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화 앞으로, 알아두시기를.
“이렇게 되어, 오늘부터 새로운 친구가 되는 해외에서의 유학생입니다. 페이트 양, 인사 해요.”
“저기, 페이트 테스타로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곤 교실 단상에서 인사를 하는 페이트는, 보는 것만으로도 딱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나나 나노하 등을 알아보고도 저 상태인 거니까, 아니었다면 어떤 상태였을런지.
훈훈하기도 하고, 조금 조마조마두근두근하기도 하는데, 이게 아이를 가진 부모, 혹은 동생을 지켜보는 형이나 오빠의 심경인 걸까.
하지만, 뭐어, 이 세상, 이래저래 잘 돌고 있구나. 턱을 괴면서 이렇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떠올린다.
페이트의 재판 결과는 예상대로 보호관찰처분이라는 걸로, 실질적으로 무죄. 프레시아의 경우에는 수백년 단위의 유폐라는 처분――이 본래의 형이 되었겠지만, 그 로스트로기아의 영향 하에 있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던 점, 그 외도에 사법거래등등에 더해, 프레시아의 병환까지 있어서 관리국의 감시 아래 있는 병원에서 요양중인 모양이다. 마력도 대폭 봉인되고 외출 금지 등 많은 제한은 붙었지만, 어찌 보면 무죄 처분 같은 형태다.
어둠의 서 사건에 대해 페이트와 나노하에게 이야기한 결과는, 이쪽도 당연하게 둘의 협력을 얻을 수 있었고――뿐만 아니라, 어째서 좀 더 빨리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거꾸로 화냈다. 이미 하야테는 둘에게 있어 친구기에, 이쪽도 예상 범위 안이었지만.
그렇게 되어 내 예상대로 일은 진행되어, 나노하·페이트 VS 비타·시그넘의 모의전을 거쳐(결과는 물론 비타·시그넘의 압승), 둘의 동의 하에 링커 코어를 수집. 현재는 나노하와 페이트의 디바이스 강화, 아스라의 아르크 앙 시엘 설치 및 메인터넌스 대기 상태다. 나노페의 회복을 기다리고, 둘의 재활훈련 대신에 모의전을 진행한 뒤, 내 링커코어를 수집, 어둠의 서 소멸 작전 수행 순서겠지.
그런데, 어째서 페이트가 세이쇼에 전학해 온 거지? 아스라 정비 중에 린디 씨를 포함한 아스라 승무원들이 볼켄리터의 감시라는 명목으로 우미나리에 이사해 올 건 예상 대로였지만, 거기에 페이트까지 따라온 건 조금 의외였다. 페이트의 성격을 생각하면 입원한 프레시아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선 페이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어머니가, 나같은 어린애는 제대로 학교에 다녀서, 친구랑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하라고.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잔뜩 들려 달라고 하셔서……”라는 모양이다. 쓸쓸함이랑 기쁨이 반반 섞인듯한 페이트를 보고 내 보호욕구가 치솟은 건 비밀이다.
이런 사정으로, 매 주 한 번 프레시아를 만나러 가는게 페이트에겐 가장 큰 즐거움이란 모양이다.
꼼꼼히 생각해 보면 원작이랑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일부러 린디 씨 등이 이사해 온 건 아마 페이트를 위한 거겠지. 사전에 프레시아랑 이야기해서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던 걸지도 모른다. 진상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페이트가 행복할 것 같으면 뭐, 괜찮지 않을까.
내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조례가 끝나고, 반 친구들이 페이트를 둘러싸고 질문 공세를 시작했다.
음, 이렇게 잔뜩 둘러싸고 질문 공세를 하는 것도 일종의 괴롭힘이구나, 이래서야.
남 일처럼 따뜻하게 지켜보고 있었지만, 마침 인파 속에 생긴 틈으로 페이트랑 눈이 마주쳐 버렸다.
‘어, 어쩌지?!’
염화를 안 써도, 그 표정이 여실히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니, 음, 나한테 물어도 곤란해. 자랑은 아니지만, 난 사람을 막는 건 잘 못한다고. 모르는 척을 하려고 해도, 페이트의 눈길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고 절실히 구조를 바라고 있다. 지금 당장에라도 염화를 쓸 것 같은 기세다.
『어, 어쩌지, 유토? 도, 도와줘.』
와아이, 정말 염화 날리셨다고, 어이. 에에잇, 그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눈빛은 관둬!
나는 참다못해 눈길을 피하고, 반장에게 제스처로 도움을 요청한다.
다행히 총명한 반장님 알리사 배닝스는 바로 내 의도를 눈치챈 모양인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반 아이들의 고리쪽으로 향해 간다.
“자―자, 막 전학온 유학생한테 다들 몰려들어서 웅성대지 마!”
알리사의 눈길이 “빚 하나 진 거다?”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마.
“아하하, 페이트 인기 좋네.”
“뭐, 초등학생때 전학이라는 건 이런 법이잖아.”
능숙히 반 친구들의 질문을 정리해 나가는 알리사의 모습을 보고 어깨의 힘이 빠졌을 때 이쪽으로 오는 스즈카와 나노하.
“페이트를 직접 구하러 안 가도 괜찮았어?”
라며, 뭔가를 함축하고 있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나노하. 이 녀석은 아직도 나와 페이트 사이를 이상한 쪽으로 해석하려고 하고 있다.
“적재적소. 저런 건 알리사에게 맡긴다. 내 차례가 아냐.”
“아하하, 그런 걸로 해 줄게.”
“그런 걸로 해 둬.”
의미심장하게 마주 웃는 스즈카와 나노하를 보고 약간 울컥했지만, 여기서 화내면 어른 값 못하는 거지.
신사인 자, 이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거나 해선 안 되는 법이다.
“아, 점심에 우리는 페이트랑 같이 밥 먹을건데, 유토 군은 어떡할래?”
“안 갑니다.”
히죽히죽거리며 물어보는 나노하에게 즉답. 세이쇼는 급식이 아니라 도시락 지참이기에, 기본적으론 사이 좋은 친구들끼리 옥상이나 안뜰, 교실 등에서 적당히 자리를 잡고 먹는 식이다. 물론 우리 정도의 나이면 아무래도 평소에 남녀가 섞여 있는 그룹은 적고, 그건 나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방과후에는 같이 놀거나 하더라도, 점심밥까지 같이 먹거나 하진 않는다.
“에―, 페이트, 유토 군이랑 갈이 점심 먹는 거 굉장히 기대했었어?”
“응응, 친구로서 페이트의 기대를 배신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
둘의 악의가 비쳐 보이는 건 분명 기분 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상대가 이 둘, 아니 알리사를 포함한 셋이라면, 나는 어렵지 않게 평소의 악우들과 점심을 보낼 수 있겠지. 딱히 페이트랑 점심을 먹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일부로 학교에서 여자 넷에 섞여서 점심을 먹으면 아무래도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잘 생각해 보면 여름 축제 이래로 그런 감각은 거의 마비됐구나. 그래도, 역시 점심까지 같이 먹는 건…….
――점심시간.
“에, 유토 군은 따로야? ……그렇구나. 그건 유감, 일지도. 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말아 줘. 난 괜찮으니까.”
페이트 양,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말해도 설득력 없습니다. 거기다, 학급 내의 눈길이 일제히 나한테 모여서 내가 악역인 분위기인데요.
하아, 하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면서 각오 완료. 어쩔 수 없네.
“오늘만이니까.”
“아, 응!”
내가 도시락을 가지고 옆으로 가자, 페이트가 꽃이 활짝 피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에이고야. 거기 3인조, 히죽거리는 표정으로 이쪽 보지 마.
“뭐, 뭔가 잔뜩 있네…….”
“뭐어, 요즘은 뭐든 비슷한 성능이고, 겉보기로 골라도 괜찮지 않나?”
“그래도 역시, 메일 성능이 괜찮은 녀석이 좋지~.”
“카메라가 괜찮으면 여러모로 즐거워.”
“으으…….”
세 방향에서 날아오는 서로 다른 의견을 들으며, 페이트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휴대폰 카탈로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세 사람의 의견이 각각 나뉘어 있어서 초보자를 어지럽히지 말았으면 싶긴 하지만, 눈앞의 광경 자체는 훈훈하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
문제인 건……
“어째서 내 자리에 모이는 거야?”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이 네 사람은, 어째선지 쉬는 시간에 일부러 내 자리에 모여들었다.
넷 중 한 명 자리서 모여도 되잖아?
“그치만, 유토 군쪽에선 절대로 안 오고.”
미묘하게 불만스러운 듯이 뺨을 부풀리는 스즈카에게 손에 든 책을 보여준다.
“보이는 대로, 나는 책 읽는 중인데.”
“애초에 페이트를 위해서 휴대폰 카탈로그 모아 온 거 유토 군이잖아?”
내 말은 화려하게 무시당하고, 나노하는 여전히 히죽거리는 눈길을 내게 향하고 있다.
응, 확실히 어제 가전 양판점에 건프라 사러 갔을 때, 페이트가 휴대폰을 안 가지고 있는 게 떠올라서 덤으로 카탈로그를 모아온 건 나다.
“카탈로그는 너희한테 넘겼으니까, 딱히 내 자리로 올 필요는 없지?”
“무슨 소리야. 거기까지 했으면 남자로서 마지막까지 뒷바라지 하라고.”
“오해를 부르는 말투는 관둬.”
지긋이 노려보지만, 알리사는 흐흥~ 하고 가슴을 펴기만 할 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이 녀석.
“미안. 귀찮, 았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추욱 침울해지는 페이트를 보고 당황스레 변명한다. 귀찮다기보단 단순한 의문인 것 뿐이고.
“그래서 페이트에게 유토 군이 주는 어드바이스는?”
“아니, 뭐든 괜찮지 않을――까?”
스즈카의 흐름을 시원스레 무시하는 말에 대한 대답에, 세 방향에서 차가운 눈길이 나를 찌른다.
날더러 어쩌라고? 당사자인 페이트는 그런가―, 하고 끄덕이며 다시 카탈로그에 집중중이니까 문제 없잖아.
“……적당히 후보 정한 다음, 그 뒤는 가게에서 실제로 보고 정하면 괜찮잖아. 아니면 다른 애랑 같은 걸로 맞추든가.”
“그렇구나. 그런 방법도 있구나.”
셋의 눈길을 견디기 힘들어 그렇게 말을 꺼내자, 페이트는 꾸밈없이 고개를 응응 끄덕이는데 반해,
“미묘하게 어긋난 소리 하네, 유토 군은.”
“30점.”
“의외로 얼간이?”
“……어떻게 대답하면 만족할 건데.”
페이트에게는 들리지 않게, 각자 멋대로 중얼거리는 세 사람을 보고 나는 깊고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결국 방과후에도 넷이랑 함께 하게 돼서, 페이트의 휴대폰을 사고 그대로 미도리야까지 어울려 버렸다. 왠지 완전 피로가 가득해서 힘들다.
그래도 뭐, 다른 애들이랑 즐거운 듯이 휴대폰을 만지는 페이트를 곁눈질로 슬쩍 본다. 막 만났을 때 어딘가 어두운 분위기를 띠던 페이트도 좋지만, 여자애는 역시 이렇게 즐거운 듯이 싱글벙글 미소짓는게 제일 어울린다. 페이트를 보고 있으면 나도 왠지 회복되는 기분이 든다.
“저기, 유토 군.”
“응―?”
앞쪽에 앉은 스즈카의 목소리에 그쪽을 돌아보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페이트랑 같이 있어서 즐거워?”
이 자식은 갑자기 뭔 소릴 하는 거야. 대답 대신에, 시큰둥한 눈길을 그 히죽거리는 얼굴에다 한가득 향해 주기로 한다.
“후훗. 유토 군, 페이트를 볼 때 어떤 표정 짓는지 깨닫고 있어?”
“………….”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말이 막혀 버린다.
“어떠냐니……평범……하겠지?”
약간 틈을 두고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도 힘이 없었다. 스즈카에게도 그건 전해진 모양이라, 숨죽여 자그맣게 쿡쿡 웃어서 그게 또 나를 언짢게 만든다.
“흐응―, 그게 유토 군의 평범이야? 헤―, 헤―.”
전에 없이 도발적인 스즈카를 상대로, 말 없이 손가락을 굽혀 요요요 하고 손짓한다.
“? ……앗.”
“너도 나노하도 이상한 억측이 넘친다니까.”
무방비하게 고개를 들이댄 스즈카의 뺨을 찌른다. 어린애 특유의 포동포동한 감촉이 손끝을 되밀지만, 신경 쓰지 않고 빙글빙글 돌리며 누른다.
“미, 미안해, 아하하.”
웃으면서 사과해도, 전혀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데요. 뭐, 용서해 주기로 하자.
“다들 사이 좋네.”
스즈카랑 장난치는 모습이 페이트의 눈에 들어간 모양이라, 페이트도 왠지 즐거운 듯이 싱글벙글 웃고 있다. 우리가 보낸 비디오 메일에서도 나름대로 분위기는 전해졌을 테지만, 이렇게 같은 자리에 있으면 또 다른 감개를 느끼는 거겠지.
“응, 그 말 대로야.”
일부러 부정할 만한 것도 아니기에 그 말에 긍정하자, 나노하가 기막힌 듯한 눈길을 향하며 입을 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유토 군은 굉장히 잘난체 한다니까.”
“응. 믿음직 스럽겠지?”
“아니아니, 의미 모르겠으니까.”
알리사에게서 백핸드로 딴죽을 먹었다. 나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일부러 입 밖으로 이야기할 만한 건 아니다.
“후훗.”
“뭐야, 그 의미심장한 미소는.”
“아니, 별로? 후후훗.”
“무진장 악인같은 미소야아.”
“유토 군은, 그런 표정 어울리지~.”
입가를 일부러 당겨올리며 웃어 봤더니, 나노하와 알리사가 굉장히 맘에 안 드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 발짝 물러나고, 페이트와 스즈카는 왠지 웃고 있었다.
“그렇지? 그렇지?”
“칭찬 안 했어 칭찬 안 했어.”
마음속 깊숙히 지친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알리사는 지금 본 맘에 안 드는 광경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젓고 페이트 쪽을 돌아본다. 그 표정은 전에 없이 진지했지만, 어딘가 떨고있는 듯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저기, 페이트. 아까부터 이상하게 생각한 게 있는데 하나 물어도 괜찮아?”
“응, 뭐야?”
페이트의 대답을 듣고, 알리사는 한 숨 돌린 뒤 말했다.
“왜 너, 건담 알고 있어?”
“……에, 에?”
알리사의 질문이 어떤 의돈지를 이해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페이트. 나는 아아, 하고 알리사가 말하려는 게 뭔지를 느꼈지만, 끼어들지 말고 지켜보기로 한다.
“이쪽의 상식, 아니야?”
눈을 둥그러니 뜨고 대답하는 페이트에게, 알리사는 고개를 크게 가로젓는다.
“단순히 건담을 알고 있는 정도라면 나도 놀라진 않아. 건담이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건 확실하고……그래도.”
거기서 말을 자른 알리사는, 나를 돌아보며 손가락을 확 내민다.
“여자애고 외국에서 산 네가 저거랑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이상하잖아!”
알리사가 하는 이야기는 가전 양판점에서 휴대폰을 산 뒤의 일이다. 요는 페이트의 쇼핑에 따라간 김에 평소의 습관대로 내가 건프라 코너를 들여다보고, 따라온 페이트랑 거기서 나란히 건프라에 대해 약 한시간 쯤 이야기한 걸 말하는 거겠지. 뭐어, 이야기했다곤 해도 일방적으로 내가 해설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물론 일반적인 여자 초등학생이라면 그런 걸 듣는대도 즐거울 리 없고, 나도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서 다른 애들에게 해설같은 걸 한 적은 없다. 하지만 페이트는 정말로 흥미로운 듯 이야기를 듣고 하나하나 감탄도 해 줬기에 나도 무심코 열기가 들어간 해설을 해 버렸다. 물론 다른 애들은 이야기를 따라오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지만. 자신의 취미가 얽히면 뜨거워 지는 건 오타쿠의 나쁜 버릇이다. 조금 반성.
“그런, 거야?”
“그래! 왜 그렇게 잘 아는 거야?!”
“에, 그, 유토가 X랑 G의 DVD를 빌려주고, 그 뒤에 G 제네레이션 F라는 게임을 본체랑 같이 빌려서 클리어 했으니까?”
뭐 이상한 거 있어? 라는 느낌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페이트를 보고, 알리사는 굉장한 기세로 이쪽을 돌아본다.
“다음에 알리사는 역시 너냐 라고 말한다.”
“역시 너냐―?! 아니, 말하게 한 건 너잖아?!”
죽죽 뺨을 집어당긴다. 불합리한데.
“먼가 문뎨라더?”
“잔뜩 있어! 페이트한테 뭘 보여준 거야!”
내 뺨에서 손을 떼고, 가슴을 펴며 포효하는 알리사에게 나는 히죽 웃으며 대답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남한테 권하는데 뭔가 문제라도? 딱히 억지로 보게만든 것도 강요한 것도 아니라고?”
“……으.”
“페이트 스스로 확인하고, 본인이 마음에 들어 한 거야. 남의 취미에다 불만을 토할 셈이야?”
“……윽.”
내 정론에 알리사는 분한 듯이 말이 막히지……만, 이윽고 체념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딱히 네 취미에다 대고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은 없지만, 페이트를 이상한 쪽으로 끌어당기는 건 그만둬 줘.”
“응, 괜찮아. 맡겨 둬.”
일본 초등학생의 일반 상식을 가르치는 의미에서라도, 절대무적인 지구방위대가 나오는 DVD 세트도 보여줬으니까 문제없다. 그 외엔 기초로서 가면라이더 BLACK도.
“둘은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에에, 건담은 세간 일반적으론 별로 여자애가 보는 게 아니지 않은가, 하는.”
“그래?”
“응. 비율로 말하면 적은 편이려나. 그래도 X랑 G부터 시작하다니, 유토 군은 역시 매니악하네.”
“냅둬.”
취미가 섞여있는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그건 페이트에 대한 정조교육도 섞여 있는 거다. 페이트가 수치심을 알게 하려면 뭐가 좋을지 여러모로 고민한 결과, 결국 좋은 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일단 일반적인 남녀 사이라고 할지 연애관 같은 걸 익히게 하는 게 간접적으로 수치심을 알게 하는 걸로 이어지지 않을까? 같은 내가 생각해도 억지 같은 결론을 내린 끝에 고른 선택이다. X는 건담 치고는 러브코미디 요소가 강하니까 딱 좋았다고. 수수하고, 애들한텐 잘 안 맞을 것 같긴 하지만! G도 여러모로 개성이 강하지만, 뜨겁고 재밌고 사랑 있고.
아니, 응? 페이트의 질문에 대답한 건 나노하랑 스즈카였는데, 지금 이야기엔 뭔가 걸리는 부분이 있다.
“혹시나 스즈카도 건담 알아?”
나랑 같은 걸 알리사도 눈치챈 모양인지, 내가 말하려고 했던 걸 그대로 대변해 주었다.
“언니가 기계 만지거나 하는 걸 좋아해서, 예전부터 꽤 로봇 나오는 애니메이션 같은 걸 봐서. 내가 기계 계열이나 공학 계열에 취미가 있는 것도 거기에 영향을 받은 거고…….”
에헤헤, 하고 부끄러운 듯이 웃는 스즈카.
나노하도 알리사도 친구의 예상치 못한 일면에 말이 막혔다. 페이트는 혼자 사태를 이해하지 못해, 눈을 둥그러니 뜨고 있지만.
의외다. 평소 스즈카의 외면과 성격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사실에 나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굉장히 의외였지만, 원흉이 시노부 씨라는 부분에서 왠지 굉장히 납득이 갔다. 노엘에게 일부러 로켓 펀치를 달거나 하는 인간이라면 그것도 충분히 그럴 법하다.
지금까지 화제로 삼지 않았던 건, 나노하나 알리사에게 배려하고 있었던 거겠지. 나랑 단 둘이서 이야기한 적은 없었고.
“혹시나 건담 외에도 망라했다거나?”
“응. 슈퍼로봇 나오는 건 대강 다 본 적 있어.”
“………….”
스즈카는 시원스레 말했지만, 혹시 나보다 잘 알고 있거나 한 건 아니려나.
스즈카의 끝없는 두려움을 실감한 기분이었다.
“아가씨들, 이쪽은 서비스입니다. 부디, 드셔 주세요.”
그런 소리와 함께 탁자 중앙에 과일 타르트 접시가 놓였다.
낯익은 목소리에 누군지 눈을 향해보자, 롱 코트를 입은 30대 후반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나한텐 낯익은, 페이트를 뺀 셋에게는 면식이 있는 남자는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도 안녕하세요 하고 가볍게 안사를 돌려준다.
남자는 초대면인 페이트를 향해 혼자서 호오 거리며, 자랑스런 표정으로 끄덕인다. 뭘 상각하고 있는지 미묘하게 예상이 가서 싫다.
“에, 에?”
“실례했군요. 페이트 양, 처음 뵙겠어요. 유토의 아버지 도미네 소마예요. 잘 부탁해요.”
혼자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는 페이트를 향해 자기소개를 하는 우리 아버지.
“에, 유토의 아버지? 처, 처음뵙겠습니다. 페이트 테스타로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이 전개는 기습이라고 할까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라, 페이트는 유달리 당황해 허둥지둥거리면서 인사를 돌려준다.
“그렇게 긴장 안 해도 괜찮아. 내가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적당히 상대하면 돼.”
“어이어이, 모처럼 막 돌아온 아버지에게 너무하구나.”
내 머리를 구깃구깃 쓰다듬는 아버지를 지긋이 노려본다.
“자기 아들을 빼놓고 그 친구한테 인사를 하는 건 어떤데? 아니 그보다, 왜 여기 있는 거야.”
“물론 귀여운 아들을 만나러 온 게 당연하잖아! 하하하, 네가 있을 곳은 휴대폰의 GPS로 언제나 파악하고 있으니까!”
구깃구깃 머리를 쓰다듬 당하면서 생각한다. 응, 우리 아버지지만 여전히 기력이 넘친다.
“……에, 에?”
“아아, 우리 아버지. 평소엔 해외 출장 가 있을 때가 많아서. 오늘 마침 일본에 막 돌아온 참이야.”
여전히 혼란 상태가 계속되는 페이트에게 간단한 사정을 설명한다. 다른 애들은 수업 참관이나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등에 면식이 있어, 그때 시원스레 사정은 설명 다 했었고.
여담이간 하지만, 페이트에게 빌려준 DVD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아버지다. 내가 생일 선물로 조른 것도 있지만, 초등학생이 자기 힘으로 그리 많은 DVD 세트를 모을 수 있을 리 없다. 좋게 말하면 소년의 마음을 잊지 않은 어른. 노골적으로 말하면 어린애를 졸업 못한 어른 오타쿠다. 어머니도 약간 이런 취미엔 곤란한 듯하지만, 한참 전부터 포기한 것 같다.
“페이트에 대해선 유토에게 자주 들었어. 사랑스럽고 좋은 애라고. 굉장히 비뚤어진 애지만, 앞으로 유토를 잘 부탁할게.”
“아, 예. 저야 말로.”
사랑스럽고 좋은 애, 라는 부분에서 페이트를 뺀 셋이 히죽거리는 눈길을 내게 향한다. 확실히 그렇게 말했지만, 결코 자발적으로 말한 건 아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의견을 늘어놓은 것뿐이고 내 주관으로 말한 건 아니다. 아니, 주관적으로 봐도 잘못되진 않았지만.
“응응, 뭣하면 나를 파파라고 불러 줘도 괜찮으니까. 페이트 같은 사랑스러운 애라면 언제든지 유토의 신부가 돼 줘도 괜찮아. 뭣하면 양녀라도 좋아.”
“에? 파파……?”
급작스런 이야기라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를 못했는지 페이트는 한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바로 그 의미를 이해했는지 순식간에 그 얼굴이 새빨개져 간다. 내 입장에선 새빨개진 페이트가 굉장히 사랑스러워서 좀 더 보고 싶었지만, 여기서 구조선을 내주지 않으면 이래저래 곤란할 것 같은 기분이 드니 어쩔 수 없다.
“가벼운 농담이니까, 진지하게 안 들어도 돼. 다른 애들이 우리집에 왔을 때도 비슷한 소리 했으니까.”
그걸 떠올린 건지, 다른 애들은 한결같이 쓴웃음을 띄우고 있다. 나노하도 알리사도 지금 페이트랑 비슷하게 허둥지둥거렸던 건, 뭐어, 나도 보면서 즐겁긴 했지만.
“농담이라니 유감스럽네. 아버지는 언제서도 어디서도 진심이라고? 페이트나 스즈카같은 사랑스런 여자애가 딸이 된다는 건 아버지로서 더없이 행복한 일이니까.”
“에에잇, 초등학생한테 할 말이 아니잖아! 됐으니까 이제 돌아가!”
꽤 진심으로 말한 것 같으니까 이 아버지도 정말 곤란하다. 내 고함도 뭐랄까 그, 가볍게 어깨를 움츠리기만 하고 괴로운 기색은 전혀 없다.
“하하핫. 말 안 해도 이 즈음에서 갈 생각이야. 나노하의 아버지, 어머니나 린디 씨하고도 이야기 한 뒤 가고 싶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어느샌가 린디 씨와 모모코 씨 등이 모여있는 쪽을 가리킨다. 아무래도 우리 자리에 올 때까지 가볍게 인사를 마쳐둔 모양이다.
“유토―, 돌아갈 때는 오랜만에 아버지랑 같이 돌아가자~.”
“아―, 예이예이.”
휙휙 매몰차게 몰아내고 한숨을 내쉰다. 싫지는 않지만, 남에게 소개하기엔 좀 창피한 아버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뭐어, 어머니와 함께 이런 나를 한 사람의 아들로서 소중히 다뤄주는 고마운 가족이긴 하지만.
“아하하, 여전히 즐거운 분이네. 유토 군의 아버지.”
“……나는 굉장히 피곤하다고.”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역시 유토 군의 아버지라는 느낌이 들어.”
“응응, 부모자식이라는 느낌이네―.”
응, 솔직히 안 기쁘다. 아무리 생각해도 칭찬하는 건 아니라고, 이 자식들.
“파파……아버지, 인가. ……응, 그래도…….”
여보세요, 페이트 양? 귀에 들리는 속삭임을 따라가 보자, 페이트는 뭔지 모를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이―, 하고 말을 걸려고 하다가, 페이트에게 아빠라고 말할만한 존재가 없다는 걸 떠올리고 그만뒀다. 린디 씨의 양녀가 되는 경우도 그렇다. 이 경우, 어떻게 말하는게 좋을까.
잘 생각해 보면, 하야테도 부모님은 안 계신다. 일단 우리 부모님에겐 하야테의 가정환경에 대해선 덮어뒀지만, 1년 이상이나 사귀고 있으니 자연스레 깨달아, 하야테도 친자식인 나랑 비슷하게 접해주고 계신다. 페이트가 바라기만 한다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친자식처럼 대해줄 건 틀림 없다.
한동안 할 말을 고민했지만, 결심한 뒤 입을 열기로 했다.
“뭐어, 페이트만 괜찮다면 마음대로 불러도 괜찮다고. 아버지는 분명히 기뻐할 테니까.”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재치 부족한 대사다.
“엣, 아, 나, 나는 별로.”
다시 당황해 허둥지둥거리며 변명하는 페이트를 보고 약간 쓴웃음을 짓는다. 프레시아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 린디 씨에게서 양녀 이야기가 나올지 어떨진 알 수 없지만, 페이트를 어린애로서 대해 주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사양하지 마. 페이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남한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아버지는 기뻐할 테니까.”
“아, 에에…….”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 안 해도 괜찮으니까, 적당히 적당히.”
진지하게 대답하려는 페이트에게 역시 쓴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저기, 저기, 유토 군.”
“……왜?”
이상하게 눈을 빛내는 스즈카를 보고 나쁜 예감이 가득 펼쳐졌다.
“혹시나, 지금 이야기 빙 돌린 프로포즈야?”
“에?”
“와.”
“헤에.”
“………….”
페이트가 놀라는 소리를 내고, 나노하와 알리사가 흥미진진한 듯한 소리를 흘린다.
“아니아니 아니니까. 왜 그렇게 되는데.”
“에―, 왜? 지금 이야긴 단순히 생각해도 그런 느낌이잖아?”
“단순하지 않으니까.”
“에, 저기, 유토?”
“그런 의도는 없으니까 안심해도 괜찮다고. 이 녀석들이 하는 말 너무 진지하게 듣지 마.”
“네가 그 소리 하지 마, 네가.”
“에에잇, 시끄러.”
“또 그러긴―, 유토 군 부끄럼쟁이라니까.”
“너, 건방져.”
“아야?! 왜 나만 딱밤이야?!”
“치기 쉬우니까.”
“넘해?!”
이래저래해서 페이트가 전학해온 뒤에도 변함 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은 흘러, 마침내 어둠의 서를 완성 시킬 때가 왔다.
이미 장소는 무인의 관리세계. 이 자리에 있는 건 나, 페이트, 나노하, 유노, 크로노, 알프에 더해 하야테, 볼켄 리터, 리인포스 뿐이고, 그 외에는 눈에 보이는 범위 내에선 벌레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 황야다.
여기서 내 링커 코어를 수집해서 어둠의 서를 완성, 하야테가 관리자 권한으로 어둠의 서의 방위 프로그램을 배출, 나 외의 멤버 전원이 방위 프로그램의 코어를 노출시켜, 아르크 앙 시엘로 파방! 하는 계획이 짜여 있다.
어둠의 서는 현재 관리인격, 즉 리인포스의 기동에 필요한 400쪽까지 수집을 마친 상태다. 그리고 크로노 등 관리국에 정규 소속된 사람들은 유사시를 대비할 필요가 있기에 수집은 할 수 없었던 모양이지만, 수집을 개시한 시기가 빨랐던 것과 나노하와 페이트의 협력도 있어서 꽤 느긋한 페이스로 수집이 진행된 모양이다.
이 뒤는 내 링커코어만으로 남은 266쪽을 수집하면 경사롭게도 어둠의 서는 완성된다. 아니, 나노하나 페이트 같은 애들도 50쪽이 안 됐던 걸 생각하면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이 비상식적인 느낌이다. 어쨌건, 스스로는 전혀 쓸 수도 없긴 하지만. 관리국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론 내 링커코어에선 260쪽보다도 많이 수집할 수 있는 모양이지만, 수집기간에 여유가 있었던 점과 완성시 실제로 주위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걸 우선한 결과, 제일 마지막에 수집하게 되었다. 수집에 희생된 야생동물들에겐 면목이 없지만, 방위 프로그램의 폭주에 말려드는 것보단 나으니 봐달라는 느낌이다.
“으으, 역시 긴장되네.”
정작 어둠의 서에 링커코어를 흡수당하는 단계가 되자, 아무래도 나도 긴장을 지울 수 없었다. 페이트도 나노하도 예외 없이 수집된 뒤 정신을 잃었으니까.
“네가 긴장하면 어떡하냐. 어차피 수집한 뒤에는 아무것도 안 할텐데.”
“아니, 뭐어, 그렇긴 한데. 계획의 발안자로선 역시 그, 책임감 같은 걸 느끼잖아?”
“에? 유토 군한티 그런 게 있었나?”
시그넘과 하야테가 지독하다.
“너무한데.”
하지만, 아무래도 내 아군은 한 사람도 없는 모양이라, 다른 사람들도 분위기에 이끌려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리 걱정 안해도 개안타. 나한틴 리인포스가 붙어 있고, 충분햐.”
라며 힘차게 선언하는 휠체어를 탄 소녀――야가미 하야테는 평소보다 더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400쪽의 수집이 완료된 시점에서 하야테는 검사나 그 외 여러 준비를 위해 아스라 함내에서 보호받고 있었다. 그 사이 관리인격에 리인포스라는 이름을 붙여 이래저래 이야기한 결과, 하야테는 지금까지보다 더더욱 기분이 좋은 상태다. (나는 몰랐지만, 400쪽 이상 수집한 뒤 주인인 하야테의 허가만 있으면 힘은 행사하지 못하더라도 실체화까진 가능한 모양.)
어둠의 서를 완성시켜 버리면 어쩔 수 없이 이별하게 되는 리인포스의 존재를 볼켄리터들이 하야테에게 전한 건, 방위 프로그램의 파괴라는 목적을 빼더라도 가능한한 하야테와 리인포스의 추억을 늘려주고 싶다는 의도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설령 함께 보낸 시간이 짧다고 해도, 그건 하야테에게 있어, 리인포스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는 거니까.
“거기에 시그넘, 비타나 샤말, 자피라도 있고, 나노하나 다른 애들도 백업해 준당카나.”
“그래. 리제 자매도 뭔가 있었을 때 도와줄 수 있도록 아스라에서 대기해주고 있어. 어지간한 일은 어떻게든 할 수 있어.”
“응 응. 크로노 군이 말하는 대로야. 다들 힘을 모으면 분명 괜찮아.”
“응. 그걸 위해서 바디시도 레이징 하트도 새로운 힘을 손에 넣었고.”
하야테의 말에 크로노도 수긍하고, 나노하와 페이트도 각자의 디바이스를 손에 든다.
“뭐어, 확실히 이 멤버가 모였는데 어찌 잘 안되는 일이 적을 것 같은 기분은 드는데…….”
여기서 누구든지 A랭크 이상의 맹자고, 힘을 모아 날뛰면 작은 나라 하나쯤은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곤란하다. 믿음직스럽다고 하면 믿음직스럽지만.
하지만, 나 외에도 불안을 안고 있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던 모양이다.
“주, 정말 어둠의 서를 완성 시켜 버릴 건가요? 좀 더 시간을 두는 쪽이…….”
“넌 아직 궁시렁 거리냐. 하야테가 한다고 정했으니까, 적당히 각오 굳히라고.”
혼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 비타에게 질책을 들은 건, 말할것도 없이 어둠의 서의 관리인격인 리인포스였다.
“아니, 그, 만에 하나, 주가 관리자 권한을 되찾을 수 없으면…….”
“긍까,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께 걱정 안해도 개안타니까―.”
이 대화가 몇 번이나 되풀이 됐던 건지, 하야테도 약간 곤란해 하는 것 같았다.
리인포스가 걱정하고 있는 것도 모르는 건 아니다. 혹시 하야테가 관리자 권한을 쓰지 못하고 폭주해 버리게 되면, 크로노가 그레이엄 제독에게서 물려받은 빙결의 지팡이――뒤랑달로 하야테는 빙결봉인을 당하게 된다.
물론 수호기사 일동이나 나노하, 페이트도 그런 대응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둠의 서를 완성 시키지 않으면 하야테는 생명을 잃고, 폭주해 버려도 결과는 마찬가지. 차선책으로서 하야테가 빙결봉인 되는 건 하야테 스스로가 바란 것이자, 어둠의 서에서 하야테를 해방할 수단을 찾을 시간을 벌기 위한 거기도 한 거다. 거기에 대해선 이 자리의 모두가 납득을 끝냈을 텐데, 리인포스만은 아직 결심을 못한 모양이었다.
“모두가 도와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그러니까 이번엔 우리 차례야. 괜찮아. 모두의 마음을 헛수고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도, 꼭 성공시켜 보일 텡께. 알겠제?”
리인포스의 몸을 자신의 눈높이까지 굽힌 뒤, 어머니가 아이에게 설득하는 말하는 하야테. 체격이나 나이를 생각하면 입장적으론 반대일 텐데, 그건 좀 우스우면서도 훈훈한 광경이었다.
“……제 주여, 알았습니다.”
이윽고, 하야테의 곧은 눈길에 리인포스도 진 모양인지 마지못해 끄덕인다.
“응, 그래야 어둠의 서――아니, 야전의 서의 축복의 바람이다.”
그런 리인포스를 하야테는 만족스러운 듯이 바라본 뒤, 이쪽을 돌아본다.
“그럼, 유토 군.”
“오케.”
불려서 하야테의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좀 아플지도 몰겠는데, 참아 줘.”
“앗써.”
하야테의 옆에선 이미 반지형 디바이스――클라르빈트와 어둠의 서를 스텐바이 상태로 두고 있는 샤말이 대기하고 있다.
“그럼, 다들, 이 뒤는 계획대로. 뭐가 일어나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해 줘.”
크로노의 지시에 각자 대답을 돌려주고, 나와 샤말을 둘러싸는 형태로 거리를 벌린 뒤 원진을 짠다.
“그럼……갑니다!”
“…………으!”
샤말이 클라르빈트를 써서 만든 ‘거울’에 팔을 찔러넣는 순간, 뭔가가 내 몸을 꿰뚫는 감촉이 느껴졌다. 고통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자신의 가슴에서 사람의 팔이 나 있는 광경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불쾌감이 느껴졌다..
『Sammlung.』 (수집)
샤말의 손에 있던 어둠의 서가 내 링커코어에서 마력을 수집해 간다.
“아……윽!”
온 몸에서 힘을, 아니 영혼을 빼앗기는 듯한 감촉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흐른다.
한 순간――혹은 10몇촌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감각 속에서 비명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이거?!”
처음에 들려온 건 샤말의 목소리.
“수집이 끝나지 않아――말도 안 돼?!”
“대체, 뭐가 일어났어?”
리인포스나 시그넘 등의 소리가 들려오지만, 몽롱한 의식 속에선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어, 단순히 자신 속의 힘만을 빼앗겨 간다.
“윽……큭…………아앗?!”
어둠의 서에 빼앗기는 힘이 기세를 붙여, 온 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격통이 덮친다.
“유토!”
“유토 군!”
페이트와 나노하의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그 고통은 사라지고, 대신에 온몸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날아가 버렸다.
“아……윽, 무……슨 일이?”
“괜찮냐, 유토!”
날아간 나를 알프가 안아 멈춰준 모양이었다. 등에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면서도, 끊길 것만 같은 의식을 어떻게든 이어 눈을 간신히 뜬다.
눈에 보이는 광경은 불길한 보랏빛 빛을 내뿜는 어둠의 서.
직접 수집한 샤말도, 나랑 마찬가지로 쳐날라간 모양인지 자피라와 시그넘이 받쳐주고 있었다.
리인포스나 비타도 경악과 동요를 드러내고 있으니까 이게 예상 밖의 사태라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뭐가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건……봉쇄 결곈가?!”
어둠의 서를 중심으로 결계마법이 발동된다. 자피라가 그걸 느꼈을 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행동을 일으키기 전에 붙잡혀 버렸다.
“뭔진 몰라도 위험해! 다들, 한 곳에 모여!”
크로노의 말에 모두가 내 주위에 모인다. 하야테와 나를 최후방에 두고, 어둠의 서를 경계한다.
『Anfang.』 (기동)
어둠의 서가 그런 소리를 낸 직후, 어둠의 서를 둘러싸듯이 세 개의 빛이 출연한 직후――그 소리는 주위 가득히 울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리인포스?!”
리인포스의 몸이 어둠의 서가 내고 있는 것과 같은 빛에 휩싸여, 바로 그 빛은 리인포스에게서 떨어져 어둠의 서와 동화했다.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로 얼이 나가 있는 동안 세 개의 빛과 어둠의 서는 희미하게 사람의 모양을 띄어간다.
어둠의 서는 홀쭉하고 젊은 남자. 그리고 세 개의 빛은 낯익은――하지만 확실히 그녀들과 다른 소녀들의 모습으로.
“저건……?”
“페이, 트.”
“그리고 주 하야테……인가.”
홀쭉한 남자는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소녀들의 모습은 걸치고 있는 옷이나 머리, 눈동자 색은 달라도 각각 나노하, 페이트, 하야테의 모습이었다.
“네놈들……뭐냐?!”
하야테를 지키듯이 선 시그넘이 레바테인을 쥐고 물음을 꺼낸다.
남자를 중심으로 떠오른 소녀들 속에서 한 사람――머리가 단발인 나노하를 닮은 소녀가 조소하는 듯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어둠의 서의 머티리얼. 앞으로, 알아두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