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화 천상천하유아독존
“저기저기, 유토 군. 오늘 한가해?”
하야테의 집에 방문한 뒤 며칠이 지난 어느 방과 후.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유토는 느닷없이 그런 질문을 들었다.
말을 걸어온 나노하의 뒤에는, 당연한 듯이 알리사와 스즈카의 모습도 있다.
“뭐어, 한가한데?”
“지금부터 스즈카네 집에 모여서, 페이트 쨩한테 보낼 비디오 메일을 만들건데, 유토 군도 와 줄거지?”
“싫어.”
나노하의 초대에 바로 대답하는 유토.
“에?”
대답이 너무 빨랐던데다가 그 대답 내용도 예상치 못했던 탓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는 나노하. 알리사와 스즈카도 질렸단 표정을 짓고 있다.
“어, 어째서. 한가하잖아? 같이 비디오 메일 만들자!”
“나는 편지로 됐어. 그리 이야기 할 것 많지도 않고.”
물론, 유토도 페이트가 신경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말대로, 나노하처럼 이야기하고 싶은 게 이것저것 잔뜩 있는 것도 아니다. 이쪽의 근황이나 묻고 싶은 게 있긴 하지만, 편지로 충분하다.
그리고 뭣보다, 비디오 메일이라는 형식이 자신에겐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얼굴을 맞대거나 전화로 이야기한다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비디오카메라를 향해서 일방적으로 말을 거는 건 아무래도 근질근질해서, 하기 껄끄런 이미지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토는 편지라는 형식을 골랐지만, 지금의 대화로 나노하가 납득할 리도 없다.
“으―. 유토 군, 박정해.”
“뭐어. 향후를 위해 기억해 두는게 좋다구.”
뺨을 퉁퉁 부풀리고 있는 나노하를 보고도 시원스런 얼굴을 무너뜨리지 않는 유토.
그걸 보다 못한 알리사가, 이거 참 하는 느낌으로 한숨을 내쉬며 나노하를 도우러 나섰다.
“비디오 메일 정도 별 상관 없잖아. 닳는 것도 아니니까.”
“싫은 건 싫어. 본인이 할 마음 없다는 거니까 별로 상관 없잖아.”
의지할 데 없는 유토에게, 소녀들은 얼굴을 마주 보고 어깨를 움츠린다.
평소대로 담담한 태도를 보이는 유토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그녀들이 느끼기엔 아직 이해가 모자란 모양이다.
유토 입장에서는 역으로 왜 그렇게까지 비디오 메일에 얽매이는지가 의문이다. 편지에는 편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는 법인데, 꼬맹이들은 그런 걸 모르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자신도 손으로 편지같은 걸 쓸 기회가 거의 없었던걸 떠올린다. 이전에 편지를 썼던 건, 저번 세계의 중학생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아침에 있었던 일 화내고 있어?』
염화로 슬쩍 말을 걸어오는 나노하.
나노하가 말하고 있는 건, 오늘 새벽에 마법 훈련할 때 일어난 일이다.
드디어 오른팔의 깁스를 풀어서 완쾌된 유토는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깨닫곤, 가벼운 마음으로 나노하에게 모의전을 제안했던 거다.
물론 나노하가 진심으로 나오면 순살 당해 버릴 테니, 디바인 버스터 빼고, 디바인 슈터는 2발까지. 3미터 이상의 높이로 비행하는 건 금지 등등 핸디캡을 잔뜩 단 뒤의 이야기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핸디캡 너무 지나쳐.”라고 나노하가 불만을 표했지만, 유토나 유노가 보기에는 그것도 너무 부족할 정도였다.
그 성장속도·기술·마력. 마도사로서 자신이 얼마나 규격외인지를 빨리 인식시켜줘야 한다고 유토와 유노가 결탁한 걸 나노하는 알 리도 없다.
모의전의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유토의 녹아웃. 견제를 위해 쏜 디바인 슈터의 일격에 어이없이 격침당한다고 하는 지나치게 한심한 결과였다.
쏜 쪽도 맞은 쪽도, 디바인 슈터가 평범한 마도사를 상대론 일격으로 졸도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비극이다.
봐주든 핸디캡을 붙이든 간에 나노하를 상대로 할 때는 앞으로 조금도 방심·과소평가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유토는 맹세했다.
『아니, 그건 아니니까.』
질문을 들은 유토 쪽은, 예상치도 못했던 말에 무심코 쓴웃음을 흘려 버린다.
나노하 안에선 자신이 그렇게나 소인배로 인식되고 있는 건가―라고 마음 속으로 약간 쇼크를 받으면서, 나노하의 물음을 부정한다.
『으―, 그럼 어째서야―?』
『글쎄?』
다시금 뺨을 부풀리는 나노하에게 얼버무리듯 미소를 띄워,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기, 유토 군?”
“응―?”
그러자,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스즈카가 입을 열어 유토의 표정을 살피듯 고개를 기울인다.
“공책 필기의 답례, 조만간 해 주겠다고 했었지?”
그 한마디로 스즈카가 말하려고 한 걸 느껴, 유토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분명 유토는 학교를 빠지고 있었을 때랑 팔이 나을 동안 스즈카가 공책 필기를 해 줬던 빚이 있다. 전날, 깁스를 풀었을 때 조만간 어떠한 형태로든 스즈카에게 답례를 해 주겠다고 선언했었다.
“오오! 그 방법이 있었나!”하고, 스즈카의 의도를 느낀 알리사도 히죽히죽 미소를 띄운다.
“무리해서까지 해 달라고 말하진 않을 건데, 안되려나?”
“흐흥―, 남자라면 한 말은 지켜야지?”
소극적으로 부탁하는 스즈카와, 왠지 이겼다는 듯 자신만만한 알리사. 그 뒤에선 나노하도 고개를 응응 끄덕거리며 염화를 보낸다.
『그러고 보면 저번에 레이징 하트를 빌려 줬었지. 그 답례로 해달라는 건 아니지만, 부탁을 들어주면 기쁠지도~.」
『…….』
그랬다. 자그만 장치라고 할까 보험이랄까를 위해, 유토는 나노하에게서 레이징 하트를 빌렸었다.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 하룻밤동안 빌릴 수 있었는데, 이유를 나노하에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을 하나 만든 꼴이 되었다.
“……에이구야.”
스즈카와 나노하 두 사람몫의 빚이 있는 유토는, 그걸 뿌리칠 만한 이유도 떠올리지 못해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커.”
그게 쓰키무라 저택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유토가 쓰키무라 저택에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메이드가 리무진으로 마중해 주었지만, 이런 저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집에 초대받는 것도 유토에게는 첫 체험이다. 서민인 유토가 압도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설령 그걸 예비지식으로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래……?”
“그렇게 놀랄 정도가 아니잖아. 자, 가자.”
자그맣게 중얼거린 소리에 반응하는 두 소녀에게 “이러니까 부자란 것들은……”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년. 동정하는 듯이 그 어깨를 통통 두드리는 트윈테일 소녀. 이 구도를 쓰키무라 집안의 메이드, 노엘 K. 에를리히카이트가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오오.”
“냐~.”
쓰키무라 집안의 메이드이자 노엘의 여동생인 파린 K. 에를리히카이트에게 안내받아 응접실로 다리를 디디자, 한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유토의 다리로 바짝 다가왔다.
유토는 바로 쭈그려 앉아, 새끼고양이를 어르듯 그 턱을 쓰다듬기 시작하곤,
“냐―.”
“냐옹~.”
“냐옹?”
“냐~.”
“니야아아아.”
“냐―.”
“니야아―.”
“냐아.”
“냐.”
그리고 유토에게서 조용히 떨어지는 새끼고양이와, 그걸 손을 흔들며 보내는 유토. 소녀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걸 보고 있었다.
“유, 유토 군, 지금 거 뭐야?!”
“너, 혹시나 고양이랑 이야기한 거니?”
“에? 혹시나 너희들은 이야기 못해?”
라고 놀란 듯이 대답하는 유토에게 침묵으로 답하는 소녀들.
침묵은 잠시간 이어져, 이윽고, 유토가 기막혀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지 말은 통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알리사와 유토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으음―, 근데 뭐야 이 냥이천국. 이건 중독될지도 모르겠네.”
한바탕 달리다 돌아온 뒤, 파린이 우린 홍차로 목의 갈증을 축이며 새끼고양이들과 장난치는 유토.
이 저택에 고양이들이 잔뜩 있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새끼고양이들을 눈앞에 두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누그러지는 법이겠지.
그런 유토를 알리사와 나노하가 수상쩍은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네가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위화감이 있어…….”
“그치~.”
“너희들 안의 나는 대체 어떤 이미지야?”
“냐―.”
자못 의외라는 듯이 유토가 노려봤지만, 그 머리와 무릎에는 새끼고양이가 올라타 있어서 아무런 위엄도 없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유쾌범에 괴롭힘쟁이. 자신이 즐거우면 그걸로 장땡이라는 것 같은?”
“음, 대부분 정답인데.”
“냐―.”
“……정답이구나.”
알리사와 나노하의 사양없는 말을 시원스레 긍정하는 유토.
그런 친구사이의 대화에 쓴웃음짓는 스즈카. 사이 좋은 건 변함 없지만, 좀 벗어나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저기, 유토 군. 그 애들이 마음에 들면 언제든지 놀러와도 괜찮으니까.”
“응―, 뭐어, 기회가 있으면―.”
무릎에 올라탄 새끼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하는 유토. 유토에겐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여자 셋이 있는 곳에 남자인 자신이 홀로 뛰어들어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반 녀석들을 꼬셔서 여자애 집에 밀어닥치는 것도 뭔가 잘못된 듯한 기분도 든다. 후딱 유노를 포함해서 마법을 까발려 버리면 된다고 유토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스즈카, 촬영 준비 됐어―.”
그런 유토의 생각을 끊은 건, 비디오카메라를 삼각대에 설치한 파린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보자 손을 흔들면서 달려오는 파린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꺄아악?!”
“와앗, 파린 씨?!”
그리고 그녀는 넘어졌다. 다리에 걸릴만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덜렁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거구나 하는 묘한 감개를 안으면서, 유토는 파린에게 손을 빌려줘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냐―.”
“비켜줘.”
“야옹―.”
“냐옹―.”
머리나 무릎에 타 있는 새끼고양이들은 눈꼽만치도 움직이지 않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대로 괜찮잖아. 모처럼 이렇게 됐으니, 그대로 찍어 버려.”
“진짜냐.”
유토가 새끼고양이들과 교섭하고 있는 사이 파린은 스스로 일어났고, 알리사는 수상쩍은 미소를 띄우며 그런 제안을 꺼냈다.
“아, 그건 괜찮을지도.”
“응응. 찬성―!!”
기회라는 듯이 스즈카와 나노하도 알리사의 제안에 동의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대로 고양이들에게 구속당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유토를 중심으로 비디오 메일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난 뒤는, 어찌저찌하다 넷이서 게임 승부를 하게 되었다.
“아우으으, 또 킹 봄비가―.”
“후하하하, 꼴 보거라―. 너희들 따위 내게 이르지 못하니―.”
“책읽듯 말하는 게 더 열받네…….”
“유토 군, 장애물 설치 너무 정확해…….”
“흐응,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이야말로 승리의 비결.”
“자기가 메카 봄비인데도 출동하지 않고, 그대로 남한테 들러 붙이다니 뭐 그리 필사적이야.”
“기본이에요, 기본. 후하하하―.”
라며 유토는 분위기를 타고 있었지만, 남은 세 사람이 결탁해서 유토를 집중공격하는 걸로 허무하게 패배하는 꼴이 되었다.
“보드 게임에서 여럿이 짜고 한 명을 집중공격 하는 건 유치하지 않아?”
“에헤헤―, 유토 군. 이기면 장땡이라는 말 알고 있어?”
아스라 안에서 놀았을 때, 유토가 나노하에게 잔뜩 했던 말을 기회라는 듯이 흉내내는 나노하.
“너, 점점 성격 나빠지는데.”
“유토의 영향이구나.”
“유토 군의 영향이네.”
“에엣, 다들 너무한데?!”
세 소녀의 말을 어디서부터 태클 걸어야 할지, 될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유토는 고민했다.
“그럼, 잘 부탁해.”
“제대로 전하라고.”
“오케이―.”
노엘에게 자택까지 배웅받은 유토의 손에는, 이번에 찍은 DVD-ROM 외에도 책이나 영화 DVD가 든 봉투가 잔뜩 들려 있었다. 그 사이에는 이번에 찍은 것과는 별개로, 나노하와 유노가 찍은 마법관련 화제가 들어간 디스크도 섞여 있다.
마법관련 디스크를 뺀 나머지는, 소녀 셋이 페이트에게 빌려주는 것들이다.
그걸 어째서 유토가 맡아야 하느냐면, 다음 휴일에 마력 관련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관리국 본국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나노하도 본국에 가고 싶어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일은 가족끼리 나갈 예정이 있어서 이번은 지켜보기만 하는게 되었다. 규약에 의해, 설령 아스라에 탄다고 해도 페이트랑 만날 수가 없다는 것도 컸었겠지.
“그러고 보면 유토는 페이트한테 아무것도 안 빌려주니?”
유토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건, 유토를 제외한 세 사람이 모은 것들이고, 다음날 자기 집에서 가져갈 유토의 물건은 전혀 섞여 있지 않다.
“음―, 일본 문화의 상징이라거나, 정조교육에 관한 걸 얼마간 보낼까 하는데.”
“정조교육이라니…….”
“이래저래 폐쇄적인 환경에서 자란 애니까. 모르는 것들이 이것저것 잔뜩 있어. 수치심이라거나, 수치심이라거나. 가급적 빠르게 그걸 교정해 주고 싶어.”
유토 개인으로선 페이트가 장래에 노출이 늘어나는 사태가 눈에 보양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수치심도 안지 않는 건 인간으로서 어떤 건지가 굉장히 불안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저거다 보니 기본적으로 수치심이 빠져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친구로서 일반적인 교양은 쌓게 해 주고 싶다는 게 유토의 마음이다. 그 개인으로서도, 부끄러움 없는 여성이라는 건 큰 마이너스 포인트기도 하다.
“유토 군이 멀쩡한 소릴 하고 있어…….”
“놀랍네.”
“분명 내 빛으로 물들여 주겠어! 같은 소릴 하면서 이상한 것들만 보내는 게 아닌가 했었어.”
“난 어디의 금빛 대사냐.”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 유토는 분개했지만, 평소의 행실을 생각하면 타당한 부분도 있었고, 알리사의 말도 꼭 틀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지.
“아하하. 그럼 유토 군, 또 학교서 봐.”
“바이바이―.”
“또 봐―.”
“아―, 담에 봐―.”
세 사람이 리무진에 타는 걸 손을 흔들며 배웅하면서, 페이트에게 수치심이라는 걸 가르치기 위해서는 뭘 빌려주는 게 제일 좋을지 유토는 고찰했다.
다만, 하룻밤 내내 생각한 끝에도 구체적으로 뭘 어쩌면 좋을지가 떠오르지 않아, 허무하게 좌절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