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계에서 제일
리리안의 고등부를 졸업하고 요시노는 리리안 여대에 진학했다. 역시나 땋아 내린 머리는 이미 그만두고, 현재는 어깨에 닿을 정도의 길이의 스트레이트를 하고 있다. 몸 상태는 여전해서 학교도 종종 쉬곤 했지만 나름대로 즐겁게 지내고 있다. 1년 전에 입학한 레이와의 사이도 여전하지만, 함께 보낼 수 있는 산백합회라는 활동이 사라졌기에 조금 쓸쓸하다.
그런 대학생활도 3년쯤 지나, 레이의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요시노와 레이는 함께 방에서 느긋이 쉬고 있었다.
“레이 쨩도 곧 졸업이네. 케이크 가게에서 일하겠다는 거, 참 레이 쨩 다워.”
레이의 수제 펌프킨 파이를 입에 가득 넣으며 요시노는 말했다. 그런 요시노를 바라보며 레이는 평소보다 더 진지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말이야, 그러지 않기로 했어.”
“엣?!”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요시노는 입 안에 들어 있던 파이를 무심코 내뿜을 뻔했다. 입가를 누르며 아슬아슬하게 미소를 띠운다.
“에, 뭐야. 농담이지? 못 웃겠어, 레이 쨩.”
“농담이 아니야. 사실이야.”
“그, 그래도, 어째서?”
“실은, 결혼하게 됐어.”
“겨, 결혼?!”
이번에야말로 요시노는 다리가 풀릴 정도로 놀랐다. 레이가 뭐라고 말한 건가. 결혼이라니, 지금까지 그런 기미는 본 적도 없었는데.
레이는 그런 요시노의 상태에 개의치 않고 폭탄발언을 이어간다.
“대학에 입학하고서 사귀기 시작한 사람인데.”
거짓말, 그런 이야기 한 번도 못 들었어.
“2년 연상에, 지금은 이미 직장인이야.”
그런 거, 듣고 싶지 않아.
“겨, 결혼하니까 일하는 걸 포기하는 거야?”
간신히 요시노는 그 말을 입에 담았다.
“그것도 있지만, 그이가 이번 봄부터 파리로 전근을 가게 되어서.”
“에?”
“그래서 나도 그를 따라갈 테니까.”
“자, 잠깐 기다려, 레이 쨔…….”
“그쪽으로 가면 자주 돌아오지는 못하게 될 테니까. 요시노와도 작별이네.”
“자, 작별이라니, 무슨 소리야 레이 쨩?! 나, 그런 소리 지금까지 전혀 못 들었고,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도 납득 못해!”
“이미 결정된 일이야. 떼쓰지 말아줘. 우리들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는 없으니까, 좋은 기회잖아.”
레이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요시노를 버리겠다는 소린가. 더 이상 함께 있지 못하겠다는 소린가.
“그럼 안녕, 요시노.”
그 말과 함께 레이는 요시노에게서 등을 돌리고 걸어간다. 그 모습이 서서히 작아져 가서, 요시노는 당황스레 그 뒤를 쫓아 달려나갔다.
그래도, 요시노가 아무리 달려가도 레이의 모습은 가까워지지 않는다.
바로 괴로워진다. 호흡이 이어지지 않는다. 제대로 운동한 적도 없는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기다려, 레이 쨔……읏!!”
심장을 찌뿌려 뜨리려 하는 것 같은 고통이 몸을 꿰뚫는다. 이럴 때에 발작이 요시노를 덮친다. 아무리 겪어도 결코 익숙해질 일 없는 고통. 요시노는 가슴을 억누르며 그 자리에서 무릎 꿇는다.
레이 쨩, 기다려.
괴로워, 괴로워.
도와줘.
그래, 말하고 싶은데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손을 뻗어 봐도 하늘을 가를 뿐.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레이는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와 팔짱을 끼고 행복한 듯한 미소를 그 남자에게 향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나 괴로워하고 있는데, 레이 쨩은 나를 두고 가는 거야?
부탁이야 레이 쨩. 요시노를 두고 가지 말아줘.
부탁이니까……
“……레이 쨩!!”
그런 자신의 비명에 요시노는 눈을 떴다.
“………….”
확인할 것도 없이 파자마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어 정말로 불쾌했다. 최악의 꿈이었다.
땀을 씻어내기 위해 가볍게 샤워를 하고 급하게 준비해 학교로 향한다.
집 앞으로 마중 와준 레이는 요시노의 머리카락이 촉촉이 젖은 걸 보고 조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는 도중에 레이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무래도 이번에 꾼 꿈을 떠올려 버린다.
그건 꿈이었지만,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파리라 하는 건 됐다고 해도, 레이라 해도 언젠가는 연애도 할 거고 결혼도 하게 되겠지. 그리고 결혼 상대가 있는 곳으로 가 버릴지도 모른다. 막연히 레이와는 어머니들처럼 계속 사이좋게 함께 지내게 될 거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그때 요시노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말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은 몸을 안고서 혼자서 어떻게 보내면 좋은 걸까.
“요시노?”
어느샌가 발걸음을 멈춘 요시노를 레이가 바라보고 있다.
요시노는 그런 레이의 교복 소매를 잡는다.
“레이 쨩. 아무 데도 안 갈 거지?”
“에?”
“요시노를 혼자 남겨 두고, 어디 가 버리거나 하진 않을 거지?”
몸이 약한 것과는 반대로 언제나 적극적이고 기가 드센 요시노였지만, 어젯밤에 꾼 꿈과 지금 떠올린 현실 때문에 전에 없이 기운이 빠져 있다.
그래서 무심코 확인하고 싶어 졌다. 레이 본인의 입으로.
그러자. 문득 몸이 당겨졌다 생각하자, 레이에게 안겨 있었다. 가냘픈 요시노는 레이의 팔 안에 쏙 들어간다. 키도 차이 나니까 레이의 가슴에 파묻힌 듯한 모습다.
“자, 잠깐 레이 쨩? 그, 그만둬, 이런 곳에서. 부끄럽잖아.”
언제나 다니는 통학로에는 통행인은 적지만,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급작스런 레이의 행동에 요시노는 뺨을 붉힌다.
“나는 부끄럽지 않아.”
레이는 귓가에 상냥하게 속삭이듯 그렇게 말했다. 요시노를 껴안은 팔의 힘이 조금 더 강해졌다.
“나는 요시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부끄럽거나 하지 않아. 요시노가 안심할 수 있다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레이 쨩…….”
“내가 요시노를 두고 어딘가 갈 리 없잖아. 나는 요시노의 곁에 있어. 세상에서 가장 요시노를 사랑하고 있어.”
마음에 배어드는 말.
레이의 말은 요시노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우러난 이야기라는 걸 요시노도 안다. 거칠어졌던 마음이 안정되어 간다.
“고마워, 레이 쨩. 미안해. 이제 괜찮아. 가자.”
몸을 떼어 놓고 안심시키듯 웃으며, 레이의 손을 잡아 걸어간다.
이 사람이 있어 준다면 요시노는 걸어갈 수 있어.
레이 쨩, 요시노도 세계에서 제일 레이 쨩을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