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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사냥


원작 |

사냥철 3화 사냥 준비


"이게 말도 안 되게 좋은 자리라고. 나쯤 되니까 이 값에 후려친 거지"

"그래 보이는군. 서울 시내인데도 후미지고 유동인구도 적어. 넓이도 이 정도면 시가전 훈련해도 될 정도인걸... 장갑차 한대 숨겨놔도 되겠네"

건설업체 부도로 인해 분양 신청도 못 받고 방치된 3층짜리 상가 건물. 사람 비슷한 냄새도 나지 않을 흉물스러운 외관의 건물 안을 세 명의 남녀가 걷고 있었다. 이언은 을씨년스럽게 방치된 건물 안을 거닐며 케네스 양의 자화자찬에 맞장구쳤다. 제법 커다란 건물이라 아닌 게 아니라 장갑차는 물론이고 전차라도 숨겨둘 수 있을 법하게 넓다. 이언은 방음재로 꼼꼼하게 마감해둔 내벽을 툭툭 두들겨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봐, 아무리 나라도 한국에서 장갑차는 못 구해와"

"그냥 해본 말이야"

이언은 대수롭잖다는 듯 말을 흘렸지만 케네스 양은 주춤거리며 손사레를 쳤다. 이언은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전차포로 클랜 아지트 하나를 작살낸 경력이 있는 만큼, 얼마나 미친 놈인지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넘겨들을래야 넘겨들을 수 없는 말이다.

"지하주차장도 대충 정리해뒀으니 쓸만할거다. 넓진 않지만"

"그래? 경찰서가 좀 가까운 것만 빼면 완벽한데"

"까짓거 경찰서 뒤에서 윤락업도 하는 나란데 뭐 어때"

케네스가 빈정거리며 아쉽다는 듯한 이언의 투정을 받아치자, 방범설비를 살펴보던 앨리스가 그에게 곱게 눈을 흘기며 핀잔을 주었다.

"예를 들어도 꼭..."

"자자, 그럼 2층으로 올라가자고. 사무실로 안내해주지"

케네스는 변명 대신 씹던 풍선껌을 불어 터트리더니 계단을 가리켰다. 방음재로 마감했다지만 어디까지나 실용성을 위한 수준인지라, 건물 1층은 세간에 알려진 대로 건설업체 부도로 방치된 폐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칠도 안 된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가자 그나마 바닥과 벽에 화강암 타일이 말끔하게 압착 시공된 2층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대충 에폭시페인트만 발라놔도 되는데 말이지"

"이쪽 아가씨가 2층 인테리어는 직접 해야겠다고 우겨서 말이지"

이언은 케네스의 손가락을 따라 앨리스를 힐긋 쳐다보았다. 갑작스레 두 남자의 시선을 받은 앨리스는 괜히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

"확인하는 내가 보기 괴로워서 그런 것 뿐이야. 세상에, 작업장도 아니고 에폭시페인트가 뭐야 대체!"

"작업장 맞는데..."

이언이 중얼거리자 그녀는 코트깃을 세워 얼굴을 파묻더니 잰 걸음으로 앞서나갔다. 뒤에서 케네스와 이언이 킥킥거리자 걸음이 더욱 빨라진 그녀는 결국 사무실에 들어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기는 들어오나?"

"물론. 공장가로 들어오니까 전기세는 걱정없지"

"인터넷은 연결되 있나?"

"여권명으로 이미 개통했어. 랜선만 꼽으면 될걸"

"...신발부터들 벗어요"

"어, 신발 벗어두고 들어가? 한국식인가?"

​'​대​림​무​역​종​합​상​사​'​ 라는 팻말이 붙은 철문 너머의 사무실에는 탁자와 소파, 책상이 휑하니 놓여 있었다. 신발장에 워커를 던져넣은 이언은 옆에 악기함을 고이 눕혀두고 소파에 앉아 슈트케이스를 열었다. 케이스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노트북을 꺼내 부팅시키자 부팅 스크린에 외계인 얼굴 마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윈도우 로고와 함께 키보드에 붉은 백라이트가 들어오자 앨리스가 고개를 젖혀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노트북이 이렇게 요란해?"

"거야 성능도 보장해야 하니까... 풀옵션 에일리언웨어로 비싸게 뽑았지"

앨리스는 노트북 모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지 금새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이언은 워드에 주문 발주서를 띄워 김성희에게 받은 견적서와 대강 비교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케네스를 바라보았다. 품 속에서 확인서를 꺼내든 케네스는 사인을 받자마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럼 난 자리를 피하지. 계약 끝나면 다시 찾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마음대로 쓰도록"

"그래. 아 참, 무기 좀 주문할 수 있나?"

"어떤 무기?"

"H&K XM8, SS-20 이랑 AA-12. 프라그12 탄도 구해주고"

"물량은?"

"이전에 주문하던 만큼. 아 그리고 K4랑 60mm박격포도 구해줄 수 있나?"

"...미친놈. 서울 한복판에서 뭘 쏘겠다고?"

분대급 화기를 구해 달라는 이언의 주문에 앨리스는 놀라서 눈을 치켜떴고, 케네스는 입을 딱 벌리며 욕을 내뱉었다. 이언은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덧붙였다.

"생각없이 쏴대겠다는 건 아니고... 베놈이 한국에 직접 상륙한 만큼 아일랜드 에스테이트가 밀고 들어올 경우도 상정해야 하니까. 그 정도 화력이 안되면 못 막아. 솔직히 전차라도 한 대 쟁여놓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건 지갑이 좀 무리지"

"역시나.. 제기랄. 이런 또라이 녀석 주문을 받는 게 아닌데"

"흐음, 내가 밀려서 뒷정리 안 하고 튀면 제법 골치 아플 텐데 말이지"

이언이 느긋하게 배짱을 부리자 케네스는 혀를 내두르며 욕을 중얼거렸다. 아지트를 차리는 데 케네스 양이 깊게 개입한 만큼 이언이 아일랜드 에스테이트와 불장난을 벌이고 째면 그는 확실히 입장이 곤란해진다.

"이런 썩을... 젠장, 구해봐주마. 걸리면 연락 끊을테니 알아서 해라"

고민하던 케네스는 결국 승락하고는 문을 발로 차다시피 열어젖히고 나갔다. 이언은 닫힌 문 너머로 멀어져가는 거친 욕설을 들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소파 깊숙히 몸을 묻었다. 앨리스가 한참이나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언을 힐난하듯 쳐다보자 그는 결국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인식장애처리도 확실히 할 거고, 테트라 아낙스도 상륙한 것 같으니까 별 문제 없을 거야... 아, 그보다 아까 그 조수 이야기나 좀 더 해봐. 아크메이지 밑에서 견습과정을 마쳤다고?"

"응. 내 사제 비슷해. 내일 아침까지 오라고 해 둘게"

"빠르네. 그나저나 미마 님 제자인가봐? 그럼 의사마법 계열이겠네"

"맞아. 이미 마법의 형(形)까지 갖췄으니까 이론쪽으로 봐줘야 할 건 없을거야"

"그런 사람이 왜 하필이면 하겠다는 게 이 짓거리야? 이해가 안 된..."

"..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잖아?"

"그건 그렇네. 뭐, 본인에게 묻지. 어쨌든 이미 형까지 갖췄다면 망칠 걱정 없이 막 굴려도 되겠군"

이언이 다소 기분나쁘게 씩 웃으며 무릎에 깍지낀 손을 올리자, 앨리스는 불신감 어린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방금 전부터 갑자기 네게 맡긴 게 후회되기 시작했어"

"걱정 마. 이 짓거리에 뛰어든 이상 누구에게 맡기든 훌륭하게 인생 말아먹은 셈이니까"

"...."

그녀는 그늘진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결국 이언의 말에 반박하지는 못했다.
적당히 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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