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에서, 다시
세간은 골든위크다. 아니, 물론, 유키에게도 골든위크는 마찬가지로 찾아왔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의 수도 평소보다 많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날씨도 좋아서 어딘가 여행을 간 사람도 많겠지만, 최근의 불항 때문인지 현지에서 아늑하게 보내는 패턴도 많으니 그 탓이겠지.
5월이 되어 날도 굉장히 풀어져서, 보내기 굉장히 편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오히려 한낮에는 조금 덥게 느껴질 날도 있을 정도다.
봄의 햇살을 받으며 흘러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유키는 눈길을 좌우로 움직인다. 슬슬 시간이 됐으니 모습을 보여도 괜찮을 무렵일 거다.
유키가 기다리고 있는 건 요시노다.
전날 했던 데이트 약속은 데이트 당일에 요시노가 열이 나서 중지되어 버렸기에, 다시금 함께 놀러 가자는 걸로 된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요시노가 열을 낸 것도 병문안이라는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해서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건강한 요시노 쪽이 함께 있는 입장에서도 기쁘다.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 약속시간 직전이었다. 조금쯤은 늦어도 뭐라 말할 생각은 없지만, 역시 시간은 맞춰줬으면 싶다.
설마 바람맞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요시노가 언제 올지 싶어서 나타날만한 장소인 역 입구쪽을 안절부절못하며 계속 보게 된다.
“읏차―! 빈틈―!”
“으효아앗?!”
갑자기 목덜미에 딱딱하고 차가운 덩어리같은 게 닿아서, 유키는 몸을 떨면서 말 그대로 기성을 질러 버렸다.
놀란 채로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당연한 것처럼 요시노가 있었다. 오른손에 캔 주스를 들고 있어서, 뒤에서 몰래 다가온 요시노가 목덜미에 그걸 댄 모양이라는 걸 이해했다.
“으, 으효아, 래. 푸, 푸풉……!”
유키가 내지른 목소리에 웃음보라도 터졌는지, 요시노는 왼손으로 입을 누르고 뺨을 붉히면서 웃음을 참고 있다.
“요, 요시노 양! 지금 건, 그렇게 갑자기 당했다간 누구든지 놀라!”
“그,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으효’는 아니잖아, ‘으효’래……쿠, 쿠쿠쿡!”
유키는 쑥스러움에 화내는 시늉을 했지만, 전혀 그럴싸하지 않았고, 오히려 쓸데없이 요시노를 더 웃게만 했다.
확실히, 스스로 생각해도 아까 전 비명은 좀 그랬지만, 눈물 맺힐 정도로 웃진 않아도 괜찮잖아.
“미안, 미안. 자, 이거 줄테니까 기분 고쳐 주세요, 다이묘 님.”
울컥한 유키의 얼굴을 보고, 그래도 요시노는 아직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손에 든 주스를 건넸다.
알갱이든 오렌지주스였다.
“요시노 양이 마시고 싶어서 산 거 아냐?”
“으으응, 원래 유키 군을 놀래주는데 쓰려고 산 거니까.”
무슨 갑부스런 발언인 걸까. 마시지도 않을 건데 주스를 산다니, 그야말로 부잣집 영애기에 가능한 일인가. 라고 과장되게 생각할만한 일까진 아니다.
저돌맹진형인 요시노는, 기세에 맡겨 깊은 생각 없이 행동할 때도 많다. 주스 캔은 120엔 정도고, 목이 마르면 마시면 괜찮으니까 낭비될 일도 없다.
“그럼, 사양 없이 마시기로 하겠네.”
“하핫, 분에 넘치는 기쁨이옵니다.”
요시노의 분위기에 맞춰서 짐짓 잘난듯한 말투로 말하며 손을 뻗자, 바로 요시노도 동조해서 정중히 주스 캔을 내민다.
시원한 캔의 감촉을 손으로 느끼면서 요시노를 바라보자, 만족한 듯 히죽 웃음짓고 있다.
그제서야 간신히 요시노의 스타일을 침착히 바라본다.
오늘의 요시노는, 흰소매 프릴패치 원피스 위에 줄무늬 티어드 원피스를 맞춰 입은 스타일. 몸을 차갑게 하지 않으려는 건지, 그 위에 추가로 연녹색 블라우스를 덧입었다. 줄무늬 원피스 아래로 보이는 하얀 프릴이 사랑스러움을 보다 UP시키고 있다.
옷자락에서 뻗어내린 다리는 차콜 그레이 토렌카로 감싸이고, 발은 발랄한 느낌의 스니커.
거기에 머리카락은 친숙한 땋은 머리가 아닌, 풀어내린 찰랑찰랑한 장발을 슈슈로 정리한 스타일.
두말할 것 없이 귀여워서 보고 있는 쪽이 부끄러워 질 것만 같아, 허둥지둥 주스 캔 뚜껑을 따고 입을 대서 속인다. 오렌지 알갱이가 혀에 닿는 감촉과 딱 좋은 신맛의 과즙이 기분 좋게 목을 축인다.
“아하핫, 뭐야, 목말랐었던 거야? 그렇게 힘차게 마시곤.”
그 웃음에, 요시노의 가는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보고 있으니까 왠지 나도 마시고 싶어졌어. 저기, 한 모금만 줘.”
유키가 말릴 틈도 없이 요시노는 잽싸게 주스 캔을 옆에서 뺏곤, 슬쩍 입을 댄다. 가련한 요시노의 입이 캔의 가장자리에 닿아, 꿀꺽꿀꺽 목을 울리며 주스를 마신다.
요시노는 성격적으론 의외로 호쾌하지만, 양손으로 캔을 감싸안듯이 들고 자그만 입으로 다소곳하게 주스를 마시는 모습은 어느 집안 아가씨로 보여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응, 맛있었어. 역시 과즙은 오렌지가 최고네.”
만족한 듯한 요시노는 캔을 다시금 유키에게 건넸다.
그걸 받으며 입댈 곳을 바라보는 유키. 이걸 자기가 입에 댔다간 간접 키스가 되어버릴 거라는, 초등학생 같은 생각을 하곤 약간 얼굴이 뜨거워진다. 초등학생이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어쩔 수 없는 게, 마음이 있는 여자와 간접 키스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쁨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감정이 단숨에 솟아올라 버리는 법이니까.
아가씨 학교에서 자라온 요시노가 신경쓰는듯한 몸짓조차 보이지 않고 입을 댄 것과는 크나큰 차이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갈거야?”
요시노가 기대가 담긴 눈길로 올려다본다.
태연한 듯 주스를 마시면서, 천천히 요시노의 발걸음에 맞춰 걷는 유키.
“요시노 양은 아이스크림이나 디저트는 좋아해?”
“당연하잖아. 싫어하는 여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
“그럼, 즐길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유키가 요시노를 데려간 건 어느 테마파크 안에서 기간한정으로 운영되고 있는 ‘디저트 애버뉴’라는, 그 이름 그대로 온갖 디저트가 출품되는 곳.
“뭐야 여기, 즐거워 보여!”
원래 큰 눈을 더더욱 크게 뜨며, 이벤트의 모습을 살피는 요시노.
“자, 유키 군, 빨리 들어가자.”
기다리기 힘든 듯 유키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려 한다. 가늘고 자그만 손의 감촉에, 유키의 심장은 기분 탓인지 무진장 콩닥댄다.
요시노는 그런 것 보다, 어지간히 디저트가 신경쓰이는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요시노 양, 티켓 안 사면 안되니까.”
“아아 정말, 그런 건 먼저 말해 줘.”
빙글 돌곤 매표기쪽을 향하는 요시노. 둘 다 무사히 티켓을 사곤, 요시노의 기세에 끌려가듯 안으로 들어간다.
골든위크기도 하니 굉장히 사람이 많다. 옛날엔 몸이 약했던 적도 있다보니 요시노가 걱정이었지만, 요시노는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어디 가만히 못 있는 고양이처럼 원내를 둘러보고 있다.
“저기저기, 디저트 전에 조금 놀아서 배 꺼트리자.”
“좋아, 어디 갈래?”
“에에 그게, 그게.”
입장할때 받은 팸플릿을 펼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즐거운 듯 음미하는 요시노. 어릴적부터 이런 테마파크에는 올 수 없었다. 몸이 좋아진 뒤에도 아직 1년 반쯤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온 적이 없다. 그러니 즐거울 테고, 그렇게 생각했기에 유키도 요시노를 데려온 거다.
옥외의 커다란 테마파크였으면 지치기 쉬울지도 모르겠지만, 도내의 실내형 테마파크기에 지치면 바로 나가서 돌아갈 수도 있고, ‘디저트 애버뉴’같은 색다른 풍미의 이벤트도 있다. 충분히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다.
도깨비집, 추리 스타디움, 몬스터 버스터 세 놀이기구를 둘이서 잔뜩 즐긴 뒤, ‘디저트 애버뉴’를 향한다.
“우와―, 뭐야 이거, 뭐야 이거, 멋져―!”
바로 신나 떠드는 요시노.
아이스크림, 파르페, 안미츠, 크레이프 등, 온갖 디저트 종류가 산뜻히 늘어서 있어, 수많은 여성(과 가끔 같이 온 남성)이 온갖 디저트에 눈을 뺏기고 있다.
그 중에는 아이스크림이 메인인 모양이라, 온갖 아이스크림들이 있다. 게다가 테마파크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야랑이’라는 고양인지 호랑인지 잘 알아볼 수 없는 간단한 이름의 캐릭터를 본딴 메뉴가 여럿 있었다.
요시노와 함께 멋지게 만들어진 아이스크림 캐릭터, 부터 “뭐야 이거”싶은 것까지 눈길을 주며 돌아본다.
이윽고 요시노는 단팥빵에 소프트 크림같은 걸로 만든 ‘야랑이’가 끼어 들어간 것과, ‘야랑이’의 얼굴이 그려진 아이스크림을 얹은 크레이프를 샀다. 유키는 육구를 모사한 아이스푸딩을 사서, 혼잡 속에서 찾아낸 빈 테이블에 앉았다.
“왠지, 이렇게 잘 만들어져 있으면 먹는게 아까워.”
눈앞에 놓인 아이스크림을 보며 요시노가 말한다.
“사진, 찍어 둘까?”
휴대폰을 꺼낸 유키는 귀엽고 맛있어보이는 캐릭터 디저트를 사진으로 담아 나간다. 휴대폰이 없는 요시노가 부러운 듯이 보고 있다.
디저트 셋을 다 찍은 뒤에 유키는 먹기 시작하려고 휴대폰을 넣으려 했지만, 요시노가 그 손을 붙잡았다.
“저기, 저기, 어차피 찍을 거면, 우리도 같이 찍자.”
“에?”
“자, 자, 녹아 버리니까, 빨리!”
애초에 카운터 타입 자리에 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으니, 이동할 필요는 없다. 요시노는 크레이프를 얼굴 앞에 들고 오곤, 거기다 단팥빵이 실린 접시를 다른 한 손으로 들어 올린다.
“제대로 전부 찍히려나?”
요시노가 몸을 붙여와서 유키는 당황한다.
하지만 유키의 상태는 개의치 않고, 요시노는 강하게 명령을 내린다.
“자, 파르페도 찍히게 놓자. 여기에 전부 들어오게 하면 찍히겠지?”
셀카용 거울을 살피는 요시노. 거기엔 달라붙듯이 서서 디저트를 들어올린 둘의 모습이 미묘하게 왜곡된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자, 치즈.”
동서고금, 전형적으로 쓰여온 대사를 꺼내는 요시노에게 이끌리듯 버튼을 누른다. 기계적인 소리가 나고 사진이 찍힌다.
“어때, 제대로 찍혔어? 보여줘보여줘.”
휴대폰의 액정 화면을 바라보는 요시노.
화면에는 양손에 디저트를 들고 기뻐하는 요시노와, 조금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키가 비치고 있다.
“스스로를 찍는 건 조금 서툴러서.”
묻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입에 담는다.
그러자 요시노는.
“뭐야, 그거. 귀여운 녀석이고만.”
같이 말하며, 기쁜 듯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래도 휴대폰은 좋네. 우리 아버지도 허락 안 해 주려나~.”
“아버지, 엄하셔?”
“아니, 나한텐 굉장히 물러. 그래도 휴대폰을 가지고 싶다고 지금까지 말한 적이 없으니까, 어떻게 반응할지 싶어서.”
“흐응―, 휴대폰 사게 되면 같이 사러 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용기를 짜내서 말을 꺼낸다.
“아, 진짜? 사실은 어떤게 좋은지를 전혀 모르니까, 고마울지도.”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 요시노가 이야기에 순식간에 올라탄다. 기쁨이 치밀어 오르는 반면, 자신 만큼 요시노는 유키를 의식하고 있지 않은 건가 싶은 쓸쓸한 생각도 든다. 제멋대로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생각에 이르는 걸 멈출 수가 없다.
“그래도 말야, 너무 복잡한 기능이 있어도 보물을 썩히는게 될 것 같고. 전화랑, 문자랑, 그리고 카메라가 있으면 괜찮아.”
“그런 생각이면, 요즘 휴대폰은 거의 다 그런 기능 있어.”
“그러면, 남은 건 디자인이네. 이렇게, 차분하고 멋진게 좋은데!”
“귀여운 디자인이 아니라?”
“으응―, 귀여운 것도 괜찮지만, 멋진 게 좋아. 그리고 비밀 기능이 있는 것도 좋을지도. 이렇게, 마비침을 날릴 수 있다거나, 도청기 탐사기능이 있다거나.”
“어느 만화속 세곈데!”
유키의 딴죽을 받곤 껄껄 웃는 요시노.
즐거웠다.
남학교에서 자라온 유키는, 동년배의 여자와 이렇게나 즐겁고 자연스레 대화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기쁘다.
유키는 극히 당연한 듯이 이런 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면 좋겠다고, 계속 이런 분위기에 젖어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테마파크를 만끽하고 나갔을 땐 저녁 무렵이 되었지만, 골든위크 한가운데기도 해서 아직 인파는 잔뜩 있었다. 아니, 지금부터가 시작인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
유감스럽게도 고등학생이자 규중처녀기도 한 요시노에게는 폐문시간이 있어서, 시간 여유가 많이 있는 게 아니다. 돌아갈 전철 시간을 생각하면 더 놀러 갈 수도 없어서 빈둥빈둥 역 근처의 상점가를 둘러본다.
잡화점 앞에 보이는 앤틱 가구를 주시하다, 부티크 윈도우에 장식된 신작 레깅스 팬츠가 멋지다고 떠들고, 중화요리점 앞에서 팔고 있는 돼지만두를 보고 침을 삼킨다.
딱히 뭐가 있는 상점가도 아닌데 이렇게 걷고 있는 것 만으로도 굉장히 즐거운 건, 역시 옆에서 걷고 있는게 요시노여서 그러리라 느낀다.
“그러고 보면 말야.”
“응?”
“유키 군이랑 만난 것도 이런 상점가였지?”
처음 요시노랑 만났던 건 학교 행사였겠지만, 요시노가 뭘 말하고 있는진 바로 알았다.
예전에 요시노가 상점가에서 몹쓸 남자에게 얽혔던 상황에 만나서, 순간적으로 유키가 애인 행세를 해서 상황을 넘긴 ‘그 날’을 말하는 거라고.
요시노를 의식하고 요시노와의 거리가 좁혀진 걸 가지고 보면, 분명 만난 건 ‘그 날’이라고 해도 잘못은 아닐 거다.
“그때는 갑자기 미안해. 깜짝 놀랐지?”
“아아, 놀랐어.”
“그건 그럴 거야. 그때까지 거의 이야기 한 적도 없는 상대였으니까.”
“그런 것 보다, 요시노 양의 애인 역할로 나같은게 괜찮나 싶어 놀랐어.”
“흐응, 왜?”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커다란 눈으로 바라보는 요시노.
“그야, 요시노 양 같은 가련한 여자의 옆엔 격이 안 맞겠거니 싶어서.”
반쯤 독백하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를지도.”
“뭐가?”
“그 날 처럼 흉내가 아니라, 진짜로서 옆에 서고 싶어.”
그 말을 하고, 요시노를 바라본다.
“……엣? 저기, 에, 잠깐?!”
눈앞의 요시노가 눈을 크게 뜨고, 새하얀 피부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가는게 보인다.
“잠, 앗, 에에, 엣, 앗.”
허둥지둥 안절부절못하며 눈이 마구 움직이고, 커다란 눈은 기분 탓인지 젖어들고, 더더욱 붉어지는 새하얀 뺨.
이런 모습을 보이는 요시노도 귀엽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유키였다.
자신이 꺼낸 말이 서서히 배어들어, 그리고 머릿속에 완전히 도착했을 무렵엔, 유키의 얼굴도 요시노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홍조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폭풍이 휘몰아친다.
위험해위험해위험해위험해위험해위험해.
뭘, 무슨 말 실수를 해 버린 거야 싶어 스스로 자신을 탓하지만, 꺼내버린 이야기는 되돌릴 수 없다.
요시노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며, 그러면서도 유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유키도 자기 쪽에서 눈을 돌릴 수도 없어서, 결과적으로 둘이 서로 마주보고, 서로의 부끄러움이 더더욱 고조되어 가는, 빨간 얼굴 체온 상승 스파이럴에 빠져들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떡하면 될지를 혼란 속에서 필사적으로 고민한다.
농담이라며 웃고 끝내는 것도 생각했지만 그야말로 최악이다. 여기까지 끌고온 지금의 상황에서 그렇게 했다간 최악의 인상을 남기겠지.
오히려 저도 모르게 진심으로 고백을 해 버린 쪽이 아직 낫다. 아니, 그 길밖에 없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대로 흐지부지하게 끝내는 방향성도 있다면 있겠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좋은 생각같진 않다.
농담이라고 얼버무리는 것도 안 되고, 언급없이 사라지는 것도 안된다면 그 뒤는, 전진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에, 에에……아, 아하하, 농담, 서투르네 유키 군.”
견디지 못하게 된 건지 요시노 쪽이 먼저 그렇게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것 보다 최악의 패턴이다. 거북해진 요시노가 얼버무리며 흘려보내는 걸로 끝난다니. 아니, 오히려 흘려보내줘서 다행인 걸까. 유키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요시노에게 무시당해서 끝나 버리는 것만은 싫다고 외치는 자신이, 마음속에서 돋아나왔다.
“아, 아냐.”
“꺅?!”
기세로 요시노의 어깨를 잡자, 요시노는 몸을 떨었다.
생각보다도 갸냘픈 어깨의 감촉이 손바닥에 퍼진다.
“그, 아까 이야긴, 농담 같은게 아니라.”
침을 삼키려고 하다 입안이 완전 말라있는 걸 깨닫는다.
어깨를 붙잡힌 요시노는 눈을 여러번 껌뻑이곤, 얼굴을 붉히고, 다가오는 유키에게서 달아나듯 몸을 비튼다.
그리곤.
“……유, 유유, 유키 군, 바보―――――!!”
비튼 몸을 힘차게 되돌려서, 마치 토네이도 투구법이라고 해도 될만한 모션으로 유키를 밀쳐냈다.
힘이 약했다곤 해도, 유키도 자세를 무너뜨리고 요시노의 어깨서 손이 떨어진 채로 두 걸음쯤 물러난다.
“아, 미, 미미, 미안, 저기 지금 건 바보라고 해도, 딱히 싫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아, 맞아 나, 폐문시간이니까 이제 돌아가야 하니까, 그그, 그럼!”
황급히 빠른 속도로 그리 말하곤, 요시노는 몸을 돌려 뛰어나갔다.
인파에 섞여 사라져가는 요시노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본 뒤, 주위에서 눈길을 받고 있는 걸 느끼곤 상점가 안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참을 수 없게 되어 달아나듯 그 자리를 떠난다.
어디를 어떻게 지나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지만, 깨닫고 나니 집에 도착해 있었다. 유키는 요시노의 그 태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런 고백, 없었던 걸로 하고 싶다. 하지만 오늘 일은 환상따위로 하고 싶지 않다.
휴대폰을 꺼내서 열어 보자,
틀림없이 꿈이나 환상따위가 아니라고, 액정 화면 안에서 웃는 그녀가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