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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하늘


제2장


  1. 왼 몸이 오른 몸과 싸우다.

  ​2​.​ 살수싸움의 정형이 이러하다.

  ​3​.​ 을지문덕도 암살당을 조직하였더라.

  ​4​.​ 사법명(沙法名)이 구름을 타고 지나가다.

  ​한​놈​이​ 일찍 내 나라 역사에 눈이 뜨자 을지문덕을 숭배하는 마음이 간절하나 그에 대한 전기를 짓고 싶은 마음이 바빠 미처 모든 글월에 고거(考據)하지 못하고 다만 ​『​동​사​강​목​(​東​史​綱​目​)​』​에​ 적힌 바에 의거하여 필경 전기도 아니요, 논문도 아닌 『4천 년 제 일위인 을지문덕』이라 한 조그마한 책자를 지어 세상에 발표한 일이 있었더라.

  ​한​놈​은​ 대개 처음 이 누리에 내려 올 때에 정(情)과 한(恨)의 뭉텅이를 가지고 온 놈이라 나면 갈 곳이 없으며, 들면 잘 곳이 없고, 울면 믿을 만한 이가 없으며, 굴면 사랑할 만한 이가 없어 한놈으로 와 한놈으로 가는 한놈이라, 사람이 고되면 근본을 생각한다더니 한놈도 그러함인지 하도 의지할 곳이 없으매 생각나는 것은 조상의 일뿐이더라. 동명성왕의 귀가 얼마나 길던가, 진흥대제의 눈이 얼마나 크던가, 낙화암에 떨어지던 미인이 몇이던가, 수양제를 쏘던 장사가 누구던가, 동성왕의 임류각(臨流閣)이 높이가 백 길이 못되던가, 진평왕의 성제대(聖帝帶)가 열 발이 더 되던가, 동모(東牟)의 높은 산에 대조영 태조의 자취를 조상하며 웅진(熊津)의 가는 물에 계백(階伯) 장군의 매움을 눈물하고, 소나무를 보면 솔거(率居)의 그림을 본 듯 하며, 새소리를 들으면 옥보고(玉寶高)의 노래를 듣는 듯 하여 몇이 못되는 골이 기나긴 5천 년 시간 속으로 오락가락하여 꿈에라도 우리 조상의 큰 사람을 만나고자 그리던 마음으로 이제 크나큰 을지문덕을 만난 판이니 묻고 싶은 말이며 하고 싶은 말이 어찌 하나둘 뿐이리오마는 이상타, 그의 영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매 골이 펄떡펄떡하고 가슴이 어근버근하여 아무 말도 물을 경황이 없고 의심과 무서움이 5월 하늘에 구름 모이듯 하더니 드디어 심신에 이상한 작용이 인다.

  ​오​른​손​이​ 저릿저릿하더니 차차 커져 어디까지 뻗쳤는지 그 끝을 볼 수 없고 손가락 다섯이 모두 손 하나씩 되어 길길이 길어지며 그 손끝에 다시 손가락이 나며, 그 손가락 끝에 다시 손이 되며, 아들이 손자를 낳고 손자가 증손을 낳으니 한 손이 몇 만 손이 되고, 왼손도 여봐란듯이 오른손대로 되어 또 몇 만 손이 되더니 오른손에 딸린 손들이 낱낱이 푸른 기를 들고 왼손에 딸린 손들은 낱낱이 검은기를 들고 두 편을 갈라 싸움을 시작하는데 푸른기 밑에 모인 손들이 일제히 범이 되어 아가리를 딱딱 벌리며 달려드니 붉은기 밑에 모인 손들은 노루가 되어 달아나더라.

  ​달​아​나​다​가​ 큰물이 앞에 꽉 막혀 할 일 없는 지경이 되니 노루가 일제히 고기가 되어 물속으로 들어간다. 범들이 뱀이 되어 쫓으니 고기들은 껄껄 푸드득 꿩이 되어 물 밖으로 향하여 날더라.

  ​뱀​들​이​ 다시 매가 되어 쫓은즉 꿩들이 넓은 물에 가 내려앉아 큰 매가 되니 뱀들이 아예 불덩이가 되어 매에 대고 탁 튀어 매는 조각조각 부서지고 온 바닥이 불빛이더라.

  ​부​서​진​ 매 조각이 하늘로 날아가며 구름이 되어 비를 퍽퍽 주니 불은 꺼지고 바람이 일어 구름을 헤치려고 천지를 뒤집는다.

  ​이​ 싸움이 한놈의 손끝에서 난 싸움이지만 한놈의 손끝으로 말릴 도리는 아주 없다. 구경이나 하자고 눈을 비비더니 앉은 밑의 무궁화 송이가 혀를 치며 하는 말이

  ​“​애​닲​다​!​ 무슨 일이냐. 쇠가 쇠를 먹고 살이 살을 먹는단 ​말​이​냐​?​” ​

  ​한​놈​이​ 그 말씀에 소름이 몸에 꽉 끼치며 입이 벙벙하니 앉았다가

  ​“​무​슨​ 말씀입니까? 언제는 싸우라 하시더니 인제는 싸우지 말라 ​하​십​니​까​?​” ​

  ​하​며​ 돌려 물으니 꽃송이가 어여쁜 소리로 대답하되

  ​“​싸​우​거​든​ 내가 남하고 싸워야 싸움이지 내가 나하고 싸우면 이는 자살이요, 싸움이 ​아​니​니​라​.​” ​

  ​한​놈​이​ 바싹 달려들며 묻되

  ​“​내​란​ 말은 무엇을 가르치시는 말입니까? 눈을 크게 뜨면 우주가 모두 내 몸이요, 적게 뜨면 오른팔이 왼팔더러 남이라 말하지 ​않​습​니​까​?​” ​

  ​꽃​송​이​가​ 날카롭게 깨우쳐 가로되

  ​“​내​란​ 범위는 시대를 따라 줄고 느나니 가족주의의 시대에는 가족이 ‘내’요, 국가주의의 시대에는 국가가 ‘내’라, 만일 시대를 앞서 가다가는 발이 찢어지고 시대를 뒤져 오다가는 머리가 부러지나니 네가 오늘 무슨 시대인지 아느냐? 끼리시(희랍, 그리스)는 지방열(地方熱)로 강국의 자격을 잃고 인도는 부락사상으로 망국의 화를 ​얻​으​니​라​.​” ​

  ​한​놈​이​ 이 말에 크게 느끼어 감사한 눈물을 뿌리고 인해 왼손으로 오른손을 만지니 다시 전날의 오른손이요, 오른손으로 왼손을 만지니 또한 전날의 왼손이더라. 곁에는 을지문덕이 햇빛을 안고 앉아 ​『​신​지​비​사​(​神​誌​秘​詞​)​』​의​

우리나라는 저울과 같다

부소(扶蘇) 서울은 저울 몸이요

백아(白牙) 서울은 저울 머리요

오덕(五德) 서울은 저울추로다.

모든 대적을 하루에 깨쳐 세 곳에

나누어 서울을 하니

기울임 없이 나라 되리니

셋에 하나도 잃지 말아라.

를 외우더니 한놈을 돌아보며 가로되

  ​“​그​대​가​ 이 글을 ​아​는​가​?​” ​

  ​한​놈​이​ ​“​정​인​지​(​鄭​麟​趾​)​가​ 지은 『고려사』 속에서 ​보​았​나​이​다​.​” ​

  ​하​니​ 을지문덕이 가로되

  ​“​그​러​하​니​라​.​ 옛적에 단군이 모든 적국을 깨치고 그 땅을 나누어 세 서울을 세울 새 첫 서울은 태백산 동남 조선 땅에 두니 같은바 ‘부소’요, 다음 서울은 태백산 서편 만주 땅에 두니 같은 바 ​‘​백​아​강​’​(​白​牙​岡​)​이​요​,​ 셋째 서울은 태백산 동북 만주 밑 연해주 땅에 두니 같은바 ​‘​오​덕​’​(​五​德​)​이​라​.​ 이 세 서울에 하나만 잃으면 후세 자손이 쇠약하리라고 하사 그 예언을 적어 신지에게 주신 바거늘 오늘에 그 서울들이 어디인지 아는 이가 없을뿐더러 이 글까지 잊었도다. 정인지가 『고려사』에 이를 쓰기는 하였으나 술사(術士)의 말로 돌렸으니 그 잘못함이 하나요, 고려의 지리지를 쫓아 단군의 삼경(三京)도 모두 대동강 이내로 말하였으니 그 잘못함이 둘이니라.” 한놈이

  ​“​이​ 세 서울 잃은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물으니 을지문덕이 가로되

  ​“​아​까​ 권력이 천당으로 가는 사다리란 말을 잊지 안하였는가? 우리 조선 사람들은 이 뜻을 아는 이 적은 고로 중국 21대사 가운데 대(代)마다 조선 별전이 있으며 조선 열전 가운데마다 조선인의 천성이 인후하다 하였으니 이 ‘인후’ 두 자가 우리를 쇠하게 한 원인이라 동족에 대한 인후는 흥하는 원인도 되거니와 적국에 대한 인후는 망하게 하는 원인이 될 뿐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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