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검장李劍場 3화
보통사람이라면 한치 앞도 안보일듯한 어둠속에서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어둠속을 누비던 청년은 갑작스럽게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속도를 더 올렸다.
경공은 그렇게 잘 익힌편은 아니었으나 쫓아오는 이들을 따돌릴 정도는 된다고 자부하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기척을 놓쳤다고 깨달은 순간 쫓아오던 이는 자신의 눈 앞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한밤중에 어딜가는거냐 조카야"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시현을 보며 청년, 아니 성진은 식은 땀을 흘리며 숙부인 시현을 바라보았다.
"수... 숙부, 여긴 어떻게?"
"대장간에서 막 일 마치고 나와보니 네가 담을 넘고 있더구나. 이 한밤중에 무슨 일이냐."
"그... 그게 말이죠."
"형님께서 한밤중에 월담하라고 교육한적은 없었을텐데 말이다"
기묘한 패기를 발하며 압박하는 시현을 보며 성진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기, 이유를 말하면 넘어가 주실건가요?"
"들어보고. 만약 택도 없는 이유라면 각오해라"
"그... 그게 말이죠. 엿차!"
뭔가 말하려던 성진은 갑작스럽게 몸을 날렸다. 시현의 표정을 보고 말로 해도 통하지 않을거라 생각한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은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성진아, 너 정도 실력으로 도망칠 수 있을거라 생각했냐?"
"으갹!!"
시현이 성진의 어깨에 손을 얹자마자 그는 균형을 잃은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갑작스럽게 위에서 내리누르는 듯한 압력을 느낀 탓이었다. 마치 자신의 몸무게의 2배에서 3배 되는 무게가 짓누르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으며 고꾸라진 성진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수... 숙부 무겁습니다."
"도망치려던 벌이란다 조카야. 이제라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을래?"
"그... 그게 말이죠. 요즘 요 인근에서 소란스러운 살인 도깨비불을 알아보려고요."
"알아봐서 뭐하게?"
"막을 수 있으면 막아야죠!"
딱-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성진의 머리를 향해 꿀밤을 날렸다. 꿀밤을 얻어맞은 성진은 무척이나 아픈지 머리를 감싸쥐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파!"
"아프라고 때린거다 바보조카야. 전어도를 익혔더니 겁이 없어진거냐? 아니면 내가 전해준 금강진혈체 때문에 죽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는거냐. 그런거라면 진짜 바보인거다 너..."
"하지만 금강진혈체라면 어떠한 외공보다도 뛰어나니까..."
"내가 전해준건 진체가 아닌 수련법 뿐이야. 그거가지고 만용을 부리는거냐"
시현은 성진에게 꿀밤을 한방 더 날리며 말했다. 무진장 아픈 꿀밤에 성진은 의아함을 드러내며 시현을 향해 물었다.
"아무리 수련법뿐이라해도 금강진혈체를 익혔는데 왜이리 숙부의 꿀밤이 아픈거죠?"
"그건 이 숙부의 걱정과 사랑이 꿀밤에 가득담겼기 때문이란다."
실제로는 꿀밤을 때릴때마다 권경을 발하고 있는 탓이지만 굳이 그것을 언급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진실은 모르는게 좋은것이니까 말이다.
"하라는 훈련은 안하고 말이지. 너도 참..."
"우구구구..."
한층더 강해진 압력속에서 성진은 신음성을 흘렸다. 무지막지하기 짝이 없는 시현의 침추경- 그 침추경은 사정없이 성진의 몸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 생각 들었냐?"
"아니... 일단은 가보고.."
"하여간... 이것도 이씨가문의 혈통이란걸까"
시현은 이런 상황속에서도 가려고 발버둥치는 성진을 보며 못말리겠다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보면 본래 무가인 이씨가문은 기본적으로 옹고집 경향이 심했다.
하고자 하는건 일단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었다. 그런 일족이니까 이렇게 강해질 수 있는거겠지만서도.
"하아 어쩔 수 없구만."
시현은 성진에게 사용한 침추경, 천중고배를 풀어내며 성진을 일으켜세웠다.
"나도 동행하마, 말려도 안갈리가 없는데다가 혼자보내는건 안좋으니"
"수... 숙부."
"대신 집에 돌아가면 각오해라. 이번엔 내가 훈계해주마-"
"봐주세요 숙부..."
시현의 마지막 말에 성진은 곤란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조카의 모습을 본 시현은 살짝 재밋다는 웃음을 지은 후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야화夜花, 어차피 지금 여기에 있죠?"
"네?"
성진은 갑작스런 시현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래보여도 기감 만큼은 다른 누구랑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아무도 없는, 아무런 기감도 느껴지지 않는 허공을 향해 말하는 것이 이상해 보였다.
-하지만 잠시 후 짙은 어둠속에서 갑작스러운 수많은 날개소리와 함께 하나의 기척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시현님"
"존칭은 괜찮아요. 여러분들은 형님의 수하들이니까 저한테까지 존칭을 할 필요는..."
"저희들은 장주님의 수하지만 시현님께는 은을 입었기에..."
"뭐... 편한대로 해주세요"
방석의 기분을 이해한 시현은 그렇게 말하며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영을 향해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죠?"
"진짜 이름은 따로있지만 이곳에선 삭영朔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삭영씨, 물어볼게 있습니다만. 도깨비불이 돌아다니는 숲에 대해선 알고 계시죠?"
"네, 저도 그걸 조사중이니까요"
"그 소문의 장소는 지금 어디죠?"
시현의 말에 삭영은 별을 보면서 방향을 잡더니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방향으로 30리 가량 가면 나오는 곳입니다."
"30리라... 조금 애매한 거리네."
"자, 잠깐 숙부. 이분은 대체?"
뒤늦게서야 놀람에서 벗어난 성진은 시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삭영을 가리키며 외쳤다. 솔직히 시현으로서도 성진의 놀람이 이해가 안가는것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은신술은 가볍게 간파할 수 있는 기감을 지니고 있다는 자신감이 단번에 무너졌을테니 말이다.
"야화인 삭영씨다. 나중에 네가 장주가 되면 자주 얼굴을 마주할 사이니 얼굴을 잘 익혀두라고"
"처음 뵙겠습니다. 소장주님. 삭영이라고 합니다. 본래는 좀더 일찍 인사를 드렸어야 하나 장주님의 명으로..."
"아... 아뇨."
"그럼 전 다시 임무에 복귀하겠습니다."
삭영은 그렇게 인사한 후 곧바로 모습을 감추었다. 기척도 기감도 완전히 사라져버린 삭영을 보며 성진은 놀란 표정으로 시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숙부... 방금 그분은 대체?"
"이가장에서 정보 수집 및 호위를 맡고 있는 분들 중 한명이다. 뭐 야화라는 종족의 특성상 호위보다는 감시라고 해야겠지"
"야화...?"
"뭐 자세한건 다음에 말해주마. 우선은 그 숲으로 가는게 먼저가 아니냐"
"아, 그렇죠."
갑작스럽게 나타난 삭영의 존재에 순간 자신의 목적을 망각한 성진은 숙부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공을 발휘했다. 앞서 달리는 성진을 잠시 보던 시현은 미소를 지으며 발을 내딛어 달리기 시작했다.
약 1시진 가량 쭉 달린 두사람은 삭영이 말한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숲보다도 칙칙한 분위기를 발하고 있는 숲은 척 보기에도 위험한 느낌이 감돌고 있었다.
"여기가 그 숲인가 보네요"
"사람이 좀 죽었다 하더니 생각보다 사기死氣가 짙구나"
일반적인 숲에도 사기는 존재한다. 아니 생명이 존재하는 곳에는 어디에나 어느정도 수준의 사기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죽어가는 숲이라 할지라도 이정도 사기는 발하지 않으리라. 게다가 사람이 열 몇사람 희생되어 생긴 사기라고 생각하기에도 너무 짙었다.
"적어도 수백명이 희생된 사기인데 말이지..."
"뭔가 꺼림직한 느낌은 들지만 사기란건 대체?"
"뭐 보통 무림에선 잘 안쓰이는 부분이니까 말이다. 너도 굳이 알 필요는 없단다."
그렇게 말하던 시현은 문득 숲 저편에서 일렁이는 푸르고 붉은 불꽃을 볼 수 있었다. 저것이 소문의 도깨비 불인 것일까? 시현은 그것을 알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숙부, 뭔가 발견했습니까?"
"도깨비불이 보이는구나. 저 앞에 말이지"
시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안쪽에서 일렁이던 도깨비 불이 흔들리면서 시현과 성진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도깨비 불을 보며 시현은 재빨리 허공을 향해 두어번 손을 내질렀다.
그 순간 시현의 손에서 생겨난 충격파는 단숨에 도깨비불의 중심을 꿰뚫었다.
중심을 꿰뚫린 도깨비불은 찰나의 반짝임과 함께 순식간에 소멸했다. 하지만 뒤이어 십수개의 도깨비불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와 시현과 성진을 덮쳤다.
"과연, 사람들이 당할만 하군 숲속에서 맹습하는 도깨비불의 공습은 제법 위험해."
하지만 시현의 얼굴에 위기감은 조금도 떠있지 않았다. 날아오는 도깨비 불들을 모조리 터트려버린 시현은 성진의 칼을 뺐어 들며 말했다.
"칼 좀 빌리자 성진아."
"엣, 숙부님?"
성진의 칼을 든 시현은 칼을 든 손을 뒤로 상당히 젖힌 후 발을 내딛으며 힘껏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날카로운 진공의 칼날이 칼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