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검장李劍場 2화
"조금 어른답지 못했나..."
담벼락을 완전히 박살낸 방석은 자신이 만든 광경을 보며 검지로 뺨을 살짝 긁적였다. 박살난 장주실에 화가 난 나머지 어른답지 못하게 전어도의 벽劈을 사용해 아들인 성진을 쓰러뜨리면서 동시에 담벼락을 박살낸 것이었다. 솔직히 남말할 처지는 못되는 광경이었다.
"좀더 늘었네. 형의 전어도."
"10년간 죽어라 익힌 무공이다. 막 입문한 자식놈한테 뒤지면 입에 칼 물고 죽어야지."
방석은 그리 말하며 정신봉을 털고 장주실이었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훤하게 뚫려있는 상태지만 이검장 안에 상주하고 있는 '장인'들이 곧 수리하러 올 것이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아차, 시현아 좀 물어볼게 있다."
"뭐가?"
"혹시 상고시대때 무예중에서 도깨비불 같은걸 다루는게 있었냐?"
"도깨비불이요? 글쎄요... 상고시대 무예는 제법 알고 있지만. 그러한 종류는..."
"아는게 없냐?"
시현의 반응에 우려가 담긴 목소리로 묻던 방석은 뒤이어진 시현의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아서 문제인걸요"
"뭐?"
"제가 아는것만해도 화룡적심공火靈赤心功을 시작으로 고대 염마炎魔의 구유화령공舊幽火靈功, 태양궁의 태양십명화太陽十明火, 신가의 금시황염공金翅煌炎功. 일단 이름있는 것만 거론하자면 이정도고 그외 이름 없는 무공이나 술법,사술들까지 거론하자면 가히 수백종에 달한다고요."
"그정도로 많았던건가..."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아아, 현재 우리장에 신세지고 있는 야화분들께 종종 정보수집을 부탁드리고 있는데 최근 근방에서 그러한 화공에 의해 희생당하는 이들이 많아서 말이야. 일단 야화분들은 마주치지 않았다만 그래서 물어봤어."
"아까 흑철씨가 말한게 그건가..."
"흑철씨가 뭐라고 한거야?"
"아, 별건 아니고 요즘 인근에서 사건사고가 잦다고 해서요"
"아아, 흑철씨도 야화씨들에게 들은건가? 뭐 어쨌건 이번에 나간 녀석들이 돌아오면 한번 돌아봐야 할것 같은데 말이지."
"위치만 알려주시면 나중에 제가 갔다 올께요"
"아냐아냐, 간만에 돌아온 너한테 그런 수고를 시킬 순 없지. 아 그래도 대장간의 화로는 좀 어떻게좀 해줘. 장인들이 불평해대더라"
"아, 그건 아까전에도 부탁받았어. 곧 처리할 생각인데... 뭐 화력부족이니 금방 처리될거라고 생각해"
"그럼 부탁해. 나는 아들 녀석 좀 훈계해야 할것 같으니까 말이야."
방석은 그렇게 말하며 혼절한 성진의 목덜미를 잡아 끌며 장주실로 향했다. 그러한 방석을 보며 미소를 짓는 시현, 방석과 성진. 피가 이어지지 않은 두 부자가 이제 완연히 부자지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에, 그러니까 화로 화력만올려주면 되는 거였죠? 원래는"
"그... 그랬는데 말이지..."
대장간에 도착한 시현은 눈앞에 보이는 참상에 난감함을 금할 수 없었다. 화로는 박살나다 못해 주위를 태울것 같은 열기를 발하고 있었고 박살난 화로에서 튀어나간듯한 파편들은 대장간 내부 여기저기를 박살내 처참한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까놓고 말해 이 참상속에서 죽은이는 커녕 중상을 입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기적이라고 해야만 하리라.
시현에게는 일거리가 단숨에 몇배나 늘어버린 상황이지만 말이다.
"이 광경은 누가만든거지?"
흑철은 유래없이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대장간 안에 있는 장인들을 둘러보았다. 지금이라도 빨리 타오르고 있는 화로를 먼저 정리해야 했으나 흑철에게 있어서 그것은 두번째 일이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일을 벌인 녀석부터 찾는 것이었다.
흑철이 그리 외치자 장인들의 눈과 손가락이 두사람을 향해 집중되었다. 둘다 젊은소인으로 한명은 회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고 다른 한녀석은 짙은 갈색, 아니 암갈색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흑철은 그 둘을 보며 대노하며 외쳤다.
"석회! 휘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 그게 휘수녀석이 화로의 화력을 늘릴 획기적인 방법이 떠올랐다면서..."
"야 임마! 석회!! 너 정말 이러기냐! 너야말로 화로의 내구력을 올릴 방법이 생각났다면서...!"
"결국 둘이서 화로 손대다가 이런 난장판을 만든거냐!!"
쿠화아아아-
흑철이 두사람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아직 타오르고 있던 화로의 불이 맹렬히 치솟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대장간을 모두 태워버리는 것도 모자라 이검장을 통째로 날려버리것 같은 상황. 그러한 상황에서 움직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시현이었다.
시현은 근처에 있는 아직 단련되지 않은 철창을 잡아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리꽂았다. 그리고 그 순간 창 끝에서부터 무시무시한 속도로 뭔가가 내달리기 시작하더니 타오르는 화로를 중심으로 팔방을 점하며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치솟아 오른 여덟개의 경기는 하나의 용권풍이 되어 화로의 불길을 집어삼키며 화룡이 되어 하늘로 승천했다. 그 광경을 본 모두는 흑철을 제외하고는 얼떨떨한 얼굴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오로지 흑철만이 이럴줄 알았다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대장, 이런 일정도는 가볍게 처리해주네."
"고작 이런일에 작업이 막혀서야 일할 수가 없잖아요. 야장이라면 저 정도 일은 혼자 처리할 수 있어야죠."
"그렇지, 그런면에서 보면 요즘 녀석들은 겉멋만 들었다니까."
"아니, 그런걸 단번에 처리하는 대장쪽이 이상하다 생각합니다만."
휘수의 말에 흑철과 시현을 제외한 모든 장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장인의 역할은 철을 만지고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지 방금전 처럼 터진 일을 막는쪽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화로는 어쩌지?"
"뭐, 이정도 손상이면 하루 남짓이면 고칠 수 있으려나. 어차피 개량해야 하려면 꽤 바꿔야 했으니 다행이라 칠까"
"하기사 이정도 일 공방에선 늘 있는 일이지?"
'늘 없어요!!'
두 사람의 반응에 전원은 그러한 말을 속으로 외치며 흑철과 시현을 바라보았다. 터무니 없는 생각을 지닌 두 장인匠人의 말에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밤샘 작업이 결정되어버렸다.
"후유, 생각보다 더 걸려버렸네."
이미 저녁을 지나 밤이 되어 자시를 지나 축시에 도달하고 있는 때, 시현은 작업의 노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야장들에게 한기가 들지 않도록 거적을 덮어주고 대장간 밖으로 나왔다.
저녁이 된 탓인지 공기가 제법 추워져 입에서는 김이 뽀얗게 보일 정도였다.
"설마, 그런방식으로 해결할 줄이야."
아직 자지 않은 흑철이 대장간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 된 터라 조금은 허탈할 정도였던 탓이었다. 물론 간단한 방법이라고는 하나 그렇게 간단한 방법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간단한 방법은 맞지만 몸이 고된 작업이었다고 할까...
"설마 외벽을 흙으로 덮는 것으로 화력이 더 오르다니."
"뭐 그것만으론 모자라서 주술진도 몇개 쓰긴 했지만요. 녹인들이 있었다면 화령을 이용했으면 편했을텐데."
"그 녀석들은 대부분 녹림으로 갔을테니까 말이지"
"아쉬운 부분이에요."
"뭐 그래도 문제는 하나 해결했으니 다행이려나. 하여간 석회도 휘수도 참 문제아라니까"
"하지만 그 녀석 둘을 눈여겨 보고 있죠?"
"뭐 그건 그렇지. 현재 이검장에 있는 장인들 중 나를 제외하면 가장 나은 녀석이 그 둘이기도 하고 말이야"
"뭐 다른 사람들의 경우 실력은 있지만 아무래도 발전성이랄까 의욕이..."
"발상이 모자라. 대장장이는 언제나 세상을 반보 앞서나가야 한다고!"
"뭐 그건 흑철씨가 가르쳐나가야..."
"솔직한 말로는 대장이 애들에게 가르쳐줬으면 하지만 말이지"
"전 대장장이가 본직이 아니니까요. 그건 대장장이가 본직인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뭐, 그것도 그런가?"
흑철은 시현의 말에 너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게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던 중 시현과 흑철은 문득 담장을 넘어 밖으로 나가고 있는 하나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발걸음으로 봐선 소장주님 같구만."
"이 야밤에 어딜 나가는건지... 잠깐 잡아올게요. 늦으면 형님한테 대신 좀 말해주세요"
"그러지. 얼른 가보게나"
흑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시현은 재빨리 땅을 박차며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표횰한 움직임을 보이며 시현은 밤공기를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