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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라이의 철직(綴織)


2화. 뫼비우스의 매듭 - 네메시스의 추적


「...아.」

어제 결국 침대에서 수상한 기기를 들고 뒹굴거리다 잠들어 버렸다. 눈을 돌려서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12분. 수업이 오후부터 있는 금요일 치고는 평소보다 훨씬 이른 기상이다. 쓰러지듯이 잠들었더니 이불은 아예 덮기는커녕 한편에 접어둔 상태고. 웬만하면 감기 정도 걸려주면 쉬운 핑계거리라도 될 텐데, 이렇게 된 거 아무래도 또 옆방의 의사 누님한테 진단서 조달을 ​부​탁​해​야​겠​지​만​.​.​.​

‘중간에 잔소리 들을 거 생각하니 어느 쪽이든 영 가기가 싫은데...’

어제 고민을 거듭한 결과 라케시스를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2시 31분에 벌어지는 일을 확인해야겠지만, 거기 적혀있는 게 진짜라면 그대로 학교에 갔다간 보안법에 걸려서 체포당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아파서 학교를 쉬고 강의내용 필기 명목으로 동기 녀석에게 전화 걸어서 알아보려고 하는데...아무리 그래도 멋대로 학교를 쉬어서 성적이 떨어져서 좋을 리 없잖아.

「할 수 없지...유에 이름을 대고 일단 진단서 빌려오는 수밖에...」

침대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단말기와 패드를 집어들고 하바네는 방을 나섰다.

터덜터덜 2층 중앙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간다.

하바네가 하숙중인 안도장(安藤莊)은 3층짜리 연립주택으로, 집주인인 안도 마사키(安藤 正樹)와 유에 부녀가 사용하는 1층 외의 나머지 층에 하숙생들이 머물고 있다. 부녀 둘이서 지낸다는 건 다시 말해 안도 씨는 홀아비라는 게 ​되​지​만​.​.​.​하​숙​비​랑​ 프리터 일로 먹고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직접 빨래를 널러 나오거나 하기에 조심스레 물어보니 매일 자신이 가사일을 맡아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

「...어이. 아침 식사 시간인데 너는 밥 안하냐...?」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굳이 아침 안 먹어도 상관없는데요. 굳이 누가 해준다면 먹겠지만.」

그 대가로 따님이신 유에는 이렇게 어딘가 많이 비뚤어진 형태로 성장 중이시다. 딸내미바보 아버지한테 워낙 감싸여 자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천성이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복 차림으로 밖에 나와 있는 걸 보니 이녀석, 오늘도 학교는 땡땡이 칠 속셈인건가.

「...그런데 하바네로씨는 학교 가려고 하는 것 치고는 많이 가벼운 것 같은데요.」

「음. 일단 그거 때문에 고민 좀 했는데, 오늘은 나도 유에를 본받아볼까 싶어서. 아파서 좀 쉬려고 누님 병원에 갈 생각인데.」

흠칫, 하고 핸드폰을 보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눈을 크게 뜨면서─이 녀석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던가─한마디.

「...그러게요. 많이 아파보이네요. 그런데 코우 언니는 정신과가 아닌데.」

이 녀석이...

「그러는 너는 아침식사도 안하고 어딜 급하게 가는 건데?」

「...그냥 평범하게 놀러가요.」

여고생의 평범한 생활이면 지금은 아침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바네는 여기서 추궁을 그만두기로 했다. 누님한테 진단서를 끊어야 하는 시점에서 최소한 이 녀석이랑 부딪혀서 악감정을 만들어버리면 곤란하기도 하고.

「그러냐. 그럼 난 일단 병원 갔다온다.」

「코우 언니 어제 철야해서 아마 꽤 날카로울 테니까 조심하세요.」

「응? 리포비탄(일본의 박카스 같은 음료)이라도 사가야겠구만.」

...

​「​.​.​.​에​휴​.​.​.​」​

진단서를 들고 병원을 나서면서 하바네는 한숨을 쉬었다. 병원에 도착한 하바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복도 의자에 널부러진 의사 누님이었고, 진단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녀는 하바네를 붙잡고 40분 정도 내내 잔소리를 퍼붓다가 알아보기도 힘든 글씨체로 뭐라고 휘갈기고는 대충 안겨서 보내버렸다. 그래도 한 시간 전에 끝나는 걸 보니 피곤하긴 한가보다, 하고 하바네는 생각했다.

‘정말 평소보다 환자가 많네.’

의료기술이 상당히 발전했고, 라케시스로 인한 스케줄링으로 생활이 규격화된 요즘 시대에는 큰 사고에 휘말리거나 위험한 질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적어서 의사들도 대체로 한가한 직업이 되었다. 물론 이런 환절기가 되면 감기몸살 환자들이 늘어나는 건 변함없지만. 하지만 지금 병원에 실려 오거나 하는 사람들은 누가 보기에도 중환자들이다.

‘뭔가 위험한 유행병이라도 돌아다니는 건가...’

아래층 약국에서 마스크라도 사서 끼고 다닐까 생각하는 하바네의 호주머니에서 우우웅 하는 진동음이 울렸다. 드디어 동기한테서 뭐하냐고 전화가 온 건가 하고 패드를 꺼내보니 아무 반응이 없다.

‘...뭐지? 패드는 조용한...’

알고 보니 주머니에 같이 넣어놓은 단말기 쪽이 진동하고 있었다. 뭐지, 전화 기능 같은 건 없다고 ​했​는​데​.​.​.​설​마​.​.​.​

<Data ​U​p​d​a​t​e​d>​

‘역시 또 업데이트 된 거냐.’

라케시스 단말기에 새로 업데이트 된 내역을 읽어본다. 이미 오후 2시에 예정되었던 난입 내용은 사라지고 없으나, 대신 새로운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12시 17분, 안도장 1층 보안부 요원 10명 난입 및 총기 사용으로 사망자 3명. 이후 생존자 차량 こ38-61로 도주.>

「뭐야 ​이​건​.​」 ​

요원 난입 장소가 바뀌고, 시간이 더 앞당겨진 데 이어서 내용이 조금 더 과격해져 있었다. 게다가 안도장이면 이미 거주지까지 다 알아낸 상태라는 거잖아...이번엔 왜 또 12시 17분이지... 사망자 항목을 눌러보니 안도 마사키와 하숙생 2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사망 원인은 근접거리에서의 기관단총에 의한 총상.

기관단총?!

기관단총까지 들고 올 정도면 처음부터 죽일 생각으로 온다는 것이 된다. 아무리 정보법 위반자라고 해도 정부에서 대놓고 대로변에 있는 건물에 쳐들어가서 사람들을 사살하는 짓을 태연히 벌인다는 게 말이 되나...? 정말 믿어도 되는 거야, 이 어플리는? 그렇다고 확인해 보기에는 이번에는 사람이 죽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어쩌지...’

하바네가 라케시스 단말기의 내용을 믿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지, 아니면 이대로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중에,

우웅─

<Data ​U​p​d​a​t​e​d>​

다시 업데이트 내용이 떠올랐다. 시도 때도 없이 업데이트라니, 아직 아무 것도 안했는데...

<11시 26분, 안도장 1층 보안부 요원 10명 난입 및 총기 사용으로 사망자 6명.>

「뭐?!」

갑자기 시간이 당겨지고 사망자의 수가 늘어나 있다. 게다가 그 수는 하바네가 아는 이 시간대에 안도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수와 거의 비슷...하다. 대체 이건 뭐지? 누군가가 그가 쓰여진 내용과 달라지게 행동을 바꾸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저 이 어플리가 사람을 몰아세우기 위해서 계속 시간을 앞당기는 것인가?

「일단 안도장에서 사람들을 나오게 하지 않으면...」

그런데 뭐라고 말하지. 유에는 이 단말기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아까 놀러나간다고 했으니 알려줘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고, 유에 외의 사람들은 사정을 모르니 행동을 유도할 방법이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어플리를 뒤적대다가 초기화면으로 돌아가니 <​S​o​o​t​h​s​a​y​i​n​g​ ​G​u​i​d​e>​라​는​ 항목이 두 번째 목차에 있다. 눌러보니 다음과 같은 문구가 표시되었다.

『알고 싶으신 사항을 입력하여 송신해 주시면 1분 이내로 자동으로 답변이 송신됩니다. 단, 본 어플리의 작성자와 관련된 사항은 질문하실 수 없으며 질문 시기 이후의 타인의 행동에 따라 답변과는 다른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답변에 의하여 <​P​r​e​d​i​c​t​o​r>​ 항목과 다른 행동을 취하여 발생한 결과의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이건 뭐지. 봇(인터넷에서 단어와 문맥에 따라 자동으로 상대방의 말에 답변하는 매크로 프로그램)같은 건가.」

일단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하바네는 마치 트위터 글을 쓰는 칸과 비슷한 흰 색의 빈칸에 급히 현재의 사안을 입력했다.

『보안부로부터의 안도장 침입을 막는 방법 혹은 사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당장 급하니까 굳이 어미는 생략해도 되겠지, 하는 잡생각과 동시에 하바네가 송신을 누른 직후, 우웅 하고 단말기가 울렸다.

「뭐, 뭐야, 빠르잖아.」

순식간에 도착한 답변은 글이 아니라 일종의 표와 같은 형태로 되어있었다. 제일 위의 항목에 나와 있는 내용은,

『10시 12분에 현재 지점으로부터 동 211m 북 340m 지점의 도로변에서 차량 こ38-61에 탑승, 동승자와 함께 안도장으로 이동.』

예의 그 도주차량의 번호가 나오는 걸로 보아 아마 관련멤버들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눌러보니 예의 그 사카키 신라라는 녀석의 차량이다. 그리고 이쪽으로 온다는 건, 이 사람들도 라케시스의 내용에 따라서 이런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

‘아침에 유에 녀석이 놀러나간다고 한 것도 그럼 도피를 위한 건가. 그런데 그러면 지금의 차량은 왜 안도장으로 향하는 거지...?’

여기까지 생각한 결과, 하나의 결론이 나왔다.

‘설마 유에 이 녀석 돌아오는 건가? 안도장으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하바네는 도로변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그렇다면 차량이 안도장으로 향한다는 것도 납득이 된다. 하지만 이대로면 내가 버스를 타고 가든지 차량을 타고 가든지 결과적으로 모이는 인물들은 같잖아. 대체 여기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지?

그리고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의문. 무엇보다 이 어플리를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만약에 이 어플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상기의 난입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어플리 또한 마찬가지로 정보를 내려받는 수신기라는 경우도 생각해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대규모의 예측을 작은 어플리의 용량으로 다 감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으므로.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의 움직임 또한 정보를 내려주는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게 보안부에서 유도를 위한 정보를 뿌리는 것이라면...

‘질문을 바꿔볼까.’

제대로 답변이 돌아올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하고 하바네는 다시 <​S​o​o​t​h​s​a​y​i​n​g​ ​G​u​i​d​e>​에​ 질문을 입력했다.

『정보보안부는 어디까지 우리의 움직임을 알고 있지?』

송신 직후, 이번엔 약 5초 뒤에 진동이 울렸다.

『일본 정보보안부 라케시스 내 관련 항목 접근 횟수 및 내용갱신 61회. 최종 접속시간 9시 03분. 주변의 감시기기 등에 포착되어 파악된 귀하의 행동범위 6건.』

답변의 내용에 따르면 정보보안부 또한 라케시스를 사용하여 이쪽의 움직임을 조회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쪽에서 조회한 내용이 더 최근이라 저쪽에 알려지지 않은 건가. 그렇다는 건 이건 이제는 완전히 정보를 갱신하는 타이밍과의 싸움이 되는데.

순간,

끼이익, 하고 하바네의 눈앞에 승용차가 정차했다. 그리고...

파지지직,

「?!!!」

눈앞에 불빛이 비치는 것과 동시에, 하바네는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채 몽롱한 상태에서, 스턴건을 사용한 누군가가 그가 떨어뜨린 단말기를 줍는 것을 보며, 그는 정신을 잃어갔다.

...

왠지 언젠가 본 것 같은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또 이 꿈인가 하고 하바네는 생각했다. 어차피 깨어나면 다시 잊어버릴 것 같지만,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무너져버린 빌딩 사이에 놓은 공터.

‘......’

꿈은 어딘가에서 시작해서, 언제나 마지막은 이 곳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그는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다시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진다.

「─」

그 소녀의 말을 들을 때마다 멍해서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그 자신은 뭔가 분노에 가까운 감정에 휩싸인 채로, 언제나 소녀의 말에 ​항​변​해​왔​다​. ​

「─」

그리고 그의 저항은 소녀에 의하여 부정되고, 언제나 내려지는 것은 차가운 이별의 선고 뿐. 언제나 이 꿈에서는 안녕히, 라는 한마디만이 그에게 뚜렷하게 들려오는 소리의 전부였다.

하지만,

「운명에 대한 당신의 결정을 존중하며─그럼 안녕히.」

왠일인지 꿈에서 들리는 마지막 말이, 평소와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것 같았다.

뭐, 마지막에 어디론가 떨어져 내려가는 것은 언제나 마찬가지였지만.

‘으, ​으​아​아​아​아​아​!​’ ​

...

​덜​컹​.​.​.​덜​컹​.​.​.​

「...헉!」

「엉? 벌써 일어났네?」

기괴한 단말마와 함께 깨어난 하바네의 귀에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스턴건으로 기절시킨 뒤에 차량에 강제로 태워진 모양이다.

「설정을 잘못했나. 좀 더 있다가 일어날 줄 알았는데.」

「어이. 뭐하는 짓이야. 이거.」

운전대를 잡은 채로 투덜대는 자칭 탐정 사카키 신라에게 하바네는 발끈했지만, 아무래도 밧줄로 꽁꽁 묶인 채로는 반격할 방법이 없다는 걸 자각하고 잠시 생각해 본 뒤에 질문을 시작했다.

「일단 이 차 어디로 가는 거야?」

「오오, 게다가 생각보다 빨리 진정하는데? 당연히 유에 집으로. 네 녀석도 받아서 봤으니 알잖아? 라케시스에 나온 내용.」

예상대로 이 녀석도 라케시스를 이리저리 사용해 보다가 습격에 관한 내용을 알아낸 모양이다. 하지만 만약에 이 녀석에 안도장에 관한 예언을 봤다면 당연히 그 결과도 보았을 텐데.

「이대로 가게 되면 사망자가 나오는 건 알아?」

「그야 당연히 알지.」

「...그런데 왜 행동을 안 바꾸고 나온 대로 움직이는 건데.」

「안 그러면 유에가 죽거든. 적어도 나는 네 녀석보다는 이 물건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이 괴물한테서 정보를 얻어내는 건 훨씬 능숙할 걸.」

신라는 그리고 뒤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냐? 유에가 왜 라케시스를 빼내는 일에 끼어들었는지, 라거나.」

유감스럽지만 하바네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애초에 진짜 라케시스가 존재하는지조차 지금도 반신반의한 상태고, 그 전에는 오히려 부정하던 쪽이었으니까. 유에의 가정사에 대해서도 그다지 깊게 파고들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일본인이라면 대개 그런 일에 참견하는 걸 꺼리는 게 당연하잖아.

「흐─음. 하긴 뭐 나도 유에가 왜 널 끌어들였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냥 별 거 없이 평범하게 공무원이나 되어서 살다가 갈 것 같은 샌님인데.」

네. 사실 그게 장래 목표였습니다.

「넌 이 라케시스를 뿌린 녀석이 왜 이런 걸 만들어냈을 것 같냐?」

「...글쎄다. 불운이나 재난같은 거 보고 피하라는 거 아닐까.」

끼이익. 부우웅...

「흠. 뭐 그렇게 볼 수도 있나? 실제로 그렇게 쓰이고 있으니.」

신라는 잠깐 침묵한 뒤에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지 대부터 내려올 이야기라 길어지니까 경위의 요점만 말해주자면, 인간은 결국 무엇보다 자기 목숨 건사하는 게 제일이라는 거지. 그걸 위해서 누가 희생이 되건 말이야.」

「...?」

이 부분은 잘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바네는 생각했다. 그보다 어느새 슬슬 안도장 근처에 다 왔잖아. 시간도 벌써 11시까지 10분 정도밖에 안 남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예언대로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하바네는 초조해지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신라에게 물었다.

「유에가 죽는다는 건 무슨 소리야.」

「말하자면 네가 안도장에 개별적으로 돌아갔을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지. 구체적인 과정을 말하자면 이래.

지금 보안부의 무장요원들이 안도장으로 향하는 현 시점에는 유에는 아직 안도장에 없고, 지금 한창 안도장으로 향하고 있지.

그리고 녀석들이 들이닥치기로 한 시간대는 점점 줄어들 거야. 결과적으로 유에가 안도장에 도달하기 전에 녀석들이 먼저 도달하게 되어있어.

이 때 네가 안도장에 먼저 돌아가 있었으면, 유에가 이미 죽고 없는 네 녀석을 찾으러 안도장에 가려고 할 거라는 말이지. 그래서 너를 기절시켜서 귀찮은 상황을 미연에 막은거고.

그리고 처음 내용이랑 달리 요원들에 의한 말살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나랑 유에가 그곳에 갈 경우 죽는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

네가 확인한 내용이 처음에 3명 사망 후에 생존자 탈출이라는 내용이 적힌 건 네가 요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꽤 오래 전에 도착했기 때문에 돌아와서 라케시스를 확인하고 내가 난입하기도 전에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고,

다음에 6명 사망으로 내용이 변경된 이유는 녀석들이 라케시스 사용여부를 확인하고 관련자 말살로 방침을 바꾼 시점에서 네가 온 직후에 맞춰 일을 벌이려고 했기 때문이야.

또 사건의 사망자 명단에 유에가 없는 이유는, 앞당겨진 습격 시점에서 아직 생존상태이고 네가 인식한 시간대 이후의 사건이기 때문에 너랑 관계없는 별개의 사건으로 처리된 것일 테고.

어쨌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좋은 수단은 안도장 근방에서 유에를 픽업해서 안전한 곳으로 달아나는 거지.」

설명을 들은 하바네는 이 녀석, 생각했던 것보다 진짜로 대단한 놈일지도 하고 생각했다. 라케시스의 표기된 상황의 내용을 시간적 순서로부터 인과관계를 추론해내고, 그걸 통해서 딱히 2번 기능을 쓰지 않고도 하바네를 픽업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어? 그런데 유에는 그럼 왜 굳이 안도장으로 돌아오는 거냐. 안도 씨의 안부 문제라면 적당한 이유를 붙여서 데리고 나와도 되는 일일 텐데?」

「...음. 아까 생략한 복잡한 윗세대의 얘기와 관련된 거지만, 일단 유에는 라케시스를 쓰지 않을 거다. 지금 돌아오는 이유는 단순히 놀다가 질렸기 때문이야. 그리고 보안부는 우리도 노리고 있지만, 굳이 안도장을 습격하는 목적은 따로 있거든.」

유에 녀석, 나까지 끌어들여서 하나 쥐어준 주제에 정작 자기는 안 쓰는 건가. 그리고 보안을 뚫어서 라케시스를 가로챈 우리가 아니라 다른 이유라고...? 안도장에 우리 외에도 보안부가 신경 쓸 만한 상대가 있었던가.

「뭐, 네메시스는 자신들이 부여한 것 이상의 행복을 노리는 자에게도 심판을 내린다 이거지. 이 천재적인 추론능력을 가진 탐정님께서 존재하는 이상 이제 와서 놈들도 저지른 악행을 덮을 방법 따위 없는데 말이지.」

...또 중2병이 도진 듯 음핫핫핫 하고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는 신라를 보면서 하바네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기왕에 라케시스의 말대로 습격이 벌어진다면 중요한 것은 일단 죽는 사람의 공통분모인 안도 마사키 씨와 하숙생 둘을 생존시키기 위해서 요원들의 주의를 이쪽으로 돌리면서 추적을 피해서 살아남는 일이다. 아니면 이대로 안도장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다 대피시키는 것도...

「어쨌든 전부 다 살아남는 건 불가능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보안부에서 제거하려는 대상은 유에의 아버지니까.」

​「​.​.​.​뭐​라​고​?​!​」​

어째서 정보부에서 안도 씨를 제거할 필요가 있는 거지.

「말했잖아. 우리는 선대의 업에 휘말려 있는 거라고. 그럼 우리가 아무 이유도 없이 라케시스를 파헤치고 다니는 줄 알았어?」

그럼 안도 씨도 라케시스의 관계자인건가. 그리고 정보부에서 우리가 라케시스를 빼낸 시점에서 굳이 특수부대까지 보내가며 안도 씨를 제거하려는 이유는...

「입막음...?」

「그런 거지. 사실 정말로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말이지.」

「뭐?」

「자세한 건 일단 안전한 곳에 도착하면 설명하기로 하고, 그러니까 안도 씨에 대해서는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특수부대의 추적을 감수하면서까지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생존할 수단은 남아있지 않다고.」

이 녀석...!

「안도 씨는 유에의 아버지인데, 유에가 자기 아버지가 죽게 내버려둘 것 같냐!」

「글쎄다. 그건 어떨지. 그리고 설사 안 내버려 둔다고 쳐도 수단이 없어.」

「...당장 이거 풀어.」

<​S​o​o​t​h​s​a​y​i​n​g​ ​G​u​i​d​e>​는​ 방법에 대해서 불가능하다, 하고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모두가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한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이 녀석은...

「설마 <​S​o​o​t​h​s​a​y​i​n​g​ ​G​u​i​d​e>​에​ 따라서 움직이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양날의 검이라고? 누군가가 역으로 그걸로 네 녀석의 움직임을 실시간 브리핑 중이라면 어떨 것 같냐? 그 가이드는 악인이 상대라도 거짓말을 못해. 순식간에 활로가 막혀서 절딴 날걸? 차라리 실시간으로 변하는 <​P​r​e​d​i​c​t​o​r>​에​ 맞춰서 행동에 변칙을 주는 게 훨씬 살아남기 쉬운 방법이야.」

설사 이 녀석의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그런 식으로 버려지듯이 죽는 꼴을 볼 수는 없다고, 하바네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미친 녀석에게서 벗어나서 안도장으로 뛰어가야...

우웅─

갑자기 단말기의 진동이 울리면서, 내용이 업데이트되었음을 알렸다. 단말기를 들어 갱신된 내용을 확인하던 신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치겠네. 이렇게 성급하게 진행될 줄이야.」

「이번엔 또 뭐야.」

「녀석들이 우리 행동을 읽는 게 너무 빨랐다. 안도장에 이미 놈들이 들이닥쳤어. 이제는 유에를 빨리 찾아내는 것 밖에 정말 방법이 없다고.」

신라가 하바네에게 들이댄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찍혀 있었다.

『11시 02분, 일본 정보보안부 소속 특수부대 20명이 안도장에 난입. 사망자 5명.』

『사망자 안도 마사키. 11시 04분 다수의 기관단총에 의한 총격으로 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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