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꿈 하늘”이라는 이 글을 짓고 나니 꼭 독자에게 할 말씀이 세 가지 있습니다.
(1)은 한놈은 원래 꿈 많은 놈으로 근일에는 더욱 꿈이 많아 긴 밤에 긴 잠이 들면 꿈도 그와 같이 깊어 잠과 꿈이 서로 종시(終始)하며 또 그 뿐만 아니라 곧 멀건 대낮에 앉아 두 눈을 멀뚱 멀뚱히 뜨고도 꿈같은 지경이 많아 님 나라에 들어가 난군께 절도하며 번개로 칼을 치어 평생 미워하는 놈의 목도 끊어 보며 비행기도 아니타고 한 몸이 훨훨 날아 만리 천공에 돌아다니며 노랑이·거먹이·신동이·붉은동이를 한 집에 모아 놓고 노래도 하여 보니 한놈은 벌써부터 꿈나라의 백성이니 독자 여러분이시여, 이 글을 꿈꾸고 지은 줄 아시지 마시고 곧 꿈에 지은 글로 아시옵소서.
(2)는 글을 짓는 사람들이 흔히 배포가 있어 먼저 머리는 어떻게 내리라, 가운데는 어떻게 버리리라, 꼬리는 어떻게 마무르리라는 대의를 잡은 뒤에 붓을 댄다지만 한놈의 이 글은 아무 배포 없이 오직 붓끝 가는 대로 맡기어 붓끝이 하늘로 올라가면 하늘로 따라 올라가며, 땅 속으로 들어가면 땅 속으로 따라 들어가며, 앉으면 따라 앉으며, 서면 따라 서서 마디마디 나오는 대로 지은 글이니 독자 여러분이시여 이 글을 볼 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위아래의 문체가 다르다 그런 말은 마소서.
(3)은 자유 못하는 몸이니 붓이나 자유하자고 마음대로 놀아 이 글 속에 미인보다 향내 나는 꽃과도 이야기하며 평시에 사모하던 옛적 성현과 영웅들도 만나보며 오른팔이 왼팔도 되어 보며 한놈이 여덟 놈도 되어 너무 사실에 가깝지 않은 시적(詩的), 신화적(神話的)도 있지만 그 가운데 들어 말한 역사상 일은 낱낱이 고기(古記)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고려사』나 광사(廣史)나 역사(繹史) 같은 속에서 참조하여 쓴 말이니 독자 여러분이시여, 섞지 말고 갈라 보소서.
독자에게 할 말씀은 끝났습니다. 이제 저자의 제 말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책 짓는 사람들이 모두 그 책을 많이 사보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한놈은 이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바라는 바는 우리 안 어느 곳에든지 한놈같이 어리석어 두 팔로 태백산을 안으며 한 입으로 동해물을 말리고 기나긴 반만 년 시간 안의 높은 뫼, 낮은 골, 피는 꽃, 지는 잎을 세면서 넋이 없이 앉아 눈물 흘리는 또 한놈이 있어 이 글을 보면 할 뿐이다.
둘째는 책 짓는 사람들이 흔히 그 책으로 무슨 영향이 있으면 하지만 한놈은 그러하지 안합니다. 다만 바라는 바 이 글 보는 이가 우리나라도 미국 같아져라, 독일 같아져라 하는 생각이나 없으면 할 뿐입니다.
단군 4249년 3월 18일 (1916년) 한놈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