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틱스
토요일은 오전중에 수업이 끝나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가는 길에 점심이라도 먹는다거나, 오후엔 노래방에 가자거나 등의 즐거운 방과후가 기다릴 법도 하지만, 귀갓길에 다른곳에 들르는게 기본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릴리안에선 이런 일들은 그리 없다.
그리, 라고 말하는 건 일부 학생이 학교엔 비밀로 몰래 어디 들르거나 하기 때문이다. 뭐어, 금지되었다곤 해도 교사들이 번화가에서 눈을 번뜩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성시한 릴리안 학생이라곤 해도 조금쯤 노는 모험을 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닌 거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제대로 사전에 서류를 내둔 난 기본적으로 소심한 거려나.”
왠지 모르게 자조하듯 웃는 요시노.
딱히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려 해 봤지만, 결국엔 선생님께 허가증을 받은 뒤에 거리로 나온 거다. 덧붙여서 이유로 댄 건 산백합회에서 필요한 걸 사러 간다는 거였다.
“뭐, 거짓말은 아닌걸.”
“그래도, 문방구 쇼핑에도 그런 게 필요한 거구나.”
“그렇다니까―, 아가씨 학교니까.”
요시노의 옆을 걷고 있는 건 유키.
귀갓길에 놀러 가는 걸 동경하던 요시노는, 일부러 학교의 허가를 받아서까지 거리로 나선 거다.
“늦어져도 괜찮아?”
“폐문시간까진 아닐 테니까.”
요시노는 학교에서 걸어갈 수 있는 집에 살고 있지만, 역시 일부러 집에 한 번 들른 뒤 나가는 건 귀갓길에 직접 놀러 가는 것과는 전혀 기분이 다르다. 그도 그럴게, 릴리안 교복 차림으로 노는 거니까 리스크도 높다.
거기까지 해서 교복 차림으로 놀러 가고 싶은 건가 묻는다면, 놀러 가고 싶은 거다. 왜냐하면 이거야 말로 고등학생의 청춘이라는 기분이 드니까.
“괜찮지만. 나도 기쁘고.”
“응, 뭐가?”
“교복 차림인 요시노 양이랑 같이 행동할 수 있을 때는 거의 없고. 게다가 하복이고.”
여름방학을 눈앞에 두고 햇살도 점점 사정이 없어지고 있어서, 당연하게도 진작 하복이 되었지만, 확실히 이 차림으로 유키와 행동할만한 기회는 없다.
“그래도 릴리안 교복은 색기있거나 하지 않잖아. 그, 하얀 블라우스 아래로 속옷이 비쳐 보인다거나, 그런 걸 좋아하는 거 아냐? 남자는.”
“뭐어, 분명히 그게 좋다는 건 부정 못하겠지만…….”
그 말을 하는 중에 바로 옆으로 여고생 둘이 지나가, 눈을 향해보자 속옷 라인이 비쳐 보이고 있다. 하늘색이랑 하얀색인가.
“우왓, 유키 군 야해, 최악이야―! 내가 옆에 있을 때 태연히 그러다니, 못 믿겠어.”
“아, 미, 미안하다니까.”
요시노의 주먹을 옆구리쯤에 맞아, 몸을 비틀며 도망치는 유키.
릴리안에선 하복이라고 해도 옷감이 여름용으로 얇고 통기성이 좋은 걸로 바뀌고, 소매가 짧아지는 정도기에 비쳐 보이거나 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 디자인과 색으로 반소매라는게 거꾸로 묘한 색기를 자아내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요시노처럼 피부가 희면 짙은 소매에서 새하얗고 가냘픈 팔이 불쑥 나오는 느낌이라, 색의 대비적으론 정말 잘 어울려 보인다.
“……그렇다곤 해도, 더운 건 덥지만.”
둘은 같이 터덜터덜 걷는다.
특별히 목적지는 정하지 않1닸ㅏ.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끔은 괜찮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다, 오락실에 가서 둘이서 놀고 둘이서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둘 다 긴장 탓에 이상한 표정을 지었었지만, 몇 장쯤 찍는 사이 표정도 풀려와서 웃으며 찍을 수도 있었다.
프레임이나 낙서를 고를 땐 애인 모드의 러브러브한 느낌의 것들은 너무 부끄러워서 고르질 못했고, 적당히 사랑스럽고 적당히 사이좋아 보이는 느낌이 드는 걸로 했다.
“곤란해. 기뻐 죽을 것 같아. 이거, 휴대폰에 붙여도 될까?”
“에? 그, 그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거나 하는 거야?”
“안되, 려나. 뭐어, 그냥 자랑이 돼 버리겠지만.”
자기랑 같이 찍은 스티커 사진을 자랑한다니, 생각지도 못했었다.
“에에에, 자, 잠깐 기다려. 그건……조금 기다리게나.”
“요시노 양, 말투가 이상해.”
유키를 무시하고 다시금 스티커 사진을 바라보자, 둘의 거리는 밀착이라고 할 정도까진 아니라곤 해도 적당히 가까이 붙어서 서로 닿아 있다. 사귀고 있는 거고, 스티커 사진이고, 이 정도는 평범하다곤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보여준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으, 음~~~~~.”
상상해 본다.
“기각!”
상상해 볼 것 까지도 없었다. 너무 부끄럽다.
“에에, 어째서.”
“유키 군은 혹시 내가 이 스티커사진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거나 하면, 어떨 것 같아?”
“에, 그야……기쁘려나.”
약간 뺨을 붉히며 요시노의 눈길을 약간 피하듯 고개를 돌려 수줍어하고 있는 유키.
왠지 그런 몸짓이나 표정이 귀엽게 느껴지지만, 입에 담으면 화낼지도 모른다. 남자는 ‘귀엽다’는 소릴 듣는 것보다 ‘멋지다’는 말을 듣는 걸 분명 더 좋아할 테니까.
요시노는 하지만 그렇구나, 기쁜 거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남녀의 차이, 아니 성격의 차이인 거겠지.
“으으으.”
뜨거워지기 시작한 뺨을 양손으로 누르며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아―정말, 역시 안돼. 내가 ‘좋아’라고 할 때 까지 남에겐 보이지 말 것.”
“난 개냐고요.”
“내 개라고 하면, 좋잖아?”
“……………….”
“잠깐, 진지하게 고민하지 말아 줘. 뭐야 그 싫지만도 않다는 듯한 표정은. 유키 군 혹시나 그런 취향이라거나?”
“그래 그래, 사실은……아니, 안 가지고 있다니까!”
이런 느낌으로 둘이 잡담을 나누며 하는 데이트. 긴장감이 사라졌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신기할 정도로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 요시노는 이런 건 분명 마음이 맞아서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사귀기 시작하고 아직 오래 지나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의식하느라 딱딱해 지는 부분도 있지만, 어떻게든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저기 유키 군, 나, 저 게임 해 보고 싶어!”
오락실 같은덴 거의 놀러 온 적이 없었지만, 이렇게 같이 놀면 즐겁고, 앞으로도 둘이서 많은 일을 경험하며 쌓아 올려가고 싶다.
요시노는 그리 생각하며 유키를 보며 미소지었다.
“에, 괜찮아. 일부러 그럴 거 없어.”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유키도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하면, 잔뜩 놀다 저녁이 되어 슬슬 돌아가야겠다 싶은 시간이 되자 유키가 요시노를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이야기한 거다.
요시노의 집은 릴리안에서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곳이라, 거기까지 배웅 받으면 유키의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게 되어서 미안하다 보니, 요시노는 배웅같은 건 안 해 줘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유키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 거다.
“그치만, 귀찮잖아.”
“요시노 양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건데, 귀찮다고 생각할 리가 없잖아.”
그 말을 들은 요시노도.
그 말을 한 유키도.
새빨개져서 서로 마주본다.
“……그러니까, 바래다 준다는 게 구실까진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오래 요시노 양이랑 같이 있고 싶다고 할까.”
“아아아, 알았으니까, 일부러 고쳐 안 말해도 되니까!”
눈을 돌린다.
뭐 이리도 꾸밈없이 말해 오는 걸까. 그보다, 그런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다’같은 대사는 보통 여자쪽에서 말하는 거 아닌가. 혹시나 자기는 조금 드라이한걸까 싶은 생각이 저도 모르게 떠오를 것만 같다.
“저기, 안될까? 지, 집 앞까지가 아니라도, 근처 어디까지든 괜찮으니까.”
“뭐……뭐야 그거.”
“에?”
요시노는 일부러 뺨을 부풀리곤, 휙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바, 바래다 줄거면, 제대로 책임지고 집까지 바래다 주지 않으면 곤란하잖아.”
아아, 뭐야 이거.
이러쿵저러쿵 해도 스스로도 기쁘고, 배웅받고 싶고,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응, 무사히 집까지 바래다주지 않으면 나도 안심 안 될거고.”
“그럼……갈래?”
“응.”
둘이서 나란히 걸음을 옮긴다.
어째설까. 방금전까진 평범히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다시금 긴장감이 덮쳐온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슬쩍 곁눈질로 유키를 바라보자, 저녁햇빛을 받고 있는 탓인지 얼굴이 주황색으로 보인다.
사랑이란 신기하다.
즐겁고, 긴장되고, 웃고, 못 웃고, 우연한 순간에 무진장 두근거린다.
역시 심장이 나빴다면, 이런 두근거림을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집에까지 배웅받는 첫 미션에, 어째선지 둘 다 이상한 느낌을 느껴버려서, 이야기도 어정쩡해 소리 없는 시간도 자주 섞인다.
그렇게 깊게 고민할 건 없을 텐데 잔뜩 의식해 버린다. 배웅받는 것 뿐이지 집에 들이는 것도 아니고, 아직 밝을 때니까 이상한 행동도 안 해올테고, 아니 잠깐 이상한 행동이라는 건 뭐야?! 하고 머릿 속으로 홀로 태클을 건다.
“그러고 보면 말야.”
“에, 아, 왜왜왜?”
“요시노 양의 집에 예전에 실례한 적 있었지. 기억하고 있어?”
“아……응.”
잊을 리가 없다. 처음으로 남자를 집에, 게다가 자기 방에까지 들였었으니까.
그 때는 유키는 단순한 아는 남자여서, 깊게 의식 같은 건 하지 않았기에 집에 들일 수 있었다. 방에까지 불러들인 건 사소한 사고 탓이었지만, 지금 같은 게 가능할까 물으면 바로 대답하긴 힘들따.
“――아, 유키 군, 여기서 내릴 거니까.”
“에, 아, 잠깐 기다려.”
버스서 내린 건 집에서 제일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아니었다.
“그치만 그, 릴리안 누가 볼지도 모르잖아.”
“아아, 그런가. 요시노 양은 황장미님이니, 역시 이런 모습은 안 보이는 게 낫겠네.”
보였다가 곤란한 건 확실하지만, 이유는 단순히 요시노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딱히 나쁜 일을 한 건 아니니(딴데 들르긴 했지만) 다른 학생에게 보여도 상관없어야 할텐데, 의외다 싶을 정도로 자신이 소심해서 놀라고 있다.
또한 다른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제일 큰 이유는, 남에게 보일 위험성보다 그 편이 오래 같이 걸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키에게 그런 말은 절대로 못하지만.
저녁께의 주택가엔 통행인이 많은 건 아니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아는 사람에게 보이기라도 했다간 부끄러울 것 갈아서, 유키에게서 미묘하게 거리를 벌리고 걷는다.
“요시노 양은 이 근처에서 자주 걸어다니는 편이야?”
“에, 음―, 어떠려나. 몸 약했었으니까. 그래도 건강해 진 다음은 꽤 걸어다니게 됐으려나, 응.”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면, 어렸을 무렵부터 걸어다닌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의미론 그럴만한 사람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가까이 살아 교제가 있다곤 해도, 요시노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레이같은 쪽이 검도도장의 딸인데다 어렸을 무렵부터 눈에 띄었다. 요시노는 기껏해야 레이의 뒤에 숨어있을 뿐이었고.
“꼭 말하자면, 앞으로 잔뜩 걷고 싶어.”
자기 발로 걷는다. 당연한 일이 어찌 이리도 기쁜 걸까. 옛날에는 그런 걸 생각할 여유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몸에도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으니까――.
“――어머, 요시노?”
“후엣, 어……어머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싶어서 봤더니, 그쪽에 있던 건 어머니였다. 쇼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는지 가득 부푼 쇼핑 봉투를 어깨에 매고 있다.
“에에, 그쪽은…….”
하고 눈길이 옆의 유키에게 옮겨가서, 요시노는 당황했다.
“저, 저기, 에에, 이건!”
허둥지둥거리며 옆을 바라보자, 유키도 급작스런 일에 놀란 건지 선 채로 굳어 있다.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판단이 안 선다. 어쩌지. 여기선 어떻게 하는 게 제일 좋은 걸지 요시노가 머릿속으로 고민하는 동안에도 상황은 진행된다.
“어머, 혹시나 너, 우리 요시노랑?”
왠지 기뻐보이는 표정을 짓는 어머니와 다르게, 유키는 차렷 자세로 입을 연다.
“예, 예. 요시노 씨와는 교제하고 있습니다. 아, 에에, 하나데라 학원에 다니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입니다.”
유키는 긴장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걸 본 요시노의 얼굴에서 단숨에 핏기가 가신다.
“잠, 잠깐, 유키 군!”
“에……뭐, 뭐야?”
놀란 표정을 지은 유키에게, 뭔가 말하고자 입을 벌린 채로 굳어버린 요시노.
유키는 딱히 장난치고 있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요시노의 어머니랑 만났으니까 제대로 인사를 한 것 뿐인 거다. 요시노의 남친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그런데 요시노는 유키에 대해 알려진게 부끄러워서, 게다가 자기 입으로 말하기 전에 유키가 말해 버린 거니까, 불합리하게 화내고 싶어진 거다.
유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어머니를 바라보자, 왠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요시노를 보고 있다.
“저……저기, 어머니.”
“왜?”
“에에, 저, 저희, 사귀고 있어요…….”
얼굴에서 불길이 나올 정도로 부끄럽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요시노.”
“왜, 왜?”
어머니를 바라보자, 생각지도 못한 진지한 표정이었기에 꿀꺽 숨을 삼킨다.
“유키 군이랑 사귀고 있는 게 부끄럽니?”
“그, 그럴 리, 없잖아!”
“그래. 그럼 괜찮잖니. 정말, 좀 더 당당히 있으렴.”
“으으, 그치만…….”
가족에게 애인을 소개한다니, 당연히 부끄럽지 않은가. 아니면 세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건가.
치맛자락을 잡곤 고개를 숙이고 주저주저하는 요시노.
어머니는 쓴웃음 지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곤, 이번엔 유키에게 눈길을 향한다.
“유키 군, 요시노와 사귀고 있는 걸 가족분에겐 전했니?”
“에, 예. 요시노 양이 유미……누나에게 이야기한 뒤, 부모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에, 그, 그랬어?!”
“아아, 응. 그랬더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빨리 데리고 오라고 시끄러워서…….”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운 듯 웃는 유키.
요시노에 대해 가족에게 말한다. 당연해 보이는 일을 유키는 이미 당연히 행했던 거다.
“요즘, 상태가 조금 이상했으니까 혹시나 싶었지만, 요시노가 가르쳐 주기 전에 유키 군에게 듣다니…….”
“에, 거짓말. 진짜로?!”
“딸이니까, 그쯤은 아는 거야. 뭐어, 아버지는 못 알아챈 모양이지만.”
“그랬구나……미안.”
“별로 사과할 일은 아니잖니. 부끄러웠던 거지?”
조용히 끄덕인다.
정말로, 이건 너무 부끄럽다. 부모님께 사실은 들킨 상태였다거나, 유키 앞에서 이런 식으로 드러내며 타이른다거나.
“그래도 역시, 유키 군이었구나.”
“에?”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네, 이런 곳에서 서서 이야기 하는 것도 그러니, 모처럼 왔으니까 같이 저녁이라도 어떠니?”
어머니의 초대에 요시노 쪽이 당황한다. 혹시나 식사에 초대하게 되면 당연하지만 아버지와도 얼굴을 맞대게 되니, 설명이라고 할까 소개를 할 상황이 된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
“아, 감사하지만 급작스럽게는 죄송하고, 오늘은 사양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부모님께 부탁 받은 것도 있고, 돌아가야 할 일도 있고요. 모처럼 초대해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유키의 거절에 마음이 다소 놓이고, 그러면서도 그게 한심해서 스스로 부끄럽다.
사귄다고 말해놓고선 사실은 표면적인 것에만 마음을 뺏겨서, 소중한 것들에선 눈을 피해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제라는 건 둘의 세계로 끝나는 게 아닌 거다. 둘의 사귐은 당연하고, 각자의 가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거꾸로 가정의 영향이 둘에게도 미치는 거다.
“――그럼, 저는 오늘은 여기서 실례하겠습니다. 요시노 양, 다시 보자.”
“아, 으, 응.”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 하는 유키.
순간적으로 요시노는 유키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에, 요시노 양, 무슨 일이야?”
“아……에에…….”
말하고 싶은 것들은 잔뜩 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바, 바래다 줘서, 고마워.”
그런 당연하고 시시한 말 뿐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귀가했다.
그 사이 조금씩 유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집에 도착하자 가볍게 요시노의 등을 두드리며, 용기를 불어넣듯 미소를 지어 준다.
“괜찮아, 아마 요시노의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어. 멋있고 근사하잖아, 유키 군.”
“으, 응.”
칭찬받고 있는 건데,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런 요시노를 보고 어머니는 미소짓는다.
“그래도, 아버지께는 요시노와 유키 군, 둘이서 제대로 사귀고 있다고 말해야 해. 나는 응원해 주겠지만, 제대로 둘이서.”
“알고 있어.”
대답 뒤에, 어머니는 거실로 가고 요시노는 자기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밤이 되어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가 돌아왔지만 오늘은 딱히 아무 말도 없이 목욕을 마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요시노는 외동딸인데다 병약했었으니까, 아버지는 요시노에게는 굉장히 무르고 과보호다. 그런 아버지가 요시노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안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알고 있는 건 제대로 보고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께도 유키에게도 실례니까.
머리카락을 말린 뒤 요시노는 아직 새거나 다름없는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문자는 여러번 보냈었지만, 사실 전화하는 건 이게 처음이다.
『――여보세요, 요시노 양?』
“아, 응. 괜찮았어? 지금.”
『물론, 요시노 양의……잠깐, 시끄러워 유미, 가까이 오지 마.』
“에, 뭐야, 유미 양이 있는 거야?”
『아아, 아니 없어 없어, 그런 거. 잠깐 기다려, 지금 방으로.』
『아, 도망치지 마 유키, 치사해―!』
수화기 너머로 유미의 소리가 들려와,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기다렸지?』
“사이가 좋네. 질투할 것 같아.”
『잠깐, 그만둬 줘~.』
유키가 한심한 소리를 내서 다시 웃음을 터뜨려 버린다. 하지만 정말 너무 친하게 지내면, 아무리 남매라곤 해도 여친 입장에선 울컥하는 거라고요.
“에에, 그런 것보다, 미안해.”
침대 위에 정좌해서 휴대폰을 귀에 댄 채로 고개를 숙이는 요시노.
『에, 뭐가? 무슨 일 있었어?』
“저기, 나, 그, 아직 부모님께도 유키 군에 대해 말 안했으니까…….”
『아아, 그래도 별로 사과할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아. 유키 군은 제대로 부모님께 말씀 드렸는데, 난 못그런 건 왠지 분하잖아.”
『분하다니, 왠지 요시노 양 답네.』
“뭐야. 그래도 뭐어, 정말로. 유키 군과 사귀기 시작한 거에 부끄러워할 부분은 전혀 없는데.”
『그래도, 왠지 부끄러워서 말하기 힘든 건 이해해.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초조해하지 않아도,』
「안돼. 이건 내 나름대로의 구별이니까. 아버지께도, 레이 쨩에게도, 제대로 말할테니까.」
『그런가……알았어. 그럼 다음엔 꼭 우리 집에 와줘. 오늘도 말했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시끄러워서. 나 같은게 상대라 큰일이겠지만,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야 한다든가 말하고 있다고.』
“풉, 뭐야 그거?”
『그게, 우리 부모님은 릴리안의 장미님에 대한 환상이 있으니까. 내가 사귀고 있는 상대가 황장미님이라는 걸 듣곤 분위기가 완전 들떠서. 그런 기대를 받아도 곤란하지. 그도 그럴게 현실은.』
“맞아 맞아, 연실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잠깐, 좀 실례 아냐?!”
『아니, 난 그렇게까진 말 안했는데.』
“호오, 그렇게 말씀하십니까……라곤 해도 뭐 그건 치워두고. 알았어. 다음에 놀러 갈테니까. 유미 양의 친구가 아니라, 유키 군의 여친으로서.”
『옷……아, 아아, 부탁할게.』
“나도 제대로 이야기 할 테니까……그 다음에 소개할 테니까, 그 때는 우리 집에 와줘.”
『으, 응. 물론.』
전화를 통해서도 서로 미묘하게 긴장감에 넘치고 있는게 느껴졌다. 뺨이 약간 뜨거운 건 아마 목욕을 방금 마친 탓이다. 응, 분명 그럴 거다.
“――그래서, 그, 아버지께도 소개한 다음엔, 괜찮아.”
『응? 괜찮다니, 뭐가?』
“에에―, 스티커 사진……붙여도.”
『……알았어. 그럼, 기대하고 있을테니까.』
“응.”
그 뒤, 몇분간 잡담을 나누고 통화를 마친다.
한 번 숨을 내쉰 뒤 전화를 들고 있던 손바닥에 약간 땀이 맺혀 있는 걸 깨달았다.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 있고, 얼굴이 안 보인다곤 해도 전화로의 대화로도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살며시 전화를 베개 위에 놓는다.
“………….”
얼굴이 뜨겁고, 얼굴이 풀어질 것만 같다.
왜냐면, 휴대폰에는 유키와 요시노 둘이 긴장하면서도 미소를 띄우고 있는 스티커 사진이 붙어 있었으니까.
“나, 나는, 학교에선 가방에서 꺼낼 일 없고.”
누구에게 변명하는건지도 모를 말을 하면서.
스티커 사진을 보며 부끄러운 듯, 행복한 듯 미소짓는 요시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