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나날
잠에서 깼을 때, 혹시나 전부 꿈이었던 게 아닐까 싶어 불안했다. 실제로 아침에 일어났을 땐 정말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느꼈었다.
거짓같은 건 아닐텐데, 남아있는 건 자신의 기억밖에 없어서 확인을 하려면 본인을 만나 물어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 사귀고 있는 거지?’
같이 물어볼 수도 없다.
고백한 쪽이 이 쪽인데 사귀고 있는지 어떤지를 물었다간 정신을 의심받든지, 최악의 경우 갑자기 파국을 맞을지도 모른다.
떳떳이 ‘애인’이 생긴 첫날 아침, 상쾌하고 시원해야 할텐데 왠지 고민하고 있는 유키.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사람이 적은 강가, 단 둘만 있는 절호의 시추에이션에서 한 고백, 잔뜩 고민했었는데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아무런 특징도 없는 정중앙 직구. 딱 좋은 공이니 되받아쳐서 홈런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런데도 유키는 있는 힘을 다 담아서 던져냈다.
공은 그 탓도 있어선지, 훌륭히 요시노에게 닿았다. 아니, 요시노에게 부딪쳐서 데드볼이라는 것도 표현이 이상하고, 이 경우엔 멋지게 배트 중앙에 맞아 되돌아왔다고 해야 할까. 어느쪽이든 좋다. 일단 최고의 결과를 낳아준 거다.
요시노의 대답은 ‘YES’였으니까.
태어나서 처음 사귀는 애인. 상대는 시마즈 요시노, 릴리안에 다니고 있는 황장미의 봉오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미소녀.
외모만으로 좋아하게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겉모습이 취향이라는 건 중요한 요소다.
성격은 공주님같은 외견과는 반대로 꽤 드센 성격이고, 오기가 강하고, 적극적이다.
야구를 좋아하고 스포츠 관전을 좋아하고 시대극이나 검호소설 같은 걸 좋아하고 단 걸 좋아해서 의외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화제가 맞는 여자.
분명 아직 모르는 부분은 잔뜩 있겠지. 앞으로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거꾸로 자신을 상대에게 알려간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즐거운 미래인지.
침대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 세면대를 향하는 중에 유미와 마주쳤다.
“안녕―.”
“잘 잤어?……잠깐, 유키, 무슨 일 있었어?”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 했더니 멈춰선 유미가 수상쩍어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무슨 일이냐니, 왜?”
“그치만, 왠지 히죽거리고 있어서 기분 나빠.”
마음이 표정에 나왔던 모양이지만, 그렇다 쳐도 “기분 나빠”는 너무하다. 뭐어, 행복에 가득찬 유키 입장에서 그 정도의 발언은 너그럽게 용서해 주자 싶은 마음이긴 하지만.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아니, 그게.”
말하려다 망설인다.
딱히 말해서 나쁠 건 없을 테니, 제대로 말하는 게 좋을거라곤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는 요시노다. 유미의 친구, 베스트 프랜드라고 해도 좋을 상댄데, 요시노보다 먼저 유키가 말해도 괜찮은 걸까. 친구기에 남동생이라곤 해도 자신이 먼저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혹은 요시노가 사실 비밀로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여기서 간단히 말해선 안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은 확실히 들었지만, 그보다 컸던 건 유키 자신이 부끄럽다는 거였다.
상대가 유미가 모르는 상대였다면 몰라도, 잘 알고 있는 상대인 거다.
“……좋은 꿈을 껐으니까. 그것 뿐이야.”
그래서, 일단 이런 식으로 얼버무려 버렸다.
“꿈, 이구나.”
유미는 전혀 믿어주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 오래 함께 지내온데다 사이좋은 남매라는 건 사정이 나쁘다. 유미는 사람을 거의 의심하진 않지만, 상대가 유키일 때는 표정이나 분위기, 미묘한 말의 뉘앙스 갈은 걸로 이상하다는 걸 느끼는 거다.
“뭐어, 괜찮지만. 어차피 별 일은 아닐 거고.”
몸을 움츠리고 떠나가는 유키를 보고 내심 미소짓는다. 별 일은 아니다 운운 하고 있지만, 진상을 알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아마 눈을 크게 뜨고 크게 소리칠게 뻔하다.
아아,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다.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며 세면장에 발을 디뎠다.
“――――아.”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 버렸다.
“……이건 확실히 기분 나쁠지도.”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히죽히죽 칠칠맞은 표정을 보고, 유키는 유미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한 거다.
평소대로 잠에서 깼다. 이래봬도 잠에선 잘 깨는 편이다.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고, 가볍게 기지개를 편다. 커튼을 걷어 아침 햇살을 방 안에 들이고, 덤으로 창을 열어서 공기도 바꿔 넣는다. 장마때의 축축한 공기긴 하지만, 안 하는 것 보단 낫다.
창에서 떨어져서 이번에는 책상에 다가가, 서랍을 열어 일기를 꺼낸다. 촤르르륵 넘기면서 침대에 걸터앉아 어제 쓴 내용을 다시 읽는다.
‘……유키 군에게서 권유 메일이 왔는데, 읽고 깜짝 놀랐어. 그도 그럴게, 내가 올 때 까지 가게에서 기다리겠다고, 내 대답도 없이 그런 걸 써 놨는 걸. 요즘 내가 도망치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그건 치사하지 않아? 그치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갈 수가 없잖아! 안 가서 계속 기다리게 했다간 내가 나쁜 사람같고.
어쩔 수 없으니까 모습을 보러 가줄까 싶었는데, 그러면 유키 군의 전략에 넘어가는 것 같아서 왠지 열받을지도―.’
“그래 그래, 정말. 유키 군도 참 치사하지―.”
자기 일기를 읽으면서 중얼거리곤, 뒷내용을 읽어나간다.
‘……이상한 헌팅남 둘이 얽혀서, 진짜 최악. 게다가 남이 신경쓰고 있는 신체적 특징까지 말하곤! 그래도 그런 남자들한테 세게 나가지 못한 나 스스로가 제일 한심했어. 분했어. 아―, 왜 아무 말도 못했던 거지!
하지만.
그 뒤에 갑자기 유키 군이 나타나서 헌팅남들한테 화냈어. “요시노 양을 울리지 마!”랬어. 나, 왜 울고 있었던 걸까. 분해서였을까? 울고 지켜지는 여자애 같은 건 싫은데, 그래도 그 때는 기뻤어.’
요시노는 레이만큼 소녀틱하진 않지만, 그래도 역시 핀치 상황에서 남자애가 구하러 와 주는 시추에이션에 조금은 가슴이 두근거린 건 사실이다.
“조, 조금 뿐이니까, 착각하지 말아 줘!”
홀로 부끄러워져서 왠지 변명같은 소리를 말해버린 요시노.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일기를 계속 읽어간다.
‘……강가에서 유키 군에게 고백받았어. 사귀어 달래. 나,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Yes’였던 건 확실해.
그치만, 기뻤는 걸. 좋아한다는 소릴 듣고, 사귀어달란 말을 듣고, 마음이랑 몸이 뜨거워져서, 심장이 두근두근거려서, 수술하기 전이었으면 분명 기절했을 정도로 고동이 격렬해져서, 그만큼 기뻤었어.
그 때 간신히 나는 깨달은 거야.
ああ、私もこの人のことが好きなんだなぁ、って……“
아아, 나도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잠깐, 로맨스 소설이야? 헤로인이야 난?!”
스스로 자기 일기가 부끄러워져서 저도 모르게 셀프 딴죽을 걸며 일기를 침대에 던져 버렸다.
“으으~ 곤란해. 떠올리자마자 바로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어어.”
양손바닥을 뺨에 대곤,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일단 아무 죄도 없이 내동댕이쳐진 일기장을 주워들어, 다시 뒷내용을 읽는다.
‘……사귄다는 건, 남친여친사이가 된다는 거지? 그러면 등하교를 같이 하거나 귀가길에 놀러 가거나 휴일에는 데이트를 하거나, 매일처럼 전화하거나 추가로 언젠가 키스, 같은 것도 해 버리는 걸까?! 잠깐, 생각이 지나쳐! 아직 손을 잡는다거나 하는 것도 제대로 안 했는데!’
“으아아아아아아아! 뭐, 뭘 쓴 거야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침대에 엎어져 기절하는 요시노. 어제는 분위기를 타고 써나갔고, 쓰는 중에 그 내용같은 건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걸 썼는진 지금 처음으로 안 건데, 쓴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어질만한 내용이었다.
“애초에, 릴리안이랑 하나데라는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도보 10분이니까 버스로 통학하는 유키 군이랑 같이 등하교 할 일은 없고! 당연히 돌아가는 길도 다르고, 애초에 교칙으로 금지되어 있고!”
버둥버둥 다리를 구르며 홀로 발버둥친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금 일기를 읽어보면, 어제 있었던 일이 현실이었던 거라는게 이해된다.
일어난 순간엔 혹시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꿈은 아니었던 거다.
“후~, 그런가, 꿈이 아니구나…….”
자신이 다른 사람이랑 사귄다니, 1년쯤 전까지만 해도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게 지금은 현실로서 요시노에게 부딪쳐 온 거다.
“아―, 그래도 어떡하면 좋은 거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다. 책 같은 걸론 본 적이 있지만, 어떻게 접하면 좋을지 상상도 안 된다.
레이가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이나 순정만화같은 전개? 머릿속으로 그것들을 떠올려 보고, 더더욱 격렬히 버둥거린다.
“갹~~~~, 무, 무리무리! 그런 달아빠진 거, 못 하는 걸!”
“……요시노, 잘 모르겠지만, 히죽거리면서 뭘 날뛰고 있는 거야? 빨리 준비 안 하면 지각할거야.”
“엣, 레레레레레레이 쨩?! 뭘 맘대로 들어오는 거야?!”
어느샌가 방 입구에 교복차림의 레이가 서서, 미심쩍어하는 눈길로 요시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와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래서, 일기를 읽으면서 뭘 하는 거야?”
지적받은 순간 일기를 들고 있던 걸 깨닫고, 허둥지둥 등뒤로 숨긴다.
“뭐뭐뭐뭘, 남의 일기를 읽으려는 거야. 아무리 레이 쨩이라도 그런 걸 하면 절교니까!”
“그런 건 안 했잖아. 좀 침착해. 그래서, 준비 할 거야, 안 할 거야?”
기막힌 듯이 한숨을 내쉬는 레이.
어째서 레이에게 그런 식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건가 싶어서 얼굴을 부루퉁 부풀리며 시계를 바라보자,
“으아아아아아?! 지, 지각한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자, 빨리 준비 해.”
“으아아아아앙, 좀 더 빨리 말해줘, 레이 쨩 바보―――!!”
일기에 대한 것도, 유키에 대한 것도 치워두고, 일단 허둥지둥 학교로 갈 준비를 하는 요시노와, 그걸 미지근한 눈길로 바라보는 레이였다.
두근거리고 있다.
지금까지도 여러번 경험은 있을 텐데, 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과연, 정말로 오는 걸까.
자신의 착각은 아닌 걸까.
몇 번을 그렇게 생각했는지.
조급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꼴불견이라 생각해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제어하고, 하지만 마음속으은 완전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으로 날뛰고 있다.
휴대폰을 꺼내서 화면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아직 여유는 있다.
이럴 때 상대가 휴대폰을 들고 있으면 편하겠구나 싶지만,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유키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든다.
그 때, 앞쪽에 요시노의 모습이 보였다.
거의 같은 타이밍에 요시노도 유키를 알아챈 모양인지, 아직 서로 떨어져 있는데도 눈이 마주치고, 요시노의 몸이 움찔 떨린 것처럼 보였다.
요시노는 조금 발걸음을 재촉해 유키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미, 미안해. 기다렸어?”
“으으응, 저 전혀.”
둘 다 태연히 이야기 하려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여기는 어느 역의 앞.
사실은 어제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는데, 그 다음날부터 안 만나는건 좀 그렇다 싶어서 귀가길에 만나지 않을까 이야기 했던 거다.
“에에, 괜찮았어? 학생회 활동 같은거.”
“아, 으, 응, 오늘은 병원에 간다고 했으니까.”
수술로 나았다곤 해도, 요시노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별 위화감은 없을 거다.
“아, 미, 미안, 딱히 유키 군이랑 만난다고 말하는게 싫었던 게 아니라, 아직 남들한텐 이야기를 안 했으니까, 부, 부끄러워서 그렇게 말해 버렸어.”
요시노가 허둥지둥 말을 고친다.
“아니 그럴 건,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라서, 부모님께 부탁받은게 있다고 말하고 학생회 활동에서 빠져나왔으니까.”
“그, 그렇구나. 아하하……여, 역시 아직 조금, 부끄럽지?”
“그, 그렇지.”
얼굴을 붉히며 둘 다 고개를 숙인다.
요시노가 올 때 까지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떤 식으로 대할지 등등 여러 패턴을 시뮬레이션 했었을텐데, 전부 날아가 버렸다. 초조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얼굴을 붉히고 아래를 향하며 구두 앞코로 바닥에 대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요시노의 귀여움이 파괴적이었으니까.
덤으로 때때로 유키의 모습을 살피듯이 아래서 슬쩍 눈을 치뜨고 살펴보곤 하니까, 그 위력이 수배나 튀어오른다.
“이, 이, 이, 일단, 갈까?”
계속 서있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보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아, 응, 사실은…….”
하고 요시노가 입에 담았던 곳은――
“미, 미안해, 이런 곳에 같이 오게 해서.”
“그럴 거 없어.”
요시노의 말을 듣고 찾아온 건, 병원이다. 요시노가 단골로 다니는.
“정말로 가두지 않으면 레이 쨩에겐 무조건 들켜 버릴 거고. 거기다, 정말 슬슬 갈 시기였으니까……미안해.”
“그러니까, 괜찮다니까. 요시노 양이 다니고 있는 병원이라면, 알아두고 싶고.”
면목 없는 듯 사과하는 요시노에게 웃으며 대답한 건 거짓이 아니다. 심장에 대해선 가볍게나마 들어서 알고 있다. 이미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알 수 있는 거라면 알아두고 싶다.
진찰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족히 한 시간은 넘어서, 요시노 입장에선 귀중한 방과후의 시간을 낭비시킨 거니 면목이 없는 거겠지만.
온 김에, 병원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깨끗한 병원인 만큼 산뜻한 느낌이고, 당연하지만 조용하고 사람도 적었다. 거기다 아는 사람과 만날 가능성도 일단은 없다.
“으―, 미안해, 뭔가,”
“그러니까―, 이제 그런 이야기는 괜찮다니까.”
아직 생각을 질질 끌고 있는 모양인 요시노를 달랜다.
“그런데 말야, 우리들에 대해 유미에겐 이미 이야기 했어?”
“으……아, 아직. 유키 군은……아, 이야기 했으면 유미 양이 물어 봤으려나.”
“아니, 그, 요시노 양 쪽이 이야기하는게 좋으려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역시 이런 건 남동생이 상대라곤 해도 친구 쪽에서 먼저 말해줬으면 싶은게 아닐까 해서.”
“응, 나도 내 쪽에서 유미 양에게 말하고 싶……지만, 오, 오늘은 왠지 부끄러워서, 말 못했어. 미안.”
“사과할 거 없다니까. 나도 아직 친구들에게 말 안했고……숨길 일은 아닌데, 역시나 부끄럽지.”
“응……저, 저기. 우리들에 대해서 말해도 괜찮은 거지?”
약간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물어보는 요시노.
“나랑 사귀고 있다는 거, 알려지는 게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다, 당연하잖아! 나는 오히려 온나라 사람들에게 말하며 자랑하고 싶을 정도니까. 나는 이런 사랑스런 여자애와 사귀게 되었습니다―라고.”
“으왓, 그, 그만둬, 그건!”
실제로 할지 어떨지는 별개로, 마음 자체는 과장같은 게 아니라 사실이었다. 요시노는 새빨개져서 고개를 젓고 있지만.
“그런가……응, 다행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자그맣게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유키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맞아, 유키 군. 제대로 휴대폰 꺼뒀어?”
“에, 아, 응, 괜찮아. 그건 매너니까.”
휴대폰을 꺼내서 화면을 보여주며 꺼져있는 걸 확인시켜 준다.
건네받은 휴대폰을 들곤, 요시노는 흥미진진한 듯 여기저기를 보거나 만지거나 하고 있다. 요즘 여고생이 휴대폰이 없다는 것도, 역시나 릴리안 답구나 싶어 묘하게 감탄해 버린다.
전원이 꺼진 휴대폰을 만지던 요시노는, 이윽고 손을 멈춘 뒤 검은 액정화면을 지긋이 바라봤다.
“……나도, 휴대폰 살까.”
그리곤 그런 식으로 작게 말했다.
“휴대폰, 가지고 싶어? 그래도 릴리안은 반입 금지잖아?”
되묻는 유키.
“그렇지만……그래도 휴대폰 사면, 집에 있어도 유키 군이랑 문자같은 거 할 수 있잖아? 전화로 말하거나 할 수도 있고.”
입을 빼죽이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요시노.
“에, 그야 물론, 에, 그건.”
예상치도 못했던 답이기에, 쓸데없이 당황해 버리는 유키.
“따, 딱히 이상한 의민 아니니까. 유, 유키 군 쪽이, 나랑 문자나 전화 하고 싶은게 아닐까 싶어서.”
삐친 듯한 요시노에게, 유키는 허둥지둥 말을 더한다.
“물론, 하고 싶어요! 요시노 양이 휴대폰을 가져 주면……무진장, 기뻐.”
“……정말로?”
“진짭니다. 부탁합니다. 구입을 검토해 주세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다.
매일같이 요시노랑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니, 너무 기쁘다.
진지하게 바라보는 유키의 눈길을 받아, 요시노는 약간 뺨을 분홍색으로 물들이곤,
“아……알았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하고, 조금 퉁명스레 대답했다.
“정말? 아자, 그럼 다음에, 같이 사러 가자.”
기쁨에 뺨이 풀어진다.
“그, 그래도, 아버지가 좋다고 말했을 때 이야기니까, 그, 그리고 큰 소리 내지 말아 줘, 여기 병운이니까.”
얼버무리듯 요시노의 말이 빨라졌지만, 그런 모습도 또한 매력적이다. 사귀게 되고선 모든게 좋게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이상으로 요시노가 사랑스럽게 느껴져 어쩔 수 없었다.
카페를 나가 복도를 걷는다.
이미 저녁이기에, 오늘은 이제 돌아가야 하지만 유키는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말해 요시노와 함께라면 병원이든 묘지든 어디든 상관 없었다.
병원 냄새 속에서 출구를 향하는 중에,
“――어머, 요시노 쨩, 오랜만.”
간호사 한 명이 요시노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렸을 무렵부터 이 병원을 다니고 입원도 해 왔던 요시노는, 병원에 아는 사람이 많은 거다.
“오랜만이에요, 미사키 씨.”
미사키라고 불린 여간호사는 20대 후반 정도일까. 이목구비가 뚜렷한, 조금 마른 동양미인이란 느낌. 가냘픈 몸에 확하고 튀어나온 가슴의 네임 플레이트를 보자, ‘키무라 미사키’라고 쓰여 있었다.
“――그럼, 몸 쪽은 괜찮은 모양이네. 다행이야……그런데 그쪽 남자는, 어머머, 요시노 쨩의 남친? 남친이랑 같이 온 거구나~.”
유키에게 슬쩍 눈길을 향한 뒤, 미사키는 즐거운 듯 요시노에게 그렇게 말한다.
“엣?! 아으, 저기, 에에……에, 예그렇습니다.”
추궁당한 요시노는 몸을 굳히곤 유키쪽을 바라보고 미사키를 바라보고 얼굴을 붉히면서도 질문을 긍정했다.
“그런가 그런가, 요시노 쨩도 드디어 멋진 기사님을 잡아낸 건가……으으, 나도 지고 있을 수 없구나~.”
“미사키 씨, 부끄러우니까 그만둬 줘요.”
“에에……너, 이름 가르쳐 줄 수 있니?”
“예, 후쿠자와 유킵니다.”
요시노의 태클은 무시하고, 미사키는 유키 쪽을 바라본다.
“그래, 유키 군. 요시노 쨩을 잘 부탁할게.”
“……예.”
“응, 그럼 또 보자, 요시노 쨩.”
유키의 대답을 듣고, 만족스러운 듯 끄덕인 미사키는 엉덩이를 흔들며 복도를 걸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옆구리를 꼬집혔다.
“아야야야야, 요, 요시노 양?”
“얼굴 풀렸어. 수상―쩍은―눈으로 미사키 씨를 봤어.”
지긋이 노려보는 요시노에게, 허둥지둥 고개를 젓는다.
“미사키 씨의 가슴이나 엉덩이만 본 거, 알고 있다고? 미사키 씨는 멋지고 스타일도 좋고 병원 안에서도 인기 넘버 원이지만……유키 군, 최악이야―.”
“아니아니아니잠깐 기다려, 좀, 봐 버린 정도잖아.”
“좀이 아니야, 지긋이 봤었는 걸.”
확실히 병원엔 걸맞지 않은 색기에 저도 모르게 끌려가 버리긴 했지만, 남자니까 조금쯤은 어쩔 수 없는게 아닐까. 라곤 역시나 말할 수 없다.
“사귀기 시작한 첫날부터 다른 여자한테 넋을 잃다니……우와―.”
“에에, 미안해 요시노 양. 확실히 조금은 봐 버렸지만, 사과할 테니까, 질투하지 말아줘.”
“지, 질투 같은 거 아닌 걸, 유키 군 바보――――!”
혀를 빼죽 내밀곤 달려가는 요시노.
“거기! 병원 안에선 조용히 해야지!”
떠들어댄 탓인지 간호사에게 혼났다. 살펴보자, 로비에 있던 환자들이 어떤 사람은 성가셔하는 표정으로, 어떤 사람은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또 어떤 사람은 화난 듯이 유키를 바라보고 있다.
“죄, 죄송했습니다.”
깊숙이 고개를 숙인 뒤 허둥지둥 요시노를 쫓아간다.
병원 밖에 나가자, 요시노가 허리에 양손을 대고 버텨서 있었다.
“잠깐, 왜 바로 쫓아오지 않는 거야?!”
“그런, 무리한?!”
“변명은 필요 없어! 흥이다.”
“아, 잠깐 기다려!”
다시금 달리기 시작한 요시노를, 이번엔 바로 쫓아간다.
분명 앞으로도 이런 관계일지도 모른다.
요시노가 먼저 달린다.
하지만 반드시 놓치거나 하진 않는다. 반드시 붙잡아 떼놓지 않을 거다.
저녁놀 속에서 웃으며 도망치는 요시노의 팔에, 유키는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