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따윈 필요없어.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요시노 양도 그렇게 생각 안해?”
라며 갑자기……까진 아니지만 반 친구의 이야기가 요시노에게 넘어왔다. 한 순간 뭘 이야기 하고 있나 했지만, 무언가를 생각하기 전에 입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응, 맞아. 나도 그쪽이 좋아.”
평소의 미소로 극히 자연스레 돌려준다. 그 대답에 의해 반 친구들의 이야기는 끊기는 일 없이 흐르듯 나아간다.
아아, 그러고 보면 반 친구인 코즈에 양이 언니의 생일 선물로 보낼 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지. 하지만 꽃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요시노는 솔직히 장미나 백합같이 메이저한 꽃 말고는 잘 모른다. 그런데도 다들 자신이 꽃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멋대로 믿고 있는 모양이다. 수제 무릎 덮개에 수놓인 꽃무늬, 확실히 제비꽃이라던가 했던 느낌이 드는데 이런 걸 보고 그리 연상한 모양이다. 이 무릎 덮개를 떠준 건 언니인 하세쿠라 레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래도 요시노는 그런 걸 일부러 설명하거나 하진 않는다. 말해봐야 아무도 믿지 않든지 흘려듣던지 중 한 가지 결과가 나오리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다들 요시노를 자극하지 않도록 무난한 반응을 할 거다.
물론 반 친구들은 요시노의 심장이 나쁘다는 걸 알고 있어, 그걸 신경 써 주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쉬는 날이 잦은 요시노가 반에서 붕 뜨지 않도록 이렇게 이야기의 고리에 끼워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접해올 때 마다 요시노의 마음은 말라간다.
다른 애들이 나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요시노도 알고 있다. 그래도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특별취급 당하면 아무래도 마음이 잿빛으로 물들어 버린다.
“그래서 저번에 언니가…….”
어릴 적부터 계속 그래왔다. 그러니까 자연스레 마음을 지킬 기술도 습득했다.
“요시노 양은 좋겠어, 멋진 언니가 있으니까.”
“그러려나? 고마워.”
만들어낸 미소와 만들어낸 말로 마음의 문을 닫는다.
요시노는 그럴 때의 자기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도와줄게. 시마코 양.”
“고마워, 요시노 양.”
장미관에 들어가 먼저 와서 차를 준비하고 있는 시마코 양에게 말을 걸고 싱크대 앞에 나란히 선다. 지금 장미관에 있는 건 홍장미님인 요코 님과 황장미님인 에리코님 뿐이어서 도울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시마코 양에게만 맡겨두고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컵을 손에 들며 곁눈질로 시마코 양을 본다. 언제 보더라도 아름답다고는 생각하지만, 요시노는 시마코 양과 접하는데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때때로는 그런 시마코 양에게 안절부절못할 때마저 있다. 물론 그런 걸 입에 담지는 않지만.
지금도 인사만을 건네고 아무 이야기도 없이 나란히 서 있다. 보통 비슷한 나잇대의 젊은 여성들이 함께 있으면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될 법 하지만, 시마코 양과 있으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를 전혀 알 수 없다. 산백합회의 일 이야기라면 할 수 있지만, 잡담은 힘들다.
홍차를 우리고 둘이서 컵을 네 잔 들고 간다. 오늘은 요코 님이 좋아하는 오렌지 페코다.
“고마워.”
시마코 양은 요코 님 앞에 컵을 내려놓는다. 에리코님은 요시노의 언니의 언니니까 요시노가 차를 건네는 게 자연스러울까. 그리고 그대로 에리코 님의 옆자리에 앉는다.
에리코 님은 역시 “고마워.”라고 말한 뒤 홍차에 입을 댄다. 고양이 혀인 요시노는 바로 차에 입을 대진 못하고 슬쩍 옆에 있는 에리코에게 눈길을 향한다.
여전히 어딘가 나른한 듯한 표정을 띄우고 있다. 그래도 요시노가 보고 있는 걸 눈치채자 표정을 푼다.
“왜 그러니, 요시노 쨩?”
상냥한 미소로 그렇게 물어온다.
에리코 만이 아니라 장미관의 사람들은 다들 상냥하다. 레이에게서 이전부터 요시노의 몸에 대해 들은 거겠지. 1학년생이라고 잡무를 누르거나 하는 일도 없고, 요시노가 상태가 조금만 나빠진 것처럼 보여도 이른 시점에서 일을 마치거나 해 준다. 물론 직접 요시노의 몸을 이유로 삼지는 않는다. 아직 그렇게까지 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거나, 시험이 가까이 있다거나 등등.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틀림없이 요시노를 배려해 주고 있다.
제멋대로라는 건 알고 있다. 실제로 몸이 약한 건 사실이고, 요시노의 상태가 나빠지면 모두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폐가 된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배려해 주는 건 싫다고 생각해 버린다. 신경을 써 주면 써 주는 만큼 자신이 동료에서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 모두 병자를 보는 눈으로 요시노를 보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가급적 요시노의 몸에, 마음에 닿지 않도록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거다. 요시노를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서.
그렇지 않은데.
요시노는 그런 식으로 해 줬으면 하지 않는데.
그래도 다들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는 건 알고 있다. 그러니 요시노도 모두의 행동에 맞춰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아, 아뇨. 맛있게 우려졌나 해서.”
“그래, 정말로 맛있어.”
“다행이네요.”
이런 식으로.
이미 알고 있다. 요시노에게는 사촌 언니이자 언니인 정말 좋아하는 레이가 있다. 그 이상 무엇을 바랄까. 레이가 있어 준다면 자신은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 이 단 하나의 인연만 있어 주면 요시노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거다.
그런 식으로 무난한 이야기를 하며 홍차를 다 마실 때 까지 새로이 장미관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늦네. 어떻게 된 걸까.”
“세이는 땡땡이 치는 걸지도 모르지만, 사치코와 레이는 뭔가 하고 있는 건가?”
“글세. 레이는 오늘 동아리 활동이 없을텐데.”
“그래…….”
요코님은 거기서 슬쩍 요시노 쪽을 바라봤다.
“맞아, 요시노 쨩. 잠시 이 서류를 카시마 선생님에게 전해주지 않을래? 그리고 덤으로 사치코와 레이가 없는지 살펴 봐 줄래?”
“아, 예.”
일어서서 서류를 받아들려 하자.
“제가 다녀올게요. 환경정비위원회의 용구를 가지고 와 버려서, 돌려주러 가야 해서요.”
시마코 양이 일어서며 그렇게 말하고, 목장갑을 보여준다.
또 이렇다고 생각한다.
시마코 양이 하는 말은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요시노를 보내는 걸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틀림없다. 오늘은 몸 상태도 나쁘지 않아 그 정도의 심부름은 문제 없다. 애초에 시마코 양이 들고 있는 목장갑도 오늘 돌려줘야만 하는 게 아닐텐데. 상냥한 시마코 양이니까 나쁜 생각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요시노는 조금 화가 나 버린다.
“그래. 그럼 둘이서 다녀와 주렴.”
요코님의 그 말에 약간 놀랐다. 보통 이럴 때는 항상 “그럼 시마코, 부탁할게.” 같은 느낌이 될 텐데.
여하튼, 요시노는 시마코 양과 함께 장미관을 나섰다.
“뭔가 할 이야기라도 있니?”
장미관에 둘만 남게 되자 에리코는 요코에게 물음을 던졌다.
“이야기가 있는 건 에리코 쪽 아니니?”
시원스레 그렇게 되받아쳤다. 정말로 이 친구는 밉상스러울 정도로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채는구나 하고 에리코는 감탄했다.
“요시노 쨩이 말야.”
숨길만한 일도 아니기에 솔직히 입에 담는다. 솔직히 에리코 자신도 곤란해 하고 있는 상태다.
요코도 대략 알고 있는 건지 가볍게 끄덕인다.
“그렇구나.”
에리코가 신경 쓰고 있는 건 다른 게 아니라, 레이의 여동생이자 에리코의 손녀기도 한 요시노에 대한 이야기다.
“둘이 함께 있는데도 전혀 이야기 하지 않았지.”
“그러게, 정말로.”
요시노는 처음 장미관에 왔을 때부터 마음을 닫고 있었다. 얼마간 지난 뒤 그 이유 같은 것도 막연히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느끼고 있어도 어쩔 수 없었다. 요시노의 몸이 약한 건 현실이기에 에리코 일행은 아무래도 요시노를 배려해 버린다. 그런 깨지기 쉬운 물건에 접하는 듯한 태도가 그녀의 마음을 완고히 굳혀 나간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병약한데다 외모도 그러니, 요시노는 어른스럽고 솔직하며 가련한 미소녀이리라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지만 에리코는 아마 그건 오답이리라 생각하고 있다. 장미관에서, 특히 에리코에게 향해오는 강한 시선이야 말로 요시노의 본래의 의사. 그건 아마도 레이에 대한 강렬하기까지 할 정도로의 독점욕과, 그리고 에리코에 대한 어떤 종류의 적의. 자신만의 사촌 누나였던 레이를 여동생으로 삼은 에리코에 대한 요시노의 마음.
그래도 에리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요시노의 몸을 생각하면 강한 자극을 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에리코는 상냥한 할머니로써 요시노를 적당히 귀여워하고 있다. 에리코 또한 자기 스스로를 속이면서.
마침 그 때, 시마코가 장미관에 들어오게 되어 에리코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학년이 다른 에리코에게는 무리라도, 같은 학년인 애가 있다면 요시노도 조금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하고. 함께 일을 하거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하고, 그 무엇보다 장미관에 1학년은 두 사람 밖에 없으니까.
에리코는 스스로를 위해서도, 요시노를 위해서도, 레이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요시노가 마음을 열어줬으면 했다.
하지만 시마코 또한 마음을 닫은 소녀였다.
마음을 닫고 있다고 하기에는 표현이 조금 잘못되었을 지도 모른다. 시마코의 경우에는 마음을 숨기고 있다고 할까. 그리고 감정을 겉에 내보이는 게 서투르기도 했다. 그런 시마코니까 요시노와 마음을 터놓기는커녕, 역으로 서먹서먹해서, 두 사람 다 상급생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 쪽이 훨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에리코 일행은 걱정하고 있다.
자신들보다 연하의 소녀들이 마음을 닫고 친구도 없는 듯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지 하고.
물론 기우일지도 모르고, 쓸데없는 참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곤란하게도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 해도 인간관계나 마음의 내면의 문제가 되면 반드시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는 하기 힘들다. 에리코와 요코는 자신들만으로는 어찌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뭔가 좋은 생각은 없을까요, 홍장미님.”
“이것만은 어쩔 도리가 없어요, 황장미님.”
두 사람의 장미님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운동부의 기운찬 소리도 지금은 단지 공허하게 장미관에 울려왔다.
1. 닫힌 마음
“요시노 양도 그렇게 생각 안해?”
라며 갑자기……까진 아니지만 반 친구의 이야기가 요시노에게 넘어왔다. 한 순간 뭘 이야기 하고 있나 했지만, 무언가를 생각하기 전에 입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응, 맞아. 나도 그쪽이 좋아.”
평소의 미소로 극히 자연스레 돌려준다. 그 대답에 의해 반 친구들의 이야기는 끊기는 일 없이 흐르듯 나아간다.
아아, 그러고 보면 반 친구인 코즈에 양이 언니의 생일 선물로 보낼 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지. 하지만 꽃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요시노는 솔직히 장미나 백합같이 메이저한 꽃 말고는 잘 모른다. 그런데도 다들 자신이 꽃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멋대로 믿고 있는 모양이다. 수제 무릎 덮개에 수놓인 꽃무늬, 확실히 제비꽃이라던가 했던 느낌이 드는데 이런 걸 보고 그리 연상한 모양이다. 이 무릎 덮개를 떠준 건 언니인 하세쿠라 레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래도 요시노는 그런 걸 일부러 설명하거나 하진 않는다. 말해봐야 아무도 믿지 않든지 흘려듣던지 중 한 가지 결과가 나오리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다들 요시노를 자극하지 않도록 무난한 반응을 할 거다.
물론 반 친구들은 요시노의 심장이 나쁘다는 걸 알고 있어, 그걸 신경 써 주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쉬는 날이 잦은 요시노가 반에서 붕 뜨지 않도록 이렇게 이야기의 고리에 끼워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접해올 때 마다 요시노의 마음은 말라간다.
다른 애들이 나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요시노도 알고 있다. 그래도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특별취급 당하면 아무래도 마음이 잿빛으로 물들어 버린다.
“그래서 저번에 언니가…….”
어릴 적부터 계속 그래왔다. 그러니까 자연스레 마음을 지킬 기술도 습득했다.
“요시노 양은 좋겠어, 멋진 언니가 있으니까.”
“그러려나? 고마워.”
만들어낸 미소와 만들어낸 말로 마음의 문을 닫는다.
요시노는 그럴 때의 자기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도와줄게. 시마코 양.”
“고마워, 요시노 양.”
장미관에 들어가 먼저 와서 차를 준비하고 있는 시마코 양에게 말을 걸고 싱크대 앞에 나란히 선다. 지금 장미관에 있는 건 홍장미님인 요코 님과 황장미님인 에리코님 뿐이어서 도울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시마코 양에게만 맡겨두고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컵을 손에 들며 곁눈질로 시마코 양을 본다. 언제 보더라도 아름답다고는 생각하지만, 요시노는 시마코 양과 접하는데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때때로는 그런 시마코 양에게 안절부절못할 때마저 있다. 물론 그런 걸 입에 담지는 않지만.
지금도 인사만을 건네고 아무 이야기도 없이 나란히 서 있다. 보통 비슷한 나잇대의 젊은 여성들이 함께 있으면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될 법 하지만, 시마코 양과 있으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를 전혀 알 수 없다. 산백합회의 일 이야기라면 할 수 있지만, 잡담은 힘들다.
홍차를 우리고 둘이서 컵을 네 잔 들고 간다. 오늘은 요코 님이 좋아하는 오렌지 페코다.
“고마워.”
시마코 양은 요코 님 앞에 컵을 내려놓는다. 에리코님은 요시노의 언니의 언니니까 요시노가 차를 건네는 게 자연스러울까. 그리고 그대로 에리코 님의 옆자리에 앉는다.
에리코 님은 역시 “고마워.”라고 말한 뒤 홍차에 입을 댄다. 고양이 혀인 요시노는 바로 차에 입을 대진 못하고 슬쩍 옆에 있는 에리코에게 눈길을 향한다.
여전히 어딘가 나른한 듯한 표정을 띄우고 있다. 그래도 요시노가 보고 있는 걸 눈치채자 표정을 푼다.
“왜 그러니, 요시노 쨩?”
상냥한 미소로 그렇게 물어온다.
에리코 만이 아니라 장미관의 사람들은 다들 상냥하다. 레이에게서 이전부터 요시노의 몸에 대해 들은 거겠지. 1학년생이라고 잡무를 누르거나 하는 일도 없고, 요시노가 상태가 조금만 나빠진 것처럼 보여도 이른 시점에서 일을 마치거나 해 준다. 물론 직접 요시노의 몸을 이유로 삼지는 않는다. 아직 그렇게까지 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거나, 시험이 가까이 있다거나 등등.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틀림없이 요시노를 배려해 주고 있다.
제멋대로라는 건 알고 있다. 실제로 몸이 약한 건 사실이고, 요시노의 상태가 나빠지면 모두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폐가 된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배려해 주는 건 싫다고 생각해 버린다. 신경을 써 주면 써 주는 만큼 자신이 동료에서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 모두 병자를 보는 눈으로 요시노를 보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가급적 요시노의 몸에, 마음에 닿지 않도록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거다. 요시노를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서.
그렇지 않은데.
요시노는 그런 식으로 해 줬으면 하지 않는데.
그래도 다들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는 건 알고 있다. 그러니 요시노도 모두의 행동에 맞춰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아, 아뇨. 맛있게 우려졌나 해서.”
“그래, 정말로 맛있어.”
“다행이네요.”
이런 식으로.
이미 알고 있다. 요시노에게는 사촌 언니이자 언니인 정말 좋아하는 레이가 있다. 그 이상 무엇을 바랄까. 레이가 있어 준다면 자신은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 이 단 하나의 인연만 있어 주면 요시노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거다.
그런 식으로 무난한 이야기를 하며 홍차를 다 마실 때 까지 새로이 장미관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늦네. 어떻게 된 걸까.”
“세이는 땡땡이 치는 걸지도 모르지만, 사치코와 레이는 뭔가 하고 있는 건가?”
“글세. 레이는 오늘 동아리 활동이 없을텐데.”
“그래…….”
요코님은 거기서 슬쩍 요시노 쪽을 바라봤다.
“맞아, 요시노 쨩. 잠시 이 서류를 카시마 선생님에게 전해주지 않을래? 그리고 덤으로 사치코와 레이가 없는지 살펴 봐 줄래?”
“아, 예.”
일어서서 서류를 받아들려 하자.
“제가 다녀올게요. 환경정비위원회의 용구를 가지고 와 버려서, 돌려주러 가야 해서요.”
시마코 양이 일어서며 그렇게 말하고, 목장갑을 보여준다.
또 이렇다고 생각한다.
시마코 양이 하는 말은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요시노를 보내는 걸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틀림없다. 오늘은 몸 상태도 나쁘지 않아 그 정도의 심부름은 문제 없다. 애초에 시마코 양이 들고 있는 목장갑도 오늘 돌려줘야만 하는 게 아닐텐데. 상냥한 시마코 양이니까 나쁜 생각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요시노는 조금 화가 나 버린다.
“그래. 그럼 둘이서 다녀와 주렴.”
요코님의 그 말에 약간 놀랐다. 보통 이럴 때는 항상 “그럼 시마코, 부탁할게.” 같은 느낌이 될 텐데.
여하튼, 요시노는 시마코 양과 함께 장미관을 나섰다.
“뭔가 할 이야기라도 있니?”
장미관에 둘만 남게 되자 에리코는 요코에게 물음을 던졌다.
“이야기가 있는 건 에리코 쪽 아니니?”
시원스레 그렇게 되받아쳤다. 정말로 이 친구는 밉상스러울 정도로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채는구나 하고 에리코는 감탄했다.
“요시노 쨩이 말야.”
숨길만한 일도 아니기에 솔직히 입에 담는다. 솔직히 에리코 자신도 곤란해 하고 있는 상태다.
요코도 대략 알고 있는 건지 가볍게 끄덕인다.
“그렇구나.”
에리코가 신경 쓰고 있는 건 다른 게 아니라, 레이의 여동생이자 에리코의 손녀기도 한 요시노에 대한 이야기다.
“둘이 함께 있는데도 전혀 이야기 하지 않았지.”
“그러게, 정말로.”
요시노는 처음 장미관에 왔을 때부터 마음을 닫고 있었다. 얼마간 지난 뒤 그 이유 같은 것도 막연히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느끼고 있어도 어쩔 수 없었다. 요시노의 몸이 약한 건 현실이기에 에리코 일행은 아무래도 요시노를 배려해 버린다. 그런 깨지기 쉬운 물건에 접하는 듯한 태도가 그녀의 마음을 완고히 굳혀 나간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병약한데다 외모도 그러니, 요시노는 어른스럽고 솔직하며 가련한 미소녀이리라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지만 에리코는 아마 그건 오답이리라 생각하고 있다. 장미관에서, 특히 에리코에게 향해오는 강한 시선이야 말로 요시노의 본래의 의사. 그건 아마도 레이에 대한 강렬하기까지 할 정도로의 독점욕과, 그리고 에리코에 대한 어떤 종류의 적의. 자신만의 사촌 누나였던 레이를 여동생으로 삼은 에리코에 대한 요시노의 마음.
그래도 에리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요시노의 몸을 생각하면 강한 자극을 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에리코는 상냥한 할머니로써 요시노를 적당히 귀여워하고 있다. 에리코 또한 자기 스스로를 속이면서.
마침 그 때, 시마코가 장미관에 들어오게 되어 에리코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학년이 다른 에리코에게는 무리라도, 같은 학년인 애가 있다면 요시노도 조금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하고. 함께 일을 하거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하고, 그 무엇보다 장미관에 1학년은 두 사람 밖에 없으니까.
에리코는 스스로를 위해서도, 요시노를 위해서도, 레이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요시노가 마음을 열어줬으면 했다.
하지만 시마코 또한 마음을 닫은 소녀였다.
마음을 닫고 있다고 하기에는 표현이 조금 잘못되었을 지도 모른다. 시마코의 경우에는 마음을 숨기고 있다고 할까. 그리고 감정을 겉에 내보이는 게 서투르기도 했다. 그런 시마코니까 요시노와 마음을 터놓기는커녕, 역으로 서먹서먹해서, 두 사람 다 상급생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 쪽이 훨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에리코 일행은 걱정하고 있다.
자신들보다 연하의 소녀들이 마음을 닫고 친구도 없는 듯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지 하고.
물론 기우일지도 모르고, 쓸데없는 참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곤란하게도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 해도 인간관계나 마음의 내면의 문제가 되면 반드시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는 하기 힘들다. 에리코와 요코는 자신들만으로는 어찌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뭔가 좋은 생각은 없을까요, 홍장미님.”
“이것만은 어쩔 도리가 없어요, 황장미님.”
두 사람의 장미님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운동부의 기운찬 소리도 지금은 단지 공허하게 장미관에 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