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화 다신 떨어지지 않아.
“결계 내부와 통신이 안 됩니다!”
아스라 내부는 돌연히 나타난 고대 벨카식 결계마법――봉쇄영역 탓으로 안쪽과 연락을 취할 수 없어 혼란에 빠져 있었다.
어둠의 서에 뭔가의 이변이 일어난 부분까지는 모니터 하고 있었지만, 봉쇄영역이 발생한 뒤로는 내부를 모니터하는 것은 물론, 통신조차도 되지 않는다.
이전에 볼켄리터들이 같은 걸 실연해 준 적이 있어 어느 정도 해석은 되어 있지만, 현재 발생하고 있는 건 그때보다도 강고해서, 내부로의 침입조차 굳게 막혀 있었다.
이 상태를 보면, 결계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 한 내부로부터의 전이도 불가능하겠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유토나 수호기사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면밀한 조사를 거쳐 세워진 계획이었을 거다.
그게 거의 끝나간다 생각하던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제독으로서의 경험과 감이, 지금 일어난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이라는 걸 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모니터에서 전해지던 상황은, 명확히 지금까지 일어난 어둠의 서의 폭주와는 달랐다. 나노하 일행이 내부에 갇혀있는 이상 무턱대고 아르크 앙 시엘을 쏠 수도 없다.
“린디 제독. 저희는 안으로 침입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건 좀, 평범한 상황이 아니니까요…….”
이번 작전에 동행한 그레이엄의 사역마, 리제 아리아와 리제 롯테. 평소엔 쾌활한 그녀들의 표정도 전에 없이 긴박한 표정이 되어 있다. 크로노의 아버지인 클라이드가 순직한 사건 이래로, 그녀들도 어둠의 서와 깊은 연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오랜 기간 조사를 계속해 왔었지만, 그런 그녀들이 보기에도 이번 사태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예, 부탁할게요. 그 멤버들이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어지간한 일이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겠지만…….”
전력적으로 AAA 클래스 이상의 마도사가 5명 이상이나 모여 있는 거다. 범죄조직 하나나 둘쯤은 간단히 섬멸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그만큼의 전력을 가지고서도 불안을 느끼기 충분한 무언가가 있었다.
“알았습니다. 리제 아리아와 리제 롯테, 출격합니다.”
“그 녀석들은, 우리가 책임지고 데리고 올게.”
그런 린디의 불안을 치우려는 듯, 아리아와 롯테 두 사람은 힘차게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또 거의 끝까지 가서 내가 모르는 게 튀어나오는 거냐……!”
알프가 지탱해준 유토가 초조한 듯 신음한다. 뇌리에 떠오르는 건 시간의 정원에서 있었던 일. 결과적으론 보다 나은 결과를 맞이하긴 했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누군가가 생명을 잃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도 저번과 비슷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나쁜 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방아쇠를 당긴 게 명확히 자신의 존재라는 것도.
밉살스레 노려보고 있는 곳에 있는 건, 나노하, 페이트, 하야테와 닮은 소녀와, 전혀 본 기억이 없는 남자.
그런 유토의 초조함을 비웃는 것처럼 남자는 우아한 동작으로 한 손을 들고 인사한다.
잘생긴 얼굴과 훤칠한 키에 하얀 수트라는 복장도 어울려 남자의 동작에선 기품같은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용모는 어느 인물을 연상시켰다.
경계심을 드러내면서도 하야테가 불쑥 한 마디를 꺼낸다.
“리인포스랑 닮았어……?”
매끈매끈한 은빛 머리칼. 유토 일행을 깔아보는 눈빛은 불타는 듯한 빨강. 거기에 남자가 풍기고 있는 분위기――기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건, 틀림없이 리인포스와 비슷했다.
“내 이름은 펠릭스 안조르게. 처음 뵙겠네, 야가미 하야테와 관리국 제군들. 그리고 오랜만이구나, 수호기사들과 관리인격――아니, 지금은 리인포스라 해야 할까.”
언뜻 보기에 우호적으로도 느껴지는 인사에 나노하 일행은 당황하고, 리인포스를 포함한 수호기사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서로 눈길을 나눈다.
“공교롭게도, 우리에게 네놈과의 면식은 없다. 단순한 자는 아니겠지……어둠의 서와 리인포스에 뭘 했나?”
힐문하는 시그넘의 소리는 딱딱했다.
수집된 유토 정도는 아니지만, 자피라에게 몸을 기댄 리인포스는 확연히 쇠약해져 있었다. 아까 전에 리인포스가 내뿜은 빛에 힘의 대부분을 빼앗긴 것 처럼.
유토에게 들은 이야기도 그랬지만, 자신들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는 어둠의 서가 자신들이 모르는 현상을 일으키고, 뿐만 아니라 거기서 명확한 의사와 지능을 가진 존재가 나타나면 평정을 지키라고 하는 쪽이 무리겠지.
“흐음, 그런가. 너희의 기억은 한 번 리셋한 채였구나.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홀로 납득한 듯이 끄덕이는 남자――펠릭스. 비웃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틀림없이 자신들이 모르는 뭔가를 파악하고 있는 남자에게 수호기사들은 뭐라 말하기 힘든 불안과 불쾌감이 솟아오르는 걸 억누르지 못했다.
“우리의 기억을 리셋했다고? 구라까지 마! 후딱 이쪽 질문에 대답해! 네놈들은 대체 누구고, 리인포스한테 뭘 쳐 했냐고!”
분노를 담은 비타의 말에 반응한 건 펠릭스가 아니라 그 주변에 머무르는 세 소녀 중 둘. 페이트와 하야테를 닮은 둘이 쿡쿡거리며 비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이게――――!”
그걸 도발이라고 받아들인 비타는 그라프아이젠을 거머쥐고 날아 오르려 했지만, 펠릭스가 입에 담은 말에 움직임을 딱 멈췄다.
“야가미 하야테와 리인포스, 그리고 너희를 어둠의 서에게서 떼어냈다. 야가미 하야테를 침식하고 있던 어둠의 서의 저주는 사라졌을 터다. 그러는 김에, 리인포스의 기억과 링크해서 공유를 받았다――이런 설명이면 되겠나?”
말도 안 돼, 라고 수호기사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저도 모르는 새 그 눈길이 리인포스를 향한다.
“녀석의 말은 사실이다. 나와 수호기사 시스템은 완전히 어둠의 서에게서 분리되었다. 우리 주도, 어둠의 서의 주박에서 풀려났어.”
리인포스 자신도 당황하면서 펠릭스의 말을 긍정한다. 어둠의 서는 본래 그 진정한 소유자만이 그 시스템에 간섭할 수 있다. 혹시, 그 외의 다른 자가 억지로 간섭하려고 하면, 주인을 먹어치우고 전생해 버리는 극히 폐가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까지 누구도 어둠의 서의 폭주를 멈출 수 없었다. 또한, 진정한 소유자라고 해도, 어둠의 서가 완성된 뒤에 관제 프로그램(리인포스)와 방위 프로그램 양쪽의 인정을 받지 않으면 관리자권한을 얻을 순 없다. 현재의 주인 하야테, 그리고 관제 프로그램인 리인포스를 개의치 않고 시스템에 간섭하거나 하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사태인 거다.
그런 일행의 동요를 비웃는 듯이――아니, 비웃으면서, 새로운 폭탄을 투하하는 펠릭스.
“야천의 서의 마지막 주, 그리고 어둠의 서의 최초의 주――그렇게 말하면 납득할 수 있을까?”
어둠의 서의 정식 명칭은 야천의 서――본래는 주인과 함께 여행하며, 갖가지 기술을 기록해 보존하기 위한 건전한 마도서였다.
역대 주인들에 의해 개변을 거듭한 야천의 서는 어느샌가 그 주과 주위에 파멸을 가져오는 제어 불가능한 위험물로 바뀌어 버렸다. 설령 파괴한다고 해도, 주가 될만한 소질을 가진 인간이 있는 곳으로 전이하여 다시 파멸로 이끈다. 오랜 시간 사이에 본래의 이름은 잃어, 어둠의 서라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어디까지나 우발적인 거였고, 개변을 거듭한 역대 주인들이 의도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라는 것이 조사 결과이자 크로노 등의 인식이었다.
“――――설마, 야천의 서를 어둠의 서로 개악한 건 너인 거냐?”
“개악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뭐, 모든 게 내가 의도한 대로라곤 하지 않겠지만, 대체로 의도 대로군.”
펠릭스는 크로노의 추궁에도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게 페이크라는 건 누가 봐도 명확했다. 오히려 그런 흐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의 연출을 하고 있는 것 처럼도 보였다. 자신의 콜렉션을 자랑하는 콜렉터, 혹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자랑하는 학자 처럼.
그걸 느낀 크로노는, 앞으로의 행동을 좌우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일부러 그 흐름을 따라가는 걸 택했다.
“네가 말하는 목적이란 건 뭐냐.”
그 물음에, 펠릭스는 잘 물어 주었다는 것 처럼 입가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영원한 생명과 결코 꺾일 리 없는 강력한 힘.”
“………………바보?”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라면 몰라도, 설마 현실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망상을 떠벌리는 사람이 있으리란 걸 믿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말을 흘리는 유토.
“――쉿. 본인은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 마지막까지 조용히 들으라! 심사가 뒤틀려서 이야기를 못 듣게 되면 우야노. 망상을 못 가리는 중2병 풀 전개라든가 생각해도 입 밖으로 말하마 안돼.”
“하야테, 직접 전부 말하고 있어…….”
“아.”
나노하의 지적에 하야테는 당황하며 입을 막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뜨뜻미지근한 눈길을 향하며 조용히 말하는 유토.
“얼간이.”
“으으, 원래는 유토 군이.”
“책임 전가 하지 마.”
“으―.”
훗, 하고 코웃음 치는 유토와 분한 듯이 신음하는 하야테.
갑자기 만담을 시작한 둘 탓에, 긴장감이라거나 긴박감 같은 것들이 싸그리 날아갔다.
펠릭스 쪽에서 눈을 떼거나 하진 않았지만, 크로노는 두통을 느낀 듯 얼굴을 찌푸린다.
“조금 입다물어 줘.”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만담을 계속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기에, 솔직하게 사과하는 두 사람.
“후, 쿠쿠쿠. 꽤 재밌는 아이들이네.”
한 편 펠릭스는 그런 대화로 기분을 해치지 않은 것처럼, 즐거운 듯 어깨를 흔든다. 그 옆에 있는 세 명의 소녀들은 약간 흥이 깨졌다는 듯한 눈길을 향하고 있지만.
“도미네 유토 군이었지. 확실히 그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냐. 영원한 생명과 꺾일 리 없는 강력한 힘. 양쪽 다 몽상같은 거니까.”
하지만, 하고 말을 자른 뒤, 그 손에 어둠의 서를 출현 시킨다. 유토가 딴죽을 걸고 싶었던 건 내용 보다도 말투 쪽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시점에서 딴죽을 거는 건 자중했다.
“야천의 서의 전생기능과 방위 프로그램이 폭주했을 때의 힘. 그 둘을 완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했을 때는 어떨까?”
어둠의 서의 폭주는, 방치하면 세계 하나를 멸망시킬 만치 지극히 위험하다.
공간 왜곡과 반응 소멸을 일으키는 걸로 대상을 섬멸하는, 아르크 앙 시엘 클래스의 힘이 있어야 가까스로 막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완전하진 않다. 봉인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파괴하면 그대로 새로운 주의 자질을 가진 자가 있는 곳으로 전생하는 걸로 무한히 재생해 버린다.
무한 재생 기능과 압도적인 마력을 한 개인의 의사 아래서 자유로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힘의 강력함은 헤아릴 수 없다. 아르크 앙 시엘이 폭주한 어둠의 서에 먹히는 것도 대상이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크다. 혹여, 적확한 지식과 판단력이 갖춰져 있다고 하면, 아르크 앙 시엘의 힘을 가지고도 일시적인 파괴조차 까다롭겠지.
폭주한 어둠의 서가 내뿜는 힘의 공포를 이야기로밖에 듣지 못한 나노하나 페이트 등과 어정쩡하게만 기억하고 있는 유토는 감이 바로 안 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지만, 크로노나 수호기사들은 그 말에 전율하며 몸을 떨고 있었다.
솟아오르는 공포와 혐오감으로, 반사적으로 반론을 입에 담는 샤말.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가능하고말고.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둠의 서를 주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율가동 가능한 시스템으로 재구성하고, 자신을 그 시스템과 일체화한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그 말이 의미하는 걸 이해한 크로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연다.
“요는 너 자신이, 주를 겸한 어둠의 서 그 자체가 되었다는 건가.”
“그 말 대로. 역시나 그 나이로 집무관이 된 값은 하는군. 이해력이 좋아.”
기특하네, 기특해 하며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로 하는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다. 어둠의 서를 구성하는 시스템의 번잡함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또한 하나의 생명체를 마법생명체로서 재구성한다는 건 미드칠더 등의 관리세계에도 존재하지 않고, 한때 프레시아가 갈구한 사자 소생과 마찬가지로 금단의 비술로 인식되는 종류다. 사역마처럼 인조 혼백을 빙의시켜서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것과는 별개의, 격이 다른 기술인 거다.
그 높은 난이도를 이해하는 크로노나 리인포스 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기에 흥이 오른 펠릭스는, 자못 자랑스러운 듯이 이야기를 잇는다.
“내 두뇌를 가지고도 쉬운 일은 아니었어. 재구성 프로세스를 구축할 때까진 좋았지만, 시스템의 기동에는 외부로부터의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보니, 그걸 모으기 전에 내 생명이 꺼질 상황이었지. 거기서 야천의 서의 기능을 응용해서, 프로그램화 한 자신을 메모리의 일부에 재워 두었네. 이렇게 필요한 마력이 모일 때가 올 때 까지.”
자신의 바람이 이뤄진 기쁨에선지, 그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어둠의 서의 폭주는, 네놈이 의도적으로 짜아넣은 거냐?”
그렇게 물은 시그넘의 목소리에 감정의 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둠의 서의 수호기사로서 기나긴 시간을 보내왔다. 처음이 어땠는지조차 떠올릴 수 없는 길고도 긴 시간의 흐름. 도구로서, 영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 속을 싸우며 보내왔다. 거기에 평온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감정을 얼리며, 싸우고, 죽이고, 살해당하길 반복하는 끝없는 여행. 그럼에도, 거기에는 기사로서의 긍지와 사명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펠릭스가 하는 말과, 거기서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 그 모두를 부정하려 하고 있었다.
그 물음을 들은 남자는 천천히 입가를 끌어올리며 비웃는다.
“그래, 모든 건 내가 바란 거다.”
축 내린 양팔을 펼쳐,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듯 목소리를 높인다.
“어둠의 서의 수집은 그 주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마력을 쌓는 과정. 단지, 그 기능은 완전하진 않았네. 일단 완성되어 버리면 그 이상으로 수집할 수는 없었고, 필요한 마력량에도 이르지 못했어. 따라서 수집이 끝날 때 폭주를 일으켜, 수집을 리셋시킨다는 번거로운 수단을 택해야만 했지. 덤으로 축적할 수 있는 건, 완성시 넘치는 마력과 폭주 후의 남은 마력 뿐이라는 치명적인 버그를 남겨 버렸어. 덕분에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굉장히 기나긴 시간이 걸려 버렸지만, 뭐어, 그것도 사소한 일이겠지.”
펠릭스는 수호기사들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인다.
“수호기사 제군, 너희의 덕분에 내 바람은 이뤄졌다. 감사하네. 더이상 너희에게 볼일은 없어. 내가 준 거짓된 기억을 믿고 끝없이 싸워온 너희의 모습은 실로 유쾌했었네.”
“웃기――”
“즉, 우리는 네놈의 손바닥 위에서 계속 춤춰왔다는 건가.”
하야테가 지르려던 고함을 막고, 조용히 묻는 시그넘. 그 음색에 분노는 샊여있지 않았고, 오히려 평온한 느낌마저 있었다. 소리를 낸 시그넘만이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로 어딘가 달관한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에, 펠릭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의외로 냉정하군. 너희가 오랜 기간 괴로워한 원인은 내게 있는데, 거기에 대해 느끼는 건 없나?”
리인포스와 기억을 공유한 펠릭스는 알고 있다. 시그넘, 비타, 샤말, 자피라, 수호기사 넷이 얼마나 자신들의 운명을 저주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며, 분노를 느꼈는지를.
그걸 드러낸 건 비타 뿐이었지만, 표면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뿐이지 다른 셋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만든 원흉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평정을 지키고 있는 건 펠릭스에게 있어 의외면서도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원통함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 되겠지. 하지만 그건 어차피,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범한 죄로부터 눈을 돌릴 생각은 없어. 벌은 받을 거고, 속죄도 해 나갈 거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건 지금과 미래야.”
“하야테나 집무관이 보여준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가는, 그게 우리, 야천의 수호기사의 새로운 책무.”
“그리고 주와 그 친구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있으면, 그 모든 걸 떨쳐나갈 부ㅂ.”
그건 수호기사들이 꺼낸 맹세의 말들. 하야테와 지내온 지금까지의 시간 속에 나타난 새로운 길. 수호기사들은 하야테나 크로노와 이야기해, 어둠의 서의 어둠과 결판을 낸 뒤에는 관리국에 속해 과거의 죄와 마주보기로 이미 결정했었다.
펠릭스에 대한 분노나 증오 이상으로, 지금 자신들이 손에 넣은 주와 그 행복을 지켜 나가는――그게 수호기사들에게 있어 가장 큰 소망이다.
이렇게 하야테와 운명적으로 만나 처음으로 행복을 손에 넣은 걸 생각하면, 과거의 환경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 거꾸로 그걸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른다――그렇게 느낄 정도로.
“그런 것 보다, 이렇게 결계를 펼쳤다는 건 뭔가 목적이 있는 거겠지. 그걸 들려주지 않겠나.”
예상치 못한 대답에 펠릭스는 얼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시그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야이야, 놀랐는데. 실로 재미있게 변화했구나. 정말, 이러니까 세상은 재밌어.”
쿠쿠쿡, 하고 소리를 죽이며 한바탕 웃은 펠릭스는, 자세를 고친 뒤 진의를 고했다.
“딱히 별일은 아니네. 인간, 그 누구도 새로운 힘을 얻으면 그걸 시험해 보고 싶은 법 아닌가? 눈 앞에 이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 모여있는 거다. 손에 얻은 힘을 시험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나?”
간신히 느껴진 펠릭스의 진의에, 크로노는 그레이엄에게서 인계받은 신형 디바이스――빙결의 지팡이, 뒤랑달을 고쳐 쥔다. 펠릭스의 눈에 감도는 빛과 같은 것을 과거의 범죄자들에게서 본 적이 있다. 그걸 반쯤 확신하면서도, 짐짓 물음을 던진다.
“일부러 관리국을 적대해서 어쩔 셈이냐? 그런 짓을 해도, 네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손익의 문제는 아니네. 내가 즐거우면 그걸로 좋아. 아무리 관리국이라 해도, 지금의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어. 너희가 지금까지 어둠의 서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 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잠시 시간을 두고, 비웃음을 지었다.
“절망과 공포로 비뚤어진 인간의 얼굴을 정말 좋아하네.”
그 미소를 본 나노하 일행의 등줄기를 차가운 무언가가 흘러내려, 저도 모르는 새 한 걸음 뒷걸음질 친다.
그건 나노하나 페이트 등이 처음으로 느낀, 사람의 순수한 악의. 끝없이 불길하고, 비뚤어진 광기라 할만한 감정.
“단순히 재미로냐.”
진절머리난다는 듯 말하는 유토의 말에도, 펠릭스는 여유가 감도는 미소를 띄우며 끄덕이곤 그 눈길을 유토에게 고정한다.
“뭐어, 네가 세운 계획이 잘 돌아갔으면,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만. 이렇게 각성하지 못했으면, 아무리 나라 해도 방위 프로그램과 함께 소멸했었겠지.”
“기왕이면 그대로 소멸하지 그랬어. 그 편이 뒤탈이 없어서 좋을텐데.”
일반인인 유토 입장에선, 펠릭스의 악의에 공포와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걸 떨어내려는 것처럼 짐짓 뻔뻔스런 태도를 취하면서도, 사태가 자신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악화된 것에 혀를 찬다.
“그렇게 매몰차게 대하지 말아 주게. 네게는 순수하게 감사하고 있어. 원래라면 내가 이렇게 각성할 때까지 앞으로 몇 번은 주를 건너탈 필요가 있었어. 네 인간을 초월한 마력 덕에 이렇게 현현할 수 있었네. 감사하네.”
“항, 감사한다면 말만이 아니라 태도로 보여줘.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한테 폐가 될만한 짓을 하지 마. 아무한테도 폐가 안 되는 곳에 쥐죽은듯 있어.”
“왜 너는 그렇게나 잘난 듯 하는 건데.”
자력으로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지쳐서 알프한테 기대고 있는 채인데도, 그 말과 태도만은 평소대로――는 커녕 평소 이상으로 드셌다. 무심코 딴죽을 건 크로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혹시나,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모르는 걸까요?”
“머리가 나빠 보이는 얼굴이고~.”
“쓰레기들 중에서도 특별히 멍청한 것 같은데.”
펠릭스의 옆에 있는 셋마저 기막혀하고 있었다.
“시꺼, 냅둬. 애초에 너희는 뭐야.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꼴 쳐 해갖구선. 짝퉁입니까? 2P 칼랍니까? 멍청입니까? 막 태어난 꼬맹이 주제에 잘난 듯이 떠들기는. 100년은 일러.”
소리를 친 건 아니――지만, 담담히 말하는 유토의 말투는 옆에서 듣고 있는 나노하가 무심코 “으아아”라고 할 정도로 악의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확실히 그 소녀 셋의 모습은 각각 나노하, 페이트, 하야테 셋과 닮았지만, 머리모양이나 눈초리 등에 차이가 보이고, 몸에 두르는 배리어 재킷이나 디바이스의 색도 보다 어두워, 어둠을 연상시키는 느낌으로 바뀌어 있다. 본인들과 비교해 보면, 격투 게임 등의 2P 칼라라고 우기는 것도 꼭 무리는 아니다.
“……저자식, 내가 박살내도 괜찮을까?”
“쓰레기 주제에……네놈에겐 입 놀리는 법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페이트와 하야테랑 닮은 소녀는, 핏대를 세우며 이래도 까불거냐는 듯이 유토에게 살기를 향한다.
거기에 반해 유토는 그걸 코웃음 쳐서, 둘의 살의를 더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 게……!!”
지금 당장에라도 유토를 덮치려 하는 둘을 억누른 건, 칠흑의 배리어 재킷을 두른 나노하랑 닮은 소녀.
“둘 다 침착해 주세요. 저 정도의 존재를 상대로 열받을 건 없어요.”
“그 말 대로야.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자기소개를 마쳐 두게.”
그 소녀의 말에 수긍한 펠릭스는, 옆의 소녀들을 소개하듯 가리킨다.
“그녀들은, 너희가 어둠의 서라 하는 것의 최심부에 봉인된 영원결정 ‘엑자미아’와, 그걸 떠받치는 무한연환(이터널 링)의 구성체(머티리얼). 그걸 바탕으로 내가 만들어낸, 볼켄리터를 대신하는 새로운 수호기사 같은 거로 생각해 주면 좋네.”
나노하랑 닮은 단발의 소녀가 천천히 인사한다.
“이치의 머티리얼, 슈테른 더 디스트럭터. 짧은 동안이겠지만, 알아 두시기를.”
페이트랑 닮은 청발의 소녀가 소리를 높인다.
“나는 힘쎄고 멋진 힘의 머티리얼, 레비 더 슬래셔☆ 너희를 영원한 어둠에 매장할 존재야. 그 혼에 내 이름을 새기도록 해!”
하야테랑 빼닮은 모습의 소녀가 냉혹하게 입가를 끌어올리며 비웃는다.
“너희 쓰레기의 생명, 이 어둠을 통솔하는 왕, 로드 디아키에 바치도록.”
셋이 내뿜는 마력과 위압감――그 어느 쪽도, 대적하기 어려운 강함을 느끼게 하기엔 충분했다.
“너희가 나노하 같은 애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는 뭐야. 일부러 그런 모습을 할 이유가 어딨는데.”
좀 떨리는 듯한 유토의 질문에 답한 건, 머티리얼들이 아니라 펠릭스였다.
“굳이 말하자면, 이번에 수집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뛰어난 힘과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까. 뭐, 내 취미가 차지하는 비율이 제일 크겠지만.”
“즉……그런 거냐.”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치솟아오르는 전율을 억누를 수 없는지,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 말을 자아내는 유토.
다음 순간에는, 주위 일대가 울리는 큰 소리로 외친다.
“네놈, 로리콤이냐아아아아―――――――?!”
그걸 들은 모두가 생각을 멈췄다.
그 외침에 담겨있는 마음에는 깊고도――애달프고, 고요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뭐가 슬퍼서 나노하나 하야테 같은 땅콩에 빨래판인 로리같은 걸 늘리는 건데!”
“땅콩?”
“빨래판?”
그리 좋지 않은 일에 이름이 나온 나노하와 하야테가 굳은 미소를 띄운다.
“어차피 할 거면, 알프나 시그넘 같은 좀 더 그 쭉쭉빵빵하고 어른의 매력이 흘러넘치는 젊고 가슴이 큰 예쁜 미인으로 하라고, 이 멍청아!!”
“좀 다물어.”
“하으?!”
또다시 소리치려고 하는 유토의 명치에 하야테의 백블로가 작렬. 수집의 대미지가 다 빠지지 않은 유토는, 그대로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음.”
“크흠.”
알프와 시그넘이, 분위기를 못 읽는 유토의 말을 불식하려는 듯이 헛기침을 한다. 약간 그 뺨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 처럼도 보이지만, 거기에 딴죽거는 사람은 없다. 상황이 엉망이라곤 해도, 칭찬받은 거니 둘은 나쁜 기분이 들진 않았다.
“……너 자식들, 이 자식의 동료로 있는 게 부끄럽지 않냐?”
“……말하지 마.”
디아키의 연민이 담긴 목소리에, 약간 뒤늦게 대답하는 크로노.
“……처음부터 다시 갈까.”
기세를 잃은 건 펠릭스도 마찬가지여서, 좀 맥이 빠진 듯 하면서도 새로운 술식의 구축과 영창을 시작해, 그 주변에 새로운 빛을 낳는다.
그 수는 총 여덟. 빛은 펠릭스나 머티리얼들이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습을 바꿔간다. 그건, 나노하 일행에게 정말로 낯익은 것들이었다.
“저건……볼켄리터들?”
“하지만, 볼켄리터들의 저 모습은…….”
“크로노나 유노에 유토……알프까지.”
나노하 일행의 앞을 가로막은 건, 약간 색이 옅은 유토, 크로노, 유노, 알프, 그리고 본 적 없는 기사갑주를 두른 수호기사 네 사람의 모습이었다.
“저 모습은…….”
“아아. 옛날의 우리들이다.”
새롭게 출현한, 자신들과 같은 모습을 한 자들에게도 동요 없이 분석을 하는 볼켄리터들.
프로그램인 수호기사들은, 시스템만 완전하면 어둠의 어ㅘ 마찬가지로 몇 번이든 재생할 수 있다. 오리지널이라고도 할 수 있을 볼켄리터들은 펠릭스의 손으로 어둠의 서에서 뜯겨 나갔지만, 백업 데이터라 할 만한 것이 펠릭스가 가진 어둠의 서에 보존되어 있다. 그렇기에 지금 해 보인 것 처럼 과거의 볼켄리터를 재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집무관이나 도미네 유토의 모습은, 수집시의 데이터로 만들어냈다는 걸까.”
“그, 그래도, 크로노 군이나 알프 씨는 수집 된 적 없는데?”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는 시그넘에게 나노하가 반론한다. 나노하가 말하는 대로, 집무관이라는 입장상 항상 유사시에 대비해야 할 크로노나 사역마인 알프는 수집되지 않았다. 수집한 데이터 따윈 존재할 리 없는 거지만, 리인포스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수집한 존재들의 기억에 있는 데이터를 재현한 거겠지. 직접 수집했을 때보다 재현도는 부족하겠지만.”
“과, 과연…….”
감탄하는 나노하완 대조적으로, 유토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한다.
“완전히 자기랑 똑같은 모습이라는 것도 떫네.”
“정말로…….”
“확실히.”
유토의 말에 끄덕이는 유노와 알프. 머티리얼 들도 굉장히 닮아있긴 하지만, 세세한 부분이나 분위기는 오리지널과 많이 떨어져 있다. 하지만 다른 카피들은 말 그대로 빼닮은 모습. 나란히 서면 오리지널과 전혀 구별되지 않을 정도다. 원래 거울같은게 아니면 볼 일 없는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보는 건 정말로 기묘한 기분이었다.
“그럼, 수다 시간은 여기까지로 하자. 준비하게나.”
펠릭스의 말에 응해, 머티리얼, 그리고 카피들이 각각 전투태세를 취한다.
“리인포스, 싸울 수 있어?”
“어둠의 서의 기능은 거의 못써. 나 개인의 마력도 그리 남아있지 않은데…….”
자피라의 목소리에 씁쓸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리인포스. 한때 수호기사들과 비겨도 최강을 자랑하던 힘의 대부분을 펠릭스에게 빼앗겨서, 개인으로서의 힘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유니존 능력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기가?”
“예, 아니, 하지만, 제 주――――!”
“포기해.”
하야테의 두려움 없는 미소에, 모든 걸 헤아린 리인포스가 반론을 입에 담으려고 했지만, 시그넘이 그걸 막았다.
“우리 주는 한 번 정한 걸 굽히는 분은 아냐. 그렇다면, 기사로서 우리가 해야 할 건 오직 하나. ――아닌가?”
하야테나 시그넘만이 아니라, 다른 수호기사 셋도 일제히 그 눈길로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리인포스는 어찌저찌 잘 반론하려 했지만, 말이 막힌 것처럼 신음한 뒤에 이윽고 체념 섞인 한숨을 흘렸다.
“…………하아. 열화의 장, 네가 말하는 대로군.”
“응, 주인이 하는 말은 안 들음 안 된다―.”
거기에 만족한 듯이 빙긋 웃음짓는 하야테.
“당신이란 사람은…….”
질림 반 감탄 반으로 말하는 리인포스. 실전경험이 없는 하야테를 이번 같은 전투에 참가시키고 싶지 않다는 게 진심이긴 하지만, 그게 허용될만한 상황도 아니고, 무엇보다 하야테 자신이 할 마음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융합기로서 최선을 다하는 게 자신의 책무라고 마음을 고친다.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가자, 리인포스!”
“예, 제 주!”
그 소리와 함께 둘은 융합한다. 주와 그 융합기가 하나가 되는 걸로 다른 디바이스를 아득히 뛰어넘는 힘을 얻는, 융합형 디바이스만에게 허용된 힘.
하야테의 머리와 눈동자의 색이 하양과 파랑으로 바뀌고, 그 몸을 자신이 이미지한 기사갑주가 둘러간다.
“읏차, 준비 완료야!”
세 쌍씩 여섯 장의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하얀 기사갑주를 몸에 두르고, 그 손에 십자가 지팡이를 거머쥔 그 모습은, 어둠의 서의 저주에서 완전히 풀려난 야천의 왕에 걸맞는 모습이었다.
“알프는 유토를 부탁해!”
“오케―.”
“윽…!”
페이트의 지시에 알프는 유토의 몸을 옆에 끼우며 뒤쪽으로 난다.
자신보다 경험이 부족한 하야테마저 싸운다고 하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에 이를 가는 유토.
평소에는 자신이 싸울 필요도 의의도 찾지 못하지만, 정작 이렇게 싸울 상황이 되면 자신에게 힘이 없는 것에 분개해 버린다.
설령 만전의 태새라고 해도 자신이 어떠한 전력도 되지 못하리라는 건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짐 취급받는 상황은 속이 탈 뿐이었다.
“선수 필승, 이쪽에서 가자고! 아이젠!”
『Jawohl』(了解)
『Jawohl.』 (알겠습니다.)
손에 든 철구를 해머 모양의 암드 디바이스――그라프아이젠으로 두드리는 비타.
네 발이 동시에 두드려맞은 철구가 일직선으로 적들을 향한다.
물론 이 일격으로 어떻게 될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건 비타도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견제의 일격을 먼저 내보내, 싸움의 흐름을 끌고 오기 위한 수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비타가 예상한 대로, 머티리얼 들이나 카피는 무난히 그 일격을 회피――――.
“으엑――――?!”
아니, 약 한 명 정도, 손도 못쓰고 직격당해 환상처럼 그 몸이 무산된 자가 있었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적과 아군 양쪽 다 얼이 나가 버렸다.
“야, 얌마아아아아!! 뭐야, 그건?! 약한데도 정도가 있겠지?!”
말할 것도 없이, 박살난 건 유토의 카피다.
“아―, 아니, 그, 뭐라고 할까.”
카피를 낳은 펠릭스 자신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었는지, 뭐라 할 수 없는 표정으로 뺨을 긁는다.
“오리지널이 너무 약한 탓이겠죠.”
“우와, 김세.”
“입으로만 잘났다는 건 이런 거구나…….”
“실제로 약하니까 어쩔 수 없는데.”
“아아, 결국 우리한테도 한 발도 못 넣었었고.”
“당하기만 했었는 걸~.”
“결국, 이 반년으로 큰 진보는 얻지 못했었네.”
“시끄러! 젠장할!!”
적인 머티리얼만이 아니라, 아군인 수호기사들한테까지 혹평을 받아, 유토는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소리쳤다.
머티리얼 들은 어쨌든, 수호기사 들에게 악의는 없다. 단지 단순히 사실을 늘어놓고 있는 것 뿐이다.
“그럼, 이건 최소한의 사과다. 평온한 어둠 속, 환상의 온기를 느끼며 잠들도록 하게.”
“――――?!”
“――――뭣?!”
급작스럽게 유토를 안고 있던 알프의 눈 앞에 펠릭스가 출현한다. 전위로서 앞에 나와있던 시그넘이나 크로노 등을 지나쳐 출현한 펠릭스에게 모두가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잘 가게, 도미네 유토 군.”
“……아.”
펠릭스가 치켜든 손바닥에 빨리들듯, 알프의 팔에 안겨있던 유토의 모습이 사라졌다.
“유토 군!”
“유토!!”
나노하와 페이트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침이…………야.”
졸음 속에서 몸을 흔드는 감각. 어딘가에서 들은 듯한 그리운 목소리.
기분이 좋아 언제까지나 몸을 맡기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자, 적당히 일어……나!!”
“오옷?!”
머리에 둔중한 충격. 잠에 빠져있던 머리가 급속히 깨어나, 눈을 뜨곤, 그 눈 앞의 광경에 말을 잃는다.
“에.”
“응, 간신히 일어났네. 오늘은 강의 날이잖아. 빨리 안 일어나면 지각한다고?”
그렇게 말하며 눈앞의 소녀는 만족스러운 듯 빙긋 웃는다. 처음으로 만났을 때랑 비교하면 꽤 길어진, 허리까지 오는 흑발. 속옷에 와이셔츠를 두르기만 한 간소한 차림. 어느 쪽도 잘못 볼 리가 없는, 기억 속에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아, 으.”
“?”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9년간 계속 구해왔을 모습이 거기에 있는데도, 말하고 싶은 게 잔뜩 있었을 텐데도.
차례차례 감정이 흘러넘쳐서 혼란에 빠져있다.
“유……나.”
간신히 그녀의 이름만을 짜낸다.
“응?”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가, 다음 순간――당황한 듯 내 이름을 부른다.
“무, 무슨 일이니, 유토?!”
“에, 어, 어라?”
깨닫고 보니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왜 울고 있는 걸까.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다. 자신이 직전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오직 흘러넘치는 감정에 농락당한다.
“으……윽…………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생각도 감정도 정리되지 않아, 제대로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을 흘린다. 이렇게 운 건 대체 언제 이랠까.
“괜찮아……괜찮아.”
주변에 풍기는 감귤계의 향과 함께, 따뜻한 감촉이 나를 감싼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나를 보고 얼이 나가있던 유나가, 나를 달래듯이 날 껴안아 준 거다.
“유, ……나아…….”
한심스럽게 소리를 높이며 달라붙는 내 등을, 유나는 상냥하게 계속 쓰다듬는다.
“응, 괜찮아. 나는 여기 있으니까……괜찮으니까.”
머리 한 구석에서 뭔가가 경종을 울리지만, 머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이건 현실이 아니고 꿈이라고 뭔가가 소근거리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잃었을……9년간 계속 쫓아온 연인이 눈앞에 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다른 무엇도 필요 없다. 오직 그녀만이 있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잊어가던 기억이 차례차례 선명하게 솟아오른다. 꿈이든 환상이든 상관 없다.
자신보다도 소중한 것. 나는 그걸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다신 떨어지지 않아.”
그러니까――――그녀의 몸을 굳고도 굳게 껴안았다.