- 육십- 대중잡기 힘들었다.
탄력 있는 피부와 빛나는 안광과 굵은 수염 아래 꾹 닫혀 있는 입 등으로 보아서는 사십 안팎의 장년이라고 볼 수도 있는 한편, 그 침착하고 인생에 피곤한 듯한 표정은 오십, 육십의 노인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여보소 젊은이, 어디로 가시오?”
파대가 물으려던 말을 도리어 묻기었다. 파대는 공손히 대답하였다.
“저는 이 근처의 사람입지만 대인(大人)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니까?”
“이 근처 사람이면 잘 알겠군. 이 근처에 소리골이라는 데가 어느 편에 있소?”
“소리골은 여기서 백여 리 남습니다. 그 소리골은 누구를 찾아가십니까?”
“방향은 어느 방향이요?”
“남쪽으로….”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키려는 쪽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벼랑이 마주서 있어서 가리킬 수가 없었다.
“방향은 남쪽입지만 가시자면 이 골짜기로 이렇게- 그러나 요리 굽고 조기 굽고, 그 위에 사면에 지류(支流)가 얽힌 이 골짜기로서 또한 어떻게 가리켜 드리나? 참 대인, 이렇게 하세요. 무턱허구 한참 남쪽으로 가시다가 사람을- 초부든가 약초(藥草)꾼이든가 만나기만 하시거든 그이한테 을지 승상 동네가 어디냐고 물을시면 다 알리다. 소리골이라면 모를 이도 있겠지만, 승상 동네라면 모르는 이가 없읍니다. 그렇게 물어 가시는 편이 가장 첩경이리다.”
“내가 그 소리골서 온 사람이외다. 하도 심심하기로 어제 점심을 싸 가지고 집을 나서서, 이리저리 구경에 정신이 팔려서 길을 잃고- 어젯밤에는 어느 토굴에서 한밤을 지내고 오늘도 지금껏….”
“아니?”
파대는 깜짝 놀랐다. 어제 점심을 싸 가지고 떠난 이라니 그러면 어젯 저녁은? 오늘 조반은?
“얼마나 시장하시오? 어제부터!”
“시장도 약간 하오.”
“그럼 저의 집으로 잠깐 가시지요. 그 바위 지나서 막을 하나 틀고 살고 있읍니다. 얼마나 시장하시고 고단하실까?”
그 사람은 천천히 눈을 굴려 파대를 보았다.
“젊은이 마음씨 곱기도 해라.”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파대는 손님을 모시고 제 토막으로 올라왔다.
“들어가 쉬세요. 제가 저녁 마련을 하오리다. 더러운 방입지만….”
파대는 손님을 방(방이래야 나무를 찍어다가 얼커리한 단간방이었다)으로 들여 모시고 자기는 끼니 준비를 하였다.
손님 시장할 것도 시장하겠거니와 어서 손님께 끼니를 드리고 손님께 여쭈어 보고 싶은 말이 있다. 손님이 스스로 소리골서 왔다 하니, 그러면 소리골 을지 승상의 동정, 건강 등을 알 것이다. 그것을 듣고 싶었다.
마음은 조급하지만 정성을 다하여 지은 저녁과 산채 등을 도마에 받쳐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오니, 손님은 피곤을 못이겨 벌써 잠들어 있었다.
파대는 소리 안 나도록 조심히 들고 들어온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 조그만 소리에도 손님은 벌떡 깨었다.
“대인! 대인!”
“어? 음-.”
“저녁 진지올시다.”
“어느덧 잠이 들었군. 젊은이 참 고맙소.”
파대는 손님께 저녁을 드리고, 자기는 뜰에서 따로이 저녁을 먹었다.
얼른 저녁을 끝내고 방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도 저녁을 어느덧 끝내고 또 잠이 들어 있었다.
이튿날 조반도 끝낸 뒤에야 파대는 비로소 손님과 마주 앉을 기회를 얻었다.
“대인께서는 을지 승상을 조석으로 늘 뵙겠읍니다그려?”
멀리서 먼눈으로 잠깐만 뵐 수 있어도 그런 기쁨이 없겠거늘, 이 손님은 조석으로 뵐 수 있을 것이 파대에게는 부러웠다.
손님은 어제부터 스스로 묻는 말은 많았지만 파대가 묻는 말에 대답은 그리 안하였다. 이번도 역시 대답은 피하고 스스로 파대에게 물었다.
“젊은이는 약초(藥草)를 캐시는 모양이구료?”
“대인, 오냐를 해주세요. 보잘것 없는 소동(小童)이올시다.”
“약초를- 보아하니 약초 장수도 아닌 듯한데 약초는 무엇 때문에….”
“대인, 제가 한 가지 꼭 여쭈어 볼 일이 있읍니다. 이것만은 꼭 대답해주세요.”
대답마다 피해 버리는 손님이라 물어 보기가 좀 떨떨했다. 그러나 하도 답답하던 일이나 종내 물어 본 것이다.
“다른 게 아니라, 산삼은 정성을 드리고 산신께 제사를 드려야 눈에 뜨인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산삼을 구하고자 일 년 가까이 전부터 이 산간을 편답하는데 처음에는 물론 산신께 제사를 드렸읍니다. 드린 그 날 신명의 도우심으로 손가락만한 삼 한 뿌리를 얻었읍니다. 그 다음 지난 여름엔 그 때 제사도 안 드렸는데 팔뚝만한 것을 또 하나 만났읍니다. 그 뒤로는 다시는 삼을 만나지를 못했읍니다. 아무리 지성껏 큰 제사를 몇 번 드려도, 드려도 또 드려도 다시는 눈에 안 띕니다. 이 향산(香山)의 봉우리란 봉우리, 골짜기란 골짜기, 제 눈에 벗어난 데란 한 군데도 없읍니다. 편답하고 살피고 들추어도 다시는 눈에 안 뜨입니다. 이것이 정성이 부족한 탓일까요? 혹은 이 향산엔 이젠 삼이 없는 탓일까요?”
손님은 역시 대답 대신 질문이었다.
“허어! 기특도 해라! 그래 두 뿌리씩이나 얻고도 그래도 부족이오? 하늘도 과한 욕심엔 응하지 않으시겠지.”
“본시부터 세 뿌리를 캐 낼 예정이었읍니다. 제 사사로운 욕심은 아니올시다.”
“고집도….”
역시 대답은 피해 버린다.
“대인, 제 정성이 역시 부족한 탓일까요? 혹은 이제 이곳엔 삼이 없는 탓일까요?”
“왜 하필 세 뿌리요? 산삼 장수도 아닌 듯한데 혹은 양친 봉양에 쓰시려…?”
“아니올시다.”
“그럼?”
“대인 댁 이웃에 사시는 을지 승상께 바치려고….”
“허어, 을지에게! 을지와 어떤 친척 관계라도 되시오?”
“아니옵니다마는….”
“그럼?”
“승상께서 정무에 골똘하셔서 몸이 고달프시어 소리골로 내려오셔서 쉬신다고 듣자왔기, 승상게 바치려고- 아무 연분도 없읍니다마는….”
이 대답에 손님은 적지 않게 감심한 모양이었다.
“그저 그런 뜻으로?”
“네, 고구려 만성 된 자 누구 승상의 은공을 모르리까? 그 은공의 만분의 일이나마 갚아 올리고자….”
“기특도 하지! 여보소 젊은이, 그 정성에 삼이 있기만 하면 왜 눈에 안띄리. 내 어제 오다가 정녕 산삼 잎 같은 거을 본 일이 있는데, 나는 욕심도 안 나는 것이길래 그냥 지났지만 정녕 산삼 잎이야.”
파대는 벌떡 일어났다. 숨이 놀랍게 씨근거렸다. 숨차게 물었다.
“그게 어디쯤이오니까?”
“어제 내가 서서 젊은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그 앞 바위 틈에….”
“대인! 가십시다. 제가 업어 모시리다.”
“그럼 가 봅시다. 피곤은 이젠 다 풀렸소. 잎을 보아 있으면 꽤 큰 것이 있을 모양이야.”
파대는 손님을 모시고 토막을 나섰다. 손님이 지시하는 곳까지 이르러서 파대는 정신이 아득하도록 놀랐다. 자기가 과거 일 년간을 이 앞을 지나기 무릇 몇 천 번이거늘, 바위 틈에 뚜렷이 잎을 내밀고 있는 이 삼을 넘긴 것은 웬일이었던가?
또 이 손님은 어떤 손님이기에 이런 삼잎을 보고도 그저 무심히 지나 버리는가? 꽤 크고 굵은 것이 있으리라고 보고도 그저 지나는 이 손님은 대체 무슨 사람인가?
파대는 거기서 진시황이 보았더면 몇 개 나라와도 바꿀 만한 희대의 동자삼을 캐 내었다.
“클 줄은 짐작했지만 이렇게 클 줄은 나도 예상 외요.”
손님이 미소로써 이렇게 감탄할 때에야 파대는 비로소 펄떡 제 정신을 차렸다. 너무 감격되어 파대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대인,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세요. 이젠 목적했던 세 뿌리- 더우기 마지막에는 동자만한 삼까지 얻었으니, 이걸 가지고 곧 소리골로 가겠읍니다. 대인도 소리골로 가시려면 저하고 같이 가십시다.”
손님은 거기 멈추어 두고 혼자 움막으로 달려왔다.
산삼을 캐고 찾기 위하여 준비했던 모든 연장은 이젠 쓸데없는 물건이었다. 연장들을 호기 있게 동댕이치고, 그동안 연여(年餘)의 소득인 두 뿌리의 삼(손가락만한 것과 팔뚝만한 것)을 지금 캔 바의 동자만한 것과 함께 잘 싸서 간수하고 손님을 세워 두었던 곳으로 달려나왔다.
“대인, 자 가십시다. 곤하시면 업어 모시오리다.”
“곤하긴- 자 갑시다.”
할 수 있는 대로 평탄한 시냇가를 잡아 그들은 길을 더듬었다.
시냇가 정갈한 곳을 찾아 점심을 먹고 또 길을 더듬었다.
한참 가다가 문득 보니, 저편 맞은편에 웬 한 떼거리의 인마가 보인다. 길 없는 산곡에 한 떼의 인마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 인마의 모양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곳까지 이르러 보니, 인마의 중심에는 꽤 높은 관원(官員)도 있는 듯하며, 또한 그 맨 중심에는 빈 수레(매우 고귀한 사람이 탈 만한)까지 한 대가, 그 빈 수레를 사람 여섯이서 끌고 모시고 온다.
“날 찾아온 모양이군. 무슨 일일까?”
손님은 이마에 손을 대고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나를 찾아? 파대는 눈을 들어 손님을 보았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그러나 거기는 어딘지 모를 자애와 위의(威儀)가 역연히 흐르는 얼굴이었다.
“대인!”
“대인께서는 혹은-(숨을 허덕이었다)황공하옵니다마는 을지 승상이 아니시오니까?”
“내가 을지요.”
“아!”
기가 막혔다. 넓적 엎드렸다. 엎드린 파대의 눈앞에 이 나라 승상 을지문덕의 먼지 덮인 신발이 있었다. 파대는 승상의 신발을 쓸어안았다. 제 얼굴을 함부로 승상의 신발에 비볐다. 감격과 감사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쁜 감정에 눈물만 쏟아졌다.
이 분이 을지 승상이었던가?
평생 사모하고 존경하고 숭배하던 어른을 모신 줄 모르고, 자기는 혹은 무슨 창피스러운 일 망신스러운 일이라도 하지 않았던가? 지난 저녁 그 더럽고 좁은 방에서, 반찬도 없는 음식에, 게다가 그 곁에서 자기까지 하고- 코나 요란스럽게 굴지 않았는지, 땀내 나는 등에 업어까지 드리고- 무슨 일인이 가슴이 치받쳐 앞뒤를 가릴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보매, 인마는 꽤 가까이 이르렀다. 파대는 그 인마를 향하여 손을 저으며 고함지르면서 마주 나갔다.
“승상님 여기 계십니다. 여기 계십니다.”
조정에서 칙사(勅使)가 칙명을 받들고 내려온 것이었다. 긴급한 국사가 생겼으니 승상 을지문덕은 곧 상락(上洛)하라고―.
을지 승상은 고요히 눈을 들어 칙사를 보았다.
“성체 무양하오시다니 듣잡기 기쁘지만 갑자기 나를 부르시게 된 연유는?”
머리를 숙여 생각하였다.
“진나라와 수나라는 그냥 다투오?”
“진이 수에게 망했읍니다.”
승상은 소스라쳐 놀랐다. 침착한 그의 안색까지 한순간 변하였다.
“아! 그럼 수가 혼자 남았다? 양광(揚廣)이가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
“그렇게 됐읍니다.”
“아뿔사! 그럼 내 곧 상락해야겠군. 우리 성상도 그 일로 부르시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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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고구려 평원왕(平原王) 삼십이년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