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열·소녀
고교 마지막 1년이 시작되었다. 고교 시절은 인생 중에도 유달리 반짝거리는 시기란 이야기를 누군가가 했던 기분이 든다. 그게 사실인지 어떤진 장래에 되돌아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키는 시시한 3년간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고, 지금까진 나름대로 즐겁게 지내오고 있다. 그리고 정말 멋진 3년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분명 마지막 한 해에 걸려 있다. 끝이 좋으면 전부 좋다, 까진 아니더라도, 끝이 나쁘면 전까지 아무리 좋았어도 결국은 나쁜 인상밖에 남지 않겠지.
하지만 고3이 되면 마지막엔 수험공부에 쫓기게 된다. 수험에 붙으면 그것마저도 좋은 추억이 되겠지만, 실패하면 어떨까. 재수생활을 포함해 즐거웠고 빛나던 시기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 떨어지고 싶진 않다.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실감은 아직 솟지 않아, 일단은 눈앞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는 쪽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론 제일 중요하게 느껴지는 날이 찾아오고 있다.
“――유키치, 무슨 일이야? 얼빠진 표정 짓고. 새 학기에 지쳤어?”
복도를 걷는 중에 뒤에서 쫓아온 코바야시가 어깨를 두드렸다. 새 학기가 되더라도 2학년에서 3학년에 올라갈 때 반편성을 바꾸지 않다 보니, 신선함은 없지만 친숙한 안심감 같은 건 있다. 수험생이고 고교 생활 마지막 1년이기도 하니, 학교쪽에선 안정되게 보내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것보다 유키치, 돔 안갈래? 한신전 티켓이 들어왔는데, 게다가 백네트 뒤 지정석이야.”
“오, 괜찮네. 언제?”
“이번 주말, 토요일 야간에―”
“아차, 미안, 그 날은 안돼.”
“에―, 어째서.”
왜라고 물어도 어쩔 수 없다. 볼일이 있으니까. 야구소년이었던 유키에게 프로야구의 공식적을 보러 가는 건 굉장히 즐거운 일이고, 이게 특등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는 거다.
“……하하, 그럼 여잔가.”
반짝 안경을 빛내며 코바야시가 중얼인다.
“멍청아! 그, 그런게”
“과연― 요시노 양이야? 뭐, 남자의 우정따위야 그런 거지.”
“그런 소리 해봐야, 그쪽 약속이 먼저였으니까!”
“아아 뭐야, 역시 맞았잖아.”
“………….”
너무 쉽게 낚여서, 코바야시에게 걸려 버렸다. 딱히 비밀로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부끄럽다.
“나는 응원하고 있지만, 뭐, 확실히 비밀로 해 두는 편이 무난하겠지.”
“뭐가?”
“당연하잖아. 요시노 양은 이쪽에서도 인기 많으니까, 너랑 데이트한다는 이야기가 퍼졌다간 어떻게 될는지.”
“윽…….”
코바야시의 이야기는 과장도 뭣도 아니다. 릴리안 산백합회 임원이라고 하면 미소녀가 모인 걸로 유명하고, 학원 축제 때 만날 일도 있기에 인기는 발군이다. 작년 학원 축제때 장미님이었던 사치코, 레이, 시마코의 인기가 높았다곤 해도, 봉오리였던 유미, 요시노, 노리코의 인기도 어지간한 수준은 아니었다. (유미가 인기가 있다는 건 유키 입장에선 아직도 믿기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그중에 요시노는 정통파 미소녀로서 역시나 인기가 높다. 사치코나 시마코는 다가가기 힘들다고 할까, 멀리서 우러러보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요시노는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다. 또한 실제 성격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레트로한 릴리안의 교복에 땋은 머리가 굉장히 어울려서, 옛날 영애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것도 인기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몸도 좋아졌지만, 아직껏 병약하다는 믿음이 있고, 외모도 거기에 어울린다. 덧없는 미소녀라는 건 그것만으로도 남학교 녀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한 거다.
“뭐, 그건 어쩔 수 없어. 단념하고 팬의 적의를 온몸에 받으라고.”
“아니, 그런 소릴 해도, 별로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뭘 약한 소릴 하는 거야. 여기서 힘내지 않으면 언제 힘낼 건데? 고등학생 마지막을 시커먼 추억으로 만들 셈이야?”
그럴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지만, 이것만은 자신 혼자 힘낸다고 어떻게 되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힘내야 한다는데 이의는 없지만.
“일단, 코바야시.”
“응?”
“그 티켓, 나한테 양보할 생각은 없어? 그러면”
“얌마, 왜 내가 거기까지 해 줘야 하는 건데. 거기다, 그런 거에 요시노 양이 기뻐할까? 그 쯤은 스스로 노력하라고, 소년.”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코바야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요시노라면 틀림없이 기뻐하리라고 생각하는 거였다.
그렇게 드디어 기다리디 기다린 주말이 찾아왔다. 유키는 이날에 대비해 전날까지 온갖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 중 대부분은 버렸지만.
어디에 갈지, 어떤 곳에 데려가면 요시노가 기뻐해 줄지. 요시노가 난색을 보이는 것도 상정해서 후보는 여럿 준비해 둔다.
물론 장소만이 아니라, 입을 옷은 뭐로 할지, 거북한 시간을 피하기 위한 화제를 이래저래 고민한다. 학교의 이야기부터 친구나 가족 이야기, 음악, 영화, TV, 게임, 스포츠, 수험, 거기에 더해 시사문제같은 것도 조금은 머리에 넣어 둔다. 상대는 여자니 먹거리 화제도 빼놓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생각하면 요시노와는 비교적 이야기가 잘 통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갈 수 있을 정도의 배짱은 없다.
준비에 시간을 너무 들여 잠이 부족해져도 의미가 없어서 가급적 빨리 침대에 들어가려 했지만, 기대와 불안으로 오랫동안 잠들지 못해 결국은 잠이 부족했는데도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마음이 고양되어 있어선지, 졸음과도 연이 없다.
그리고 집을 나가려 한 순간에, 연락이 왔다.
열이 나서 푹 뻗어 버렸다고.
낙담을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신경 쓰지 말고 건강해지는데 전념했으면 한다고 전한다.
전화를 통해 들리는 요시노의 목소리는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명확히 음색이 달라서 열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삼장 수술로 건강해 졌다곤 해도, 계속 병약한 몸으로 살아온 요시노는 아무래도 체력이 부족하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보다 쉽게 컨디션을 무너뜨리고, 피로하거나 한 상황엔 감기에 걸리기도 쉬운 모양이다.
이것만은 어쩔수 없구나 싶어서 유키는 한숨을 내쉰다. 미움받은 건 아닐 거고 기회는 또 찾아오겠지만. 여기서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고 자신을 설득한다.
자, 그럼 생각지도 못하게 남아버린 시간을 어떡할까 고민하는 중에,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그건 즉 ‘병문안을 가면 민폘까?’라는 거였다.
떠올린 뒤에 유키는 시마즈 댁의 코앞까지 찾아왔다. 이전에 예상치 못한 일로 방문한 적이 있어서 위치는 기억하고 있다.
오는 사이에 병문안 선물로 신선한 딸기를 사 왔다. 이건 어제까지 이래저래 조사한 먹거리 관련 지식으로 얻은 가게에서 산 거니, 어찌 보면 데이트를 위한 예습이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갑자기 병문안 같은걸 가도 폐가 아닐지 하는 부분이다. 기세를 타고 찾아온 거지만, 정작 집이 가까워지면 겁쟁이가 된다. 잘 생각해 보면 시마즈 댁의 사람은 어머니를 정말 잠시 뵌 것 외엔 제대로 이야기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 마치 유키가 샛서방같은 꼴이라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시마즈 댁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때는 도와주셨지만 과연 유키에게 호의를 안고 계실지 어떨지. 아가씨 학교라는 걸 생각하면 딸의 교우관계, 특히 이성관계에는 엄한 가정도 많을 거고,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닌데다 친구로서 가족에게 인지되어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약속도 안 잡고 집에 밀어닥치는 건 마이너스밖에 안 되지 않을까.
여기까지 와서, 침착하게 고민한 뒤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아깝긴 하지만 딸기는 가족끼리 먹으면 문제는 없다. 여기까지 찾아왔으니까 적어도 집만이라도 본 뒤 돌아갈까 싶은 마음에 걸음을 옮겨 ‘시마즈’ 명패를 보며 멈춰서서,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돌아가려 했을 때.
“……저기, 볼일 있으신가요?”
“엣?!”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확 몸을 돌린다. 그쪽에는 연배있는 깔끔한 여성이 서서 유키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뒤돌아선 유키를 보고 “아”하는 느낌으로 입을 벌렸다.
“어머, 유키 군이잖아?”
“에, 아, 예.”
거기에 있던 건 요시노의 어머니였다.
예상치 못했던 만남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몸이 굳는다.
“혹시나 요시노의 병문안에 와 준 거니?”
“아, 예. 저기, 이거, 문안 선물이에요. 괘, 괜찮으시다면.”
이런 길에서 건네도 괜찮나 싶지만,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유키도 당황했다. 거기에 직전까지 돌아가려 생각하고 있었기도 하고.
“어머, 모처럼이니 들어와서 직접 요시노에게 건네 주렴. 그 애도 그걸 기뻐할 거야.”
“에, 저기, 그래도.”
“아아, 나도 참 집 앞에서, 실례였네. 자, 사양하지 말고 들어와 주렴.”
결국 권하는 대로 시마즈 댁에 실례하게 되어 버렸다. 집 안에 발을 들인 뒤 한동안 기다리자, 요시노의 어머니가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그럼, 저쪽이 요시노의 방이야. 알고 있지? 자, 찾아가 줘.”
“예, 저기, 괜찮나요?”
“응. 유키 군은 신사라고 들었으니까.”
“하, 하아.”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힌다. 대체 요시노는 집에서 유키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 걸까, 애초에 가족에게 이야기가 전해진 것 자체가 부끄럽다. 설마 애인이라고 이야기 했을 리야 없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요시노의 방 앞에 도착한다. 예전에도 들어간 적은 있지만, 역시 여자의 방은 긴장된다. 거기에 예전에는 긴급피난으로 들어갔던 거라 지금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일단 방문을 가볍게 노크한다. 대답은 없지만, 아주머니가 들어가도 된다고 말했으니 유키에 대해 들었으리라 생각하고 문을 천천히 연다.
“안녕…….”
자그만 소리로 인사하곤, 살짝 방 안을 살펴본다. 인상은 예전에 왔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기억 속에 있는 심플한 방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달라진 부분은 침대 위의 담요가 약간 솟아올라 있는 정돈가.
“실례할게…….”
그렇게 말하며 조심조심 방안에 천천히 발을 디딘다. 유키 자신의 방에선 느낀 적 없는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 피어오르는 느낌이 든다. 실례가 되지 않도록 너무 방 안을 돌아보는 건 피하고 천천히 다가간다.
“저기, 요시노 양?”
말을 걸어보지만 대답이 없다.
혹시나 감기에 목을 당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전화할 때도 굉장히 쉰 목소리였던 기분이 들었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한 번 불러도 목소리는 커녕 전혀 움직일 기색도 보이지 않는게 의심스럽다.
다시 좀 더 다가가서 조용히 살펴보자,
턱의 약간 위 정도까지 이불로 덮고 얼굴을 붉히며 이마에 땀이 맺혀있는 요시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눈은 감겨있고, 규칙적으로 자그만 숨소리가 들려온다.
“……에, 어, 자고 있어?”
이건 예상 밖이었다. 아주머니께서 들어가도 된다고 하셨으니 분명 요시노는 깨어 있고 유키가 병문안 온 걸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설마 자고 있었을 줄이야. 방에 오기 전 아주머니 말씀의 의도는 이거던 건가. 요시노는 자고 있지만, 유키는 신사니 괜찮겠지, 라고.
그야 물론 병에 걸려 몸이 약해진 상황에서, 자고 있다고 해서 뭘 어쩌자는 나쁜 마음은 들지 않는다고 할까, 그런 배짱은 없는데.
하지만 이 자는 모습은 반칙이다.
평소의 땋은 머리는 풀려 있고, 앞머니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다. 상기된 뺨과 아스라이 빛나는 땀방울이 아련한 색기를 자아내고 있다. 열 탓인지 약간 괴로운 듯이 보이는데, 그런데도 귀엽다고, 아니 그렇기에 귀엽다고 느껴 버리는 걸까.
이마에 맺힌 땀에 손을 뻗고 있는 걸 깨닫고 당황해 손을 뒤로 뺀다. 뭘 하려는 건지, 정말.
“……으, 으음~.”
“으왓……아, 깼을 리가 없나.”
약간 몸을 움직였지만 눈을 뜨진 않은 모양이다. 열 탓인지 괴로워하는 모습이고 땀도 나서 더워 보이지만, 그래도 올바르게 이불을 덮고 있는 건 대단하다는, 엉뚱한 감상을 느낀다.
이대로 언제까지나 자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 같고, 그래도 그래서야 변태가 아닌가 싶고, 하지만 깨울 수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지만 어떡하면 좋을지 결단이 안 내려진다.
홀로 곤란에 고개를 젓고 있자,
갑자기 요시노의 눈꺼풀이 올라갔다.
유키와 눈이 마주친다. 열 탓인지 조금 젖은 듯한 그 눈에 빨려들 것만 같아서 눈을 떼놓을 수가 없다.
풀려있는 그 눈 또한 사랑스럽다.
그런 걸 생각하면서 무심코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그 눈이 크게 뜨이며
“야――야, 옹?!”
“고양이?”
“야……오째서 유키 군이?!”
퐁, 하는 의태어가 딱 어울릴 것 같은 느낌으로 요시노의 얼굴이 거듭 붉어진다.
“저기, 병문안에”
“벼, 병문안이라니, 그런, 갑자기!”
허둥지둥거리던 요시노는 당황스러운지 상반신을 일으켜 유키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요, 요시노 양, 감기 걸렸으니까, 제대로 자는 게”
“에엣? 그, 그래도, 저기, 그…….”
그리고 그때, 거의 동시에 둘은 깨달았다.
더워서였는진 모르겠지만 요시노의 파자마 버튼 위쪽이 풀려 있어서 목부터 가슴까지의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부푼 부분이 보일 정도까진 아니지만 애초에 마른 편인 요시노의 몸에 그런 부분이 있을지도 미심쩍고, 섹시함에서도 연이 멀었지만, 그래도 여자의 가슴 언저리인 거다.
유키는 허둥지둥 고개를 돌렸고, 요시노는 달아나듯 다시금 이불 안에 틀어박힌다.
“봐, 봐봐, 봤어?!”
“아, 안봤으니까, 괜찮아!”
뭐가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리 대답할 수 밖에 없다. 흘낏 요시노를 바라보면 이불로 코 위까지를 덮곤 눈만을 내밀어서 부끄러운 듯 유키에게 눈길을 향하고 있다. 그런 몸짓이 다시금 유키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도 모르고.
“저기, 미안, 그래도 멋대로 방에 들어온 건 아니니까.”
“아, 알고 있어, 어머니지, 정말…….”
짧은 이야기 뒤엔 뭐라 할 수 없는 정적이 방을 뒤덮는다. 이럴 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몰라서 초조해하는 유키. 요시노도 뭔가 말해야 할지 아니면 조용히 있는게 좋을지 판단이 안 되는 모양이다.
교착상태에 빠질 뻔 했지만 타이밍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유키가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자, 요시노의 어머니께서 미소를 띄우며 서 계셨다.
“아, 요시노도 일어났구나. 마침 잘 됐어.”
“뭐, 뭐가 마침 잘 됐어야. 정말, 엄마는 대체”
“자, 유키 군의 선물이야. 굉장히 맛있을 것 같지?”
“와…….”
어머니가 가져온 쟁반을 보곤 눈을 빛내는 요시노.
유키가 병문안에 가져온 딸기가 접시 위에 담겨 있었다. 어떤 딸기가 좋고 나쁜지는 잘 모르지만, 슈퍼에서 팔고 있는 게 아닌 꽤 상등품이기도 해서, 보기에도 맛있어 보인다.
“그럼, 느긋히 있어.”
딸기를 놓곤 바로 요시노의 어머니는 방을 떠나갔다. 남겨진 둘은 다시금 정적에 빠지지만, 지금의 요시노는 확연히 의식을 딸기에 향하고 있다.
“머, 먹을래?”
“으, 응…….”
끄덕이지만 왠지 이불에선 나가려 하지 않는 요시노. 그대로는 먹을 수 없을 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어째선지 부끄러워 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아마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이 꼬리를 잇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유키가 뒤를 돌아보거나 방을 나가거나 하는 것도 부자연스럽겠지.
유키가 먼저 손을 댈 수도 없고 기다리는 것도 따분해서, 유키는 딸기 하나를 집어들곤 요시노에게 보이도록 하며 얼굴에 가져간다.
“먹을래?”
하고 물어봤다.
아까 상황을 재생하는 것처럼 다시 얼굴이 붉어져가는 요시노.
말투를 뒤늦게 생각해 보곤 마치 자기가 먹여주겠다는 느낌으로 들렸으리라는 걸 깨달아, 유키도 새빨개진다.
어쩌지 싶어 굳어 있자,
“……으, 응.”
자그만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히, 요시노가 수긍했다.
“에, 에에.”
“아, 아~…….”
그리고 요시노는 눈을 감곤, 자그만 입을 약간 벌린다.
유키의 심장이 두방망이질친다.
긴장으로 딱 굳어있는 팔을 어떻게든 움직여, 덜덜 떨면서 요시노의 입가에 가져간다. 그리곤 살며시 딸기를 입 안에 넣는다.
요시노의 입이 움직여, 딸기를 입안으로 가져간다. 자그만 입이 움직여 딸기를 삼킨다.
“……맛있어!”
눈을 뜨고, 소리가 들뜬다.
“정말? 다행이다. 그럼 하나 더 먹을래?”
“응.”
싱글벙글 웃는 요시노를 보며 유키도 기뻐진다. 다시 딸기 하나를 집어서 요시노에게 가져간다.
“……왜, 왠지 부끄럽네.”
그래도 딸기의 유혹은 이기지 못한 것처럼 요시노는 다시금 입을 벌렸다. 요시노가 입을 닫을 때 그 입술이 유키의 손가락에도 닿아, 무심코 몸이 뜨거워진다. 요시노는 깨닫지 못한 건지 신경 쓰지 않는 건지 기쁘게 딸기를 먹고 있다. “이 딸기, 정말 맛있네! 입에 넣은 순간 밀어닥치는 딸기의 달콤함에, 그 뒤에 아련히 찾아오는 신맛도 상쾌해. 자, 유키 군도 먹어.”
“으, 응.”
권유를 받아 딸기를 집는다. 통통하고 선명한 붉은색의 딸기가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자신의 손끝이 신경 쓰인다. 약간 빛나 보이는 건 아까 닿았던 요시노의 침일까.
점점 빨라지는 고동을 눈치채이지 않도록 하며, 딸기를 입으로 옮긴다. 그리고 입 안에 넣어……우선 그 손끝에 닿는다.
“아……이거 맛있어.”
“그치, 그치?”
마치 자기가 잘한 것처럼 요시노는 기뻐했지만, 직후 괴로운 듯 기침을 했다.
“요시노 양, 괜찮아? 너무 무리하지 마. 미안, 나도 뭔가 밀어닥친 것 같은 느낌이라.”
차분하긴 하지만 얼굴은 역시나 붉고, 조금 괴로워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고, 계속 방에 있으면 마음 편히 쉬지 못할거고 계속 신경도 써야겠지.
“에에……, 나, 슬슬 실례할게. 너무 오래 있어도 미안하고. 아, 그대로 있어도 괜찮아. 느긋히 쉬어줘.”
그렇게 말하며 일어난다.
“……저기, 유키 군.”
“응?”
“오늘은 미안해.”
“뭐야, 그런 건 신경 안 써도 괜찮은데.”
“그리고, 오늘은 고마웠어.”
“응.”
“그리고, 그리고,”
“응?”
“에에……아, 아까 말야, 자는 사이에…….”
뭔가를 말하려다, 그 말꼬리는 그대로 이불 속에 빨려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뭐지, 하고 생각했지만, 이건 혹시나 자신이 의심받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바로 이르렀다. 즉, ‘자고있는 사이 뭔가 수상쩍은 짓을 한 건 아니지?’라고.
“아니, 잠깐 기다려. 그런 이상한 짓은 아무것도 안했으니까!”
허둥지둥 오해를 풀려고 입을 연다.
“그 때는 그냥 자는 모습이 귀엽구나 싶어 보고 있었을 뿐이고 건드리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에.”
“아――――.”
자폭이다.
아니, 본심이긴 하지만, 본인을 눈앞에 두고 입에 담을만한 말은 아니다.
“……그, 그럼, 빨리 기운 차려. 잘 있어.”
결국 유키는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요시노는.
“하우우~~~~~.”
“어머, 무슨 일이니, 요시노. 열이 올랐니?”
“아무것도 아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그만 소리로 신음하는 요시노.
사실은 바둥바둥거리고 싶지만, 열에 체력을 뺏겨서 그조차도 마음대로 안 된다. 그래서 근질거리는 마음으로 초조해할 뿐.
열은 한동안 내려갈 것 같질 않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