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이야기는 언제나 돌연
“미안한데 잠시 심부름 좀 다녀와 줄래?”
엄마에게 요시노가 그런 부탁을 들은 건, 막 가을이 겨울로 넘어왔을 즈음의 휴일 오후. 슬슬 코트를 걸치지 않고 외출하는 건 힘들고, 머플러나 장갑이 힘차게 활약하게 될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을 즈음.
거실 소파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후지사와 슈헤이의 “요신보지츠게츠쇼(用心棒日月抄: 사정에 의해 살던 번에서 나와 에도에서 낭인 생활을 하게 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시대 소설)”를 읽으면서 센베이를 갉아먹는 게으른 휴일을 만끽하고 있던 몸으로써는 아무래도 거절하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메이플 팔러의 시폰 케이크를 사와도 된다는 말을 들으면 거절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언니이자 사촌 언니인 레이도 드물게 부모님과 함께 외출한 탓에 따분함을 잠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좋아하는 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감고 장갑을 낀 완전무장 상태로 밖으로 나가자, 바로 차가운 바람이 덮쳐 와서 바깥 공기에 직접 닿는 얼굴을 공격한다. 갑자기 HP 절반이 날아갔다는 느낌이었다. 원래 체력치가 낮기도 하니, 어서 심부름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하며 요시노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심부름을 금방 마치고 메이플 팔러의 시폰 케이크를 산 뒤, 얼마 남지 않은 HP를 위해 빨리 돌아가려고 딱 맞춰 찾아온 버스에 올라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가 애초에 실착이었다.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자, 딱 알맞은 난방에 적절히 흔들려주는 버스의 진동 덕에 금세 푹 잠들어 버렸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 눈을 떠 보니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네까지 와 있었다. 자 버린 것도 문제였지만, 뭣보다 버스 자체가 지금껏 타본 적 없는 쪽으로 향하는 버스였으니 이도 당연하겠지.
온 버스를 별생각 없이 타 버린 게 실수였지만, 그래도 잠이 들지 않았으면 금방 눈치챘었을 거다.
그 뒤의 행동도 실수였다.
내린 것까진 좋았지만 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어서, 반대쪽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면 살던 동네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어림짐작하고 탄 버스는 요시노를 더더욱 미지의 땅으로 실어 날랐다.
아무리 모르는 동네라고 해도 제대로 종점을 확인하고 버스를 타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겠지만, 청신호같은 성격이 큰 화를 불렀다 해야 하려나.
그리고 얼마간의 모험 끝,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어딘가요, 여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본 적 없는 경치였다.
다행히 알지 못하는 역까지 도착한 덕에 노선도를 보면 집까지 돌아갈 수 있겠지만, 이대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일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겨우 심부름에 시간을 너무 쓴 탓에 뭘 한 거냐는 이야기를 들으면 제대로 대답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요시노는 상대가 가족이라 해도 버스를 잘못 타서 미아가 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용건이 있어서 돌아가는 게 늦어졌다고 말하고 싶었다.
다시 한 번 노선도를 본다. 그리고 결심한다.
“……좋아, 유미 양의 집으로 가자.”
벙어리장갑을 낀 채로 주먹을 굳게 쥐며 결심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고 물어도 깊은 의미는 없다. 단지 미묘하게 유미가 학교에 다닐 때 탄다고 들은 버스 노선에 가까운 것으로 보여서다. 덧붙여 말하자면 친구의 집에 가 보고 싶다고 하는 마음도 꽤 컸다. 다행히도 선물로 삼을 메이플 팔러의 시폰 케이크도 가지고 있다.
요시노는 힘차게 출발했다.
목적한 역으로 도착한 뒤 자아, 가자. 하고 생각했을 때 문득 깨달았다.
잘 생각해 보니 후쿠자와 가(家)의 주소를 모른다. 거기에 더해 약속 같은 것도 전혀 하지 않았으니 집에 있을지 어떨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는 것도 열받는 일이기에 일단 전화를 해 보기로 했다.
근처의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서 학생 수첩을 꺼내 후쿠자와 가(家)의 전화번호를 확인한 뒤 번호를 누른다.
벨 소리가 몇 번 울린 뒤 수화기 소리가 들렸다.
‘예, 후쿠자와입니다.’
“저, 릴리안 여학원의 시마즈라고 하는데 유미 양은 계신가요?”
‘아, 죄송합니다. 유미는 지금 외출 중이라서…….’
“그런가요…….”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지만 약속한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유감스럽지만 포기하고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뒤, 인사와 함께 수화기를 내리려 했다.
‘저기, 요시노 양이지요? 유미에게 무언가 용건이라도? 전달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해 줄게.’
“아, 유키 군?”
거기서야 수화기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유키의 목소리라는 걸 눈치챘다. 생각해 보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시점에서 유키가 아니면 그 아버지일 수밖에 없고, 아무리 들어봐도 젊은 목소리였으니 듣자마자 눈치챘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렇구나. 이렇게 된 이상 유키 군이라도 괜찮아.”
‘하아? 뭐가요?’
“저기, 유키 군. 나랑 만나지 않을래?”
‘하아?!’
수화기 저편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귀에 울려왔다.
유키는 초조해하고 있었다.
아니, 당황하고 있다거나 놀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는 건 확실했다.
원인을 말하자면 유미의 친구인 요시노에게서 걸려온 예상 밖의 전화 때문이었다. 유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하필이면 요시노는 유키한테 만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당황하면서 지금 어디 있는지 물어보자 버스에 타면 후쿠자와 가(家)까지 바로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버스에 탈 테니 내릴 버스 정거장의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집에 찾아오겠다는 이야기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전화를 받을 때는 거기까지 떠오르지 않아 무심코 제대로 가르쳐줘 버렸다.
정신이 든 건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에, 우리 집에 오는 건가?!”
소리를 질러도 이미 늦었다. 이미 거절하는 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여자애가 찾아온다. 그건 좋다. 아니, 안 좋아. 아니아니, 유미가 있으면 문제없겠지만, 지금은 외출 중이다. 거기에 더해 부모님도 나가 계신다.
요는 지금 후쿠자와 가(家)에 있는 게 유키 혼자라는 소리고, 그런 상황에서 여자애를 집에 들여도 좋은 거냐는 소리다.
어떡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고 있었지만, 시간은 무정하게도 지나간다. 근처의 버스 정거장으로 맞이하러 갈 약속까지 해버렸으니 계속 집에 있을 수도 없다.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일단 유키는 재킷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섰다.
버스 정거장에 도착하고 2~3분쯤 지나자 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 하늘 아래, 정차한 버스에서 내린 건 한 명 사람밖에 없었으니 잘못 볼 수가 없었다.
문을 닫고 달려가는 버스를 뒤로, 그 소녀는 유키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평안하십니까, 유키 군.”
“……펴, 평안하십니까.”
앵무새처럼 그대로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풋…… 유키 군, 입 벌리고 있어.”
그런 모습을 보고 요시노가 웃는다.
꽃이 피는 것 같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겠지만, 유키의 마음속은 그런 식으로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을 정도로 차분한 상태가 아니었다.
눈앞에 서 있는 소녀는 유키가 알고 있는 소녀가 아니었다.
하얀 대미지드 쇼트코트, 블랙 계통의 체크무늬 트위드를 덧대 만든 머메이드 스커트에, 역시나 검은 계통의 스타킹. 니트로 된 줄무늬 머플러에 벙어리장갑. 거기에 더해 머리 모양도 지금까지 만났을 때와 다르다. 땋은 머리밖에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길고 부드러운 밤색 머리카락을 스트레이트로 풀어 내렸다.
사복 모습은 예전에 한 번 밖에 본 적이 없었지만, 머리를 푼 건 처음으로 봤다. 그리고 한순간에 그 자리에 그대로 못 박혀 버렸다.
“? 어이, 어떻게 된거야, 유키 군.”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키의 눈 앞에서 장갑을 낀 손을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어 보는 요시노.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갈까.”
“응.”
동요한 모습을 숨기고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유키는 속으로 이렇게 둘이 나란히 걷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한다.
사이 좋은 친구?
누나와 남동생? (혹은 오빠와 여동생?)
아니면…… 사귀는 사이?
마음속으로 떠올린 자신의 상상 탓에 얼굴을 붉힌다.
“아, 여기가 유키 군의 집이야?”
어느샌가 집에 도착했었다.
“우와ー 세련된 집이네.”
“일단, 아버지가 설계했어. 가족들 모두 마음에 들어 하고 있어.”
“헤ー 아버지가? 대단하네!”
미소가 터진다.
이상하게 요시노의 텐션이 높았는데, 그 이유는 현관문에 도착한 시점에 밝혀졌다.
“나, 레이 쨩의 집 말고 다른 친구 집에 온 건 사실 처음이야. 우와 왠지 두근거리기 시작했어.”
심장 주변을 손으로 누르면서도 눈은 기대를 감추지 않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유키는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여하튼 자기 집에 여자애를 들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물론 요시노가 유키를 찾아온 건 아니었지만 지금 현실은 유키의 손님으로서 집으로 찾아온 거다.
먼저 신발을 벗고 앞에서 안내한다. “실례하겠다.”라고 말하며 부츠를 벗으며 후쿠자와 가(家)로 기념할만한 한 걸음을 내딛는 요시노.
유키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면서 일단 무난하게 거실로 안내했다.
“저기, 소파 같은 데 적당히 앉아 줘. 지금 차를 내올 테니까. 아, 코트는 거기에 걸쳐둬도 괜찮으니까.”
“응ー. 아, 그리 신경 안 써도 괜찮아.”
말에 따라 코트를 벗는 요시노. 코트의 아래는 블랙 블라우스에 오프화이트 카디건 같은 윗도리를 맞춰 입었다.
코트도 포함해서 위에서 아래까지 검정과 하얀색의 대비가 정말로 아름답고, 머리카락만이 옅은 갈색.
햇빛을 모르는 게 아닐까 싶은 것만 같은 하얀 피부에 만지기만 하면 깨질 것 같은 가느다란 몸. 대조적으로 힘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커다란 눈에 긴 속눈썹.
‘위험해. 귀여워…….’
포트의 따뜻한 물로 커피를 만들면서 유키는 필사적으로 안정을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귀여운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허를 찔린데다 머리 모양과 복장이 다른 탓에 유키는 동요를 아무래도 억누를 수 없었다.
거기에 더해 원래 요시노의 모습은 유키가 좋아하는 타입에 딱 맞아떨어진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겉모습에 그리 구애받지 않고 성격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극히 평범한 남자기에 당연히 좋아하는 타입 같은 건 존재한다.
그런 유키의 속마음 같은 건 전혀 모르는 듯 요시노는 소파에 앉아서 신기한 듯이 실내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고 있다.
“저기…… 그러고 보면 오늘 유미한테 무슨 용건이라도?” 커피를 테이블에 두면서 물어보자 수납장을 바라보고 있던 요시노가 약간 당황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으으응, 어쩌다 다른 일이 있어서 우연히 이 근처에 오게 돼서. 유미 양의 집이 이 근처였다는 걸 떠올리니 왠지 올 마음이 든 것뿐이야.”
“그, 그렇구나.”
그 유미가 집에 없는데 어째서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건지 물어보는 건 역시 힘들었다.
“저기ー, 왠지 다과가 다 떨어져서…….”
“신경 쓰지 마. 갑자기 쳐들어온 거니까…… 아, 맞아 맞아!”
손뼉을 짝 치면서 요시노는 소파 옆에 놓아둔 종이봉투를 테이블에 올려둔다.
“이거, 괜찮으면 같이 먹을래? 진짜로 맛있어.”
자기 스스로가 정말로 먹고 싶다는 듯한 보이는 표정을 하면서 종이봉투에서 상자를 꺼낸다. 유키도 본 적 있는 유명한 가게의 상자다.
“응? 먹자, 먹자.”
양손을 굳게 쥐고 먹고 싶은 분위기를 가득 띄우며 기쁜 듯이 바라보는 걸 보면, 유키는 그 말 대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메이플 팔러의 시폰 케이크를 다 먹고 나서 요시노는 다시금 유키를 놀라게 만드는 한 마디를 꺼낸다.
“저기, 유키 군의 방, 보고 싶어.”
“엣, 어, 어째서?!”
“사실은 유미 양의 방을 보고 싶기는 한데, 아무래도 유미 양이 없을 때 멋대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대신 보고 싶은 건데. 안될까?”
“아니……뭐, 별로 상관은 없는데.”
일어나서 2층의 자기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다행히 방은 그만큼 어지럽히지 않았었고, 남이 보면 곤란할 법한 물건을 꺼내 두지도 않았을 거다.
방 앞까지 도착해서 문 손잡이를 잡은 상태에서 뒤를 보자 왠지 3걸음쯤 떨어진 곳에 요시노가 서 있었다.
“……저기, 안 들어갈 거야?”
“에, 아, 그래도, 괜찮아?”
“뭐가?”
자기가 먼저 방을 보고 싶다고 말했으면서 왜 여기 와서 망설이는 건지 고민하고 있자.
“아ー, 그치만 그게, 이럴 때는 그렇잖아? 내가 들어가기 전에 방 안을 정리하거나 안 해도 괜찮아?”
“……신경 써 줘서 고마워. 그래도 일단 괜찮으니까.”
어색한 미소를 띠는 유키.
“아, 하하, 그렇구나. 미, 미안, 왠지.”
요시노 역시 애매한 미소를 돌려준다.
“뭐어, 들어와.”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요시노가 머뭇거리는 듯 발걸음을 내딛고, 방 안을 본 뒤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없는 집에 여자애를 들이고 게다가 자기 방으로 안내하는 건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을 끌 만한 곳은 없는 방이다.
요시노는 신기한 듯 “와ー”라거나 “우와ー”같은 소리를 내고 있지만 뭘 보고 그런 소리를 내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친구 집에 온 게 처음이라고 했으니까 별것 아닌 걸로도 흥분하고 있는 거겠지.
이윽고 요시노가 조금 침착했을 즈음에 침대 위에 철퍼덕 앉았다. 무릎 사이에 양팔을 끼우듯 앞으로 숙이며 유키를 올려다본다.
“에, 저기, 그리 재밌는 것도 없잖아?”
그런 식으로 아래서 올려다보지 말아 달라고 생각하며, 얼굴이 빨개질 것 같은 기분을 참으며 유키는 쌀쌀맞은 말투로 말한다.
“으으응, 안 그래. 나 레이 쨩의 방 정도밖에 모르니까. 다른 사람의 방은 어쩐지 재밌어.”
“아아, 레이 씨의 방이라면 역시나 여자다우려나?”
“엣……?”
“요리책이라거나 뜨개질책 같은 게 잔뜩 있을 것 같네.”
“그,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깜짝 놀란 듯 눈을 둥글게 뜨는 요시노.
“아, 어쩌다 레이 씨에게 들은 적이 있어서.”
“그렇……구나.”
유키는 요시노의 표정이 조금 흐려지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정말 늠름한 이미지였으니까 나도 처음에 과자 만들기나 뜨개질이 취미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어. 그래도 언제나 수제 케이크 같은 걸 만들고, 저번에도 파운드 케이크를 새로 만들었다고 했으니까 대단하지.”
“그……그래.”
공통의 화제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계속 이야기를 하는 유키는 요시노의 분위기가 바뀌어 가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겉모습하고 소녀취미가 잘 안 어울리지 같은 말을 하며 웃었지만, 그렇지도 않지. 그러고 보면 레이 씨와는 반”
“뭐야, 아까부터 즐거운 듯 레이 쨩의 이야기만 하곤!”
갑자기 요시노가 크게 소리 지르며 자리서 일어났다.
“에, 아니.”
레이 씨와는 반대로 요시노 양은 시대극이나 추리소설 같은 걸 좋아하지……라고 말하려고 했을 때 말이 막혀서, 영문도 모른 채로 유키는 눈앞에 선 소녀를 바라봤다.
쏘아보는 듯한 눈에 뾰로통한 뺨을 보면 확실히 화내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게 무시무시하게 귀엽다. 본인은 그런 걸 의식하고 있지 않겠지만, 얼굴이 풀린 채로 화낼 때의 요시노도 역시 귀엽다고 말했던 레이의 기분을 유키도 이해할 수 있었다.
“됐어. 이제 갈래.”
방을 뛰쳐나와 무시무시한 기세로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가는 소녀의 등을 당황하며 쫓아가는 유키.
말을 걸려고 해도 요시노는 들으려는 시늉도 하지 않고 돌아갈 채비를 한다. 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두른다.
대체 뭐가 요시노의 역린을 건드린 건지도 모르는 채로 유키는 단지 흔들리는 긴 머리카락을 쫓아간다.
현관에서 부츠를 신은 뒤 일어나고 나서야 간신히 유키 쪽을 돌아본 요시노는
“오늘 갑자기 실례해서 죄송했습니다. 커피 잘 먹었습니다.”
정중한 인사를 꺼내고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간다.
이미 해가 져 어두워졌기에 유키는 버스 정거장까지 바래다줄지를 물어봤지만, 정중히 거절당하고, 요시노는 후쿠자와 가(家)에 등을 돌렸다.
결국, 뭘 하러 온 것인지, 그리고 왜 갑자기 기분이 언짢아져서 돌아간 건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키.
거실에는 두 사람 치만 먹은 시폰 케이크가 남아 있었다.
집에 돌아간 뒤 요시노는 자기 방 침대 위에서 머리를 안고 있었다.
이유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집을 나서서 돌아올 때까지 지나치게 시간이 지난 탓에 엄마한테는 혼나고, 아빠는 걱정하다 못해 하마터면 경찰에 수색원을 내려고 하고 있었을 정도라, 저녁 뒤에 잔뜩 혼난 것.
지하철이랑 버스를 계속 갈아타는 동안 쓸데없이 돈을 낭비해 버린 것.
모처럼 산 메이플 팔러의 시폰 케이크를 후쿠자와 가(家)에 놓아두고 잊어버린 것.
그리고 무엇보다 유키에 대해 취한 태도에 대해서.
“우와아아아아…….”
발을 바둥거린다.
어째서 그렇게나 알기 쉬운 반응을 보여버렸는지 이제 와서 반성해도 이미 늦었다.
다행히 상대가 그런 쪽에 둔감해 보이는 게 다행이라고 할까.
이 갈 곳 없는 분노를 대체 어디에 부딪치면 좋을까.
응어리 가득한 마음을 안으며 침대 위에서 고민하고 있자.
“―――요시노, 있지? 들어갈게.”
낯익은 사촌 언니의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린다.
“자, 여기 선물……어, 왜 그래?”
철퍼덕 엎어져 있는 요시노의 모습을 보고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 레이.
“……맞아.”
요시노는 스르륵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레이를 바라본다.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을 느꼈겠지.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요시노 쪽이 레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레이 쨩이야, 레이 쨩이 잘못 한 거니까!”
“자, 잠깐 뭐야, 요시노?”
레이가 당황하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요시노는 레이를 통통 때리기 시작한다.
“레이 쨩은 대체 어느새. 평소에는 멍하니 있는 주제에 어째서 그런 곳만 무의식중에 재빠른 거야!”
“그러니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니까.”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어른스럽게 요시노의 투정을 받아주는 레이.
“시끄러워, 정말, 레이 쨩 바보!”
소리치면서 요시노는.
자신이 정말로 열받은 건 레이에 대해서인지, 그게 아니면 유키에 대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에 대해서인지를 마음속에 물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