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철 4화 훈련
벅- 벅- 벅- 벅-
아직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소파에서 곤히 자고 있던 이언을 깨운 범인은 보안장치의 경보음이었다. 방범장치에 뭔가가 잡혔는지 책상 위의 보안장치가 낮은 톤의 경보음과 함께 깜박이고 있었다. 이언은 반사적으로 보안장치 옆의 폐쇄회로를 바라보았지만 어쩐 일에선지 작동 중지된 폐쇄회로는 검은 화면만을 출력하고 있었다. 그는 일단 경보장치를 눌러 중지시키고, 아직까지도 켜져 있던 노트북을 절전 모드로 전환시켜 본체만 슈트케이스 안에 쑤셔박았다. 거친 손놀림에 어젯밤 앨리스와 이야기하면서 마시던 커피잔들이 부딪혀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뭐야, 벌써부터....?"
이언은 태평하게 중얼거린 것과는 반대로, 잰 손놀림으로 악기함을 열어 총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를 둘러메고 기하학 도식들이 덫칠된 검집을 꺼냈다. 힐트를 쥐고 잠시 망설이던 그는, 검 역시 슈트케이스에 대충 쑤셔박은 후 슈트케이스에 멜빵끈을 연결하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총 비슷하게 생긴 간결하고 괴상한 구조물은 2개의 레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는 전면 계단쪽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밑 레일에 탄환 비슷하게 생긴 맥주캔만한 네 개의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장착했다. 이어서 그는 품 속에 손을 넣어 작은 캡슐을 꺼냈다.
"젠장. 통상화기도 없고 워드스톤 보충도 안 됐고 영 안 좋은데... 어쩔 수 없나"
고무 튜브를 들고 잠시 고민하던 그는 캡슐을 열어 코에 가져다 대고 숨을 들이쉬었다. 들이쉬는 순간 늘어지는 듯 하던 이언의 눈빛이 언제 그랬냐는 듯 예리하게 날이 선다. 곧이어 손을 털어낸 그는 촉각을 곤두세우며 총 비슷한 무언가를 겨눈 채 계단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워커를 신고 움직이는데도 묘한 발놀림 탓인지 발소리가 나지 않는다.
자박자박-
"...my dues time after time"
계단으로부터 조심성 없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이언은 코트 왼쪽 주머니를 뒤져 갖가지 기호와 문자가 그려진 돌들의 수를 확인했다. 각종 룬 워드와 바인드 룬이 그려진 십수 개의 워드스톤을 확인한 그는 그 중 하나를 입에 물었다.
"I've done my sentence but committed no crime-"
흥얼거림이 제법, 아니, 굉장히 가까워지자 이언은 교본을 그대로 옮긴 듯한 슬사(膝射) 자세로 한쪽 무릎을 꿇고 출입구에 총구를 겨눴다. 총 비끄스무리하게 생긴 구조물의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팽팽한 긴장이 걸린다.
".....bad mistakes I've made a few"
이언은 석상처럼 숨마저도 조용히 죽인 채 가늠좌 사이로 시선을 내리꽂았다. 한 시간과도 같은 수십 초가 지나고... 이윽고 선명하게 울려오는 보이쉬한 목소리와 함께 새까만 단화가 화강암 타일에 첫 발을 내딛었다.
철컥-
"I've had my share of sand.....우와아악!"
단화에 이어 모습을 드러낸 보이쉬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총구를 겨눈 채 잠복해있던 이언을 발견하고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거의 방아쇠를 당길 뻔 했던 이언은 가까스로 멈춘 손가락을 떼어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노랫가락의 주인공, 곱슬거리는 금발을 어깨까지 늘어트린 십대 후반의 소녀는 어지간히 놀랐는지 이를 악물고 황갈색 눈으로 이언을 노려보았다. 한동안 황망한 채 그 표독스런 고양이같은 시선을 감내하던 이언은 결국 물고 있던 워드스톤을 뱉어내며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넌 뭐냐?"
"힉. 그, 그러는 너...는 누군데?"
그녀는 다소 겁먹은 듯 말을 더듬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질문을 자뭇 당당하게 되받아쳤다. 이언은 혀를 차며 성의 없이 답했다.
"여기 임대인이다"
"...누가 그런 걸 물었냐구"
그가 대체 뭐가 더 필요하냐는 듯이 바라보자, 소녀는 바닥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소개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하는 듯 허리춤에 주먹 쥔 손을 얹고 당돌하게 이름을 밝혔다.
"난 키리사메 마리사. 너...아니, 그쪽은?"
"이언 틸러"
"아, 역시. 제대로 들어온 거 맞구나. 앞으로 잘 가르쳐달라구"
"뭐?"
이언은 중얼거리더니 제발 잘못 들었기를 바란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지만 이내 입을 닫아버리더니 몸을 돌렸다.
"..일단 들어와라"
축 늘어진 듯 질질 끌리는 워커를 따라 아담하고 까만 단화가 사무실 안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