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언제나 우연
토요일 오후, 유키가 상점가를 걷고 있자 무슨 일인지 앞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등학생 정도의 여자애와 20대 전반 정도의 남자가 옥신각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의 부부싸움 같은 거에는 흥미도 없어서, 그대로 그 옆을 빠져나가려 하자
“아, 유키 군!”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불렸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생각할 새도 없이 오른팔에 무게가 더해졌다. 그 소녀가 오른팔에 달라붙은 거다.
“차암, 늦어. 유키 군.”
머리를 땋아 내린 큰 눈의 소녀가 화난 듯이 유키를 올려다보고 있다.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 유키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애초에 아는 애들 중 이런 귀여운 여자애가 있었던가. 남학교에 다니고 있는 몸으로 동년대의 여자 친구 같은 건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인데.
그런 걸 생각하고 있자 여자애와 싸우고 있던 남자가 낯빛을 바꾸어 추궁하기 시작했다.
“요, 요시노 쨩, 그, 그 녀석은 누구야?!”
“누구든 상관없잖아. 가자, 유키 군.”
아아, 그런가. 요시노 양이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유미와 함께 있을 때 만난 적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때는 인사만 나누는 정도였고, 교복과 사복의 차이도 있어서 인상이 상당히 다르게 보이지만.
“저기, 그게?”
남자를 보고 요시노 양을 보며 어떻게 된 건지 눈으로 물어본다.
“됐어, 그치만 전혀 모르는 사람인걸. 갑자기 말을 걸어 왔어.”
“그, 그런! 나는 계속 요시노 쨩을 보고 있었는데!”
“그만둬, 기분 나빠!”
이건 이른바 스토커라는 녀석인 걸까. 아니면 변태인가.
확실히 곁에 있는 요시노 양 같은 가련한 미소녀라면 그런 위험한 남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부탁해, 유키 군.”
남자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그마한 목소리로 요시노 양이 그렇게 속삭였다.
그때 유키는 눈치챘다. 요시노 양이 남자에게는 드센 말을 던지고 있지만, 유키의 팔을 잡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얼굴표정도 처음에는 남자를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굳어지고 있는 거였다.
그것도 그렇다. 알지 못하는 남자가 말을 걸어서 그 남자가 자신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해 오면, 안 무서울 리가 없다.
유키의 팔을 잡은 떨리는 손에 담긴 힘.
드센 척하고 있지만, 두려워하는 감정이 엿보이는 표정.
그걸 느끼자 유키의 마음속에 스위치가 들어갔다. 요시노 양을 감싸듯 남자의 앞에 서서 힘을 가득 담아 쏘아보았다.
“뭐, 뭐야 너는. 내 요시노 쨩을 허물없이 손대지 마.”
“누가 네 요시노라고? 너야말로 마음 편히 요시노의 이름을 부르지 마.”
“뭐, 뭐라고?”
눈앞의 남자가 눈을 둥글게 뜬다. 등 뒤에 있는 요시노 양도 그 말에 놀란 듯한 기척을 느꼈지만, 힘을 빼지 않고 눈앞의 남자와 대치한다.
연하에 온화한 용모의 유키가 거기까지 기세 강한 말을 꺼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겠지. 남자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겉보기로도 알 수 있었다.
“알겠냐. 요시노에게 이상한 걸 해 봐. 봐주지 않고 널 뭉갤거니까.”
이 녀석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유키는 그렇게 생각하고 더더욱 강한 기세로 말을 꺼냈다.
“혀, 협박할 셈이냐? 괜찮냐, 그런 소리를 해도…….”
“너야말로 요시노를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건 그만둬. 경찰에 신고한다?”
“흐, 흥. 경찰이 그 정도의 일로 움직일까 보냐.”
“물론 학교를 통해서다. 너도 알고 있겠지. 요시노가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는.”
“………….”
“가자.”
“엣?! 아, 응.”
유키의 팔을 아직 잡고 있던 요시노 양을 반쯤 끌어당기며 남자에게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태도로는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내심 두근두근하는 상태다.
요시노 양도 말없이 유키의 팔을 잡은 채로 따라온다.
하지만 약간 걸은 뒤에 요시노 양이 입을 열었다.
“싫다. 그 녀석 따라오고 있어.”
그 말을 듣고 자연스레 뒤쪽의 모습을 살피자, 확실히 아까 전의 남자가 인파에 슬금슬금 숨어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떡하지. 이대로 집까지 따라온다거나 하면…….”
불안해하는 새끼 고양이 같은 얼굴로 요시노 양은 작게 말했다.
유키는 눈길을 주위에 빠르게 돌리고, 어느 곳에서 눈을 멈췄다. 상대와의 거리를 확인하고 길을 꺾은 뒤에 남자의 시야에서 자신들의 모습이 사라진 순간, 요시노 양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요시노 양, 이쪽이야!”
목적지는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 딱 출발하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 버스 정류장은 딱 상점가의 근처에 있기에 타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이 제법 있다. 달리면 아직 맞출 수 있을 거다.
“잠시만요, 탑니다!”
문은 닫히려 하고 있었지만, 달려오는 유키 일행의 모습을 보고 버스 운전사는 다시금 문을 열어서 두 사람을 태워 주었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살펴보면 그 남자는 당황해서 달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버스는 출발했다. 이걸로 어떻게든 떼어 놓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될 수 있는 대로 조심할 필요가 있기에 버스와 전철을 여러 번 갈아타며 뺑 돌아서 돌아가기로 했다.
일이 이렇게 되어 요시노 양의 집까지 보내 주게 되었다. 남자의 모습이 더는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해도, 요시노 양은 여러 차례 뒤를 돌아보며 불안한 듯 주변의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요시노 양의 표정이 간신히 풀려 온 건 요시노 양이 집 근처까지 도착하고 나서였다.
“오늘은 정말로 고마웠어, 유키 군. 덕분에 살았어. 혹시 거기서 유키 군이 와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쳐.”
“아니, 그런 건.”
“그래도 깜짝 놀랐어. 유키 군이 그런 소리를 하다니. 상대가 화나서 덮쳐 오면 어떻게 할 셈이었어?”
“으음~, 그런다면 그렇게 되는 대로 좋다고 생각했어. 사람이 많았으니까 싸움이 나도 금방 사람들 눈에 띌 테고, 경찰 같은 걸 불러줄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그 남자라 해도 그 뒤에는 얌전해지겠지. 그렇게 안 된다고 해도,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저 녀석의 정신이 요시노 양보다 내 쪽에 향할 거로 생각했고.”
“그렇구나. 그래도 미안. 위험한 일에 말려들게 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이에 요시노 양의 집 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정말로 고마워.”
깊게 고개를 숙이는 요시노 양.
“신경 안 써도 되니까. 그럼, 나는 이제 갈게.”
“응. 잘 가.”
가볍게 손을 흔들고 요시노 양에게서 뒤를 돌리고 걸어나간다.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일에 말려들어 버렸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됐다면 괜찮겠지. 돌아가면 이 일을 유미에게 말해야 할지 같은 걸 생각하면서 조금 걷고 있자.
“자, 잠깐 기다려 유키 군!”
“에?”
뒤를 돌아보자 요시노 양이 전력으로 뛰어서 다가왔다. 그리고 또다시 꾹 유키의 손을 잡는다.
“잠시 동안 우리 집에 있다가 가지 않을래?”
“에? 무, 무슨 일이야?”
“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 레이 쨩의 집도 봤는데 역시 마찬가지야.”
불안한 듯이 덜덜 떨면서 요시노 양이 필사적으로 유키에게 부탁해 왔다. 분명 보통 때라면 별일 아니겠지만, 아까 그런 일이 있었던 뒤에 집에 홀로 있는 건 확실히 마음이 안 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기, 그래도 곤란하지 않아? 그, 나를 집에 들이거나 하면.”
그래, 유키 역시 남자다. 그리고 요시노 양은 릴리안에 다니는, 순수배양일지는 모르겠지만 아가씨다. 사정이 있다고는 해도 부모님께서 돌아오을 때 집에 남자와 함께 있는 걸 봤다간 화를 내든지 졸도하든지 하지 않을까.
“아마도 괜찮아. 잠시 뒷면 레이 쨩이 돌아올 것 같으니까. 양쪽 다 아무도 없는 걸 보면 함께 외출한 것 같으니까 부모님들이 돌아오는 건 조금 늦어질 거야. 저기, 부탁해.”
필사적인 표정으로 간청해 온다.
그런 얼굴을 보고서 거절할 수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거실의 소파에 앉은 채로 유키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뭐라고 하건 여자애의 집에 들어온 거니까. 게다가 부모님은 자리를 비워서 둘 뿐이다. 물론 두 사람은 그다지 면식도 없었던 데다가 사정도 사정이니 꺼림칙한 기분은 없었지만.
부엌에서 허겁지겁 움직이고 있는 요시노 양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버린다. 애초에 오늘은 제법 대담한 일들을 하고 있다.
‘요시노’라고 이름만 부른다거나, 손을 잡고 달린다거나. 그 남자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고 해도 떠올리면 머리를 껴안게 될 만큼 부끄럽다. 요시노 양은 아무것도 아닌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 그 남자에게 의식이 가 있어서 유키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다렸지.”
요시노 양이 쟁반에 올려둔 홍차를 유키의 앞에 놓는다. 독특한 홍차의 향기가 두둥실 떠돌다 코를 근질인다.
“마, 맛있어.”
한 입을 댄 뒤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에헤헤, 홍차를 우리는 건 고등부에 들어오고 나서 계속하고 있었으니까.”
옆에서 요시노 양이 쟁반을 껴안는 듯한 모습으로 정말 기쁜 듯 미소 지으며 유키를 보고 있다.
위험해. 무진장 귀여울지도 모르겠어.
뺨이 붉게 물드는 걸 지각한 유키는 수줍음을 숨기기 위해서 티컵을 입에 댔다. 요시노 양은 쟁반을 옆에 두고 양 손바닥 위에 자그마한 얼굴을 올려두고, 싱글벙글 웃으며 유키를 바라보고 있다.
으으,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생각하며, 어색한 기분에 차에 곁들여 나온 쿠키에 손을 뻗는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어. 혹시나 이것도 요시노 양이……?”
척 보기에도 수제로 보이기에 그렇게 물어보았다.
“유감. 이건 레이 쨩이 만든 거야. 나, 쿠키 같은 거 만들어 본 적 없는걸.”
“아, 그, 그렇구나.”
이건 실패였나. 하지만 요시노 양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상태로 몸을 내밀어 유키의 얼굴을 살펴본다.
“혹시, 유감이었어? 내 수제가 아니어서.”
“에, 아, 응?!”
“으앗, 유키 군 괜찮아?”
급히 홍차를 마셔서 목에 걸린 쿠키를 흘려 내린다. 그런 유키의 모습을 보고 곁에 있던 요시노 양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다.
“유키 군은 정말로 유미 양이랑 똑 닮았네.”
“그, 그건 너무해. 나는 유미 정도로 알기 쉽지 않아.”
“어머, 그 말투는 유미한테 너무한 거 아니려나?”
“괜찮아 괜찮아. 사실이니까.”
“그것도 그렇지.”
거기서 요시노 양과 얼굴을 맞대고 소리 내 웃었다. 덕분에 아까까지의 긴장이 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도움을 준 누나에게 유키는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아, 그래. 저기, 유키 군. 유키 군은 게임 같은 거 해?”
“게임이라는 건 비디오 게임 같은 거? 꽤 좋아하는 편인데.”
“그럼 저거 해 본 적 있을까? 그게 말야~ 아무래도 깨기 어려워서.”
요시노는 부산히 움직이며 서랍장에서 게임기를 꺼내 설치하기 시작했다. 슬쩍 보자 별 종류의 게임기가 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와, 그 본체의 산 말야, 뭔가 대단하네.”
“아아. 나 몸이 약했었으니까. 아버지가 이것저것 사 줬어. 뭐어, 아마 나한테 사 준다는 구실로 아버지가 가지고 싶었던 거로 생각하지만.”
아버지, 그래 봬도 제법 어린애 같으니까. 라고 말하며 요시노 양은 웃었다. 그리고 요시노 양이 꺼낸 게임은 유명한 모 전략 첩보 액션 어드벤처 게임.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침입해서 미션을 달성하는 게임이다. 다행히 유키는 이미 클리어 한 적이 있었지만, 설마 여자가 이런 하드한 액션물을 플레이한다니 의외였다.
“이거 이거. 이걸 아무리 해도 못 깨겠어~”
어느샌가 데이터를 불러와서 플레이를 시작한 요시노 양.
“아아, 이 녀석이라면 공략법이…….”
공략법을 전수받았지만 금방 패배해서 게임 오버. 그 뒤에도 여러 번 다시 플레이하지만, 아무리 해도 깨지를 못했다.
“차암, 치사해~!”
뺨을 부풀리며 화내기 시작하는 요시노 양.
곤란해. 정말로 귀여울지도 모르겠어. 아니 아니 잠깐 잠깐, 뭐가 곤란하다고 하는 거야.
“저기, 내가 조금 해 볼……까?”
“으으! 안 돼, 내가 깰거야!”
예상한 대로라고 할까, 거절당했다. 아무래도 제법 열 받기 쉬운 성격인 모양이다. 그리고 상당히 지기 싫어한다.
그리고 요시노 양이 몇 번째 인가의 플레이를 다시금 시작하려 했을 때.
“다녀왔어~.”
현관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
둘이서 동시에 일어서서 얼굴을 마주 본다.
“곤란해, 부모님들이 돌아와 버렸어.”
“에, 고, 곤란하다니?”
“아버지, 분명히 내가 남자애를 집에 들였다는 걸 알면 무지막지하게 화를 내든지 졸도하든지 할 거야.”
“어, 어쩌지.”
“일단 여기서 출발하면 현관에서는 보이지 않으니까, 2층의 내 방으로 가 줘. 나는 여기를 정리하고 있을게.”
“요, 요시노 양의 방에?!”
“문에 이름 판이 걸려 있으니까. 자, 빨리빨리!”
밀쳐지듯 거실에서 쫓겨나, 일단 발걸음을 죽이며 2층으로 올라간다. 복도를 걸으며 좌우를 살피다 ‘요시노’라고 쓰여 있는 이름판 이 매달려 있는 문을 발견했다.
한순간 망설였지만, 여기에 우두커니 서 있을 수도 없다. 유키는 각오를 굳히고 문을 열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가자 눈에 들어온 것. 그건 인형도 아니고 팬시상품도 아니고 귀여운 커튼 무늬도 아니었다. 침대, 책상, 옷장, 책꽂이. 정말로 심플한 방. 역으로 특별히 눈에 띄는 게 보인다 할 수 없을 정도다. 억지로 말해봐야 바닥에 흩어져 있는 잡지류 정돌까.
“아, 잠깐 잠깐. 긴급사태로 들어온 것뿐이야. 여자애의 방을 그렇게 차근차근 관찰하면 안되는 게 아닐까.”
소리를 내며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그렇다. 봐서는 안 된다. 유키는 방쪽에 등을 돌려, 즉 문 쪽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유미 외의 여자 방에 처음으로 들어가는 게 이런 샛서방 짓 같은 한심한 상황이라니, 눈물이 난다. 이 뒤에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걸 생각하고 있자 문이 열렸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잠깐 뭐 하고 있는 거야, 유키 군?”
“아니, 방을 보는 건 미안하지 않을까 해서.”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곤란한 것 같은 건…… 잠깐, 아아앗, 역시 잠깐 그대로 있어줘.”
당황한 듯이 요시노 양이 방 안에 달려 들어간다. 침대 주변에서 뭔가 부스럭부스럭 거리고 있다. 정말로 신경 쓰이지만, 남자로서 뒤를 돌아볼 수는 없다.
“미, 미안. 이제 됐어.”
“아, 응. 그래서, 이제 어떡할까.”
“정말 미안하지만, 살그머니 돌아가 줄래?”
“그건 상관없는데 신발은 어떡하지?”
“앗.”
요시노 양이 입가를 눌렀다. 아무래도 완전히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유키 자신도 잊고 있었으니까 얼빠진 짓을 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현관에 놓아둔 걸 눈치 채였다간 이렇게 숨어 있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이, 일단 틈을 봐서 가져올 테니까 잠깐 기다려줘.”
“가지고 온다고 해도 여기는 2층인데…….”
“………….”
이렇게 침묵이 깔렸을 때. 문 바깥에서 갑자기 안으로 말을 걸어왔다.
“요시노, 있어?”
“어, 어머니?! 뭐, 뭔데?”
“들어갈게.”
“에엣, 자, 잠깐 기다…….”
멈출 틈도 없이 문이 열려, 거기에는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요시노 양의 어머니가 있었다. 실내에서 굳어 있는 유키의 모습을 보고 요시노 양의 어머니는 “어머”같은 소리를 내며 조금 눈을 둥글게 떴다.
“아, 아, 아냐 이건! 그게, 그게”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요시노 양은 팔을 뱅글뱅글 돌리며 어머니를 향해 영문을 알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
“쉿. 큰 소리를 내면 아버지한테 들려 버린다?”
“……엣?”
“후후. 내가 현관에 있던 남자용 신발을 못 볼 리가 없잖아.”
“에, 눈치채고 있었어?!”
“당연하잖아. 아버지의 눈에 띄면 곤란하니까 당황하며 숨겼으니까.”
라고 말하며 뒷짐을 지며 들고 있던 유키의 신발을 내민다. 요시노 양은 입을 떡 벌리고 그 신발을 받았다. 애초에 유키 자신도 얼이 빠져 있었지만.
“그래도, 요시노도 우리들에게 숨기고 남자애를 집에 들일 만한 나이가 되었구나~.”
“어어어어어머니, 이, 이건 그런 게!”
“그, 그래요. 요시노 양 잘못이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 멋대로 실례해서.”
유키는 요시노 양 앞에 나서서 깊게 머리를 숙였다.
“아니야, 유키 군은 나쁘지 않은걸. 오히려 나를 도와줬어.”
이번에는 요시노 양이 유키의 앞에 나섰다. 그리고 한낮에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 왜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했다.
“어머, 그러면 숨어 있을 필요는 전혀 없었잖아. 오히려 유키 군에게 우리가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인걸.”
“그, 그렇지만, 무심코, 어쩌다 보니…….”
겸연쩍은 듯 요시노 양은 눈길을 돌린다.
요시노 양의 어머니는 나란히 선 유키와 요시노 양을 교대로 바라보고 재밌다는 듯이 쿡쿡 웃는다. 마치 어린애 취급 같다. 아니, 실제로 어린애긴 하지만.
“뭐 그래도 이제 와서 나갈 수도 없게 됐네. 아버지, 유키 군의 모습을 봤다간 분명 골프 클럽이라도 휘두르며 쫓아 오든지 쇼크로 죽을 뻔하든지 할 테니까.”
오호호 하고 어머니는 웃고 있지만, 유키 입장에서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핏기가 싸악 가셨다.
“뭐어, 그건 과장이라고 해도. 아버지는 지금 골프를 보고 있으니까 거실에 계속 있을 것 같은걸. 그러니까 면목없지만 유키 군은 주방 쪽 뒷문을 통해 돌아가 줄 수 있을까?”
“아, 그렇게 할게요.”
뒷문이든 비상문이든 나갈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유키는 요시노 양의 어머니가 안내하는 데 따라 무사히 시마즈가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앗~!”
저녁 식사도 끝나고, 요시노는 거실 소파에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오늘은 정말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마을에서는 스토커 같은 남자에게 잡히고, 위험할 뻔한 상황을 유키 군에게 도움받았고, 집에까지 들여보냈더니 부모님이 돌아와서…….
그래도.
스토커에게 지켜줬을 때에는 조금 멋있었을지도. 그런 식으로 돌려보내서 면목은 없지만.
“유키 군, 좋은 애네.”
“읏?!”
부엌에 있었을 어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그런 말을 꺼냈다. 덧붙여서 아버지는 목욕탕에 들어가 있으니까 소리는 들리지 않을 거다.
“귀엽고, 예의 바르고 진지해 보이고. 다음에 정식으로 불러서 소개하면 어때? 아버지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차암, 그러니까 유키 군하고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말했잖아!”
소파에서 뛰어내려 항의한다.
아, 그래도 곤란해. 지금 분명 얼굴이 빨개졌어. 어머니도 그런 요시노를 보고 웃고 있어.
“어머, 어떻게 된 거니, 요시노. 그렇게 열을 받아서.”
“아무것도 아니야~!”
어머니를 당할 수 있을 리가 없기에 다시금 소파에 푹 박혀서 쿠션을 껴안았다. TV에서는 언제나 보고 있는 버라이어티 방송이 나오고 있었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그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네.”
쿠션을 꾹 껴안으며 중얼거린다.
오늘 일어난 일은 정말로 우연.
“후우.”
눈길을 돌리자 창문에 요시노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게 눈에 들어온다. 평소와 변함없는 자신의 모습. 그래도 왠지 평소와는 다른 것처럼 보인다.
창문에 비치는 그 소녀는 자신도 좋아하는 큰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요시노 자신을 지긋이 꿰뚫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시작은 언제나 우연”
~혁명전야~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