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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라이의 철직(綴織)


4화. 뫼비우스의 매듭3 -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법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사전에 주의해주세요.」

무뚝뚝하게 사무적으로 이야기하는 여경관에게 네, 죄송함다, 하고 고개를 대충 숙인 뒤에 하바네는 경찰서를 나섰다. 어제의 사건에서 안도장에서 죽은 사람은 신라가 보여준 휴대폰 화면에 적힌 것과는 다르게 아무도 없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안도 씨가 해외여행 중이라는 건 역시 정부에서의 언론 조작인가...’

그 외에도 몇몇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방을 비운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갑작스레 지인이라도 방문하거나 하면 바로 이상하다고 눈치 챈다고. 이렇게까지 막나가고 있는 줄은 몰랐네.

하지만 아무래도 하숙생의 지인이 여기로 찾아올 가능성은 미연에 차단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라케시스를 소지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제어되고 있다는 자각은 없을 테니까 “한동안 하숙집에 찾아가지 않는다.” 라던가 “갑자기 지인이 사라진 것에 대하여 막연한 추측 정도로 넘긴다.” 라는 암시를 거는 것도 문제가 아닐 것이다.

경찰서 앞쪽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면서 하바네는 어제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라케시스라는 물건은 어플리, 즉 프로그램이라고. 얼마든지 복사되어 돌아다닐 수 있는 물건을 무슨 수로 없애겠다는 거야?”

분명히 유에의 말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아무리 프로그램을 지워 없앤다고 해도 누군가가 기억장치에 보관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유통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일본 정부가 라케시스에 대한 통제를 위해서 모든 전자기기를 불시에 압수수색한 것처럼 엄청난 잡음이 동반될 것이다. 또한 현재 모든 전자기기의 기록장치에 정부가 실시간 감시용 프로그램을 사용하고─물론 지금 그들이 들고 있는 단말기처럼 몰래 보안을 삭제하고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외국 IP 회선을 강제로 단일화하여 관리하는 것을 보면 그 이후의 사후관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라케시스의 어플리 용량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내가 카즈키 씨처럼 어플리 전문은 아니지만 그런 이제 막 시작단계인 양자컴퓨터조차 연산이 불가능한 미래예측을 해내는 물건이 소형 단말기에 들어간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하면?”

“이건 단순히 ​출​력​프​로​그​램​이​다​.​”​

그렇다. 즉 어플리의 용량과 기능의 언밸런스를 볼 때, 이 어플리가 자체적으로 정보수집과 미래예지의 기능을 해내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어플리에 게시할 정보를 만들어내는 메인 컴퓨터나 강제적으로 전송하고 있는 (아마도) 서버를 파괴하면 라케시스는 자연히 기능을 잃고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

“그 추측은 많은 학자들이 이미 했어. 하지만 그렇다면 애초에 통신을 전부 끊어놓고 혼자 담아놓은 상태에서도 업데이트가 계속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리고...무슨 수로 그걸 추적하겠다는 거야?”

그게 가장 문제다. 결국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하바네의 의견은 사실상 기각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너무 흥분했었나.」

어떠한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의 신념에 위배되는 것을 볼 때에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운명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그는 자신에게 유능해 보일 수 있는 성적, 안정적인 직장을 부르짖으며 강제로 인생을 고정시키려 드는 부모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에서부터 갖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연 자신이 옳은 것인지에 대하여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럼 이 라케시스라는 물건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자들...그리고 지금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전쟁이라는 것의 형태가 이젠 총을 들고 사람을 쏴 죽이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거잖아...’

라케시스를 통하여 모든 국가가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연설하던 모 UN의 의원의 말과 대조해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모든 국가가 만족하게 되는 것. 그것 또한 모두에게 그런 의지가 있을 때의 얘기지.

사람은 당장 눈앞에 빵이 주어지기 전에는 빵을 얻기 위해서 협력해서 일을 수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과정을 날려버리고 빵이 눈앞에 나타난 이제는 그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빵을 가져가기 위한 경쟁이 남을 뿐.

‘그렇게 하나 둘씩 서로를 줄이고 줄이다보면 남는 것은 정말 소수의 사람들뿐인데도 말이지.’

...

「여어.」

「오. 하바네로.」

「너만 있냐...다른 사람들은 어쩌고?」

「배고프다고 호텔 식당 내려갔다.」

「...물주 잘 만나서 비싸게들 노는 구만.」

「뭘. 자네도 금방 익숙해질 거여.」

안도장은 아무래도 위험하니 일단은 다른 곳에서 묵는 것이 좋겠다는 소라하의 의견과 경찰서에서 방금 들은 안도장에서의 무단 침임 사건에 대한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현장에 접근하지 말라는 조언─이라는 이름의 지시─에 따라서 지금 묵는 호텔을 임시 거처로 삼게 되었다. 이래저래 교양서 책 가지러 가지도 못하고 학교와의 거리도 두 배나 멀어져서 영 마음에 안 들지만.

「예의 벌금인데 꽤 상당히 물어야 할 것 같다만. 한 10만 엔은 되겠는데.」

「응?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네가 내준다고 하지 않았냐?」

「내가 언제? 난 유에 쪽이 위반 벌금 물게 되면 내가 내주겠다고 한 것뿐인데?」

가루비 칩을 입에 문 신라의 대답에 빠직...하고 이마에 핏줄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으며 하바네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그 유에 쪽 벌금 얘기다만...내 한 서너 배는 나오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려고?」

「크...괘, 괜찮아...!」

거 되게 표정관리 무리해서 하시는구먼. 탐정 씨.

「그래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말인데 전에 말한 그 계획을 실현할 만한 실마리는 찾았냐?」

「...하룻밤 만에 그런 게 찾아지겠냐. <​S​o​o​t​h​s​a​y​i​n​g​ ​G​u​i​d​e>​로​ 이놈 자체에다 물어보고 싶지만 그랬다간 보안부에 걸린다며.」

「하긴 해커들이 몇 년 동안 헤집어봤는데도 못 뚫은 어플리 발신처를 어떻게 찾겠냐. 적당히 포기하라고. 포기하면 편해.」

「그 파일을 몇 년이나 찾아다닌 네놈이 할 말이냐. 그럼 그 물건은 어떻게 할 생각인데? 인터넷에 뿌리기라도 할 거냐?」

하바네의 질문에 신라는 가루비 감자칩 봉지를 접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번에야말로 바로 삼도천 너머로 날아갈 걸. 그보단 아무래도 본인들을 직접 심판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본인들이라는 건 지금 내각이랑 대기업의 중심인물들을 심판하고 다니겠다는 건가.

「어이. 그 쪽도 위험한 거 아니냐. 상대는 일단 정부 내각이랑 대기업의 수뇌부라고. 개중엔 다국적기업 사장도 있는데?」

「하지만 저 쪽은 우리가 라케시스를 빼냈다는 건 모르지. 그리고 그들은 누구도 믿지 않으니까 누군가에게 라케시스를 넘긴 적도 없고.」

결국 라케시스를 사용하는 건 의원들 개개인이라는 소리였다...순간 뭔가 아귀가 안맞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 하바네였으나, 곧바로 이어지는 신라의 말에 떠올린 생각을 지웠다.

「그래서 일단 라케시스를 통해서 만든 정부에서 유통되는 플래너의 저장매체를 찾아서 삭제 내지는 하드웨어 째로 부수는 것이 선결과제. 뭐 네 의견 중에서 지금 사람들의 행동을 강제하는 메인서버를 부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하니까, 계획에 채용해 보려고.」

와삭와삭...

「흐음...」

일단 라케시스로 인한 아나키즘이 확산되던 시대에 살아온 윗세대들은 다들 지금의 환경에 대해서 매우 협조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동시에 어른들에게서 당시의 라케시스가 확산되던 시대의 자세한 상황에 대해서 듣는 것은 매우 힘든 점도 ​있​었​지​.​.​.​라​케​시​스​ 때문인지 전염병 때문인지 모든 게 짜여진 대로 돌아가는 지금이랑 달리 일찍 돌아가신 분들도 꽤 되고...지금 와서는 라케시스를 소수 권력자들의 사유물로 삼기로 계획한 그들에 의해서 무의식중에 그 화제 자체가 통제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이제 와서 뭘 의심하든 의미가 있겠냐마는, 어쨌든 그들은 지금 상황에서는 라케시스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지금은 신라의 계획대로 정부의 라케시스 유용을 멈추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할 수 있었다.

라케시스의 소거는, 이 일을 통해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를 통해서 도모하면 된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

「헤에─. 할 마음이 있나보군. 하긴 이미 운명공동체, 이른바 동지니까 말이야.」

유에나 타카하시 남매들은 몰라도 미치광이 탐정이랑 운명공동체가 되고 싶진 않았다만, 하고 하바네는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뭐 일단 카즈키 형님이 오셔야 다음 얘기도 진행이 되겠지. 일단 플래너는 라케시스랑 달리 어떻게든 해킹이 되니까 위치추적을 거는 거야 쉽지만, 전에 들은 걸로는 플래너의 메인 서버 컴퓨터는 하나가 아닌 것 같고 말이지. 어딘가에 또 백업해놓은 데이터 같은 게 있으면 피곤해지잖아. 모두 찾아낸 다음에 일격에 없애버려야지.」

「아니아니, 그 전에 뭔가 빼먹은 게 있는 것 같지 않냐. 플래너가 갑자기 기능 정지하는 것으로 생기는 사회적 혼란은 어떻게 할 건데?」

「바로 그게 목적이야.」

아무래도 하바네의 머리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안 될 건 없지만 어디까지나 주모자들에 대한 심판이 목적인 상황에서 사회를 혼란시켜서 어쩌겠다고.

「플래너가 미래상황을 제시하는 건 라케시스를 통하여 출력되는 내용의 붙여넣기, 즉 이미 축적된 정보에서 주기적으로 변경내용 정도만 바꿔주는 정도라고. 그런데 그 서버의 내용물이 한꺼번에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하바네는 생각에 잠겼다.

일단 라케시스 자체로 주기적인 업데이트는 이루어지니 상관은 없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단말기에도 일단 미래의 예측 내용은 계속 나타나고 있고,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는 시험해 본 적이 없지만 파일의 자료대로라면 최소 100년 이상(!)은 거뜬히 읽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그 예측 내용을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는 작업은...보안을 중시해가면서 하는 작업이라면 꽤나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다. 더욱이 플래너에서의 미래예측이 라케시스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충분히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겠지.

「하지만 결국 녀석들이 라케시스로 상황을 종식시키려고 할 텐데?」

「그래. 결국 라케시스를 쓰게 되는 거지. 여기가 승부수야.」

「...설마 틈을 노릴 작정인거냐?」

이 녀석의 작전이라는 물건은 아무래도 플래너가 기능정지해서 생긴 사회적 공황을 틈타서 녀석들이 거기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당사자들을 털러 가겠다는 계획인 모양이다.

「게다가 녀석들도 5명 정도이긴 하지만 우리 쪽도 다들 라케시스를 소지하고 있다고. 제대로 먹힌다면 아마 한 번에 끝낼 수 있을 거다.」

못 끝내면 우리가 한 방에 가겠지. 그리고 5대 5 정도인 것처럼 이야기 하지 말라고. 일단 경호원도 있고 보안부 무장병력도 있는데 그걸 라케시스 하나로 다 무시하고 갈 생각은 ​아​니​겠​지​. ​

「그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거지?」

「뭐 그런 셈이지. 일단은 의심받지 않게 최대한 일상적으로 활동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동조자도 좀 더 모아봐야겠지.」

「...5명으로 부딪힐 생각은 아니었구만.」

「응? 너 바보냐?」

무슨 소리야, 하고 쳐다보는 신라를 보고 하바네는 혀를 찼다. 이 녀석 굉장히 머리도 좋고 치밀하긴 한데 하는 짓을 보면 그냥 바보 같아...

덜컥...

「아. 하바네로 씨.」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기다렸다가 같이 내려가는 건데.」

유에와 소라하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몸에서 풍기는 냄새를 보니 이제까지 아래층에서 이것저것 먹고 온 것이 역력해 보이지만, 이걸 지적하게 되면 빈곤남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하바네는 관두기로 했다.

「그래서 먹을 거는 좀 남겼냐.」

「아뇨. 사정없이 다 먹어치웠는데요.」

그게 니 배에 다 들어가던? 일단 여기 호텔 뷔페인 걸로 아는데?

「아직 여분이 있는지 지배인 아저씨한테 물어볼게요.」

「아니 굳이 안 그래도...」

「가능하면 내 몫도 방으로 배달 좀 부탁할게. 국물 있는 걸로.」

「네에―」

하바네가 일단 한번 살짝 사양하려는 찰나, 신라가 끼어들어 멋대로 배달주문까지 마쳐버렸다. 주문을 받은 소라하가 현관 쪽 인터폴을 눌러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동안에 신라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사양하면 소라하는 진짜로 그만둬버린다고. 일단 너도 뭐 먹고 싶은 거 아냐? 쓸데없는 격식치레 같은 거는 여기서는 금지다.」

「...어어.」

하바네는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막연하게나마 동의할 수 있었다. 일본인들에게는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 두 가지 얼굴이 있다고 하듯이, 일본의 사회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본심을 가능한 한 숨기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한다. 이 때문에 정부의 대응방침인 생활설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에게 경고 메시지가 날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플래너가 시키는 미션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주모자들의 수명연장에 기여하고 있었다. 아마 미국이라던가, 시민의 자유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달리 말하면 정책에 대한 반항 가능성이 큰―나라가 무대였다면 이런 정책이 벌어지는 즉시 시위와 폭동으로 나라가 난리가 났을테고, 아마 지금 중국이나 중동의 몇몇 국가처럼 내전이 벌어졌겠지.

쉽게 말해 이미 정부에 대한 복종근성이 뿌리박힌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한 정책이라는 소리다.

반대로 젊은 세대의 아이들은 이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정부가 제공하는 플래너에 크고 작은 방법으로 반항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뚜렷한 세계관이나 철학을 두고 하는 행동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정부에 의해서 생활 전체가 통제당하고 있는 상황은 호기심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어린 학생들에게 반발심을 가져다주기에는 충분했다. 유에 또한 안도 씨의 팔불출 성격은 둘째로 치더라도 이러한 반항심에 불타는 녀석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었고, 플래너 따위 무시하고 학교를 땡땡이 쳐가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반항기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다테마에를 내세워 자신을 감추려드는 행위는 아무래도 플래너 정책을 허용하고 만 일본인의 노예주의 근성 그 자체의 상징이나 다름없이 보이겠지.

「알았어, 알았다고. 까놓고 말해서 지금 배고파 미치겠습니다.」

「음음. 그런 의미에서 일단 풀코스로 먹어치우고 시작하자고!」

...아무리 그래도 이 녀석 정도로 본심과 행동이 일치하게 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

「아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많이 늦었네요.」

「노, 노, 형님 덕에 우리도 꽤 진전이 있었다고.」

타카하시 남매가 호텔에 도착한 것은 4시 반이 조금 넘어서였다. 타카하시 카즈키는 대학원 연구실에서 막 퇴근하자마자 달려와서인지 복장도 정장차림이었고, 타카하시 마유미는 양 손에 뭔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게 잘은 모르겠지만 쇼핑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

「...이 아지트라는 녀석, 정말로 쓸 상황이 생기네. 중2 탐정에 대한 판단을 조금 다시 해봐야 할 지도.」

「이 몸이 하는 짓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고. 탐정이라는 건 경찰과 달라. 범인 뿐 아니라 모두를 속일 정도의 퍼포먼스 없이는―」

「자, 그만하고 회의를 시작합시다. 신라 군의 탐정론에는 굉장히 흥미가 있지만 지금은 비상사태니까요.」

카즈키 씨의 말에 신라는 툴툴대면서도 흥미와 비상시기라는 두 단어에 밀려 다시 수다를 늘어놓으려던 것을 멈추었다. 음. 역시 좀 치켜세워 주는 게 이 녀석에 대한 대응책인건가, 하고 하바네는 속으로 납득했다.

「그러면 보내드린 메일은 금방 받아보신 것 같군요. 좀 늦게 보내게 되어서 죄송합니다만 파일의 내용이 썩 유쾌한 물건은 아니라 저도 좀 충격이었거든요. 아침까지 멍청하게 있다가 겨우 정신 차리고 보냈습니다.」

‘...?’

하바네는 또다시 뭔가 이질감을 느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뭔가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서 몇 가지 맞물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영 잡히지 않는다. 그냥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자꾸 뭔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니...’

그냥 처음부터 상황을 천천히 정리하다 보면 깨달을 수도 있겠지, 하고 다시 회의내용에 집중한다.

「일단 법적으로도 그들을 심판하는 것이야 가능하겠습니다만, 순순히 혐의를 인정할 리도 없고 인정한다고 해도 법정에 서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결국 신라 군이 말한 대로 개개인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방법 밖에는 없네요.」

「...하아. 위키릭스에 매달릴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오빠가 드디어 범죄자의 길을 걷는구나.」

「위키릭스는 범죄단체가 아니야. 각국의 부조리한 행위에 대한 고발을 할 뿐이지.」

「어련하시려고.」

「그래서 마유 언니는 이 일에서 손 떼실 생각?」

유에의 질문에 마유미는 곰곰이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굳이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 확실히 플래너를 정지시키는 건 무―지 마음에 안 드는 방법이지만, 딱히 내가 저들을 끌어낼 다른 방법을 제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잠깐의 침묵.

「...이대로면 나는 영원히 인생의 주역이 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드니까, 여기서 도망치는 건 하지 않겠어. 언제까지고 저들이 만든 시스템이 내려주는 배역에 만족하고 싶진 않아.」

「오오, 타카하시 동생이 한 말 중에 가장 명언이다.」

「좀 닥쳐. 중2탐정.」

유에에게 태클당하고 궁시렁대는 신라를 버려두고 카즈키 씨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조사해야 하는 건 플래너의 저장 매체와 플래너가 유통되는 메인 서버 두 가지로군요. 일단 플래너의 저장 매체에 대해서입니다만, 각 개인에게 제공되는 플래너는 당일부터 3개월 이후까지입니다. 그리고 뭐 해킹버전 제작자에게 들은 정보로 봐서는 개개인의 프로그램에 백업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죠.

결론은 저장된 정보를 유통하기 위한 저장 매체와 백업용 데이터를 보관하는 저장 매체 두 가지가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중에서 직접 정보 제공을 하는 매체의 경우라면 해킹을 시도해서 어떻게든 하드를 손상시키고 포맷해버리는 걸로 끝납니다만, 백업용 컴퓨터를 미리 없애두지 않으면 바로 복구해버리겠죠.」

「백업용 컴퓨터의 위치를 찾아야 하는 거군.」

「네. 백업용은 대체로 네트워크 접속을 실시간으로 해두지 않으니 위치에 대한 파악은 상당히 힘든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알아낼 수는 있어요. 이 파일의 내용대로면 계획과 변동이 있을 경우에는 라케시스를 통해서 부분적 변경 작업을 거칠 테고, 그 이후에 백업컴퓨터에 파일을 전송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하바네가 문득 떠오른 문제에 대하여 질문했다.

「그런데 그 컴퓨터도 일단 공기관에 있을 텐데, 어떻게 파괴해버릴 생각인데? 공공기물을 파손하면, 특히 그게 플래너의 백업용 컴퓨터라면 그냥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음...글쎄다. 공식적으로 드러나 있는 메인 컴퓨터가 파손되면 모르겠지만, 플래너 자체가 라케시스로 인해서 실시간으로 짜여지고 있다고 공표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백업 컴퓨터의 존재는 숨겨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주변의 다른 기자재와 같이 파괴하고 도망치면 그쪽은 추궁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냐.」

신라 네놈은 진짜 천재냐 ​바​보​냐​. ​

그 이후로도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 회의는 계속되었고, 결론적으로 정보전 괴물인 카즈키 씨와 여기저기에 연줄이 있는 소라하가 기기의 위치를 수색하고, 백업 컴퓨터의 위치를 특정하게 되면 그 다음날에 행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백업 컴퓨터를 파괴하고 연락한 직후, 바이러스를 통해서 메인 컴퓨터의 내용을 모두 지운다. 그 이후 플래너의 서버 컴퓨터가 메인 컴퓨터의 바이러스를 전송해서 전국의 사람들이 지닌 플래너의 내용을 삭제. 이후 정부의 움직임에 따라서 주모자들의 위치를 특정하여 동료들 및 스즈모리 가를 통해 고용한 인원들과 함께 공격.

...이미 라케시스 관련 주모자들의 위치는 파악되어 있다. 진위여부는 라케시스가 개입되어 있는지를 알 수 없어서 불분명하지만, 이쪽에도 라케시스가 있는 상황이므로 갑작스런 혼란을 이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바네는 생각했다.

이것으로 커다란 부조리가 하나 사라지겠지만, 라케시스의 관리 문제는 남는다. 그들이 사라진다면 과연 누가 라케시스를 관리하게 될까. 라케시스의 소재 문제로 인해서 아마 계획이 해결된 이후에도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겠지. 그리고 이미 플래너에 따르는 생활에 익숙해진 일반인들은 누가 그 위에 자신들의 운명을 틀어쥐던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

역시 그들에게서 압수한 라케시스는 없애버려야 한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마땅히 돌아갈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가능성을 빼앗는 독과도 같은 물건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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